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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비는 평등을 초대하고 심판을 이깁니다.
야고보서 2:5-13
5 사랑하는 형제자매 여러분, 들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가난한 사람을 택하셔서 믿음에 부요한 사람이 되게 하시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이들에게 약속하신 그 나라의 상속자가 되게 하시지 않았습니까? 6 그런데 여러분은 가난한 사람을 업신여겼습니다. 여러분을 압제하는 사람은 부자들이 아닙니까? 또 여러분을 법정으로 끌고 가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7 여러분이 반드시 그 존귀한 이름을 모독하는 사람도 부자들이 아닙니까? 8 여러분이 성경을 따라 “네 이웃을 네 몸같이 사랑하라”는 으뜸가는 법을 지키면, 잘하는 일입니다. 9 그러나 여러분이 사람을 차별해서 대하면 죄를 짓는 것이요, 여러분은 율법을 따라 범법자로 판정을 받게 됩니다. 10 누구든지 율법 전체를 지키다가도 한 조목에서 실수하면, 전체를 범한 셈이 되기 때문입니다. 11 “간음하지 말라” 하신 분이 또한 “살인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사람이 간음은 하지 않는다고 하다라도 살인을 하면, 결국 그 사람은 율법을 범하는 것입니다. 12 여러분은, 자유를 주는 율법을 따라 앞으로 심판을 받을 각오로, 말도 그렇게 하고 행동도 그렇게 하십시오. 13 심판은 자비를 베풀지 않는 사람에게는 무자비합니다. 그러나 자비는 심판을 이깁니다.

대표 작품으로 『그리스도 최후의 유혹』, 『그리스인 조르바』를 집필한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조국 순례 여정으로 아토스 산을 순례한 적이 있었습니다. 아토스 산은 그리스 동방정교회의 성지 산입니다. 절벽 사이와 그 정상에 수도원들이 지어져 있고 수도원 벽에는 수많은 성화들이 그려져 있습니다.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바쳐졌다는 전설과 함께 시작된 아토스 산은 천 년 동안 여자가 들어가지 못했다고 합니다. 니코스 카잔차스키는 20대 초반 아토스 산을 순례하였는데 순례기 시작이 〈... 종신형을 살기 위해 어두운 감옥으로 들어가는 느낌이 들었다. 악마와 지옥의 불길과 피투성이 젖가슴을 한 매춘부 아니면 뿔이 달린 지옥의 괴물 그림이 벽면을 메우고 있었다. 사람들에게 겁을 주자는 교회의 갈망이 그대로 투영된 묵시록적 협박 …. 사람을 천국으로 데려가는 것은 사랑이 아니라 두려움일 것이라는 인상을 받았다….〉고 썼습니다.
카잔차키스는 아토스 산에서 고행을 통해 천국에 이르려는 많은 수도승들을 만났습니다. 수도원 앞의 높은 절벽 아래에는 백골이 널려 있었는데, 고행과 수도를 통해 날개를 얻었다고 믿고 절벽 아래로 몸을 던져 본 수도승들의 백골이었습니다. 그는 아토스 산에서 목숨을 걸고 수행하는 의미에 대해 성인으로 불려진 〈동굴의 마카리오스〉를 만나 물었습니다. “저는 천국에서도 도무지 평안을 느낄 수 없었다는 어느 수도자 얘기를 들은 적이 있습니다. 그 수도자가 한숨을 쉬자 하느님이 불러서, 왜 한숨을 쉬느냐고 물었다지요. 그러자 그 수도자는, 천국의 한 가운데로 저주받은 자들의 눈물의 강이 흐르는데 어떻게 평안할 수 있겠습니까, 하고 반문하더랍니다. 고행을 통하여 혼자 천국에 드는 것이 마침내 무슨 의미가 있는 것입니까?” 질문이 끝나자 <성인>은 성호를 그은 다음 하늘을 향해 침을 뱉고 카잔차키스를 보며 “사탄아, 물러가거라.”하였답니다.

여러분들은 교회에서 이야기되어지는 천국과 지옥의 이야기를 들으면 어떠한 생각이 드십니까? ‘겁줘서 교회 잘 다니게 하려고 그러나’, 혹은 ‘아 나는 예수 믿고 교회 다녀서 다행이다.’라는 마음이 들지는 않습니까. 만약 여러분들이 카잔차키스의 질문을 받는다면 어떻게 대답을 하시겠습니까? 질문을 단순하게 하면 ‘당신만 예수 믿고 교회 다니면서 천국가면 어떨 것 같습니까?’입니다.

