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6047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지난 토요일과 주일에 걸쳐 성문밖교회 전교인 수련회가 있었습니다. 주제는 ", 그대"였습니다.

 

수련회 주제에 맞추어 우리는 하늘의 별을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한순간의 어둠도 허용해 주지 않는 도시의 인위적인 조명 아래서 인간은 24시간 생산과 소비, 그를 위한 인위적 각성만을 강요받습니다. 이런 도시 환경에서 살아가는 현대인들이 별들로 빼곡한 광막한 하늘과 마주해 보는 일은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찾아간 양평의 다대리는 밤 10시가 되자 고맙게도 태곳적 어둠의 근사치를 경험하게 해주었습니다. 인위적 조명이 사라진 자리에 내려앉은 어둠은 엄연히 존재하고 있었으나 인위적인 조명들에게 가려져 있던 세계를 열어주기 시작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우리는 북두칠성과 카시오페아 그리고 그 사이에서 수 천 년 간 인류의 길잡이가 되어 주었던 북극성, 또한 베가와 알타이르로 명명된, 그러나 우리에게는 직녀와 견우라는 이름으로 더욱 친숙한 두 별들과, 그 둘 사이를 가로지르는 수없는 별무리로 이루어진 은하수도 만날 수 있었습니다.

 

무한에 가까운 숫자의 별들로 구성된 밤하늘을 바라보며 열리는 세계는 단지 물리적 우주에 관한 인식만은 아니었습니다. 도시의 인위적 조명이란 비늘이 떨어진 우리의 시선을 압도하며 자신의 존재를 드러낸 광막하고 무한한 우주 앞에서 우리는 우리들 인간 자신의 피조성과 유한성에 관한 너무나도 엄연한 진실과 마주할 수 있는 기회도 얻었습니다.

 

인간 자신의 피조성과 그로 인한 운명적 유한성을 인식하는 순간은 인간이 왜소해지는 순간이 아님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 순간이야말로 자신의 한계를 모르는 가운데 설정된 거짓된 자아상과 그것이 빚어내는 번뇌 그리고 아수라의 삶으로부터 벗어나는 순간, 곧 초월의 순간임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그런 점에서 한순간의 어둠도 허용하지 않는 도시의 인위적 조명은 인간에게 혜택이기만 한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때로 별들의 숫자만큼이나 무한히 다양한 우리의 존재와 삶의 양식을 몇 개의 특정한 것들에게만 집중토록 강요하는 최면술사의 손에서 흔들리는 펜던트처럼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부디 이번 수련회에서 잠시 맛본 태곳적 어둠이 우리를 과대 포장된 우리 자신에 대한 인위적 각성을 넘어 참된 각성으로, 진실의 세계로 이끄는 계기가 된다면 좋겠습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87 헤르만 헤세 Hermann Hesse의 "기도 Gebet" file 김희룡 2017.01.26 9102
86 예수를 믿으면 밥이 나와요? 쌀이 나와요? 김희룡 2017.02.21 5776
85 불가능성을 향한 열정, Passion for the impassible 김희룡목사 2017.07.05 6047
84 사랑의 기술 The Art of Loving 김희룡목사 2017.07.06 6994
83 부활은 역사가 될 수 있을까? 김희룡목사 2017.07.07 5399
82 이삭을 죽이지 마라! 김희룡목사 2017.07.14 5528
81 무엇이 고난을 불행으로 만드는가? 김희룡목사 2017.07.21 5659
80 리더십의 두 가지 과제 김희룡목사 2017.07.26 5600
79 자존심과 자존감 김희룡목사 2017.08.02 7341
78 해방절 단상 - 생존에게 빼앗기지 않는 삶을 위하여 김희룡목사 2017.08.15 6691
77 2017 성문밖 수련회 "추억만들기" file 김희룡목사 2017.08.30 6167
76 여행의 의무 김희룡목사 2017.09.07 5242
75 민중목회의 삼중직 김희룡목사 2017.11.11 5292
74 요한의 세례와 예수의 세례 김희룡목사 2018.01.13 8263
73 하늘이 열리는 것을 보리라! 김희룡목사 2018.01.22 6742
72 페미니스트들의 교회 김희룡목사 2018.02.13 6487
71 2018 재의 수요일 묵상 김희룡목사 2018.02.14 5809
70 사순절 첫 번째 주일 묵상 - 인간이란? 김희룡목사 2018.02.18 5124
69 사순절 두 번째 주일묵상 - 십자가에서 깨어진 인간의 탐욕과 삶의 피상성 김희룡목사 2018.02.27 5485
68 사순절 세 번째 주일 묵상 - 선택된 나그네의 자유와 특권 김희룡목사 2018.03.06 5093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Next ›
/ 6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