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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벧전13-4

설교제목: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저는 지난 금요일, 서로살림생협의 조합원이 되었습니다. 4월 중 조합원이 되면 가입비 만원을 면제해 줍니다. 그러나 가입비를 면제해 준다는 말에 유혹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생협운동의 가치에 공감했기 때문입니다. 저는 어떤 과정을 거처 생협운동의 가치에 공감하게 되었을까요? 우리, ‘서로살림생협행복중심생협연합에 소속된 생협입니다. 저는 조합원으로서 제가 속한 생협의 가치와 비전을 확인하고 싶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행복중심생협연합의 홈페이지를 찾아 들어가 20021016일에 작성된 행복중심 생활협동조합 조합원 선언문과 비전을 읽어보았습니다.

 

읽고보니, 생협운동의 중심가치는 행복이었습니다. 그러나 생협운동이 추구하는 행복은 개인적 행복이 아닌 보편적 행복이었습니다. 자기만의 개인적 행복을 무한히 추구하는 것이 아니라 타인과 더불어, 타인과 함께 행복하기를 추구하는 것이 생협운동의 중심가치였습니다. 그리고 함께 행복해야 한다고 믿는 타인은 인간만을 의미하지 않았고 인간과 동물 그리고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를 망라하고 있었습니다. 생협운동이 추구하는 행복은 대단히 거시적이고 또한 거룩하기조차 하였습니다.

 

그런데 이처럼 거시적이고도 거룩한 행복을 이루는 방법은 대단히 간단하였습니다. 안전하고 건강한 밥상을 확보하는 것이 그 방법이었습니다. 그러면 안전한 밥상은 어떻게 확보할 수 있을까요? 안전한 식재료를 공급받으면 됩니다. 그러면 어떻게 안전한 식재료를 공급받을 수 있을까요?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작물을 재배하면 됩니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여 기른 가축으로부터 고기와 우유와 달걀을 얻으면 됩니다. 농약과 화학비료를 사용하지 않고 농사를 짓는다면 땅이 살아납니다. 그리고 동물의 권리를 최대한 보장하여 가축을 기른다면 생태계가 서로의 생명을 빼앗는 착취의 구조에서 벗어나 서로가 자신의 생명으로 다른 생명을 섬기고, 기르는 구조로서 온 생명이 평화롭게 공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러면 사람과 동물과 식물을 포함한 모든 생태계가 함께 행복할 수 있는 세상이 옵니다. 여러분 기쁘지 않으신가요? 온 생명이 행복할 수 있는 방법을 우리가 발견했습니다. 그다지 기뻐하지 않으시는군요.

 

온 생명이 함께 행복해질 수 있는 방법을 듣고도 그다지 기뻐하지 못하는 여러분의 마음을 알 듯 합니다. 저도 아주 최근, 여러분의 마음을 공유할 수 있는 경험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지난 목요일 당산 역에서 돌아오는 길이었습니다. 길 가에 파리바게뜨가 있었습니다. 때는 오후 두 시였는데, 12시에 구워낸 식빵이라면서 10퍼센트를 깎아 줄 테니 사라는 것이었습니다. 귀가 얇은, 남의 말을 잘 듣는 저는 200원을 깎아 준다는 말에 솔깃하여 식빵 하나를 샀습니다. 더 맛있고 더 행복한 빵이 우리, 서로살림생협 매장에 있다는 생각을 아직 조합원이 아니었던 그때는 미처 하지 못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밖에서 빵을 사들고 산선 건물에 접근하는 순간 저는 저도 모르게 노느메기와 생협이 보이는 앞마당을 피하여 뒷마당을 통해 사무실로 미끄러지듯 사라지는 저를 발견하였습니다. 죄를 짓고 하나님의 낯을 피해 나무 뒤에 숨어버린 아담의 마음이 격하게 깨달아지는 순간이었습니다.

