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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주 성문밖교회 수요성경공부의 주제는 “성령”이었습니다. 신학적인 차원에서는 "성령"에 대한 진술은 그다지 활발히 이루어지지 못했습니다. "성령"은 현대인들에게 설명하기 어려운, 그래서 많은 오해를 불러 일으키는 개념입니다. “성령”에 대해서 가지는 대표적인 오해들은 이런 겁니다. 인간의 능력으로 할 수 없는 초자연적인 사건을 일으키는 힘이 “성령”이라는 겁니다. 또는 인간의 합리적 이성으로 도달할 수 없는 종류의 진리를 인식하게 만드는 능력이 “성령”이라는 겁니다.
후자의 오해는 특별히 기독교신앙의 의미를 현대인들의 이성에 설득하기 어려울 때, 이러한 상황을 돌파하기 위하여 신앙의 진리는 합리적인 이성으론 이해할 수 없고 오직 “성령”의 도움을 통해서만 수용할 수 있다는 주장을 되풀이 하면서 강화된 오해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주장의 결과로서 기독교신앙은 점점 더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과 접촉점을 잃어갔으며 교회의 입지는 점점 협소해졌습니다. 교회는 점점 상식적으로 이해할 수 없는 비합리적인 집단으로 치부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구약성경이 증언하는 하나님의 “영”은 무에서 유를, 혼돈과 허무로부터 질서와 의미를 이끌어 내는 창조의 능력(창1,2), 티끌로 구성된 육체에 생기를 불어넣어 생명체로 만드시는 생명의 원천(창2,7)이었습니다. 또한 예언서들이 말하는 하나님의 “영"(사42,1; 44,3; 겔36,27; 슥6,1-8; 욜3,1)은 종말의 날에 온 세상을 뒤덮게 될 생명의 기운이었습니다.
신약성경에서 증언되는 "성령"은 십자가에 달려 죽은 예수를 부활하게 하신 영(롬1,4; 8,2; 8,11)이며 바로 이 "성령"에 의하여 성취된 부활생명은 생명의 근원과 결합된 생명으로서, 죽음을 극복하며 허무에 빠지지 않는 생명(고전15,52) 을 의미했습니다. 또한 부활생명을 성취한 성령은 부활하신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생명의 새로운 차원을 열어주는 영, 죽음과 허무의 권세에 굴복한 생명을 살려주는 영(고전15,45)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이 증언하는 "성령"은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으로부터, 그리고 죽음을 이기고 부활하신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주어지는, 우리의 현재적 생명을 질적으로 뛰어 넘는,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말합니다. 이러한 생명은 역사의 종말에 모든 생명에게 보편적으로 주어질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현재적 삶 속에서도 이 생명을 미리 맛보며 지금 이 세상을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는 죽음과 허무의 도전에 굴복하지 않고 살아갈 수가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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