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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본문: 이사야 111-9; 마가복음 19-13

설교제목: 이사야가 꿈꾸던 세상

설교 후 찬송: 성문밖 찬양 1821,5

 

해방주일을 맞이하였습니다. 우리나라 대한민국의 일제 식민지 시대, 그리고 해방을 위한 항일투쟁과 관련하여 가장 중요한 인물을 꼽으라면 백범 김구 선생을 떠올릴 사람이 많을 겁니다. 선생의 호 백범은 백정의 백, 범부의 범, 에서 온 이름입니다. 선생의 호가 담고 있는 뜻은 이런 것이라고 합니다. “가장 천한 직업의 백정이나 가장 무식한 범부라도 적어도 나만큼의 애국심을 갖도록 하겠다, 이것을 나의 사명으로 삼겠다. 그래야 우리민족의 완전한 자주독립을 기대할 수 있기 때문이다

 

이런 김구 선생의 유명한 글, 이미 고등학교 교과서에 실릴 만큼 많이 알려진 글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의 소원입니다. 그 시작은 이렇습니다. “네 소원이 무엇이냐 하느님께서 내게 물으시면 나는 서슴지 않고, 내 소원은 대한독립이요 하고 대답할 것이다. 그 다음 소원은 무엇이냐 하면, 나는 또 우리나라의 독립이요 할 것이요, 또 그 다음 소원이 무엇이냐 하는 세 번째 물음에도 나는 더욱 소리를 높여서, 나의 소원은 우리나라 대한의 완전한 자주독립이요 대답할 것이다.”

 

제가 만약 하나님이라면 한 번 물어보았을 것 같습니다. 왜 그렇게 반드시 독립해야 하는가? 그렇게 독립해서 어떤 나라 세우려는가? 김구 선생도 이런 질문을 의식했던 것 같습니다. 선생은 글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남에게 절제(제제)도 아니 받고 남에게 의뢰(의존)도 아니하는 완전한 자주 독립의 나라를 세워야 우리 민족의 생활을 보장할 수 있고 우리 민족의 정신력을 자유로 발휘하여 빛나는 문화를 세울 수가 있기 때문이라고 말합니다.

 

그렇다면 완전한 독립을 얻어 자유로운 정신력을 발휘하여 세우려는 빛나는 문화는 과연 무엇일까요? 선생은 말합니다. “이렇게 완전한 독립의 나라를 세운 뒤에는 우리 민족이 해야 할 일은 이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을 낳는 일이라고 말합니다. 그리고 그렇기 때문에 우리 민족의 독립은 우리 민족만을 위한 일이 아니요. 세계 전체의 운명에 관한 일이요, 그러므로 우리나라의 독립을 위하여 일하는 것이 곧 인류를 위하여 일하는 것이라고 선생은 말합니다.

선생의 글은 독립된 우리나라의 비전을 제시하면서 끝납니다. “내가 원하는 우리 민족의 사업은 결코 세계를 무력으로 정복하거나 경제력으로 지배하는 것이 아니다. 오직 사랑의 문화, 평화의 문화로 우리 스스로 잘살고 인류 전체가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일을 하자는 것이다. 어느 민족도 일찍이 그러한 일을 한 이가 없으니 그것은 공상이라고 하지 마라. 일찍이 아무도 한 자가 없기에 우리가 하자는 것이다. 이 큰 일은 하늘이 우리를 위하여 남겨 놓으신 것임을 깨달을 때에 우리 민족은 비로소 제 길을 찾고 제 일을 알아본 것이다.”

 

선생의 소원은 일제로부터 해방, 대한의 독립이었습니다. 그러나 해방과 독립 그것만이 목적은 아니었습니다. 해방과 독립 이후에 이루고자 하는 일, 반드시 이루어야할 사명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은 지구상의 인류가 진정한 평화와 복락을 누릴 수 있는 사상이라고 했습니다. 이 사상으로 세계가 정복이나 지배가 아닌 사랑과 평화의 문화로 모두 의좋게 즐겁게 살도록 하는 그런 일을 하는 것이 해방과 독립의 목적이라고 했습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은 이사야입니다. 예언자 이사야는 주전 736년부터 701년까지 예루살렘에서 활동한 예언자입니다. 이사야는 북 이스라엘이 앗시리아에게 멸망하는 역사적 장면을 목격한 사람입니다. 그리고 남 유다도 결국 멸망할 것이라고 예언한 사람입니다. 동족의 멸망을 지켜본 사람, 국가의 멸망을 눈앞에 두고 있는 사람이 여전히 민족과 국가의 어떤 비전에 대해서 이야기 한다면 그것은 이전에 망해버린 민족, 이제 망하려는 국가와는 다른 차원의 민족 또는 국가에 대한 이야기일 겁니다.