 

사무실 실무자들은 제가 사온 식빵을 보고 탄성을 올렸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이 빵을 나누는 순간, 우리는 결코 발설할 수 없는 비밀을 공유하게 되리라는 것을. 그러나 식빵에는 역시 우유가 있어야 하는 법. 저는 생협 우유를 사기로 마음먹었습니다. 저는 내심 밖에서 식빵을 사들고 들어온 죄책감을 만회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하면서 발걸음도 가비얍게 생협 매장으로 향하여 '팜 우유'를 집어 들었습니다. 우유를 계산대에 올려놓자 생협 실무자 김모 전도사가 바코드를 찍었고 아무런 감정 없는 목소리로 말했습니다. “오천 원입니다.” “예!?” 그러자 실무자는 모니터를 다시 들여다 보더니 이렇게 말했습니다. “, 오천 사백 원입니다.” 저는 마치 생돈을 뜯기듯 오천 사백 원을 지불하고 있는 저 자신을 바라보았습니다. 그리고 뭐 이리 비싸! 내 앞으로는 반드시 이마트만을 이용하리라!” 라는 솟구쳐 오르는 제 마음의 불평 소리를 들었습니다. 저는 사무실 실무자들에게 생협 매장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 주었습니다. 그러자 사무실 실무자들은 그 비싼 우유를 차마 벌컥벌컥 들이킬 수 없어 마치 성찬식을 치르듯 식빵을 찢어 우유에 찍어 먹었습니다. 저는 그날 생협운동의 가치, 온 생명의 보편적 행복을 추구해야 한다는 저의 생태학적 신념이 우유 값 오천 사백 원에 저 멀리 날아가고 있음을 분명히 느낄 수 있었습니다.


모두가, 온 생명이 다함께 행복할 수 있는 진리는 참으로 단순한 것이지만 그것은 결코 값싼 진리가 아니라는 것, 그리고 그 진리를 몸으로 살아내기란 만만치 않다는 것,  생태학적 신념을 무너뜨리려는 자본의 저항과 자본의 유혹 역시 거세다는 것, 그리고 나는 나의 신념을 일관성있게 관철시키기엔 아직도 너무나 미약하다는 것, 이 모든 자본의 저항과 유혹을 물리치고 생태학적 신념을 몸으로 살아내기 위해선 생명의 영이신 성령의 도우심이 절실하다는 사실을 참으로 우습기 짝이 없는 나의 모습을 통하여 경험한 날이었습니다.


지난 주일은 부활주일이었고 오늘은 부활 후 첫 주일입니다. 또한 오늘은 Quasimodogeniti라는 라틴어 이름을 가진 주일이기도 합니다. ‘Quasimodogeniti마치 새로 태어난 아이처럼이라는 뜻입니다. 이 이름은 기독교 신앙에서 말하는 부활의 한 의미를 암시해 주고 있습니다. 부활이란 이전의 생명이 지속되는 것을 의미하지 않습니다. 부활이란 이전과는 전혀 다른 차원의 생명으로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태어나는 것을 의미합니다.

 

오늘의 본문 벧전 13절은 그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하나님 아버지께 찬양을 드립시다. 하나님께서는 그 크신 자비로 우리를 새로 태어나게 하셨습니다.”

 

새로 태어났다는 것은 이전과는 전혀 다른 가치를 자신의 중심가치로 삼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그것에 대해 본문 3절의 후반부에서는 산 소망갖게 되었다는 말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산 소망은 본문 4절에서 말하는 것처럼 썩지 않고 더러워지지 않고 낡아 없어지지 않는 유산입니다. 이러한 산 소망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경험한 자들에게 주어지는 하늘의 유산입니다. 예수의 부활을 경험했다는 것은, 예수의 패배 속에서 진정한 승리를 보고 예수의 죽음 속에서 오히려 참된 생명을 보는 역설을 경험했다는 의미입니다.

 

그러나 산 소망이 있다면 죽은 소망도 있습니다. 죽은 소망은 산 소망과는 반대로 썩는 소망이요, 더러워지는 소망이요, 결국에는 허무하게 낡아 없어지는 소망입니다. 사실 이런 것들에게는 소망이란 이름은 물론이고 욕망이란 이름조차 아까운 종류의 소망입니다.

 

우리는 지금 썩는, 더러워지는, 결국 허무하게 낡아 없어지고 마는, 그리하여 소망이란 이름을 붙여줄 수 없는, 그저 욕망이라고 밖에는 부를 수 없는 종류의 소망이 여지없이 무너지고 깨어지는 모습을 여전히 진행 중인 세월호 사건에서 너무나도 분명히, 너무나도 아프게 목도하고 있습니다.

