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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한복음 9장에 나오는 이야기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길을 가시다가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사람을 만났다. 제자들은 그의 이 참혹한 운명이 자기의 죄 때문인지 아니면 부모의 죄 때문인지 물었다. 고난이 죄의 결과라는 고대 유대인들의 전형적인 사고방식에서 유래한 질문이다. 나아가 그 안에는 고난의 원인을 당사자들에게 돌림으로써 타인의 고난에 대한 책임으로부터 자유로워지고자 하는 마음이 숨겨져 있다.


이러한 사고방식은 자주 고난당하는 사람을 더욱 비참한 운명으로 몰아넣는 결과를 낳는다. 살면서 우리는 누구나 크고 작은 고난을 겪는다. 그러나 모든 고난이 사람을 불행하게 하지는 못한다. 잘 이겨낸 고난은 배움과 연단의 계기가 되어 새로운 시작, 새로운 구원의 차원으로 이끌어 가는 반면, 외면당하고 비난당하는 고난은 고난의 당사자를 불행으로 이끌어 간다. 그래서 프랑스 철학자 시몬 베이유(Simone Weil)는 한 사람의 불행이란 그가 당하는 물리적, 심리적 고난 경험이 아니라 그 고난을 대하는 사회적 조건, 즉 그의 고난을 외면하거나 비방하는 사회적 고난 경험에서 비롯된다고 하였다.

나면서부터 앞을 보지 못하는 이의 고난이 누구의 죄 때문인지 묻는 제자들의 질문에 예수님은 다음과 같이 대답하셨다. "이 사람이 죄를 지은 것도 아니요, 그의 부모가 죄를 지은 것도 아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을 그에게서 드러내시려는 것이다."(요 9:3) 


예수님은 그의 고난이 그저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일을 드러내는 계시의 매개체가 된다고 말씀하신다. 이를 통해 예수님은 사람들로 하여금 그의 고난에 주목하게 하셨다. 타인의 고난에 주목하고 타인이 처한 고난의 원인과 진실을 따라가다 보면, 개인의 고난과 관련된 개별적 진실과 마주할 뿐 아니라, 모두의 운명이 깊이 연루되어 있는 보편적인 진실, 곧 그 안에 계시된 하나님의 일과 마주하게 됨을 가르치신 것이다.

지난 3월 9일은 한국마사회 소속 기수 고 문중원 씨의 장례식이 진행된 날이었다. 문중원 씨는 한국마사회 경마산업의 최일선에서 15년 간 일하던 기수였다. 그는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유서를 통해 그는 생을 저버릴 수밖에 없었던, 그리고 앞으로도 이런 죽음의 행렬을 멈추기 어려워 보이는 마사회의 억압적이고 비정상적인 구조를 고발했다. 누구보다 가족을 사랑했고, 자기의 삶을 개척해 가고자 했던 생의 의지가 충만했던 사람이 스스로 삶을 등지는 이 사건을 보며 혹자는 이를 단순히 그 개인의 운명으로 치부해 버릴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것은 개인의 고난과 불행을 바라보는 예수님의 관점이 아니다. 고 문중원 씨의 죽음 이전에 이미 마사회 소속 6명의 또 다른 죽음이 있었다. 그들의 죽음을 개인과 그 가정의 개별적인 문제로 치부하여 그들을 외면한다면, 어쩌면 우리 사회는 계속되는 죽음의 행렬을 멈출 수 없을 것이다. 


그들의 고난과 불행은 계속 주목되어야 한다. 주목은 그들의 고난과 불행에 연루된 모든 진실을 우리 앞에 밝히 보여줄 것이다. 그럼으로써 그들과 같은 노동환경 속에 있는 많은 마사회 기수 노동자들의 생명과 삶을 구하는 하나님의 일을 보게 할 것이다. 부디 우리 사회가 이 불행한 사건들을 통해 드러내시는 하나님의 계시를 볼 수 있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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