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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제목: 삼위일체 신앙

설교본문: 고린도후서1311-13

설교 후 찬송: 212

 

오늘은 Trinitatis, 삼위일체 주일입니다. 교회력으로 보면 추수감사절을 제외한 마지막 절기라고 말할 수 있는 절기입니다. 삼위일체 주일은 앞으로도 20번이나, 11월 첫 주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2014 마지막 절기에 도달한 오늘 우리가 어떤 절기들을 지나 오늘에 이르게 되었는지 돌아보는 것도 의미가 있겠다 생각합니다.

 

저는 물론 함께 하지 못했으나 작년 11월  마지막 주일부터 1225일까지 4주간, 여러분은 대림절과 성탄절을 보내셨습니다. 대림절은 그리스도의 오심과 다시 오심을 대망하는 절기입니다. 그리고 성탄절은 그리스도의 탄생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러나 이런 식의 설명은 나와 그리스도의 관계를 마치 남남처럼, 마치 나와는 별 관계가 없는 것처럼 인식하게 만드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러나 대림절과 성탄절은, 상징적으로 표현한다면, 그리스도인 모두가 마리아와 요셉처럼 그리스도의 어머니가 되고 그리스도의 아버지가 되어 신앙 안에서 그리스도를 잉태하고 출산하는 절기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중세 독일의 가장 대표적인 신학자이면서 신비가였던 마이스터 에크하르트는 이런 말을 했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잉태하고 하나님을 출산하는 영적 경험을 가져야 한다.” 즉 모든 신앙인은 그의 내면에서 그리스도가 잉태되고 태어나는 그리스도의 출산Geburt Christ im Herzen der Glaeubigen을 경험해야 한다는 의미입니다. 이것은 신의 출산Gottesgeburt”이란 마이스터 에크하르트의 독특한 신학이론입니다.

 

대림절과 성탄절을 보낸 이후 여러분은 5주간의 주현절을 보내셨을 것입니다. 주현절이란 예수께서 평범한 사람으로 살다가, 즉 누군가의 아들, 누군가의 형제, 누군가의 이웃으로 살다가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신 이후 이스라엘의 선생이요, 예언자요, 또한 그리스도로서 자기를 드러내신 사건들을 기념하는 절기입니다.

 

그 이후 여러분은 6주간의 사순절을 보냈습니다. 그리고 바로 이 사순절의 끝 무렵에 제가 성문밖교회의 담임목사로 청빙되어 여러분과 함께 고난주간을 보냈습니다.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이 과연 어떤 의미인지, 그리고 우리가 살아가면서 결코 피할 수 없는 고난, 그 자체의 의미에 대해 우리는 함께 묵상해 보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그 후 우리는 부활절을 맞이하였고 이후 6주간의 부활주일을 보내며 죽음의 권세를 깨뜨리는 죽음에 관하여, 그리고 더 이상 죽음에게 지배당하지 않는 생명에 대하여 함께 묵상하였습니다.

 

그런데 이번 부활주일은 우리에게 무척이나 고통스러운 시간이었습니다. 죽음에 대한 생명의 영원한 승리를 찬양해야 하는 부활주일이었지만 우리 한국사회가 맞이한 상황은 정반대의 상황처럼 보였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에 즈음한 한국사회는 온통 죽음의 권세에 짓눌린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 어디에서도 생명의 활력을 발견할 수 없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든 목회자들은 고민하며 묻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부활은 과연 오늘, 우리, 한국사회에 어떤 메시지를 던져주는가?

 

저 역시 고민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붙잡고 씨름했던 책이 있었는데, 그것은 몰트만이란 신학자의 책, 희망의 신학이었습니다. 몰트만은 1926년생입니다. 그는 독일군으로 2차 세계대전에 참전하였고 연합군의 포로가 되어 그 포로수용소에서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많은 죽음을 보았고 죽음보다 깊은 절망도 보았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그가 들려주는 메시지는 분명 들을 말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책에서 몰트만이 전해주는 부활의 메시지는 두 가지였습니다. 하나는 궁극적 위로입니다. 모든 억울하고도 어이없는 희생에 대해 부활은 그들의 죽음이 끝이 아니라고, 그들은 반드시 새로운 생명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몰트만이 전하는 부활의 두 번째 메시지는 저항이었습니다. 부활은 예수님께서 죽음의 권세, 죽음의 세력을 깨뜨리기 위해 자기의 생명을 던져서 저항하여 승리하신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우리도 생명을 죽음으로 내모는 모든 세력, 모든 권세에 대해 저항해야 한다는 것이 곧 부활의 두 번째 메시지였습니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아쉽게도 그리스도의 부활이 전해주는 메시지의 한 측면, 즉 위로의 메시지에만 너무 집중한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보다 적극적으로 부활이 전해주는 메시지의 또 다른 측면, 즉 저항의 메시지를 보다 강조했어야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그랬다면 한국교회는 보다 적절한 메시지로써 암울한 한국사회를 위로할 수 있었을 것이고 또한 책임을 회피하기에 급급한 자들에게 책임을 물을 수 있었을 것이라는 아쉬움을 가졌습니다.

