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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몸의 영성 36.5도
롬10:5-13
5  모세는 율법에 근거한 의를 두고 기록하기를 2)"율법을 행한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다" 하였습니다. 6 그러나 믿음에 근거한 의를 두고는, 이렇게 말합니다. 3)"너는 마음 속으로 '누가 하늘에 올라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끌어내리는 것입니다.) 7 또 '누가 지옥에 내려갈 것이냐' 하고 말하지도 말아라. (그것은 그리스도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끌어올리는 것입니다.)" 8 그러면 그것은 무엇을 뜻합니까? 6)"하나님의 말씀은 네게 가까이 있다. 네 입에 있고, 네 마음에 있다" 하는 말씀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전파하는 믿음의 말씀입니다. 9 당신이 만일 예수는 주님이라고 입으로 고백하고, 하나님께서 그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살리신 것을 마음으로 믿으면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10  사람은 마음으로 믿어서 의에 이르고, 입으로 고백해서 구원에 이르게 됩니다. 11 성경은 "그를 믿는 사람은 누구나 부끄러움을 당하지 않을 것이다"하고 말합니다. 12 유대 사람이나, 그리스 사람이나 차별이 없습니다. 그는 모든 사람에게 독같이 주님이 되어 주시고, 그를 부르는 모든 사람에게 풍성한 은혜를 내려주십니다. 13 "주님의 이름을 부르는 사람은 누구든지 구원을 내려주십니다."

법구경 광연품 부분에 나온 이야기 있습니다. ‘기성약’ 이라는 왕이 부처님과 다른 비구들을 초대했습니다. 그런데 반특이라는 한 사람을 빼놓았습니다. 부처님은 모든 비구를 데리고 가서 앉았습니다. 왕은 일어나 청정수를 돌렸는데 부처님은 반특을 빼놓았기 때문에 그것을 받지 않았습니다. 기성은 사람을 보내어 반특을 불렀습니다. 반특이 오자 왕은 그 신통력을 보고 성현을 업신여긴 것을 스스로 뉘우쳤습니다. 그래서 반특을 특별히 공경하고 다른 비구들에게는 예사로 대접하였습니다. 이를 보고 부처님이 한 말씀 했습니다.
  “옛날, 마장이 있었는데 말 천 마리를 몰고 다른 나라로 가서 팔려고 하였다. 도중에 한 말이 새끼를 낳았는데 마장은 그 새끼를 남에게 주고 다른 나라로 가서 그 국왕을 뵈었다. 왕이 말했다. ‘이것은 다 보통 말로서 살 많나 것이 못 된다. 이 중에 말 한 마리가 있는데, 그 슬피 우는 소리를 들으니, 반드시 준구를 낳았을 것이다. 만일 그 망아지를 살 수 있다면 나머지 말을 모두 사겠다.’ 마장은 곧 달려가 말 한 마리를 주고 그 망아지를 사고자 했으나 그가 듣지 않았다. 그래서 말 오백 마리를 주고 겨우 그 망아지를 얻었다.”
  부처님은 이어 말씀하였습니다. “이 마장은 처음에는 그 망아지를 업신여겨 이것을 남에게 주었다가 나중에는 오백 마리 말을 주고 이 망아지를 물러 받았다. 아까는 반특을 박대하다가 지금은 도리어 그만을 존경하여 다른 오백 비구를 업신여기니, 너 또한 저 마장과 같구나.” 하였습니다.

기성약 이라는 왕은 모든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살아야 하는지 잘 모르고 있었던 것입니다. 특출한 한 사람이든 그만그만한 많은 사람이든 차별과 구별이 없이 모두를 귀하게 만나며 살아야한다는 가르침을 주는 이야기입니다.

오늘은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면서 높거나 낮게, 넓거나 좁게 치우치는 신앙의 내용이 있는지 성찰해 보는 시간이 되었으면 합니다.

