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자료
2014.05.27 17:55

2014.05.25 주일설교 "주일성수의 의미"

조회 수 2219 추천 수 0 댓글 0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설교제목: 주일성수의 의미

설교본문: 20, 8-11

 

파울로 코엘료의 소설, 연금술사를 읽었습니다. 소설의 주인공은 산티아고라는 양치기입니다. 그는 어느 날 꿈을 꾸었습니다. 이집트의 피라미드 밑에 보물이 숨겨져 있다는 꿈이었습니다. 산티아고는 망설였습니다. 자기의 꿈을 확인하기 위해 여행을 떠날 것인가? 꿈은 그저 꿈일 뿐이라고 치부하면서 익숙한 현재의 삶을 지속할 것인가?

 

결국 산티아고는 자기의 꿈을 확인하기 위해 기르던 양을 처분하여 여행자금을 만들어 여행을 떠났습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자기의 모든 재산을 잃어버렸습니다. 산티아고는 다시 여행자금을 모으기 위해 아르바이트를 시작합니다. 그의 아르바이트는 아랍인의 가게에서 유리그릇을 파는 일이었습니다.

 

산티아고는 양치는 일뿐만 아니라 장사에도 소질이 있었습니다. 아랍인의 가게는 금방 번창하기 시작했고 마침내 산티아고는 여행자금을 모아 다시 여행을 떠날 수 있게 되었습니다. 산티아고가 다시 여행을 떠나려하자 가게 주인인, 아랍인이 물었습니다.

 

대체 어디를 가려는 건가?

이집트에 가려합니다.

이집트는 왜?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서지요.

피라미드? 단지 그것 때문에? 피라미드는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하다네. 그저 돌무더기에 불과한 피라미드를 보기 위해 안정된 직장마저 버리고 그 위험하고도 먼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무모한 짓이야.

(그러자 산티아고는 이렇게 반문하였습니다) 당신은 여행에 대한 갈망이나 동경이 없나요?

...... (아랍인은 대답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대화는 일단 여기에서 끝났습니다. 그러나 며칠 후 결국 여행을 떠나려는 산티아고에게 주인은 이런 말을 남겼습니다.

 

자네는 나에게 물었네. 여행에 대한 갈망이나 동경이 없느냐고. 나는 무슬림이네. 예언자께서는 우리 무슬림들에게 다섯 가지 계명을 주셨네. 첫째, 하나님은 오직 한 분이시다. 둘째, 하루에 다섯 번 기도하라. 셋째, 라마단 기간에 금식하라. 넷째, 가난한 형제를 도우라. 그리고 우리 무슬림에게 주어진 마지막 의무는......(가게 주인은 잠시 말을 잇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가게 주인인 아랍인 말했습니다. 우리 무슬림들의 마지막 의무는 바로 여행의 의무라네. 우리 무슬림들은 일생에 한 번은 무슬림의 성지 메카를 향해 여행을 떠나야 한다네. 산티아고를 떠나보내는 유리가게 주인, 아랍인, 그 무슬림의 눈에서 남모르는 눈물이 흐르고 있었습니다. 평생 충실한 무슬림으로 살았으나 그가 결국 실행하지 못한 가장 중요한 계명을 의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저는 책을 읽다가 여행의 의무라는 말이 마음에 깊이 와 닿았습니다. 여행의 의무는 일상을 떠날 의무입니다. 일상을 떠남으로써 시작되는 것이 여행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여행의 의무는 일상을 떠나 일상을 바라볼 의무입니다. 습관적으로 살아온 자신의 일상을 반추하고, 성찰하게 되는 것은 여행 중에 자연스럽게 일어나는 과정이기 때문입니다. 또한 성지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라는 명령은 오직 한 분이신 하나님을 향한 여행을 떠나라는 명령입니다. 이것을 바꾸어 말하면, “삶의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즉 삶의 본질을 추구하라는 명령입니다.

 

비행기가 없던 시절, 오직 걸어서, 메카를 향하여 여행을 떠나는 것은 목숨을 건 모험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일생에 한 번은 삶의 껍데기가 아닌 알맹이, 즉 삶의 본질을 잡기 위한 일에 목숨을 걸어라! 이것은 선택사항이 아닌 의무다! 라고 못 박은 것이 곧 무슬림들에게 주어진 마지막 계명, 마지막 의무인 여행의 의무였다고 저는 생각하였습니다.

