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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3월말 이사를 하게 되었다. 베를린에서 본으로. 직장이 본대학으로 되었다. 여러모로 참 좋은 조건으로 간다. 자유대 연구소에서 친한 한 교수가 이 소식을 듣고 나에게 하는 말이 "그런 조건이면 로또에서 이긴 것과 같다"였다. 그래, 이런 건 능력으론 안 되고, 행운으로 되는 것이다. 그 행운을 나는 하나님의 축복이라 하겠다.

2.
베를린은 사실 나의 제2의 고향이다. 거의 1/4세기를 여기서 살았다. 그리고 초기 나를 슬프게 만들고 마음을 무겁게 했던 이슬비와 거리의 회색에 - 나는 콜 수상의 시기를 나 개인의 "납의 시대"라고 부른다 - 얼마나 적응 했는지 더이상 거슬리지 않는다. 더이상 한국의 소나기가 장마가, 내리쬐는 해와 여름의 화창한 구름한 점 없는 파란 하늘이 그리움의 대상이 아니다. 내가 독일에 이렇게 적응해가는 동안 독일사회도 많이 변했다. 아무도 꿈꾸지 못한 통일이 밤새 이뤄지고 40년 넘게 임시수도였던 하나의 소도시는 그 역활을 다하고, 옛수도이자 새 수도가 된 베를린은 장벽이 사라지면서 섬성격을 완전 벗어 던지고 새로운 활기를 띄게 되었다. 많은 것이 베를린으로 쏠린다. 나는 이런 흐름에 역행하는 것 같다. 시대착오적으로 보일수 있다. 새수도에서 구수도로... 하지만 하나는 벌써 말할 수 있다. 라인강은 슈프레강보다 몇배나 크더라 그리고 진짜 쏜쌀같이 빠르더라.

3.
그래 베를린을 떠난다는 것은 쉬운 것이 아니다.

4.
얼마전 집에 방문온 다산이가 자기의 베를린시절 유치원의 마페를 정리했다. 자기가 그린 그림들을 하나 하나 검토하면서 마음에 들지 않는 것은 마페에서 빼고 이건 버리라고 하더라. 왜 버리냐고 하니 마음에 안든다고. 그래 그도 이미 잘 그린 그림들만 간직하고 싶은가 보다. 그런데 나는 그 그림들을 버리지 않고 다산이가 간 다음 다시 마페에 넣었다. 옛날 한국에서 국민학교를 다닐 때 내 어머님께서도 내 공책을 하나도 버리지 않고 다 모아 두셨다. 왜 모아 두셨는지 모르겠다. 그런데 그 공책들이 싸이는 걸 보면 내가 얼마나 공부를 하는지 알수 있었을 것 이다. 물질성은 속이기 힘든다. 독일로 이사를 하면서 다 버렸다. 진짜 아쉽다. 겨우 얇은 일기장 몇권 건졌다. 국민학교 다닐때 하루도 안 빼고 매일 일기를 썼는데. 베를린에서도 어머님은 우리 공책을 하나도 버리지 않았다. 하루는 복도에 있는 창고에 있던 책꼬지가 무너졌다. 와르르하고 공책과 종이뭉치들이 펼쳐지면서 복도를 가로막았다. 어머님께서는 야 이거 다 니네꺼니까 정리해라 하셨다. 나는 그 때 복도 한 복판에 앉아 반나절은 보냈을 꺼다. 내가 독일에 맨 처음 와서 막바로 학교에 입학하여 칠판에 있는 꼬부랑글씨를 배껴 그린, 그 나의 최초의 독일 공책도 그 중에 있었다. 그리고 몇 십장을 똑 같은 단어로 빽빽히 채우고 채우던 무식하게 독일어 공부하던 종이들도 그대로 있었다.  처음으로 독어로 장문 글짓기한 이야기를 읽었고, 천사와 우주인이 등장하고 후에는 내가 사랑하던 릴케의 시도 있었다. 지금은 책꼬지가 든든해서 무너지지는 않는다. 그러나 지금 끄집어 내면 김나지움때 내가 만든 학생신문과 대학 1학기 때 수업한 자료들과, 옛날 청년회에서 만든 잡지들과, 어쩌면 내가 김나지움 졸업하며 찍은 나의 처음이고 마지막 영화인 100분짜리 졸업영화도 있을 지 모르겠다.

5.
이사를 하면 짐을 싸야 한다. 짐을 싸야 한다는 것은 정리를 해야한다는 것이다. 그래 그리고 많은 것을 버려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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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정 2008.03.05 09:50

    다산이 동생은 잘 자라고 있지요?
    이사를 앞둔 복잡미묘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3월 말이면 아직 한 달이나 남았네요..한 달간 잘 갈무리 하시길~
    그때 쓰시던 한국교회사 초기 교인들의 생활문화상..인가 그 논문은 다 마쳤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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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재 2008.03.09 10:34
    이번 이사에서도 많이 버립니다. 한국에서 이사올 때와 같이 과감하지는 못하겠지만. 7년을 이 집에서 살았는데 짐이 어지간히 싸였네요. 가구와 전자제품 거의 다 버리고, 책도 필요없는 것은 미련없이 버리든지 필요한 학생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목사님, 다산이 동생은 배속에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아직 여잔지 남잔지는 확실하지 않지만 말입니다. 그 논문은 제 박사논문인데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많은 기도와 시간을 요구하는 논문이네요. 그렇게 팔릴 책도 안닌데... 보내주시는 주보 잘 받아보고 있습니다. 성문밖교회를 더 많이 생각하게 만들어 줍니다.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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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정 2008.03.09 23:33
    이유재 선생님과 저는 아마 동갑이지요? 그리고 저희 아이와 다산이도 동갑이구요..^^
    아마 그래서인지, 친근한 느낌이 옵니다.
    주보를 잘 받아보신다니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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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노숙 2008.03.11 10:27
    박사님 안녕하세요. 박노숙입니다. 음, 작년말 독일에서 신세진것 잊지 않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올초 독일,스위스, 스웨덴 방문했던 보고서가 나왔는데 어찌 전달할까 고민을 했었습니다. 주소를 이곳에 올려 주시면 부칠 수 있고요. 지금 독일 권주표선생이 한국에 나와 있는데 인편으로 보낼 수 도 있습니다. 인편이 훨씬 복잡하다는 생각을 합니다. 반갑고요. 흡족한 직장을 구하신 것 축하합니다. 저는 나이가 들면서 내가 태어나고 자란곳에서 살아간다는 것이 얼마나 행복한지... 뭐 이런 생각을 합니다만 타국에서 자리잡고 오손도손 살아가는 박사님의 삶도 참으로 귀하게 다가옵니다. 가족의 안녕과 행복을 위해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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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유재 2008.03.14 01:36
    목사님, 그런가요? 그럴수 있겠네요. 전 58년 개띠니까. ^^
    박노숙 집사님. 반갑습니다. 제가 메일로 집 주소를 보내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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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은정 2008.03.18 17:12

    설마~58년이랄구요? ^^몇월생인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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