 

어제 밀양에 다녀온 성문밖 교우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밀양에 간 이유는 밀양의 송전탑 공사가 그곳에 사는 사람들의 생존권을 위협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생존권을 위협하는 공사는 반생명적인 공사입니다. 그렇다면 그런 공사를 밀어붙이는 세력 역시 반생명적인 죽음의 세력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는 사람이라면 마땅히 저항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부활은 억울한 희생자들에게는 위로의 메시지이며 억울한 희생자들을 만들어내는 죽음의 세력에게는 저항의 메시지이기 때문입니다.

 

부활절을 보낸 우리는 그리스도의 승천일을 맞이하게 되었습니다. 그리스도의 승천일을 보내며 저는 성문밖 교우들에게 문자를 보냈습니다. 그 문자에서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이별도 있다라는 이야기를 했습니다. 마태복음 28장 22절에서 예수님은 이제 제자들과의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을 것이다." 영원한 이별을 앞두고 주는 메시지라고는 이해하기 어려운 말씀을 주셨기에 저는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이별"이란 다소 역설적인 명제를 상상하게 되었습니다. 누군가는 이렇게 질문할 수 있습니다. 영원히 헤어지지 않는 이별이 있다면 "함께 있는 이별"도 가능하느냐고. 그렇습니다. 가능합니다.

 

제자들의 경우를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예수와 함께 있을 때, 제자들은 거의 언제나 자기들의 개인적인 욕망을 추구하였습니다. 예수께서 이스라엘의 새로운 왕이 되시면 누가 과연 예수의 좌우에 앉게 될 것인가 하는 것이 그들의 가장 중요한 관심사였습니다. 그들은 비록 육체적으로는 예수와 동고동락하는 사이였지만 그들의 마음은 동상이몽으로 서로 판이하게 달랐습니다. 저는 이러한 경우를 함께 있는 이별"일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예수와 영원히 이별 한 후, 예수께서 약속하신 성령이 오셨습니다 성령을 경험한 제자들은 이전에 깨닫지 못했던 예수의 메시지를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그 메시지를 위해 목숨마저 거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제자들은 예수와 육체적으로는 영원히 이별하였으나 영적으로는 예수와 영원히 함께 사는 사람들이 되었습니다. 이 모든 것은 성령이 오셔서 가능하게 된 사건이었습니다. 이것을 기념하는 절기가 바로 지난 주 우리가 지켰던 성령강림주일이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 우리는 삼위일체 주일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앞으로 우리는 11월 첫째 주일까지 모두 20번의 삼위일체 주일을 보내게 됩니다. 다른 어떤 절기보다 긴 절기입니다. 그리고 삼위일체라는 말은 교회에서 많이 사용되는 말입니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의미를 잘 아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리고 그 의미를 속 시원하게 설명할 수 있는 사람도 없습니다.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삼위일체에 대한 논쟁은 교회 역사 속에서 대략 500년간 치열하게 진행되었지만 시원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한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이 문제를 언제나 모른 척, 없는 척하고 넘어갈 수도 없습니다. 삼위일체 신앙은 우리 기독교 신앙의 핵심에 해당하기 때문입니다.

 

삼위일체 논쟁은 예수가 과연 누구냐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보다 구체적으로 말하면, 예수는 과연 인간인가? 신인가? 하는 질문에서 시작되었습니다. 만약 예수가 인간일 뿐이라면 우리는 예수를 예배할 수 없습니다. 인간이 인간을 예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가 신일뿐이라면 예수를 따라 살라는 요구는 불가능한 요구가 됩니다. 인간이 어떻게 신처럼 살 수 있겠습니까? 그것은 과대망상이고 교만입니다.

 

그리고 만약 예수가 인간일 뿐이라면 예수가 이루어낸 구원은 완벽한 구원일 수 없습니다. 완벽하다는 것은 인간에겐 불가능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만약 예수가 신일뿐이라면 그가 이루어낸 구원은 완벽한 구원이겠지만 그 구원은 인간의 구원이 될 수 없습니다. 신에게서 이루어진 구원이 어떻게 인간에게서 똑같이 이루어질 수 있겠습니까?

 

교회 역사를 보면 예수가 참 하나님이라는 결론에 도달하기까지 약 300년이 걸렸습니다. (니케아 회의 325) 그리고 예수가 참 하나님일 뿐만 아니라 참 인간이란 신앙고백을 완성하기까지는 거의 500(칼케톤 회의 451)이 걸렸고 그 뒤로도 끊임없이 논쟁 중에 있습니다.

