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자료

2013.12.31 송구영신예배설교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뜨는 태양" 말4:1-6

by 고성기 posted Jan 16, 20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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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뜨는 태양
말라기 4:1-6
한 세대, 한 개인이 인생을 살면서 수많은 경험들을 갖습니다. 개인의 인간관계에서부터 가정사와 사회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희노애락통이 있습니다. 자신의 실수로 인한 것이나 혹은 다른 어떤 외부적인 환경과 상황들로 크고 작은 경험들을 겪으면서 기쁨과 슬픔, 괴로움과 번민, 고통과 즐거움을 함께 갖습니다.

한 세대가 겪는 고통에는 크게는 전쟁이 있을 수 있고, 기후변화로 인한 자연재해나 국가경제의 어려움으로 인한 아픔과 고난이 따르기도 합니다. 우리 사회는 윗세대가 겪었던 전쟁의 아픔과, 함께 경험한 IMF 경제위기 이후 개인들의 삶이 많이 파괴되고 있습니다. 경제는 극심한 양극화의 길을 걷고, 부채로 인한 가정의 무거운 짐은 사라질 기미가 없어 보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힘겨운 나라살림에서 살아남고 이겨야 한다는 생각에 경쟁이라는 멈출지 모르는 기차의 핸들을 놓지 못하고 있습니다. 경쟁사회라는 기차는 삶의 전 분야에서 질주하며 사람들의 마음과 생활을 양육강식의 어두운 터널에 가두어 놓았습니다. 개인들은 낙오되고 잊혀질까 두려워합니다. 그래서 멈추면 얼어 죽을 것 같은 영화 속 설국열차와 같이 질주하는 세상의 흐름에서 뛰어 내리지 못합니다. 행여 내리게 되면 자신과 가족이 해체되고 사라질까 무섭기 때문입니다. 내려야 되는 걸 알면서도 내리지 못하는 것은 우리 사회의 설국열차가 너무 빠르게 달리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최근 세계 시민 사회와 깨어난 정부는 모두의 안녕을 위해 제도를 만들고 국가와 사회가 보다 많은 사람들이 안녕 된 삶을 살아갈 수 있도록 변화를 추구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인류의 역사에서 확연하게 볼 수 있듯이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생명을 착취하고 억압하는 권력과 부의 모습은 여전히 건재합니다. 누구도 그 질주를 멈출 수 없을 것처럼 보입니다. 세상의 부를 독차지한 사람들의 탐욕은 용광로의 불길처럼 끓고 식을 줄 모릅니다.

예를 들어 핵발전소 건설과 추구에서 뚜렷하게 나타납니다. 후쿠시마 원전의 위험을 현재도 겪고 있으면서 이 정부는 다시 7기의 원전을 더 짓겠다고 하니 위험천만한 일이 아닐 수 없습니다. 원전으로 인해 이득을 취하는 이들을 ‘원전마피아’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핵발전소의 핵심기술을 가진 미국이나 프랑스 등 소위 선진기술을 가진 나라의 재벌들입니다. 그들의 로비는 정치인들과 토건세력들의 탐욕을 부추기고 진행하게 합니다. 그래서 원전을 더 짓고 더 오래 가동시키고 있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가 가장 위험한 선택을 하고 있는 부분입니다. 그들은 생명을 지푸라기처럼 태울 수 있는 힘과 부를 가진 이들이기에 하나님의 강한 개입과 역사가 필요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백성들은 더 기도하고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 개인들의 삶에서 벌어지고 경험하는 크고 작은 일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살면서 서로 상처주고 갈등하는 일들을 반복하기도 합니다. 가만히 성찰해 보면 우리 인간 안에 깊게 뻗은 악의 뿌리와 가지는 사라질지 모르는 것 같습니다. 바울이 기대하는 것처럼 내 안의 가시가 완전하게 없어지는 날은 주께서 오시는 그날이 될 것입니다. 그 날이 되면 모두 홀연히 변화되어 새로운 존재로 다시 만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며칠 전 한 오십대 초반의 남자가 화재로 목숨을 잃은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는 학원 강사를 그만두고 다른 직장에서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직장에서 해고통지서를 받은 겁니다. 그에게는 외고에 입학하게 된 자녀가 있었습니다. 중년의 아버지는 자녀의 진로와 가정형편을 생각하니 자신의 해고를 가족에게 알릴 수 없었습니다. 사고 당일 직장에 간다하고 나와 집에서 500미터 떨어진 빈 집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모닥불을 피워 놓고 지내다 그만 큰 화재로 번지게 되어 변을 당하게 되었습니다.