 

오늘의 구약 본문, 이사야 111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새로운 싹이 나와 가지가 되고 열매를 맺게 될 것이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다윗이 세웠던 왕국과는 다른 차원의 왕국이 다윗의 자손에 의해서 세워질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상 가장 위대한 왕 다윗도 이루지 못한 세상을 다윗 왕조가 망한 뒤 그의 자손이 이룰 것이라는 예언입니다. 기독교에서는 이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라고 해석하였습니다.

 

본문 2절은 새로운 왕국을 세우게 될 그는 어떤 인물일지 설명합니다. 그는 주의 영으로 가득 찬 사람입니다. 주의 영은 지혜와 총명, 모략과 권능, 지식과 주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영입니다. 그리고 주님은 곧 생명이시니 주님을 경외하게 만드는 영이란 생명을 경외하도록 만드는 영이란 뜻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이러한 주의 영을 받은 사람이 그의 지혜와 총명, 모략과 권능 그리고 지식을 어떻게 사용할지는 쉽게 예상할 수 있습니다.

 

그것에 대한 내용이 바로 본문 3,4,5절의 내용입니다. 가난한 사람들을 공의로 재판하고 세상에서 억눌린 사람들을 바르게 논죄하고, 그래서 그의 명령은 잔인한 자들에게는 몽둥이가 될 것이고 사악한 자들에게는 사형선고가 될 것이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본문 6절에서 9절까지는 주의 영으로 가득한 다윗의 자손이 새로이 세우게 될 나라가 어떤 차원의 나라인지 그림처럼 제시되고 있습니다.

 

그 나라는 이런 나라입니다. 이리가 어린 양과 함께 살고 표범이 어린 염소와 함께 누우며 송아지와 새끼 사자와 살진 짐승이 함께 풀을 뜯으며 어린 아이가 그것들을 끌고 다니는, 암소와 곰이 친구가 되고 새끼들이 함께 눕고 사자가 풀을 먹는, 젖먹이가 독사의 구멍에서 장난하고 젖 뗀 아이가 살무사의 굴에 손을 넣는 나라입니다.

 

Gerd Theißen게르트 타이센이란 신학자는 본문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이사야가 희망하는 세상은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지 않는 세상이다.”

 

그러나 현재 가자 지구의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무차별 학살하고 있는 이스라엘은 조상들이 가졌던 아름답고 정의로운 꿈을 잊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들은 그들 자신이 예전에 식민지 국가의 백성으로서, 나라 없는 백성으로서 겪어야만 했던 그 고통을 그대로 팔레스틴 사람들에게 전가하면서도 그들의 고통을 철저히 외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은 그들의 행복을 철저하게 팔레스틴의 희생위에 구축하려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뿐 아니라 우리 사회 역시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 위에 구축하려는 세상입니다. 그리고 그런 경향은 점점 더 강해지는 것만 같습니다.

 

얼마 전, 엄기호씨의 단속사회라는 책을 읽었습니다. 그 책에 보니 흔히 우리나라의 교육이 실패했다고 말하지만 입장을 달리하면 우리의 교육은 실패한 적이 없으며 대단히 성공적이기까지 하다고 했습니다. 어떤 의미에서 그러한가요?

현재 학교에서 가장 크게 문제가 되는 것이 왕따, 학교폭력 문제입니다. 아이들을 저항하지 못합니다.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아무리 친한 친구라도 왕따를 당하는 처지가 되면 그 친구의 편을 들어선 안 됩니다. 친구의 고통에 동참하는 순간 나 역시 왕따를 당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가 왕따를 당하지 않으려면 어제까지 아무리 친한 친구였더라도 오늘은 배신할 수 있어야 합니다. 이처럼 왕따와 학교폭력이 일상적으로 벌어지는 학교환경에서 살아남는 능력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 그리고 자기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는 능력입니다. 이런 학교는 아무짝에도 쓸모없다고 생각하시나요? 그러나 우리가 사는 사회를 생각해 보십시오.

 

자본자는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희생 위에 자신의 경제적 이익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정규직 노동자들은 비정규직 노동자들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들의 고통 위에 자신의 많은 임금과 각종 사회적 혜택을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군대에서 고참들은 자기들의 고통을 신참들에게 전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위에 자기들의 남은 군생활의 편리를 구축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현재 청와대, 국회를 비롯한 우리사회는 294명이 죽고 10명이 실종된 세월호 참사 유가족들의 고통을 외면하기 위해 그리고 그들의 희생 위에 자기들의 정치적 이익을 구축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이런 사회에서 살아남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능력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 자기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능력입니다. 그런 점에서 왕따와 학교폭력이 끊이지 않는 잔인한 학교환경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과 자기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능력을 학습하는, 훌륭한 교육환경이 되는 것이라고 책은 말하고 있었습니다.