 

세월호 사건은 오늘로 12일째입니다. 오로지 입시만을 위하여 전력투구하라는 어른들의 말대로 살아야 했던 아이들입니다. 꽃다운 청소년기의 삶이 마치 인생이 아닌 것처럼 살아야 했던 아이들입니다. 그 아이들은 선실에서 움직이지 말고 대기하라는 어른들의 말을 따르다 죄 없는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우리는 그 아이들의 죽음을 계속 지켜보아야 하고, 또한 그 아이들의 죽음을 하나씩 하나씩 확인해야 하는 지독하게도 잔인한 4월을 보내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시신 한 구가 나올 때마다, 우리는 이 사회를 약육강식의 정글로 만들고 아이들에게 비인간적 경쟁을 강요하며 오직 이기기만 가르친 어른들의 가르침이란 것이 얼마나 썩은 소망이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수면에 올라온 아이들의 시신이 장례식장으로 옮겨지는 것을 보면서, 우리는 자기의 성공경험을 자부하면서 아이들의 인생을 계획해 줄 수 있다고 믿었던 어른들의 지혜란 것이 얼마나 더러운 소망이었는지 확인하고 있습니다.


여전히 차갑고 어두운 바다 속에서 나오지 못하고 있는 아이들을 그저 무기력하게 지켜보면서, 아이들의 인생을 좌지우지할 수 있다고 믿었던 어른들의 능력이란 것이 얼마나 낡고 허망한 것이었는지 확인합니다.

 

친구 하나가 제 페이스북에 글을 남겼습니다. “십자가는 어둠의 드라마지요. 인간의 어두운 면이 여기에 다 들어가 있는 것 같아요. 거짓과 배신, 책임전가가 만든 작품이잖아요. 세월호를 보면서 이런 십자가의 어두움이 겹쳐지는 것은 왜일까요? 내일은 뭐라 설교할까가 참 고민입니다. 잘 계시지요? 죽음에 무기력한 우리 인간이 할 수 있는 건 이런 안부가 다네요. 잘 계시길 기도합니다.”

 

이 친구의 말이 옳다고 생각합니다. 예수께서 인간의 모든 어두움을 지고 가셨듯이, 세월호의 아이들도 거짓과 배신, 책임전가와 같은 이 시대, 대한민국, 어른들의 모든 어두움과 썩은, 더러운, 낡고 허무한 소(욕)망의 희생양이 되어 죽어갔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활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자기를 배신하고, 부인하고, 떠나가 버린 제자들의 마음속에서 가장 먼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새로운 차원의 생명을 제자들에게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죽은 자가 산 자들을 위로하였고 죽은 자가 산 자들에게 참 생명을 보여주는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그가 보여준 생명은 죽음도 죽이지 못하는 생명, 죽음을 삼켜버린 생명, 죽음조차 생명의 영역으로 편입시켜 버리는 부활생명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묻게 됩니다. 세월호의 아이들도 부활할 것인가? 그 아이들도 자기들을 죽게 한 우리 어른들의 가슴에서 부활할 수 있을 것인가? 그리하여 이 시대, 대한민국, 우리 어른들의 썩은, 더러운, 낡고 허망한 욕망을 썩지 않는, 더러워지지 않는, 낡아 없어지지 않는 산 소망으로 바꾸어 줄 수 있을 것인가?

 

신동엽 시인의 시 한 편 소개해 드립니다.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송이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네가 본건, 먹구름/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네가 본건, 지붕 덮은 쇠항아리, 그걸 하늘로 알고 일생을 살아갔다.

 

닦아라, 사람들아 네 마음속 구름/

찢어라, 사람들아 네 머리 덮은 쇠항아리

 

아침 저녁 네 마음속 구름을 닦고 티 없이 맑은 영원의 하늘 볼 수 있는 사람은

외경을 알리라

 

아침 저녁 네 머리 위 쇠항아릴 찢고 티 없이 맑은 구원의 하늘 마실 수 있는 사람은

연민을 알리라

 

차마 삼가서 발걸음도 조심/

마음 아모리며 서럽게

 

아 엄숙한 세상을 서럽게 눈물 흘려 살아가리라/

누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누가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았다 하는가

--------

 

저는 믿습니다. 모든 고난받는 자들은 그리스도와 한패임을 믿습니다. 그리고 고난받는 모든 자들은 그리스도의 구원 사역에 동참하는 자들임을 믿습니다. 그러므로 세월호 아이들의 죽음도 헛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또한 그 아이들은 왜곡된 가치관으로 자기들을 기르고, 가르친 그리고 마침내 자기들을 죽게 만든 이 시대, 대한민국, 우리 어른들의 거짓된 하늘을 찢어서 구름 한 자락 없이 맑은 하늘을 보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그리고 썩지도 않고 더럽혀 지지도 않고 낡아 없어지지도 않는 산 소망을 반드시 보게 해줄 것을 믿습니다.