연말연시 아쉬움을 뒤로하고 새로운 한 해를 맞으며 꿈과 희망을 가져도 모자란 인생들인데 참담한 현실 앞에 고통은 멈추지 않고 사람들을 찾아다니고 있는 듯합니다. 빈집에 혼자 앉아 불을 피우며 고뇌하던 아버지의 모습은 오늘 대한민국에 살고 있는 수많은 아버지들의 자화상입니다.

자신과 가족의 삶의 무게를 감당해야 하는 십자가도 무거운데 정치, 경제의 무거운 십자가는 고뇌하는 부모들에게 한 없이 무겁게 내려 앉아 있는 오늘이 안타깝기만 합니다.

그러나 세대와 개인이 경험하는 현실에서 동쪽에서 떠오르는 태양을 기다리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오늘 말라기도 마찬가지입니다. 암흑 같은 역사의 현장에서 두려움이 엄습할 때 말라기는 태양이 떠오르는 동쪽을 바라보며 치유하는 하나님의 빛을 희망했습니다.

동쪽에서는 언제나 변함없이 태양이 떠오릅니다. 오늘의 태양을 기다리는 사람들은 어제의 태양의 빛과 모습이 어떻게 생겼고 얼마나 강한지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만 오늘 자신의 자리에서 동쪽에 태양이 떠올라 자신의 삶을 치유하길 기대합니다.

인도인들은 갠지즈강에 자신의 마지막 몸이 스며들기를 바라고 그 강가에서 화장되기를 가장 큰 축복으로 여깁니다. 그런데 갠지즈강에서 화장을 하지 않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어린이, 임산부, 수행자, 거지, 처녀는 죄가 없다고 믿어 화장하지 않고 수장하거나 강가에 묻습니다. 그래서 그들 외 다른 이들을 화장하기 전 행하는 예식은 사체를 10분정도 갠지즈강물에 담그는 것입니다. 한 인간이 겪었던 모든 고통과 죄들, 모든 아픔을 주고받았던 것을 마지막으로 정화시키는 예식입니다. 그 후 몸은 태워져 하늘로 가고 다시 갠지즈강과 하나 됩니다.

살아 있는 인도 사람들은 모든 이들의 몸과 영혼을 품은 갠지즈강가에 나와 동쪽에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신에게 자신의 안녕과 치유를 위해 기도합니다. 날마다 새롭게 떠오르는 태양을 바라보며 신의 보호와 안녕을 구하는 것입니다. 삶과 죽음의 경계가 되는 갠지즈강에 떠오르는 태양은 살아있는 사람들에게 희망이 되고 치유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삶과 역사의 치유를 기다리는 사람들에게 예수그리스도라는 영원한 태양을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인간에게 비추이시는 빛은 영원한 사람이고 용서이며, 정의이고 평화입니다. 이 빛은 개인들이 겪는 아픔과 고통을 치유할 뿐 아니라 세상의 권력과 부로 인해 파괴된 모든 갈라진 것들을 이어붙이고 새롭게 거듭나게 합니다.

베드로의 실패, 예수의 몸을 못 박고 죽였던 로마병정, 살인과 학살에 가담했던 바울, 그들의 삶에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은 치유와 변화의 빛이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사랑과 용서 속에 다시 일어설 수 있었고 그 이름 아래서 다시금 기뻐할 수 있었습니다.

행여 우리의 삶이 다시금 좌절하고 넘어지고 후회로 가득하다 하더라도 예수 그 이름 앞에 나온 사람, 그 사랑과 평화와 용서를 구하며 나오는 사람은 영혼의 에덴 동쪽에 뜨는 찬란한 주님의 태양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집트 노예들에게 모세를 보내어 해방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들에게 주체적인 삶과 권리, 노동과 문화와 건강, 종교를 갖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모세와 엘리야를 보내십니다. 가난한 우리의 마음에 성령을 보내시어 하나님 나라를 소망하게 하시고, 다툼이 있는 곳, 불평등과 어둠이 있는 곳에 자신의 자녀들을 보내어 평화의 빛, 나눔의 빛, 의로움의 빛을 비추게 하십니다.

2013년 한 해를 보내고 2014년 새 해를 맞은 우리는 하나님의 법도를 기억하고 경외합니다. 주님을 경외하는 우리의 마음과 삶에 뜨는 평화와 자비, 의로움과 용서, 치유의 태양은 내일 아침 보게 될 태양처럼 환하고 아름답게 비춰질 것입니다. 2014년 한 해 가슴과 삶에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비추시는 하나님의 태양을 뜨겁게 품고 모든 아픔과 어둠을 이겨 내시고 기쁨의 순간들을 외양간에서 나온 송아지처럼 맛보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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