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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일은 그만두고 평화협정이라도 맺어진다면 얼마나 좋을까? 평화협정은 차치하고 정전협정이라도 맺었으면 좀 낫겠다. 정부간 교류가 안되면 민간차원의 경제, 문화교류라도 끊어지지 않아야 하는 것 아니냐? 최소한 죽기 전 이산가족들이 서로 생사확인은 할 수 있게 해야 하는 것이 인간된 도리가 아닐까? 하던 모든 바람과 좌절과 탄식의 시간이 바로 엊그제 같은데 이제는 남북회담을 넘어 남미회담과 한중일 회담을 지나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을 앞두고 있다.
이런 시절을 맞이해 문익환 목사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를 떠올리는 사람이 비단 나만은 아닐 것이다.
이 시에서 문목사님은 평양에 가겠다고, 이것은 잠꼬대가 아니라고, 남들은 시인의 터무니 없는 상상력이라고 말하며, 이런 시인의 상상력은 여전히 시퍼렇게 살아있는 국가보안법 앞에서 잠꼬대에 불과 하다고 하겠지만,
그러나 역사를 산다는 건, 허용된 일만 순순히 하는 직설의 삶이 아니고 밤을 낮으로 바꾸고, 땅을 하늘로 두엎는,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부수고 그곳에 묻히는 역설적 삶이 곧 역사를 사는 것이라고,
그런 점에서 분단의 시절에 역사를 산다는 것은 분단을 거부하는 것, 휴전선은 없다는 주장하는 것, 서울역에서 평양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말했다.
그렇다! 역사는 주어진 현실만을 현실로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아니라 아직 오지 않은 미래를 이미 현실 속에서 살아내는 사람들에 의해서 쓰여 왔다.
아래에 문익환 목사님의 시, 잠꼬대 아닌 잠꼬대 전문을 싣는다.
잠꼬대 아닌 잠꼬대 –문익환-
난 올해 안으로 평양으로 갈 거야
기어코 가고 말 거야 이건
잠꼬대가 아니라고 농담이 아니라고
이건 진담이라고
누가 시인이 아니랄까 봐서
터무니없는 상상력을 또 펼치는 거야
천만에 그게 아니라구 나는
이 1989년이 가기 전에 진짜 갈 거라고
가기로 결심했다구
시작이 반이라는 속담 있지 않아
모란봉에 올라 대동산 흐르는 물에
가슴 적실 생각을 해보라고
거리 거리를 거닐면서 오가는 사람 손을 잡고
손바닥 온기로 회포를 푸는 거지
얼어붙었던 마음 풀어버리는 거지
난 그들을 괴뢰라고 부르지 않을 거야
그렇다고 인민이라고 부를 생각도 없어
동무라는 좋은 우리말 있지 않아
동무라고 부르면서 열 살 스무 살 때로
돌아가는 거지
아 얼마나 좋을까
그땐 일본 제국주의 사슬에서 벗어나려고
이천만이 한 마음이었거든
한 마음
그래 그 한 마음으로
우리 선조들은 당나라 백만 대군을 물리쳤잖아
아 그 한 마음으로
칠천만이 한겨레라는 걸 확인할 참이라고
오가는 눈길에서 화끈하는 숨결에서 말이야
아마도 서로 부둥켜 안고 평양 거리를 뒹굴겠지
사십 사 년이나 억울하게도 서로 눈을 흘기며
부끄럽게도 부끄럽게도 서로 찔러 죽이면서
괴뢰니 주구니 하며 원수가 되어 대립하던
사상이니 이념이니 제도니 하던 신주단지들을
부수어 버리면서 말이야
뱃속 편한 소리 하고 있구만
누가 자넬 평양에 가게 한대
국가보안법이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 있다구
객적은 소리 하지 말라구
난 지금 역사 이야기를 하고 있는 거야
역사를 말하는 게 아니라 산다는 것 말이야
된다는 일, 하라는 일을 순순히 하고는
충성을 맹세하고 목을 내대고 수행하고는
훈장이나 타는 일인 줄 아는가
아니라구 그게 아니라구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밤을 낮으로 낮을 밤으로 뒤바꾸는 일이라구
하늘을 땅으로 땅을 하늘로 뒤엎는 일이라구
맨발로 바위를 걷어차 무너뜨리고
그 속에 묻히는 일이라고
넋만은 살아 자유의 깃발을 드높이 나부끼는 일이라고
벽을 문이라고 지르고 나가야 하는 이 땅에서
오늘 역사를 산다는 건 말이야
온몸으로 분단을 거부하는 일이라고
휴전선은 없다고 소리치는 일이라고
서울역이나 부산, 광주역에 가서
평양 가는 기차표를 내놓으라고
주장하는 일이라고
이 양반 머리가 좀 돌았구만
그래 난 머리가 돌았다 돌아도 한참 돌았다
머리가 돌지 않고 역사를 사는 일이 있다고 생각하나
이 머리가 말짱한 것들아
평양 가는 표를 팔지 않겠음 그만두라고
난 걸어서라도 갈 테니까
임진강을 헤엄쳐서라도 갈 테니까
그러다가 총에라도 맞아 죽는 날이면
그야 하는 수 없지
구름처럼 바람처럼 넋으로 사는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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