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03.22 19:13

현장의 함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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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아침 7시까지 서울 금천구 가산동에 있는 씨제이택배 화물터미널에 출근합니다.
이 곳은 전국에서 서울 구로구와 금천구로 보내는 화물이 모이는 곳으로, 하루 평균 간선차(14톤 화물차와 트레일러)8대가 만개정도의 화물을 싣고 와서, 구로구와 금천구의 각 동을 담당하는 1톤탑차 80대 가량에 옮겨 싣는 작업을 하는 곳입니다.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간선차에 실려 있는 화물을 자동으로 돌아가는 컨베이어벨트에 내리고, 1톤탑차 기사들은 끊임없이 쏟아지는 화물속에서 자기가 담당하는 구역의 물건만 내려서 차에 싣는 것입니다. 화물이 많고 적음에 따라 끝나는 시간이 다르지만, 요즘은 평균 11시에서 12시 사이에 끝납니다. 저는 금천구 독산대리점에 지입차로 일하고 있습니다. 매달 고정월급을 받는 직원과는 달리, 대리점 사장님은 저에게 구역을 주고, 저는 그 곳의 배달과 집하(고객의 화물을 받아서 전국으로 보내는 것)를 하면서, 화물 한 개당 일정 수수료를 받는 것입니다. 택배업이 갈수록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화물의 단가는 계속 떨어지고 있습니다. 2500원 단가의 화물 같은 경우, 수수료를 따져보면, 배달하는 기사는 800원의 수수료를 받고, 집하하는 기사는 600원을 받습니다. 나머지 1100원을 씨제이택배회사가 개 당 얼마, 간선차 기사들이 개 당 얼마, 여기에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 수당, 터미널 하역 외주업체 개 당 얼마 등등 화물 한 개가 거치는 모든 경로의 일꾼들 수수료는 여기서 생기는 것입니다.

저는 금천구 시흥3동을 담당하고 있습니다. 하루 평균 150개 정도 배달해야 할 화물을 받습니다. 거의 대부분의 기사들이 배달만해서는 수수료가 너무 작기 때문에, 집하도 하는데, 저 같은 경우, 오후 5시30분부터 7시30분까지 합니다. 시흥3동에 있는 유통상가의 작은 업체들이 대부분인데, 배달은 저녁 늦게도 할 수 있지만, 집하는 정해진 시간에 퇴근하는 회사와 약속된 시간에 해야합니다. 그래서 오늘 내가 배달해야 할 화물이 150개고, 분류하는 작업이 12시에 끝났으면, 12시부터 오후 5시30분까지는 150개를 모두 배달해야 합니다. 주어진 시간은 자투리시간 빼고 5시간입니다. 집하 시작시간 전에 배달을 끝내지 못하면, 배달할 화물과 집하한 화물이 섞이기 때문에, 택배를 오래 한 사람도, 화물칸 안에서 물건 찾기가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집하까지 끝나면, 평균 오후 7시 30분정도 됩니다. 이제는 제가 받은 화물을 다시 간선차에 옮겨서 전국으로 보내기위해, 제 구역에서 가장 가까운 터미널인 안양 석수동에 있는 화물터미널에 갑니다. 1톤탑차 기사들이 도착한 순서대로 차를 대고 컨베이어벨트에 화물을 내리면, 아르바이트하는 사람들이 간선차에 옮겨 싣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오늘 받은 화물을 고객들에게 배달했다는 의미의 바코드를 스캐닝해서 회사 서버에 전송하면 일이 끝이 납니다.

배달을 한다는 것이, 짧은 거리를 화물차로  조금씩 이동하면서, 화물이 작으면 손에 들고, 좀 크면 어깨에 짊어지고, 많이 크고 무거우면(전문용어로 똥짐이라고 합니다) 등짐을 하고 계단오르내리기를 수 없이 하게 됩니다. 택배를 처음 하는 사람이면, 마치 높은 파도에 휩싸인 배를 처음 탄 사람이 배멀미를 심하게 하는 것처럼, 정신이 아찔하고, 다리에 힘이 풀리기 시작하며, 점점 해는 서산으로 기울고, 아직 남아 있는 주먹만한 화물도, 내 머리 뒤통수에 있는 높은 산만큼이나 커다랗게 보이기 시작합니다. 사정이 이러하니 이직률이 30%를 향해 가며, 사람 구하기가 넓은 바다 한 가운데, 꽃게잡이 그물이 잠겨있는 위치를 알려주는 부표도 하나 없이, 그 그물을 찾는 것만큼이나 어렵습니다.