대체적으로 기독교인들은 모든 사람들의 영혼은 육체의 죽음 이후에 천국과 지옥으로 나뉘어져 갈 것이라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기준은 하나님의 심판과 사랑이라고 말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예수를 잘 믿고 교회에 다니면 하나님 사랑으로 천국행, 그렇지 않으면 심판을 받아 지옥행이라고 믿습니다. 그것이 자신들의 최대 교리이며 하나님의 뜻과 섭리라고 굳게 믿습니다. 그들 중엔 그것이 복음이라고 말하는 이도 많습니다. 예수의 성육신과 십자가 죽음, 부활과 재림 모든 것이 사람들을 천국과 지옥에 보내는 것에 맞추어져 있습니다. 하나님의 사랑은 예수를 통한 천국 가는 것이고, 하나님의 정의는 그를 믿지 않는 사람에 대한 심판, 곧 지옥행이라고 말합니다.

어떤 한 사람을 지옥에도 보내고 천국에도 보내는 교리와 신앙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사랑도 정의도 아닙니다. 이러한 신앙인은 평등이 아닌 차별하는 죄를 하나 더 짓는 것에 불과합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 야고보는 겉모습, 가진 재물, 재능, 성과 성적지향 등 모든 사람에 대한 모든 차별은 죄라고 말합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큰 차별은 자신은 영원한 안식처라는 천국에 가고, 다른 누군가를 영원한 불구덩이가 있는 지옥에 보내려는 차별일 것입니다.  

몇 주 동안 온 나라 언론과 사람들 입에 오르내린 이름은 ‘이석기’의원일 것입니다. 소위 ‘내란 음모죄’라 하여 북한과 내통하며 남한을 무력으로 전복시키려고 한 거 아니냐는 소리가 밑도 끝도 없이 나왔습니다. 제가 만나는 사람들 중 종종 ‘이석기의원 사건을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어온 걸 보면서 씁쓸한 마음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고인이 된 김대중, 노무현 전 대통령들이 북한을 방문하던 평화의 그 순간의 감동들은 온데 간데 사라지고 온 나라에 공안정국이라는 어두운 그림자가 드리워져 사람들을 구별하고 심판대에 세우는 것 같았기 때문입니다. 국정원의 선거개입과 오늘의 행태는 권력의 그림자가 짙게 드리워진 차별과 심판의 칼입니다. 그들의 행태는 의심과 폭력, 구별과 심판뿐입니다.

우리 사회는 지금 심판이 난무하는 의심과 폭력의 길로 돌아 갈 것이냐, 아니면 자비를 딛고 서서 평화와 공존으로 갈 것이냐의 기로에 있는 듯합니다. 어린 시절 경험에 비추어 보면 이러한 문제는 정치, 교육, 역사, 문화, 종교 등 모든 삶의 전반에서 나타날 것이기 때문에 더욱 불편한 심정입니다.

어떠한 상황에서 든 심판이냐 자비냐라는 두 갈래 길 중 어느 길을 선택하느냐는 우리의 몫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미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자신의 길을 보여주셨고 확정해 놓으셨습니다. 예수님의 자비는 부정과 부패, 정의롭지 못한 일들에 대해 마냥 손 놓고 시혜를 베푸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의 자비는 정의와 떨어져 있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자비, 곧 하나님의 사랑, 평화와 정의, 생명은 우리의 몸과 영혼이 하나이듯 하나입니다. 자비를 이야기하며 정의를 파괴하는 건 자비가 아닙니다. 정의를 이야기하며 자비를 무시하는 것 또한 정의가 될 수 없습니다.

예를 들어 미국이 평화를 지키겠다고 테러와의 전쟁을 선포하며 전쟁을 일삼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자신들의 평화와 정의를 지키겠다고 타인의 평화에는 아랑곳하지 않는 모습은 심판의 자리에 앉고 싶어 한 사탄의 모습과 다를 게 없습니다. 사탄은 인류 태초의 동산에서 인간에게 말하였습니다. ‘너희가 결코 죽지 않을 것이다. 하나님은, 너희가 그 나무 열매를 먹으면, 너희의 눈이 밝아지고, 하나님처럼 되어서, 선과 악을 알게 된다는 것을 아시고, 그렇게 말씀하신 것이다.’(창3:5) 인간의 가장 근본적인 욕구는 선과 악을 판단하여 심판하려는 것입니다. 자신이 심판자의 자리에 앉으려는 욕구, 이것은 하나님 나라를 상속받으려는 사람들에게 최대의 유혹이며 걸림돌입니다. 우리 인간은 자신 스스로 선과 악을 규정하여 자비라는 하나님의 선물을 빼앗길 때가 많습니다. 자비를 빼앗겨 버린 사람들은 ‘저런 행동을 했으니 당해도 좋아’ ‘저런 나라는 전쟁을 치루어도 괜찮아’ 심지어 ‘하나님을 믿지 않으니 재해를 당하고 저주를 받은 게지, 지옥에 갈거야’라고 말합니다.