 

저는 기독교인으로서 무슬림들의 계명을 보며 질투를 느꼈습니다. 한 분이신 하나님을 믿어야 할 의무, 기도와 금식의 의무, 형제를 구제하라는 의무는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익숙한 계명입니다. 그러나 여행의 의무는 우리 기독교에는 없는 의무라고, 있다고 하여도 그것은 계명이나 명령으로 못 박아 놓은 의무가 아니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왜 우리에겐 이런 계명이 주어지지 않았을까? ? 어째서?

 

그러다가 오늘의 본문을 읽게 되었습니다. 안식일 계명을 다루는 본문입니다. 저는 이 본문을 읽고, 우리에게도 명령으로 규정된 여행의 의무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오늘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안식일을 기억하여 그 날을 거룩하게 지켜라.” 그러나 어떻게? 어떤 방식으로 안식일을 거룩하게 지킬 것인가 하는 질문이 일어납니다.


이어지는 다음 본문이 그 방법을 지시해 주고 있습니다. 본문 8절과 9절입니다. “너희는 엿새 동안 모든 일을 힘써 하여라. / 그러나 이렛날은 주 너희 하나님의 안식일이니, 너희는 어떤 일도 해서는 안 된다. 너희나 너희의 아들이나 딸이나, 너희의 남종이나 여종만이 아니라, 너희 집짐승이나, 너희의 집에 머무르는 나그네라도, 일을 해서는 안 된다.”

 

무슨 말일까요? 이것은 이레째 되는 날, 즉 안식일에는 모든 일상을 완벽하게 중지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러므로 안식일 계명은 일상의 완벽한 중지를 명령한 계명입니다. 이 안식일 계명은 너무나도 철저한 명령이었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남자와 여자, 어른과 어린이, 주인과 노예, 유대인과 이방인을 막론하고 지켜야 하는 그야말로 남녀노소빈부귀천을 구별하지 않는 철저한 계명이었습니다. 또한 안식일 계명은 사람뿐만 아니라 동물인 가축마저도 예외가 되지 않는 진정 라디칼한 명령이었습니다.

 

이 안식일 계명이 얼마나 철저했는가 하는 것은 출애굽기 3114-15에 잘 소개되어 있습니다. 14: 그 날(안식일)을 더럽히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그 날에 일하는 사람은 누구든지 자기의 겨레로부터 제거될 것이다. / 15: 이렛날은 거룩한 날이므로 완전히 쉬어야 한다. 안식일에 일하는 사람은 반드시 죽여야 한다. 좋은 주일에 죽여라, 죽여라 하는 문장을 연거푸 읽어드렸군요.

 

(이 철저한 안식일 계명을 듣다보면 이런 질문이 사족처럼생겨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만약 어떤 주인이 자기의 노예를 시켜 안식일에도 일을 하게 했다면 일을 한 노예가 죽어야 하는가? 아니면 노예를 자기의 수족처럼 부려서 안식일에도 일을 시킨 주인이 죽어야 하는가?

 

이런 질문에 대해서는 생물학적인, 또는 의학적인 상식선에서 답변을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죄인의 수족을 자른다고 죄인이 제거되는 것은 아니다. 죄인을 반드시 제거해야 한다면 그의 수족이 아닌 그의 몸통을 베어야 한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우리 사회는 죄인을 제거한다고 하면서 죄인의 몸통에는 손가락도 대지 못하고 죄인의 수족만 자르는 것 같다는, 아니, 죄인 스스로 마치 양서류의 한 종류처럼 자신의 수족을 자르고 빠져나가는 것이 관행이 되어가는 것 같다, 라는 생각이 사족처럼안식일 계명을 묵상하는 과정에 들었습니다.)

 

다시 본론으로 돌아와서, 안식일에 이처럼 철저하게, 목숨마저 걸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목적일까요? 그렇습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 그 자체가 안식일의 중요한 목적입니다.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일단, 사람이고 동물이고 일주일에 하루쯤은 쉬어야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와 더불어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은 종교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가집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는 것, 인간이 자기의 행위와 노력으로 구원 받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 받는다는 것을 선포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구원이란 말이 쉽게 와 닿지 않을 수 있습니다. 구원이란 말은 시대마다 그리고 상황에 따라서 다른 의미로 사용되었기 때문입니다. 요즘의 사람들이 이해할 수 있는 말로 바꿔본다면 구원이란 말은 이런 의미인 것 같습니다. “내가 정말 가치 있는 존재인가?” 라는 질문에 대답을 얻는 것인 것 같습니다. (이것은 물론 구원이란 말의 의미를 다 담을 수 있는 표현은 아니다!)

