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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하라 주실 것이요, 찾으라 찾을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열릴 것”이라는 말씀은 지난 주일의 설교본문(눅11,9)이었습니다.
본문을 자세히 보면 무엇을 구하고 무엇을 찾고 무엇을 얻기 위해 문을 두드리라는 것인지 목적어가 빠져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목적어가 빠진 이 자리가 자기가 원하는 것이나 필요한 것들을 임의로 채워 넣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을 더 읽어가다 보면, 그 목적어는 우리가 임의로 채워도 좋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본문은 우리가 무엇을 얻기 위하여 구하고 찾고 문을 두드려야 하는지, 과연 기도의 목적이 무엇인지 정확히 지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늘에 계신 아버지께서 구하는 사람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이것은 본문 13절의 말씀입니다. 간절히 구하고, 찾고, 두드리는 기도의 목적은, 또한 그처럼 간절히 기도하는 자에게 준비된 하나님의 선물은 다름 아닌, 성령을 받는 것, 성령을 주시겠다는 약속이었습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입니다. 삶의 영이라고도 합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으로서 어떤 상황 속에서도 자기의 생명을 긍정하게 하는 능력입니다. 성령은 또한 삶의 영으로서 자기의 삶을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들어 가는 근원적인 힘입니다. 그러나 기도하는 모든 사람이, 또는 모든 사람들이 드리는 기도가 이러한 성령을 목적으로 하지는 않습니다. 기도하면서 기쁨과 만족이 없는 것은 바로 이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도를 통해 받으려는 것과 기도를 통해 받을 수 있는 것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의 목적은 오직 성령을 받는 것 외에 다른 것이 아닙니다. 성경 또한 그것이 가장 좋은 것이라고 말합니다. 성령을 받는 것만이 모든 상황과 조건에 구애받지 않는 생명과 삶의 의미를 발견하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기도의 목적이란 결국 생명과 삶의 의미를 본질적인 차원에서 발견하기 위합입니다.
T.S 엘리어트가 그의 시 "바위"에서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Where is the Life we have lost in living? / 생활 속에 잃어 버린 삶은 어디에 있는가?
Where is the wisdom we have lost in knowledge? / 지식 속에서 잃어버린 지혜는 어디에 있는가?
Where is the knowledge we have lost in information? / 정보 속에서 잃어버린 지식은 어디에 있는가?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것은 성령입니다. 성령은 생명의 영, 삶의 영입니다. 기도하는 자에게 주어지는 성령은 우리로 하여금 "생활 속에서 삶을, 지식 속에서 지혜를, 정보 속에서 지식을 놓치지 않게 도우시는 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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