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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엔조이에 그저께 난 기사네요.
가끔 성문밖교회 들어가려고 포탈에 이름 치면 뜨는 기사들이 있어요^^
84년 새해에 어느 노동자의 주일기도를 가지고 쓴 글이네요.

아~지난 주일 이후 내가 중요하게 여기는 것, 내가 무얼 사랑하는건지
마음 속으로 정리하려고 하는데 잘 안되네요.

그리고 또 어느 봉제노동자가 누구였을까 떠올려도 봅니다.
혹시 내가 아는 어떤 분의 젊은 날은 아니었을지^^

앗! 수업시간이네요^^

********************************************************

어느 봉제 노동자의 기도

                                                                         정연복

     주님!
     채 가시지 않은 싸늘한 기운에
     철야, 잔업, 연장 근무에 시달리면서
     소외감마저 느끼다가,
     저희들은 푸근함을 가지고
     땀에서 배어 나오는 진한 냄새를 맡고,
     살아서 꿈틀거림을 확인하고 싶어
     이렇게 모였습니다.

     우리가 정말 인간일까요?
     우리를 영영 인간의 대로에서 이탈시키려 하는
     각본에 짜여진 음모는 아닐까요? 하는 의심마저 들면서,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고 싶다,
     아니 인간답기를 원한다는 다부진 마음들만 가지고,
     그러기 위해 주일 하루만은 쉬고 싶고
     당신을 만나 확인하고 싶기에
     이 공동체에 모입니다.

     하루가 지나고 일주일이 지나면서
     어제의 동료가 눈이 쑥 들어간 채 야윈 손을 내밀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서러움에 얼굴이라도 비비고 싶은 저희들의 모습을
     당신은 보고 계실 것 같습니다.
    
     서로의 현장에서
     당신의 모습을 구체적으로 표현하여
     우리가 원하는 민주 노동 사회를 만들고자
     힘들을 내는 이 젊은 어깨들 위에
     구체적인 힘이 당신으로부터 나와
     저희들의 능력이 되길 원합니다.
     지독하게 춥고 살벌하던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싸늘하지만
     곧 따스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에 살아가고 있듯이
     민주 노동 사회의 확신을 갖고 성실하게
     작은 힘들을 모으겠다는 생각들에
     멍이 들지 않기를 원합니다.

     험한 세상을 자신의 문제로 삼고
     어려움 중에 있는 분들과,
     지금도 시꺼먼 먼지와
     귀마저 막혀 버릴 듯한 기계 소리 속에서
     특근에 시달리고 있는 친구들과 우리가
     같이 모일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오늘이 지나기 전 이 공동체를 통해
     또 한 번 확신을 가질 수 있게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피곤에 지치고 건강이 좋지 않은 동료들에게
     힘과 다시 일어설 능력을 주시옵소서.
     당신 모습이 사랑 덩어리,
     힘의 덩어리, 행동의 덩어리가 되어
     저희의 가슴 한가운데 박히길 원하며,
     우리의 삶이 거짓 없는 생활로 일관되길 바라면서,
     모든 말씀을
     어렵고 힘든 자 가운데 오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성문밖교회 84. 1. 1. 주일 기도)


'철야, 잔업, 연장 근무에 시달리면서 소외감마저 느끼다가', 이대로 살다가는 '우리를 영영 인간의 대로에서 이탈시키려 하는 각본에 짜여진 음모'에서 벗어나지 못할지도 모른다는 '의심마저' 들면서도, '그래도 우리는 인간이고 싶다, 아니 인간답기를 원한다는 다부진 마음들만 가지고' '살아서 꿈틀거림을 확인하고 싶어' '주일 하루만이라도' 교회라는 '공동체'에 모인 어느 봉제 노동자가 드린 새해 첫날의 기도입니다.

노동자는 가슴 가득 삶의 아픔을 안고 고백합니다. "어제의 동료가 눈이 쑥 들어간 채 야윈 손을 내밀 때 왈칵 눈물이 쏟아질 것 같고, 서러움에 얼굴이라도 비비고 싶은 저희들의 모습을 당신은 보고 계실 것입니다."

'눈물'의 기도입니다. 힘든 노동으로 점철된 기나긴 '서러움'의 날들의 쓸쓸한 가슴앓이 속에서 잉태되었을 '눈물'의 신앙고백입니다.  