 

예를 들어, 어떤 사람이 열심히 돈을 법니다. 그는 돈을 못 벌거나 적게 벌면 자기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에게 돈을 버는 행위는 자기의 구원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또 어떤 학생이 열심히 공부를 합니다. 그 학생은 성적이 떨어지면 자기는 가치 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그 학생에게 공부는 자기의 구원을 획득하기 위한 행위입니다.

 

이처럼 자기의 가치를 확인하려는 모든 시도는 자기의 구원을 확인하려는 시도라고도 말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는 세상은 주로 자기의 가치를 자기의 행위와 자기의 능력에서 확인할 수 있다고, 또 그것이 마땅하다고 가르칩니다. 결국 세상의 가르침은 자기의 구원을 자기의 능력으로 이루라는 가르침입니다.

 

자기의 구원을 자기의 행위와 능력으로 이루어야 한다는 가르침에 사로잡힌 세상의 사람들은 자기의 행위능력을 인정받기 위해서 부심하며 발버둥 칩니다. 이런 세상에선 모두가 모두의 경쟁자가 되고 적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세상에선 모두가 타인보다 더 인정받기 위한 투쟁은, 무한경쟁은 당연한 일로 간주됩니다.

 

그러나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 계명은 인간의 가치가 인간 자신의 행위능력에 의존하지 않는다는 것을 선포합니다.

 

그렇다면 아무것도 하지 말라는 안식일 계명이 주어진 이유는 무엇일까요? 또한 인간의 가치가 인간 자신의 행위나 인간 자신의 능력에 달린 것이 아니라고 말하는 근거는 무엇일까요?

 

그것은 오늘의 마지막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습니다. “내가 엿새 동안 하늘과 땅과 바다와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을 만들고 이렛날에는 쉬었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나, 주가 안식일을 복 주고, 그 날을 거룩하게 하였다.

 

안식일을 지켜야 하는 까닭은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기 위함이라고 본문은 말하고 있습니다. 인간이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한다는 말은 자기가 어디로부터 왔는지를 기억한다는 말입니다. 자기가 어디로부터 온 존재인지 기억한다는 것은 자기의 가치를 누가 결정하는지를 기억한다는 의미입니다.

 

안식일을 기억하는 사람,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하는 사람은 자기의 존재를 자기가 결정한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서 결정하셨다는 것을 또한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안식일을 지키는 사람은 자신의 가치를 결정하는 분은 오직 하나님이라는 것을 기억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후, “보기 좋다!”하신 그 말씀이 곧 인간의 가치를 보증해 주신 말씀임을 기억합니다. 또한 인간의 가치가 인간 자신의 행위나 능력에 달려있지 않고 오직 창조주이신 하나님께 달려있다는 그 말씀은 존재는 존재 그 자체로서, 있는 것은 있는 그 자체로서 가치 있다는 선언임을 깨닫습니다.

 

안식일 계명은 비록 유대인들의 계명이었지만 우리 기독교인들의 주일성수 계명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기독교인들도 주일을 성수하면서 하나님의 창조를 기억합니다. 우리 인간과 모든 피조물이 하나님으로부터 왔음을 기억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가치가 우리의 행위와 우리의 능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고백합니다. 우리의 가치를 보증해 주시는 분은 오직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임을 고백합니다.

 

우리 기독교인들은 이것을 고백하기 위해서 주일이면 우리의 일상을 정지하고 오직 우리의 가치를 결정하시는 하나님께만 집중하며 예배를 드립니다.

 

저는 안식일과 주일성수의 의미를 생각하며 앞서 말씀드린 무슬림들의 마지막 의무인 여행의 의무가 우리 기독교인들에게도 있음을 깨달았습니다. 그것은 바로 주일성수의 계명입니다.