 

저는 세월호 사건 초기 성목요일 저녁부터 성금요일 저녁까지 금식을 하였습니다. 금식을 더 지속하고 싶었지만 배가 고파서 금요일 저녁 늦게 산선 식당을 다 뒤져 기어코 국을 찾아 밥을 말아 먹었습니다. 맛있었습니다. 그런데 배가 부르자 이상한 기분이 들었습니다. 주린 배가 채워질 때 찾아오는 쾌감과 더불어 자괴감이 몰려오는 것이었습니다. 그것은 내가 살아있음을 기뻐하는 마음인 동시에 또한 내가 살아있음을 미워하는 극단의 양가감정이었습니다. 그러다가 세월호 아이들의 어버이들을 생각했습니다. 그들도 사람이니 밥을 먹고 있거나 지금은 아니더라도 결국 밥을 먹게 될 텐데 그때 그들은 얼마나 더 처절하게 내가 느낀 그 복잡한 감정을 겪게 될까 생각했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그 어버이들을 위해 잠시 기도를 올렸습니다. 하나님도 자기 아들이 올리는 통곡의 기도 앞에서 그리고 그 아들의 죽음 앞에서 침묵해야 했었기 때문에 지금 자기의 자녀들을 잃고 우는 모든 어버이들을 위로해 주실 수 있으리라 믿으며 잠시 기도를 올렸습니다.

 

존경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예수님의 죽음과 부활은 제자들과 우리들의 마음에서 거짓된 하늘을 찢었고, 거짓된 소망을 죽이셨습니다. 그리고 구름 한 점 없는 맑은 하늘과 썩지도, 더럽혀지지도, 없어지지도 않는 산 소망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제자들을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새롭게 하셨습니다. 저는 그와 동일한 은혜가 세일호 아이들을 통해서 지금, 여기, 대한민국의 모든 어른들에게도 내려오게 될 것을 믿습니다.

 

그리하여 저는 이제라도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른들이 거짓과 배신과 책임전가의 태도를 버리고 진실한, 믿음직한, 책임지는 태도로써 이 사건을 마무리 해주기를 바랍니다. 그리고 존경하는 성문밖교회 교우들께서도 현재 진행 중인 이 사건에 계속 관심을 가져주시고 기도해 주시기를 부탁드립니다. 기도하겠습니다.

 

기도

주님, 당신께서 죽으실 때 우리의 거짓된 하늘이 찢어졌고 우리의 썩은 소망이 깨어졌습니다. 주님, 당신께서 부활하셨을 때 우리의 머리 위에 거짓 없이 맑고 티 없는 하늘이 나타났고 우리의 마음에 산 소망이 내려왔음을 믿습니다. 그러니 주님 당신의 부활을 믿는 우리를 마치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와 같이 전혀 새로운 삶의 가치를 지닌 사람들로 살게 해주옵소서.

 

주님, 당신과 제자들 그리고 우리 신앙인들 사이에서 일어나고 있는 그 일이 세월호의 아이들과 이 시대, 대한민국의 어른들 사이에서도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주님, 당신께서 당신을 배신하고 버리고 도망간 제자들의 마음에 부활하신 것처럼 우리 세월호의 아이들도 거짓된 가치관으로 자기들을 기르고 가르친 우리 어른들의 마음에 부활하게 해 주시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어른들이 자기의 왜곡된 가치관을 버리게 하시고 현재의 무책임과 책임전가의 태도를 버리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통한 아름다운 교제가 세월호의 아이들과 그들의 어버이들,  그리고 이 사건의 진상을 파헤치는 자들과 이 사건의 진실을 보도하는 자들과 그것을 지켜보며 그들을 응원하는 우리 모두의 삶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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