 

이 같은 우리의 사회에서 이사야가 예언하고 꿈꾸었던 나라,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지 않는 나라는 동화 같은 꿈, 이상적이기만한 대단히 비현실적인 꿈입니다. 그래서 그 나라는 그저 꿈꾸며 기다릴 수 있을 뿐이라고 생각됩니다.

 

그러나 기독교는 이러한 이사야의 꿈이 예수 그리스도에게서 현실이 되었다고, 이것이 곧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라고 선포하였습니다. 오늘의 세 번째 본문 마가복음 19-13절까지의 말씀은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광야에서 시험을 받으신 장면을 소개하고 있습니다. 시험을 마치신 예수께서 들짐승과 함께 있었다는 이야기는 마가복음에만 나오는 이야기입니다.

 

아마도 마가는 예언자 이사야의 비전을 염두에 두고 있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맹수가 초식동물을 해치지 않는 세상, 게르트 타이센의 말처럼,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지 않는 세상,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이 꿈꾸듯 바라보기만 했던 그 세상이 예수에게서 현실이 되었다는 것을 마가는 이 같은 모습으로 표현한 것 같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메시지를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예수님은 주의 영이 충만한 자로서 많은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러나 그 능력 가운데 자기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오히려 타인의 고통을 자기의 것으로 받아 안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것은 이사야 534-5절에 기록된 대로입니다. “그는 실로 우리가 받아야 할 고통을 대신 받고, 우리가 겪어야 할 슬픔을 대신 겪었다. 그가 찔린 것은 우리의 허물 때문이고, 그가 상처를 받은 것은 우리의 악함 때문이다. 그가 징계를 받음으로써 우리가 평화를 누리고, 그가 매를 맞음으로써 우리의 병이 나았다.

 

또한 예수님에게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는 능력은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보여주신 능력은 오히려 자기의 희생위에 타인의 행복을 구축하는 능력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하여 사도 바울은 오늘의 서신서 본문, 고린도전서 89절에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께서는 부요하나, 여러분을 위해서 가난하게 되셨습니다. 그것은 그의 가난으로 여러분을 부요하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에게 있어서 해방과 독립은 무엇입니까? 그것은 타인의 고통을 외면할 수 있어야 한다, 나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할 수 있어야 한다, 그것이 이 세상을 살아가는 능력이라고 가르치는 이 시대의 사악한 정신적 흐름에서 벗어나는 일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또한 선지자 이사야가 멀리서 바라보았던 하나님 나라의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메시지에서 실현된 모습이며 오늘 우리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되는 모습이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일은 어떻게 가능할 수 있습니까? 그것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가능한 것은 아닐까요?

 

그렇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에게만 가능한 일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우리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메시지를 묵상하고 성찰한다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에게 충만했던 주의 영, 곧 성령을 받게 됩니다. 인간끼리의 교제 속에서도 정신적인 영향력을 주고받는 것을 아실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예수님의 메시지와 삶을 묵상하고 성찰하는 일을 통해 우리는 예수께서 충만하셨던 주의 영, 곧 성령을 우리도 받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육신이 연약하여 우리의 힘만으로 이 시대의 사악한 생각의 흐름을 거스르는 일이 가능한 일이 아니지만 성령을 받는다면 가능할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해방기념주일을 맞아 우리나라, 대한민국을 위해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우리나라가 타인을 고통을 외면해야 살 수 있는 나라, 나의 고통을 타인에게 전가하는 사람이 성공하는 나라에서 해방될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이 자기 조상들이 가지고 있었던 정의롭고 아름다운 꿈, 타인의 희생위에 자기의 행복을 구축하지 않는 세상에 대한 꿈을 기억하여 팔레스틴 사람들과 평화와 공존의 길로 나아갈 수 있기를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또한 우리 사회를 위해서도 기도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름답고 소중한 우정을 쌓아 가야할 학교가, 국민들의 안전을 위해 국방의 의무를 다해야 할 군대가 소수의 행복을 위해 희생되는 사람타인의 고통을 외면하는 능력이나 기르는 추악한 곳이 되지 않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그리고 국민의 행복을 위해 존재해야 하는 청와대와 국회가 국가의 구조를 의지하다가 어이없이 희생당한 자, 그들 가족의 목소리를 충분히 듣고 세월호 참사의 원인을 낱낱이 규명할 수 있는 특별법 제정에 더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기를 함께 기도합시다.

 

기도

주님, 백범 김구 선생이나, 선지자 이사야가 꿈꾸던 세상은 결국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는, 자기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지 않는 세상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이러한 세상을 위한 씨앗이 이미 인간의 역사 속에 뿌려졌음을 믿고 그 나라를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이 되게 해 주십시오. 우리의 허물과 죄를 위해 찔리시고 상하신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제가 타인의 고통에 귀를 기울이고 나의 행복을 타인의 희생위에 구축하지 않기로 다짐하는 성문밖 교우들 한 사람 한 사람의 삶 속에 영원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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