 

이 와중에 수많은 사람이 이단으로 정죄되고 추방당하고 심지어 죽고 죽이는 일까지 벌어져 교회는 거의 붕괴할 지경에 처하고 말았습니다. 그리하여 결국 도달한 결론은 예수의 인간성과 신성은 둘 다 부정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어떻게 가능한지에 대해서는 결론을 내리지 못했습니다.


그리하여 칼 라너와 같은 신학자는 이렇게 제안하였습니다. "삼위일체는 신앙의 결론이라기 보다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이해해야 한다. 즉 우리의 신앙이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 말하는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보는 것이 옳다."

 

칼 라너의 말처럼 삼위일체를 신앙의 전제조건으로 본다면,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결코 포기할 수 없는 것은 대략 세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첫째,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은 이 땅과 이 땅의 사람들, 그리고 이 땅의 역사에 관심을 가져야 합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인간으로서 하신 일이며 또한 하나님으로서 하신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이 이 땅에서 하신 일은 인간에게만 중요한 일이 아니라 하나님에게도 중요한 일입니다. 즉 가난한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 병든 사람을 치료하는 일, 귀신을 내쫓는 일, 이 땅에서 소외된 생명들의 친구와 이웃으로 살아가는 일은 인간적인 차원에서 중요한 일이면서 또한 하나님의 차원에서도 대단히 중요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신앙은 이 땅과 이 땅의 인간, 이 땅의 역사를 신앙의 본질적인 한 부분으로 인정해야 합니다.

 

사람들은 물을 수 있습니다. 영등포 산업선교회? 성문밖교회? 너희들이 중요하게 생각하는 노동문제, 사회문제, 그런 것은 이미 시민사회단체가 더 잘하고 있지 않나? 그러니 그런 문제들은 사회에 맡겨 두고 너희는 영적인 문제, 종교적인 문제에 집중하는 것이 맞지 않을까?

 

아니, 그렇지 않습니다. 사회문제나 역사적인 책임에 대해 교회에게 관심을 갖지 말라고 말하는 것은 자기 목숨을 다하여 인간과 이 땅의 역사를 위해 헌신하신 참 인간, 예수님을 부정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존경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은 우리 영등포 산업선교회와 성문밖교회의 신앙적 지향과 전통을 자랑스럽게 생각하셔도 좋습니다.

 

둘째,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하신 일들을 따라 하기 위해서라도 먼저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을 깊이 인식해야 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님을 예배하는 것이 없으면 예수님께서 인간으로서 하신 일을 따라 할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좋은 일 하다가 스스로 무너지는 사람을 많이 보았습니다. 옳은 일에 헌신하다가 스스로 허무에 빠지는 사람도 많이 보았습니다. 좋은 일, 옳은 일을 하려는 마음은 좋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하려면 끊임없이 내적인 힘을, 영적인 힘을 공급받아야 합니다. 그것을 줄 수 있는 분은 우리의 그리스도이시며 하나님이신 예수님뿐이기 때문입니다.


셋째, 삼위일체 신앙을 고백하는 사람이라면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듯, 언제나 하나되기에 힘써야 합니다. 오늘의 본문을 보시기 바랍니다. 본문이 전하는 바울의 중요한 메시지는 이런 것들 입니다. "서로 격려하십시오. 같은 마음을 품으십시오. 화평하게 지내십시오." 모두가 하나됨을 권고 하는 내용입니다.

 

존경하는 성문밖교회 교우 여러분, 우리는 예수님을 참 인간,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는 삼위일체 신앙을 포기할 수 없는 사람들입니다. 또한 성부와 성자와 성령이 하나이듯 하나되는 공동체를 또한 지향해야 하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니 예수님을 참 인간으로 고백하면서 그가 이 땅에서 그러하셨던 것처럼 우리도 이 땅의 인간과 사회와 역사에 대해 애정을, 책임을 가지셔야 합니다. 또한 예수님을 참 하나님으로 고백하면서 끊임없이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예배로부터 영적인 힘을 공급받기에 힘쓰셔야 합니다. 러면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하나님의 사랑이, 성령의 사귐이 언제나 여러분과 함께 하실 것을 믿습니다.

 

기도

참 인간이시며 참 하나님이신 주 예수 그리스도시여, 우리로 하여금 당신께서 인간으로서 하신 일들을 따라하게 하시옵소서. 그러나 그것이 우리 자신의 힘만으로는 부족한 것을 알아 하나님이신 당신께 예배하는데 온 힘을 다하는 우리가 되게 하시옵소서. 이 땅의 인간을 위하여 그리고 이 땅의 역사를 위하여 헌신하신 참 인간, 참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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