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12.02 11:36

여기에 사람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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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전쟁 이후 영등포노회는 영등포 지역의 공장으로 올라오는 시골의 젊은이들을 신앙적으로 돌보기 위해 1958년 '영등포산업선교회(이하 산선)'를 세웠고 이후 1978년 선교회 건물 안에 필자가 담임하고 있는 '성문밖교회(이하 성문밖)'를 세웠다.

그리하여 '산선'과 '성문밖'은 오늘날 행정적, 재정적으로 독립되어 있지만 같은 건물에 공존하며 사역에 있어서는 노동문제를 주요한 사업으로 삼아 긴밀히 연대한다. 노동문제를 다루는 사업의 내용이 한국교회 상황에서는 독특하기 때문에 '산선'의 사역은 신학교, 또는 일반대학교의 학생들에게 현장수업으로 진행되기도 하는데, 그 이름은 '현장심방, 발바닥으로 읽는 성서(이하 현장심방)'다. 필자는 성문밖교회의 목사로서 이 프로그램의 공동 진행자로서 함께한다.

세상에서 가장 먼 여행은 머리에서 가슴에 이르는 여행이라는 말이 있다. 머리가 이해한 것을 가슴으로 공감하는 과정이 가장 멀다는 말이다. 그러나 그보다 더 먼 여행이 있으니 그것은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발에 이르는 과정이다. 발은 실천의 영역을 상징하므로 머리에서 가슴으로 그리고 다시 발에 이르는 여정이란 이해와 공감 그리고 실천에 이르는 여행인 것이다.

'현장심방'이 의도하는 바는 기독 청년 학생들로 하여금 머리에서 가슴으로 다시 발에 이르는 여정을 제공하는 것이다. 평소에는 거의 가볼 기회가 없는 노동현장으로 학생들을 보내어 그곳에서 일하는 노동자들과 대화하게 하고 노동자들의 집회에 참석하여 노동자들이 당면한 문제들에 대해 이해하고 공감하는 여정을 가지게 하는 것이다.

그럼으로써 아직은 관념에 머물러 있는 신앙과 신학이 본래 지시하고자 하는 삶의 자리를 성찰하게 하도록 돕는 프로그램이 곧 '현장심방'인 것이다. '현장심방' 프로그램은 일 년에 두 차례, 겨울과 여름방학을 이용하여 진행되며 15명 내외의 기독청년 학생들이 참여하여 3박 4일간 숙박하며 참여한다. 벌써 23기까지 프로그램이 진행되었으니 10년이 다 된 '산선'의 장수 프로그램이다.

올 2월에 진행된 '현장심방' 프로그램은 23기였고 일반 대학생들과 신학생들이 함께 하며 현장을 찾았다. 그 가운데 강남역 사거리 도로 한 가운데 설치된 25미터 CCTV 철탑에 올라가 벌써 9개월째 농성을 이어가고 있는 삼성 해고 노동자 김용희씨의 농성장을 찾아가 기도회를 진행하고 전화로 그의 상황을 전해 들었던 일이 기억에 남는다.

24시간 끊이지 않는 교통의 흐름, 도시광, 지독한 미세먼지로 가득한 강남역 사거리 한 가운데, 지름이 1미터도 되지 않아 허리 한번 펼 수 없는 그 철탑에서 270여 일을 넘기며 농성을 이어가는 김용희 씨의 모습을 보며 우리는 학생들과 함께 마음 아파했다.


함께 현장을 돌아본 학생들의 마음에 무엇이 남았는지는 알지 못한다. 다만 바라는 것이 있다면 '현장심방'에 함께 했던 학생들이 농성장의 사정에 이해와 공감을 가지는 것이다.

그리고 많은 사람들이 백안시하는 농성장에도 모두와 다를 바 없이 가족들과의 소소한 행복을 꿈꾸는 소박한 사람들이 있다고, 여기에도 사람이 있을 뿐이라고 말해주는 작은 실천에 참여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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