 

존경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아무것도 하지 않음은 세상에서 무의미, 무가치, 쓸모없음, 어리석음으로 통합니다. 그러나 세상을 구하기 위한 그리스도의 십자가 역시 세상에서는 거리끼는 것, 어리석은 것으로 받아들여졌음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러니 일주일에 한 번 여러분의 일상을 중지하고, 아무것도 하지 않음을 실천하며 예배하는 이 모임에 대해 확신을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리하여 매주 모이는 이 예배가 여러분 각자에게 하나님을 향해 떠나는, 삶의 의미와 본질을 향해 떠나는 영적 여행이 되시길 두 손 모아 기도드립니다.

 

기도

주님, 우리에게 안식일 계명을 주시고 주일성수와 예배의 의무를 주시니 고맙습니다. 예배드릴 의무가 있다는 것은 최소한 한 순간 만이라도 삶의 껍데기가 아닌 삶의 본질을 추구하는 시간을 우리가 갖게 됨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우리 모두가 일주일에 한 번 찾아오는 이 시간을 소중한 영적 여행으로 삼게 해주십시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파송의 말씀

오늘은 부활 후 다섯 번째 주일입니다. Rogate라는 이름으로도 불리는 주일이며 그 뜻은 기도하라! 는 의미입니다. 여러분 삶의 하루하루가 하나님의 신비 속으로 한 걸음 한 걸음 더 깊이 들어가는 영적 여행이 되시기를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통한 아름다운 교제가 매 주일 예배를 영적 여행으로 삼기 원하는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214 말씀자료 2014.05.04 주일설교 file 김규중 2014.05.06 1657
213 말씀자료 2014.04.27. 주일설교 "새로 태어난 어린아이처럼" 김희룡 2014.04.28 1602
212 말씀자료 2014.04.20. 주일설교 "죽음을 삼켜버린 생명" 김희룡 2014.04.22 1616
211 말씀자료 2014.04.13. 주일설교 "고난과 몰락의 가치" 김희룡 2014.04.15 1539
210 말씀자료 2014. 4. 6 주일설교 "믿음은 모든 사람의 것이 아닙니다" deusabsconditus 2014.04.08 1747
209 말씀자료 성문밖고별설교 "부활의 변화, 종으로의 변화" 빌 3:12-14:1 file 고성기 2014.04.03 2018
208 말씀자료 2월 어느 주일 설교. "복음에 댓글 달다" 요1:12-13 file 고성기 2014.04.03 1562
207 말씀자료 2014.2.9 주일설교 "꼬끼오~ 깨달음을 주는 소리" 눅22:54-62 고성기 2014.02.16 2567
206 말씀자료 2014.2.5 주일설교 "하나님의 시선! 회복과 은혜" 창6:1-8 file 고성기 2014.02.16 2439
205 말씀자료 2014.1.23 주일설교 "하나님의 뜻은 지금 여기에" 막3:31-35 file 고성기 2014.02.16 2358
204 말씀자료 2014.1.16 주일설교 "경계를 넘어 용서를 낳는 사람들" 행7:54-60 file 고성기 2014.02.16 2191
203 말씀자료 2014.1.12 주일설교 "사도행전! 성문밖행전!" 행2:42 file 고성기 2014.01.16 1911
202 말씀자료 2014.1.5 주일설교 "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만나세요" 행2:37-42 file 고성기 2014.01.16 2821
201 말씀자료 2013.12.31 송구영신예배설교 "주님을 경외하는 자에게 뜨는 태양... file 고성기 2014.01.16 2321
200 말씀자료 2013.12.22 주일설교 "메시야의 안녕을 꿈꾸는 광야의 사람들" 눅... file 고성기 2013.12.24 2465
199 말씀자료 2013.12.15 주일말씀 "하나님의 시선, 회복과 은혜" 창6:1-8 file 고성기 2013.12.19 1663
198 말씀자료 2013.12.1 주일설교 "메시야! 낮고 작은 사람" file 고성기 2013.12.05 2284
197 말씀자료 2013.11.24 주일설교 "소통하는 길위의 순례자" 시편131편 file 고성기 2013.11.26 2721
196 말씀자료 2013.11.17 주일설교 "노래하고 춤추며 죽음을 넘는 사람들" 사사... file 고성기 2013.11.19 2256
195 말씀자료 2013.11.10 전태일열사기념주일설교 "골방의 주기도문3. 하늘의 ... file 고성기 2013.11.19 2262
Board Pagination ‹ Prev 1 2 3 4 5 6 7 8 9 10 ... 12 Next ›
/ 1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