사람들과 나라들은 자신들의 입맛에 따라 선과 악을 규정하는데, 옷 입는 것과 가진 재물과 지식과 문화와 종교, 역사의 잣대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 잣대를 가지고 개인적인 비난은 물론 전쟁까지도 일삼습니다. 그 심판의 자리에는 자비라는 하나님의 크신 은총이 들어갈 자리가 없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자비는 평등이라는 기초 석을 딛고 있다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자비라는 평등의 법아래 있는 그리스도인들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성과 종교 모든 삶의 부분에서 하나님의 자비는 모든 차별을 삼키고 평등을 초대하며 심판을 이기게 합니다. 성경은 이미 하나님의 자비는 지옥 불을 삼켰기에 아무런 두려움 없이 예수를 따라 살아갈 것을 말씀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태양 빛과 가을비가 악인이나 선인이나 모든 사람에게 동일하게 비추고 내리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나 우리네 인생들은 하나님의 자비를 등한시 할 때가 있습니다.

남의 잘못을 보고 자신은 보지 못하는 사람에 대한 효봉스님의 일화가 있습니다.

어느 날 우리나라 최초의 판사로 제직하다 사형선고를 내리고 회의가 들어 입적한 효봉스님에게 한 제자가 다른 스님의 잘못을 고자질하러 왔습니다. 이는 평소 효봉스님의 뜻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스님, 스님들 중 술 마시고 여자를 만나는 스님이 있습니다. 이를 바르게 잡으심이 어떻겠습니까?” 그러자 효봉스님은 무덤덤하게 “네가 보았단 말이지?” 라고 되물었습니다. 그러자 “네, 스님”하고 말하자, “수행자는 술 마시면 안 되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수행자는 여자를 만나면 안 된다는 말이군” “그렇습니다.” “잘 알고 있군, 그래” 이렇게 짧은 대화가 오갔습니다. 이후에 효봉스님은 다른 스님의 잘못을 고자질하고 심판하는 스님을 크게 꾸짖었습니다. “너나 잘해라, 이 녀석아” 그랬답니다.

우리는 항상 타인의 잘못은 쉽게 보지만 자신의 잘못은 못 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다 보니 자신에게는 관대하지만 타인에게는 심판의 칼을 쉽게 들이댑니다. 자동차를 운전하다보면 이러한 모습을 가장 쉽고 많이 접하게 됩니다. 자신이 끼어들기를 하면 항상 바쁘다보니, 어쩔 수 없는 상황이니 라며 자신에게 자비를 베풀지만 다른 사람이 자신 앞에 끼어들라치면 위험하게 저런다며 화를 내곤 합니다.

나에게 자비를 베푸는 것처럼 타인에게도 자비를 베풀고, 자신이 천국에 들어가길 원하는 것처럼 타인 또한 함께 천국에 들어가길 바라는 마음과 말과 행동은 으뜸가는 성경의 법, 곧 사랑의 법, 자비의 법을 지키며 사는 것입니다.

자비를 따라 추구하는 마음과 말과 행동엔 예수와 같은 용서와 섬김이 충만합니다. 그와 같은 사람은 어느 누구를 탓하기보다 자신을 먼저 돌아보며 자신과 타인을 평등한 존재로 맞이하고 화해와 평화의 길로 나갑니다.

2장 1절엔 ‘나의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은 영광의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있으니, 사람을 차별하여 대하지 마십시오.’라고 권면합니다. 예수를 믿고 자비로운 삶을 추구하는 우리는 모든 사람이 나와 같은 마음과 사랑, 열망과 희망, 변화와 기대를 동일하게 혹은 더 풍성하게 가지고 있다고 인정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우리를 그렇게 보아주시고 받아주시며 인정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모든 상황 속 모든 사람을 차별 없이 대하고 만나는 자비로운 사람은 세상에 평등을 초대하고 최후심판의 불까지 삼켜 이기는 삶과 축복을 살아낼 것입니다. 한 주간도 그렇게 예수님의 자비로 평등을 초대하고 심판을 이기는 삶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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