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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후 온난화는 수많은 기상 이변을 일으킨다. 여러 가지 기상 이변 가운데 가장 치명적인 형태는 폭염이다. 폭염은 소리도 형체도 없이 다가와 조용하고 눈에 띄지 않는 사람들의 목숨을 빼앗아 간다. 폭염 사망자의 지형도는 인종차별 및 경제적 불평등의 지형도와 일치한다는 점에서 폭염은 자연재해인 동시에 사회적 재난이다. 사회적 재난의 해결은 사회적 관계망으로부터 소외된 이들의 사회적 관계 회복과 공동체의 회복을 통해서 가능하다. 자연적, 사회적 재난의 컨트롤 타워인 정부 행정당국은 이 점을 놓치지 말아야 한다.

“주님께서 가인에게 물으셨다. “너의 아우 아벨이 어디에 있느냐?” 그가 대답하였다. “모릅니다. 제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

창세기 4장 9~10절

구약성경 창세기에 따르면 인류 최초의 살인사건이 형제 사이에서 일어났다. 형 가인은 아우 아벨을 질투하여 돌로 쳐 죽였다.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시는 하나님의 질문에 가인은 “내가 아우를 지키는 사람입니까?”라는 대답으로 살인에 대한 자기 책임을 회피하고자 하였다. 동생을 죽인 것에서 더 나아가 살인의 책임을 회피함으로써 그는 돌이킬 기회조차 잃게 된다. 살인은 개인적 관계 속에만 일어나는 것은 아니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매우 빈번하게 미필적 고의에 의한 살인이나 다름없는 죽음이 일어난다. 불평등한 사회 구조 속에서 일어나는 죽음에 대한 책임은 사회에 속한 모두에게 있다. 이러한 책임을 회피하려 할 때, 그 사회에서 일어나는 죽음은 일시적 재난이 아닌 돌이킬 수 없는, 언제나 반복되는 운명이 된다.

시스템에 대한 해부학사회적 부검

에릭 클라이넨버그 저 『폭염사회』 (글항아리, 2018). 저자는,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적 실패의 문제라고 주장한다.에릭 클라이넨버그 저 『폭염사회』 (글항아리, 2018). 저자는, 폭염은 자연재해가 아닌 정치적 실패의 문제라고 주장한다.

미국의 뉴욕대학교 사회학과 교수이자 같은 대학의 공공지식연구소 소장인 에릭 클라이넨버그(Eric Klinenberg)의 저서 『폭염 사회』는 1995년 7월 시카고에 닥친 미증유의 폭염으로 수백 명의 사상자를 낸 재난을 다룬다. 저자는 얼핏 자연적 재해로 보이는 재난의 원인을 규명하는 방법론으로 “사회적 부검”을 사용한다. 부검이 사망원인을 밝히기 위한 해부학적 방법인 것처럼 “사회적 부검”은 폭염이라는 원인만으로 설명할 수 없는 대형 참사의 원인을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고안되어야 하는 도시의 사회적 시스템을 해부하듯 낱낱이 분석함으로써 찾아내려는 사회과학적 방법론이다.

저자는 현대적인 사회학적 도구들로 무장하여 폭염이란 자연재해에 속절없이 희생되고 말았던 희생자들의 지역적 특성, 인종적 구성, 연령, 경제적 수준, 가족 관계의 긴밀성을 조사한다. 그리고 재난이 있기 전, 시 정부 당국의 취약 계층 밀집 지역에 대한 관리가 어떠했으며 재난이 발생했을 때, 정부 당국의 대처와 관리가 적절했는지 분석한다. 또한, 재난 상황에 대한 경각심과 재난 상황을 극복하는 방법을 재난의 당사자인 시민들과 재난을 관리하여 시민을 보호할 책임이 있는 기관에 유용한 정보를 제공했어야 하는 지역 언론 매체의 활동이 어떠했는지를 자세히 복기한다.

저자의 “사회적 부검”이란 방법론에 따라 분석된 바를 보면, 갑작스러운 폭염에 더없는 취약성을 보인 희생자들은 대개 홀로 살아가고 있었으며 더위에 적절히 대응할 에어컨과 같은 가전을 살 수 없는 가난한 사람들이었으며, 더위를 견딜 체력이 없는 노인들이었다. 더욱이 위험에 처한 그들의 안부를 가끔이나마 살펴줄 가족과의 관계도 이미 끊어진 지 오래된 고립된 사람들이었다. 이런 조건들만 보면 폭염으로 인한 참사는 이례적인 자연재해와 개인적인 약점을 가진 이들이 만나서 발생한 개인적인 불행처럼 보인다.

같은 폭염다른 결과

그러나 저자는 희생자들과 비슷한 삶의 조건, 비슷한 육체적 조건을 가진 다른 지역의 거주자들은 폭염의 희생자가 되지 않은 사례를 찾아내 폭염으로 인한 참사가 단순히 개인적인 불행이 아니라 사회적 조건의 불평등으로 인한 사회적 참사였다는 것을 밝혀냈다.

희생자가 속출한 지역은 경제적 기반이 무너진 퇴락한 지역으로서 인구도 줄고 빈 건물이 즐비한 거리는 방치되어 범죄의 온상이 되었고 지역의 빈곤한 노인들은 범죄에 대한 두려움으로 아무리 더워도 집 밖으로 나올 수 없게 되었다. 폭염에 의한 참사는 이처럼 경제적으로 퇴락한 지역, 방치된 치안, 서로를 믿을 수 없는 무너진 지역 커뮤니티 환경과 이런 환경 속에 시민을 방치했던 시 정부 당국의 무관심 속에서 발생했던 것이다.

시카고 폭염은 사회적 참사

참사를 막을 수 있는 마지막 기회는 있었다. 첫 번째 희생자가 나오기 전 한 연구소는 이례적인 폭염으로 재난이 발생할 수 있다는 보도 자료를 배포했다. 그들은 언론이 보도하면 시 당국이 재난에 대비하기 위해 움직일 것을 기대했다. 그러나 언론은 아무런 보도도 하지 않았고 며칠 뒤 시키고 시민 188명이 사망한 후에야 재난 보도를 내보내기 시작했다.

저자는 시카고에서 발생한 폭염으로 인한 참사를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참사로 규정한다. 참사의 희생자 대부분은 신체적으로 약한 노인이었고, 경제적으로 빈곤했으며, 사회적 관계는 단절되어 있었다. 이런 조건들 가운에 어느 하나라도 해결되었다면 그들은 희생을 피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들은 이례적인 자연 재난이 아니라 완벽한 사회적 고립 속에서 희생된 것이다. 그리하여 폭염에 의한 참사는 자연재해가 아닌 사회적 참사로 규정되는 것이다.

기후 위기가 전 지구적인 위기로 심화된 오늘, 1995년 시카고에서 일어난 이 참사는 세계 어느 곳에서 언제라도 재현될 수 있는 목전의 위기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할 가능성 유무는 첫째, 기후 위기를 사회적인 위기로 볼 수 있는가 여부다. 수많은 기후 이변과 그로 인한 참사를 일으키고 있는 기후 위기가 인간의 활동으로 인해 초래된 위기인 것과 이에 대한 인간의 책임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둘째, 모든 사회적 참사는 개인의 불행이 아닌 사회적 불평등에 원인이 있으며 사회적 불평등에서 발생하는 사회적 참사에 대해서는 사회 구성원 모두에게 책임이 있다는 것을 인정할 수 있어야 한다. 이와 같은 책임감에 근거한 공동체성의 회복만이 기후 위기와 사회적 참사 극복의 단초가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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