제가 성문밖교회를 다니기 시작하고 얼마 안 됐을 때, 저희 대리점에 새로운 분이 오셨습니다. 전직 경찰관으로 교통계에 계셨다가 정년퇴임했다고 합니다. 다부진 체격에 50대 후반정도 되었는데, 공교롭게도 교회 장로님이기도 했습니다. 아침에 출근해서 화물분류작업을 차분하고 꼼꼼하게, 말없이 돋보기로 지도를 보아 가면서 화물을 차에 채워갑니다. 택배는 각자가 서로 다른 구역에 나가서 배달을 하기 때문에 끝나는 시간이 다른 경우가 많아, 저녁에는 얼굴을 못 보는 때가 많습니다. 더구나 초보자가 집하까지 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장로님은 배달이 끝나면 곧바로 집으로 퇴근하셨습니다.

그런 어느 날, 출근을 하셨는데, 이마에 혹이 나 있고, 코뼈가 주저앉고, 이빨이 조금 깨진 것 같았습니다.
⌜어쩌다 그러셨어요?⌟ 물으니 수요일 예배를 드리기 위해 조금 서두르다가, 아파트입구 현관문이 닫혀 있었던 것을, 멀리서 보니 투명해서 열려 있다고 생각하고 뛰어가다가 그대로 꽝! 하셨다는 겁니다.
⌜얼마나 아프셨어요?⌟ 하니
⌜그래도 이만하길 얼마나 감사해요?⌟ 하십니다. 안타까운 마음으로 뒤돌아서 생각하는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감사하다니요? 천만 다행이고, 불행 중 다행인 것이 맞는 것이지, 뭐 감사할 꺼 까지야........
간밤에 분을 다 삭히신 거겠지 생각하는데, 그 차분하던 목소리가, 그래도 이만하길 얼마나 감사해요? 하시면서 미소 짓던 얼굴이 떠올랐습니다.

저는 지금 택배를 11년째 하고 있습니다. 집하시작시간 5시30분은 저를 정신없이 뛰게 하기도 했고, 배달을 하면서 전화를 받을 때면, 숨이 목에 까지 차있는 내 목소리가 싫을 때도 있었습니다. 폭우가 쏟아져도 모자 하나 쓰면 그만입니다. 배달을 하고 나서 차를 이동하기위해 운전석에 타면, 모자에서 쉼 없이 옷으로 빗물이 떨어져도 닦을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미 젖었고, 또 젖을 건데요. 그것도 모자라서 정신없이 뛰어가다 두꺼운 유리벽을 들이 받았는데, 감사하다니요? 아마도 한참 동안 땅바닥에 누워 계셨을 겁니다. 큰 충격에 정신을 못 차리고.

제가 성문밖교회를 다니고 있지 않았더라면, 저의 생각은 변하지 않았을지도 모릅니다.
저는 예배를 드리고, 성가대 합창을 들을 때면, 잘 모르지만 내 마음이 무언가 뜨거운 것으로 채워지는 것을 느끼기도 합니다. 상처를 치유해주시는 하나님이라고 하지요. 상처는 내 자신을 이미 지나간 시간에 붙잡아 두고, 자신만이 아니라 모든 생명이 날마다 새로운 모습으로 변하고 있다는 것을 느끼지 못하게 합니다. 전쟁의 상처를 겪은 사람들이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지 못하는 것처럼. 하나님은 아픔을 받아들이고 이겨낼 수 있게 해주시며, 모든 생명에 날마다 새로운 은혜를 베푸시고, 우리의 모든 감각이 그것을 느낄 수 있도록 해주시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모든 일에 감사하라는 성경말씀이 장로님이 유리문에 부딪혔던 그 충격만큼이나 저에게 새로운 의미로 다가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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