우리는 2013년 ‘깊은 영성으로 실천하는 희망공동체’로 신앙생활의 내용을 정하여 가고 있습니다. 새 해의 신앙결심들이 더욱 성숙한 내용과 실천을 가지고 있는지 중간점검을 해 볼 때입니다.

그리스도교뿐 아니라 모든 종교에서는 영성을 이야기합니다. 영성이라는 말은 ‘신성한 품성이나 성질’이라는 사전적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인간의 품성이나 성질을 뛰어 넘거나 보다 깊은 영역의 차원으로 영성을 이해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최근 종교영성에서는 ‘생태영성’을 많이 이야기합니다. 생태영성은 인간의 편리함의 추구로 인해 파괴된 생태계에 대해 현재의 인간 사고와 생활양식을 넘어 신성한 생각과 실천으로 살아가야 한다는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리스도교 영성의 가장 기본적이고 핵심적인 것은 하나님의 임재 안에 거하며 예수그리스도의 삶을 따라 실천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자신이 거하는 삶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경험하면서 순간순간의 모든 상황 속에서 예수그리스도의 섬기는 마음과 실천을 고민하고 실천해 나가는 생활을 영성생활이라 합니다.

구약성서의 사람들은 영성의 근거를 율법에서 찾았습니다. 율법은 유대교인들 사회에서 3000년의 오랜 전통을 가지고 있습니다. 말로 전해 내려오던 율법과 글로 기록한 율법의 역사를 통틀어 계산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는 율법의 아버지였습니다. 그들은 모세가 전해 준 율법을 행하는 사람은 그것으로 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율법을 잘 지키면 하늘로도 올라가고 만약 제대로 지키지 못한다면 지옥에 내려갈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유대인들에게 모세의 율법은 모든 영성의 중심이었고 길잡이였습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의 유대인이면서 그리스도인인 중에는 예수그리스도를 율법의 기준으로 받아들이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율법의 전통이 아닌 믿음의 말씀, 곧 예수그리스도를 주로 고백하면 구원을 얻을 것이라는 믿음의 은총을 외면하고 여전히 율법으로 사람들의 존재와 행위를 판가름했습니다.
그러나 로마서를 기록한 저자는 율법의 행위로 천국과 지옥을 이야기하는 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영성에 대해 아무것도 모르는 것이라고 단정합니다. 사실 율법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이 말씀은 사람들의 마음에 묵상되어 지고 말해지며 행하여집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예수그리스도께서 율법을 완성시키신 것을 받아들이고 따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주님으로 고백하고 모든 죄악을 십자가 위에서 없이하시고 하나님께서 죽은 자 가운데서 예수님을 살리신 것을 믿습니다. 이 믿음이 모든 율법을 온전하게 하고 우리를 구원으로 이끌어 줍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마음과 삶을 믿고 따르는 사람은 곧 율법의 완전함에 이르러 있어 율법의 정죄를 받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율법만을 따르던 유대인들은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인간의 몸과 삶을 버렸습니다. 자신이 부모에게 드릴 것을 ‘고르반’ 곧 하나님께 드렸다하여 부모를 공양치 않았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고 말하며 병든 자를 도외시 하였습니다. 세리들과 윤락가의 여인들을 정죄하였습니다. 타 민족과 종교에 철저히 배타적인 신앙과 삶의 태도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들에게는 율법보다 인간은 그리 중요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의 종교와 삶에는 인간이 빠지고 종교적인 의식만 남았습니다. 율법주의에 빠진 신앙인들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의 몸의 온도가 자신들의 몸의 온도 36.5도라는 것을 전혀 알지 못했고 그 보다 훨씬 높게 올라가 있었습니다. 예수를 하늘에 올려놓으려 했고 땅 아래 내려놓으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인간과 율법의 온도차는 있을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모세의 법과 인간의 몸은 예수의 몸처럼 36.5도였습니다. 예수그리스도를 주님으로 믿는 것, 예수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것은 예수의 몸의 온도를 알고 그 몸의 온도를 가진 이들과 더불어 같은 온도를 알아주며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은 체온을 가지고 사셨다는 것은 우리의 모든 삶의 희노애락통을 다 겪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슬프면 눈물을 흘리시고, 사랑하는 이가 세상을 떠날 때면 함께 그리워하고, 불의를 보면 분노하고, 힘에 겨울 때면 기도하고, 즐거우면 노래하며 춤을 추고, 괴로우면 사람을 만나고, 배고프면 먹고, 목마르면 마시고, 그리우면 사랑을 하고, 어린 아이를 보면 귀여워하고, 세상의 생명을 보고 하나님 나라를 꿈꾸며, 우리가 일상에서 겪는 모든 상황과 마음으로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 삶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인류는 자신들의 삶을 더 풍요롭게 하기 위해 종교를 가지고 살아왔습니다. 때론 자신들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상황들에서 전능하신 신이 개입하여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기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러나 신의 직접적인 개입은 없었습니다. 그 모든 기도는 인간의 몸을 통해 이루어졌습니다.