그러나 '눈물'만은 아닙니다. '눈물'을 훌쩍 넘어 희망입니다. '인간답기'를 원하는 '다부진' 희망입니다. '서로의 현장에서' '민주 노동 사회를 만들고자 힘들을 내는 이 젊은 어깨들 위에 구체적인 힘이' 흘러나와 노동 해방, 인간 해방의 역사의 신새벽을 당겨 오는 '능력이 되길' 바라고 믿고 실천하는 당당한 믿음입니다. 저 추운 역사의 '지독하게 춥고 살벌했던 겨울의 잔재가 아직도 남아 싸늘하지만' '곧 따스함을 볼 수 있을 것이라는 희망'처럼, '민주 노동 사회의 확신을 갖고 성실하게 작은 힘들을 모으겠다는', 사치스럽게 눈부시지 않지만 새 인간 새 역사 창조의 '능력'을 담금질해 가는 아름답고 창조적인 신앙입니다.

무명의 봉제 노동자의 이런 노동 신앙은 우리에게 몇 가지 중요한 가르침을 줍니다.

첫째, 노동자가 드리는 기도는 '나'의 기도가 아닙니다. '우리'의 기도입니다. '저희들', '우리', '이 공동체', '동료', '친구들', '우리의 삶'이라는 표현이 거듭 반복되고 있음을 주목해야 합니다. 이것은 모름지기 기독교 신앙, 예수 신앙은 공동체 신앙이며 삶의 아픔과 희망의 연대성의 신앙이라는 걸 말해 줍니다.

그렇습니다. '인간답게' 살기를 원하는 삶의 '희망'과 '확신'은 '공동체를 통해' 형성되고 자라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친히 가르치신 기도요, 예수 운동의 강령(綱領)으로 불리는 '주의 기도'(마태 6:9-13; 누가 11:2-4)에서 '우리'라는 표현이 거듭 반복되고 있음도 같은 맥락에서 파악되어야 할 것입니다.

둘째, 노동자는 '어렵고 힘든 자 가운데 오신 예수님의 모습'이 사랑의 덩어리, 힘의 덩어리, 행동의 덩어리가 되어' '가슴 한가운데 박히길' 원합니다. 신앙은 해결할 수 없는 삶의 문제들을 고스란히 예수께 떠맡기는 수동적이거나 체념적인 게 아닙니다. 신앙은 서로가 서로의 삶에 관심을 갖는 '사랑'으로, 그래서 그 사랑의 '힘'으로 개인적 삶의 질곡이나 이기심과 사회적 역사의 모순을 함께 극복해 가는 '덩어리', 곧 집단적이며 '공동체적'인 '행동'으로 표출되어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노동자의 기도는 결국 '우리의 삶이 거짓 없는 생활로 일관되기를' 바라는 겸손한 자기반성으로 귀결됩니다. 무슨 의미입니까? 기도든 신앙이든 운동이든 이 모든 것의 요체는 '삶'이며 '생활'이라는 것입니다. 진정 '인간'이기를 원한다면, 진정 역사의 '따스함'을 맛보기 원한다면, 진정 '동료'들을 사랑하기 원한다면, '우리의 삶이 거짓 없는 생활로 일관'될 수 있도록 부단한 자기 갱신의 삶을 실천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어찌하여 너는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면서 제 눈 속에 들어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 이 위선자야! 먼저 네 눈에서 들보를 빼내어라. 그래야 눈이 잘 보여 형제의 눈에서 티를 빼낼 수 있지 않겠느냐?"(마태 7:3-5)고 예수님이 '제자들'(마태 5:1), 곧 예수 운동가들에게 하신 말씀은 안팎의 변화를 함께 이루어야 한다는 소중한 교훈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힘겨운 노동의 삶 한복판에서도 '민주 노동 사회의 확신', 곧 역사의 변혁에 대한 흔들림 없는 신념을 안고 '성실하게 작은 힘들을 모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갈 것을 다짐하는 노동자의 당당하면서도 겸손한 자세. 이런 자세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우리 사회에 하나둘 늘어나 노동 신앙의 공동체, 노동 해방의 운동으로 번져갈 때라야 우리 사회는 희망이 있는 것이지, 신앙을 그저 장식품처럼 달고 다니는 식으로는 '위선자'라는 비난을 면키 어려울 것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아, 너희는 행복하다. 하느님나라가 너희의 것이다." (누가 6:20) '하느님나라'는 예나 지금이나 '노동'하는 '가난한 사람들'의 일상적인 '삶'의 실천을 통해 조금씩 조금씩 이루어져 간다는 걸 명심할 일입니다.        

정연복 / 한국기독교연구소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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