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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적인 품위를 유지하는 데 매월 얼마의 돈이 필요할까?
서울 한가운데서 걸인도 노숙인도 아닌 건강하고 교양있는 시민으로 살아내는 데 필요한 최소한의 비용은 얼마일까?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있는 ‘빈집’에 모여 월40만원 정도의 비용으로 너끈히 살아내는 사람들이 있다기에 도대체 어떻게 버티는 지 궁금해서 결국 방문일정을 잡았습니다. 4월28일 오후 7시. 전철타고 녹사평역에 내려 추적추적 빗길을 걸어 남산자락 ‘빈집’에 도착하니 벌써 깜깜해졌습니다. 4층빌라 맨윗집으로 들어서니 식구들 몇몇이 부침개를 준비하며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난방을 거의 사용안하다 보니 다소 썰렁한 거실에서 방석대신 이불을 깔고 앉아 부침개와 그에 어울리는 음료를 마시면서 ‘빈집’의 다소 독특한 문화를 들을 수 있었습니다. (편한 자리에서 자유롭게 이야기한 내용을 기억에 근거해서 옮기니 상세하지도 않고 간혹 실제 내용과 다를 수도 있습니다 아주조금~)

‘해방촌 빈집’   친하게 지내던 젊은이 서너명이 가진 돈을 합쳐 남산자락에 전세 한 채를 구한 후 본인들도 거기서 살면서 일반인들에게 아주 저렴한 가격으로 이용할 수 있도록 완전 개방을 했습니다. 지나다니는 행자 누구라도 1일숙박비 3천원만 내면 하룻밤을 묵을 수 있으며, 남녀노소 묻지않고 내침없이 받아들입니다. 장기적으로 이용하는 이들은 식재료를 공동구입해서 식사당번을 정해 준비하는데 1인 식대부담금이 월2~3만원 정도 나온다고 합니다. 계산상으로는 12만원이면 얼어죽지않고 굶어죽지않고 이곳에서 살아갈 수 있겠습니다. 이러한 취지에 공감하고 같이 살고 싶어한 이들이 추가로 돈을 모아 두 번째, 세 번째, 네 번째 집을 구했습니다. 어떤 집은 넓어서 열서너명이 같이 살기도 하고 많이 살때는 한집에만 열아홉명까지도 같이 살았습니다. 부부가 사는 방을 별도로 정하기도 하고 애딸린 부부가 방한칸을 차지하기도 합니다. 이러거나 저러거나 어쨌든 소유자 없는 ‘빈집’에 고정되지 않은 인원들이 공간을 공유하고 공동으로 식사하면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아주 저렴~하게...
너무나 대범하게 외부로 공간을 개방하면서 이러저런 두려움도 있을 법한데, 그래서 신상명세라도 정확히 파악해둬야 하지않을 까 생각했는데 방문자에 대해선 일체 신분확인을 하지않고 심지어 몇 달을 같이사는 사람들도 이름조차 모르고 지냅니다. 깜찍,자주,지각 등등의 별명으로 서로를 부르며 더 이상은 당사자가 말하지 않는 한 굳이 알려고 하지 않습니다. 소유구획도 없이 엄격한 규칙도 없이 어떻게 이 많은 사람들이 익명으로 같이 살아갈 수 있는지 그 문화적인 구심점이 궁금했지만 직접봐도 말로는 설명 못하겠고 사실 잘 모르겠습니다. 다만, 가난하면서 자유롭게 겁 없이 살아가는 이들을 보면서, 월든호숫가의 헨리데이빗소로우가 서울 도심에서 살았다면 이렇게 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해보았습니다.

  나는 누구에게 강요받기 위하여 이 세상에 태어난 것은 아니다. 나는 내방식대로 살아갈 것이다. 누가 더 강한지는 두고보도록 하자 - 헨리데이빗소로우

밤늦도록 이야기에 젖고 분위기에 젖어있다가 새벽녘에나 겨우 일어나서 돌아왔습니다. 새로운 가능성에 대한 기대감이 충만한 시간이었습니다.  우리도 만약 40만원으로 살아갈 수 있다면.... 개인으로서는 폭력적인 노동조건에서 인간적인 일상을 포기하는 일이 없어도 되고  죽기살기로 경쟁하느라 인간으로서의 예의나 품격. 위엄을 포기하지 않아도 되고. 사회적으로는 부동산에 목숨걸지 않고 그래서 더 이상 대부이자에 목숨걸지 않고. 자본가와 싸워서 이길 것 없이 그냥 자본가만 놔두고 노동하는 사람들끼리 연대해서 재미있게 살아나갈 수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해봅니다.

서울시에서 노숙인을 대상으로 진행하는 자활사업 급여가 40만원입니다. 노숙인 아저씨들은 노숙인센타에서 무료로 자고 또 알음알음으로 무료급식소를 찾아다니면서 식사를 해결합니다. 운이좋아 자활사업에 참여하게 되면 숙식이 해결된 상태에서 40만원의 급여를 가질 수 있습니다. 비교하자면 ‘빈집’식구들보다 더 나을 수도 있는 조건이지요. 공공근로(급여80만원)까지 할 수 있다면 좀 더 많이 좋은 조건이 됩니다. 하지만 아저씨들의 반응은 퉁명합니다. “이걸로 뭘 하라고. 언제 돈 모으라고” 어차피 가난을 벗어나지 못한다는 걸 알고서 결국 경마장에서 모조리 날려버립니다. 같은 40만원 수입이지만 한쪽에선 문화적 충만감속에서 세상을 바꿀 듯한 자신감으로 살아가고, 또다른 한쪽에선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다는 절망감으로 지냅니다. 사실 노숙인들 만이 아닌 우리 모두의 모습이라고 할 수있지요. 문화적으로 정서적으로 훨씬 더 가난한 우리들에게 ‘빈집’은 ‘수입이 아닌 지출로써 표시되는 인간의 품위’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빈집’ 식구들은 40만원을 자립적으로 벌어내기만 하면 도심에서의 자주적 생활에 성공하게 됩니다. 이 때문에 수입원으로서 생협을 만들 계획을 세우기도 하고 또 이러한 재원을 모으고 관리하기위해 마을금고를 준비하기도 합니다. 공제를 통해서 위기에 대비하려고 합니다. 뭔들 못할까요? 엄청난 여유시간과 여기가지 끌고 온 갖가지 기술적인 역량과, 기존의 체계에 안주하지 않으려는 심성적 자질과, 그리고 더 나은 세상을 맛보고 싶어하는 의지가 있는데요.  
새로운 시도가 계속되는 ‘빈집’의 앞날에 건투를 빕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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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산채비빔밥 2010.05.10 16:18
    역시 형탁이형의 삶의 고민과 감성이 잘 뭍어나네요.
    아무리 생각해봐도 글을 잘 쓴단 말이야 ~ 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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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경 2010.05.10 17:13
    캬~ 글 잘쓴다....나도 동의....ㅋ 때로는 몽상가 같다가도 이렇게 글을 읽고나니 왜 요즘 그토록 빈집에 꽂혔는지 절절하게(!) 이해가 가네요~ 하지만 자본가 놔두고 노동자들끼리 잘 살 수만 있으면 좋으련만... 왠지 그렇게 놔두진 않을듯 하네요ㅜ_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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