로마병정들에게 잡혀 십자가에 못 박혀 죽어가는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이시면서도 하나님의 능력이나 개입을 기도하며 현실을 피하려 하지 않았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의 개입은 결코 그렇게 일어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순간순간을 36.5도 사셨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인간은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으로 지음을 받았습니다. 예수를 주님으로 믿고 그를 살리신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에게는 성령의 임재가 있습니다. 요한복음에서는 예수를 믿는 자들에게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다고 선포합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어떤 것으로 쓰러지거나 넘어질 그런 존재들이 아닙니다. 예수와 같은 십자가와 같은 모든 상황이 쓰나미처럼 덮쳐 오더라도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은 변함이 없습니다. 그렇다고 우리의 몸의 온도가 변하는 건 아닙니다. 우리는 36.5도로 이 순간에도 하나님의 영원한 품으로 돌아간다 하여도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죽는 순간에 육체의 온도는 식어질지 모르지만 생명이신 하나님의 품에서는 변함이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자녀로 선포하면서 36.5도의 몸으로 오늘을 살아갑니다. 우리는 많은 재산을 위해 더 좋은 직장과 집을 위해, 건강한 몸을 위해 기도한다고 해서 하나님의 직접적인 개입이 있을 것이라 믿지 않습니다. 다만 기도는 우리가 오늘의 순간을 더 힘 있게 살아내기 위해 필요한 것입니다. 모든 역사를 섭리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같은 하늘과 땅에 살아가며 같은 몸의 온도를 가지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예수께서 나를 이해하시고 사랑하시는 것처럼 이해하고 사랑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이것이 예수께서 가지신 36.5도의 영성입니다. 남녀노소, 빈부귀천을 구분하지 말아야 합니다. 모든 사람이 같은 온도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고 동일한 마음과 만남으로 함께 해야 합니다.

세상이 사람을 차별하면 그 세상은 병든 것입니다. 내 마음에 누군가를 분리한다면 내 마음은 아픈 것입니다. 모든 사람은 나와 같이 자유와 평등을 누리고 사랑받고 섬김 받을 권리가 있고 그러한 존재입니다. 예수께서 그렇게 우리를 대하셨으니 우리 또한 예수님의 뒤를 따라 가는 것이 당연합니다.

코끼리의 평균 온도는 36도입니다. 말은 37.6도입니다. 닭은 41.7도입니다. 우리는 인간뿐 아니라 생태계의 온도, 지구의 온도도 알아야하고 그에 맞게 우리의 삶을 변화시켜야 합니다. 현재 지구는 0.7도 높은 열을 내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구의 온도를 생각할 때 여름철 전기사용부터 모든 삶의 변화를 요구받고 있습니다.

인간과 자연, 하나님께서는 서로서로에게 맞는 몸의 온도를 알아 가장 최선으로 만나고 함께 할 것을 바라십니다. 하루하루 순간순간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자녀이면서 몸의 온도를 맞추어 살아가는 충만한 영성의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언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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