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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울로 코엘료의 책, 연금술사에 보면, 주인공 산티아고가 한 늙은 무슬림과 대화하다가 이슬람교도의 5가지 의무에 대해 이야기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늙은 무슬림은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할 5가지 계율을 산티아고에게 설명하기 시작했습니다.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할 첫째 의무는 신은 한 분 뿐임을 믿어야 하는 것, 둘째 의무는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라는 것, 셋째 의무는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는 것, 넷째 의무는 가난한 형제를 도우라는 것......” 여기까지 말한 무슬림은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산티아고가 채근했습니다. “다섯 번째 의무는요?” 그러자 그 늙은 무슬림은 말을 이었습니다. “모든 무슬림이 지켜야 할 다섯 번째 의무는 여행의 의무라네. 모든 무슬림은 평생에 한 번은 모든 일상을 뒤로 하고 무슬림의 성지 메카를 향해 떠나야 하네.”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며 “여행의 의무”라는 말에 꽂히고 말았습니다. 여행의 의무란 매몰되었던 일상에서 벗어나는 의무를 말합니다. 더욱이 그것이 성지를 향한 여행이란 것은 삶의 껍데기가 아닌 삶의 본질을 향해 일상을 등져야 하는 의무를 말합니다.
일상은 소중합니다. 그러나 삶의 본질을 등한시하면 일상은 삶을 파괴하는 무거운 짐이 됩니다. 그러므로 일상의 소중함을 보존하기 위해서라도 일상을 벗어나 일상 밖에서 일상을 성찰하는 기회를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일상의 소중함은 보존될 수 있습니다. 무슬림들에게 주어진 여행의 의무는 그런 기능을 담당합니다. 저는 이 장면을 읽으며 모든 무슬림이 부여 받은 여행의 의무를 부러워했고 시샘하기조차 했습니다. 왜 우리 기독교엔 이런 의무가 주어지지 않았단 말인가?
그러나 저는 얼마 뒤, 모든 기독교인들에게 주어진 주일성수가 바로 그 여행의 의무와 다르지 않음을 기억해 냈습니다. 주일성수의 계명은 안식일 계명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안식일 계명은 단순합니다. 일주일에 하루는 아무도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겁니다. 주인도 종도 부모도 자녀도 외국인도 심지어 가축조차 아무 일도 하지 말라는 것이 안식일 계명입니다.
안식일 계명의 근거는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출애굽기 20장에 따른 것으로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며 하루를 쉬라는 겁니다. 다른 하나는 신명기 5장에 따른 것으로서, 하나님의 해방을 기억하며 하루를 쉬라는 겁니다.
아무도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것은, 일상의 완벽한 정지를 의미합니다. 그렇게 일상의 완벽한 정지를 실행하면서 할 수 있는, 해야만 하는 유일한 일은 하나님의 창조와 하나님의 해방을 기억하는 일입니다.
안식일은 일상을 완벽하게 정지하는 날, 아무 일도 하지 않는 날이지만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 날은 아닙니다. 아무 일도 하지 않는 그 날에 오히려 가장 본질적인 사건이 일어납니다.
일상을 완전히 정지하는 그 날에 인간에게는 앞뒤를 분간할 수 없게 휘몰리며 어디로 가는지도 모르고 달려가던 일상으로부터의 해방이 일어납니다. 그럼으로써 인간의 자기의 일상이 삶의 본질로부터 얼마나 멀리 떨어져 있는지 성찰할 수 있는 기회를 얻습니다. 그러한 성찰로부터 인간의 일상은 새로운 의미와 방향을 얻을 수 있게 됩니다. 일상의 새로운 창조가 일어나는 겁니다.
이런 의미에서 안식일 계명을 잇는 기독교의 주일성수의 의무는 모든 무슬림들이 받았다는 그 여행의 의무와 다르지 않습니다. 우리는 주일을 성수하며 일주일에 한 번은 매몰되어 살던 일상을 떠나 삶의 본질을 향한 여행을 떠나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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