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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www.pn.or.kr/news/articleView.html?idxno=10815...작년 기사입니다...


6·10 민주항쟁, 민주주의 역사를 계속 써 나가야 한다  
[이재성 칼럼] "현 정권의 민주주의 역주행,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2012년 06월 10일 (일) 18:23:51 평화뉴스 pnnews@pn.or.kr  



오늘은 6·10 민주항쟁이 일어난 날이다. 한국 현대사의 흐름을 바꾼 거대한 분수령이었다. 그러나 만시지탄이라고 해야 할까. 아이러니하게도, 지난 6월 9일 트위터와 페이스북 등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뒤흔든 사건이 일어났다. 전두환 전 대통령이 부인 이순자씨, 손녀와 함께 육군사관생도들을 사열하며 경례에 답하고 있는 모습의 캡쳐 사진이 돌았던 것이다. 하필이면 9일은 25년전 1987년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이 시위 도중 전경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6·10항쟁의 도화선이 된 날이 아니던가. 국가반란죄, 내란죄, 내란목적살인죄로 단죄되어 역사의 엄중한 심판을 받은 범법자가 버젓이 백주대로를 활보하고 다니는 것도 용서가 쉽지 않은데 육사 생도들의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이라니. 도대체 대한민국 국민들을 얼마나 깔보면 저런 행태를 보일까. 여전히 그의 눈에 국민들은 무시해도 되는 어리석은 백성인가 보다.

    
▲ 전두환씨가 지난 8일 육사발전기금 행사에서 육사생도들에게 사열을 받고 있는 모습. JTBC 저녁뉴스 화면 캡쳐

1987년 1월 14일 당시 서울대 학생 박종철이 군부독재정권의 도덕성 결여와 비민주성에 저항하다 서울 남영동 치안본부(현 경찰청) 대공분실에 끌려가 물고문을 당하던 중 숨졌고, 사건의 조직적 은폐와 축소가 천주교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 의해 만천하에 드러나면서 전국적 시위로 이어졌으며, 급기야 6월 9일 연세대 학생 이한열은 학교 앞 시위 도중 경찰이 쏜 최루탄에 뒷머리를 맞아 쓰러진 뒤 사경을 헤매다 7월5일 끝내 숨졌던 그 민주항쟁의 역사를 우리는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하고 있다. 죽음으로 꽃피운 민주항쟁의 지난한 도정을 어찌 잊을 수 있단 말인가.

그래서 민주항쟁의 역사는 국민의 힘으로 군부독재정권을 몰아내고 민주화의 서막을 알리는 전환점이라는 '역사성'도 함께 갖게 되었다. 당시 전국적으로 연인원 500만 명 이상이 20여일동안 자발적으로 거리로 몰려나와 군부독재정권에 항의하는 시위를 벌였다. 그 결과 군부독재정권을 종식시키고 국민 스스로 주인임을 자각했다는 점에서 ‘반독재 민주화 투쟁' 혹은 '민주주의의 새로운 전환점'이라는 역사적인 의미와 평가를 얻기도 했다. 매년 그 뜻을 기억하고 기념하는 관련 행사가 전국 각지에서 열렸고, 오늘도 그랬다. 문제는 기억과 기념만 할 뿐이라는 사실이다.

"아! 옛날이여, 지난 시절 다시 돌아 올 수 없나..." 흘러간 유행가 가사의 한 대목처럼, 그동안 우리는 혹시 화려했던 과거의 무용담에 파묻혀 전설을 만들고 신화를 창조하고 있었던 것은 아닐까. 민주화의 영광에 젖어 민주화의 과실 분배에 취해 있을 때 우리가 그토록 자랑스러워했던 민주항쟁의 역사는 불과 지난 4년 만에 '국민 모두가 함께 영원히 계승해야 할 살아 있는 민주주의 역사'가 아니라 '폐기되어야할 죽은 민주주의'라는 의구심을 낳기에 충분한 역사의 쓰레기로 변질되어 버렸음을 두 눈 뻔히 뜨고 바라보고 있다. 먹고 살만 해졌다는 것인지 뒤에 숨어서 불평만 한다. 그리고는 이어지는 아무런 제스처 없이 침묵했다. 간간히 소수의 생존권 투쟁만 시대를 가로질러 왔다. 이마저도 모두 쓰레기의 잔상으로 취급되었다.

정의상 유독성 물질이며 오염물인 쓰레기는 현존 권력의 눈에 모두를 위협한다. 그래서 쓰레기는 마땅히 분리되어야 하는 것이 되었다. 권력은 전봇대 뽑기를 시작으로 해서 4대강 사업, 한미 FTA, 민간인 불법사찰, 공영방송 관제화, 표현의 자유 억압, 그리고 최근의 종북몰이에 이르기까지 아낌없이 권력을 남용하면서 민주주의의 근간을 흔들어 버렸다. 더불어 쌍용자동차 정리해고 희생자 22명의 대한문 분향소 추모행사 자체를 금지시키려 하고, 100일 넘긴 언론노조 파업이나 1600일을 넘은 재능교육 특수고용직 노동자 시위, 그리고 1900일을 넘긴 콜트·콜텍 기타 만드는 노동자 시위 등에는 무관심으로, 제주 강정의 아비규환에는 철저한 무시로, 그 외 수많은 이 땅의 힘없는 사람들의 생존투쟁에 엥톨레랑스로 대응하면서 이제 마지막 남은 민주주의의 뿌리마저 아예 뽑으려 하고 있다. 분리와 제거의 정치학이 민주주의의 마지막 숨통을 끊으려는 태세다.

바로 이것이 우리가 6월 민주항쟁의 민주정신을 단순하게 기록된 역사와 역사성 정도로 전유할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함께 영원히 계승해야 할 살아있는 민주주의 역사로 계속 써 나가야 하는 이유다. 우리 모두가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사회를 기획하고 실현하는 것이 곧 민주주의라고 한다면 민주주의 역사는 계속되어야 한다. 청년 시절 마르크스는 인간 이하의 삶과 반대되는 진정으로 인간다운 삶이란 '최소한 인간이 가진 기본적인 자질을 아주 풍부하게 사용할 수 있는 것'이라고 말했다. 적어도 우리가 민주주의를 이 땅에 공고히 하려는 것은 우리 사회가 지금과 같은 약육강식의 '약탈사회'가 아니라 인간다운 삶이 가능한 '품위사회'를 추구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이러한 사회는 그 사회의 모든 구성원들이 품위 있게 살기 위해 필요한 것들을 제공할 수 있어야 한다.

인간이 품위 있게 살 수 있으려면 최소한 가장 기본적인 생명, 건강한 몸, 온전한 몸, 감각과 상상력과 사고의 계발, 실천적 추론 능력의 계발, 비공식적인 가족과 친구 사이에서는 물론이고 정치 공동체에도 필수적인 소속감의 계발, 놀면서 여가를 즐길 능력의 계발, 다른 생명체나 자연세계와 관계를 맺을 수 있는 능력, 정서적 능력 계발 등이 실현가능한 삶의 영역이 지켜져야 한다. 때문에 현 정권의 부침 없는 민주주의의 역주행과 5공 세력의 부활이라는 끔찍한 재앙을 목도하면서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오랜 물음에 어떤 답변을 내려야 하는지가 이제 더욱 분명해진 셈이다. 성장과 발전의 이름으로 구체화된 약탈사회에서 온전한 몸과 정신의 충족이 보장되는 품위사회로의 이행을 실현하기 위해서라도 현 정권으로부터 쓰레기로 치부된 6·10 민주항쟁의 역사와 역사성을 계속 생성시켜 나가야 할 것이다.

    






[이재성 칼럼 36]
이재성 / 계명대 교양교육대학 교수. 평화뉴스 칼럼니스트. ssyi@kmu.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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