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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고백
마태복음 16:13-20
13 예수께서 빌립보의 가이사랴 지방에 이르러서, 제자들에게 물으셨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14 제자들이 대답하였다. “세례자 요한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엘리야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고, 예레미야나 예언자들 가운데에 한 분이라고 하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15 예수께서 그들에게 물으셨다. “그러면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16 시몬 베드로가 대답하였다. “선생님은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17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 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20 그 때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엄명하시기를, 자기가 그리스도라는 것을 아무에게도 말하지 말라고 하셨다. 

 요즘 한국사회를 뜨겁게 하는 이슈들이 있습니다. 먼저는 국정원 선거개입입니다. 이 사건은 국기 문란 죄에 들어갑니다. 어떠한 이유를 불문하고 책임자들에 대한 엄중한 책임을 물어 바로 세워야 합니다. 이 사건에 누구에게든지 정치적인 판단이나 합의는 있을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한 국가의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주어진 권리를 큰 권력으로 왜곡하고 자신의 영달을 위해 이용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또 한 가지 이슈는 얼마 전 용산에서 있었던 19세의 남자청년이 10대 청소년을 성폭행하고 목졸라 살해 한 뒤 공업용 커터칼로 시신을 훼손 한 살인사건입니다.더 끔찍한 것은 이 남자청년은 자신이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 전혀 감각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심리학자들은 이 피의자는 사이코패스를 넘어 소시오패스라고 말합니다. 사이코패스는 타인과 전혀 공감하지 못하고 타인에게 해를 가하는 것을 말합니다. 사이코패스는 자신의 감정을 제대로 감추거나 억제하지 못하고 나타납니다. 반면 소시오패스는 자기 자신을 잘 알고 있으면서 감정조절도 뛰어나서 필요에 따라 자신의 얼굴을 바꿀 수 있는 사람입니다. 그리고 인생의 성공을 위해서 자신의 본성은 보이지 않고 사람들을 이용합니다. 이번 용산 살인자는 소시오패스로 우리 사회의 경쟁과 승리를 절대적으로 추구 하는 사회시스템이 빚어낸 사건이라고 전문가들은 말합니다. 피해자의 가족이 받을 상처가 또 얼마나 클지 안타깝기만 합니다. 
권력과 부,명예를 쫓는 우리의 현실이 너무나 두렵고 떨리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권력과 부를 따라 사는 삶은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쫓는 행위이며 인간의 선한 본질을 잃어버리고 인간이 역사 속에 행해 온 모든 악을 따라가는 발판이 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도 오늘날과 다를 바 없었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은 당시 헤롯왕이 지은 이름입니다. 가이사랴는 로마 황제를 지칭하는 말입니다. 그래서 가이사랴라고 이름 붙인 것은 헤롯 왕이 로마황제의 권력에 아부하기 위해 지은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또한 가이사랴 빌립보는 당대에 두 번째로 큰 수원지였습니다. 물이 귀한 중동지역에 풍요로운 물은 번영과 풍요를 가져다 주었습니다. 물이 풍부하다 보니 사람들이 모이고 다양한 문화가 집결되었습니다. 그리고 다양한 신들의 성전이 세워졌습니다. 그 중 판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판 신은 그리스 신화에서 유래한 신입니다. 판은 얼굴은 인간 형상인데 뿔이 달려 있고, 꼬리도 달려있고 온 몸에는 털까지 돋아 있는 신입니다. 판은 들판의 신이자 양치기들의 신입니다. 고대 그리스의 양치기들은 암양이나 암염소가 세끼를 제대로 낳지 못하면 목양신인 판의 동상을 나뭇가지로 때리면서 세끼를 많이 낳게 해 달라고 기도하였습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판 신뿐 아니라 모든 신을 섬기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결국 그들의 신은 권력과 부, 명예, 복수를 담보해 주는 신들에 불과했습니다.

  가이사랴라는 말과 그들의 종교문화를 살펴볼 때 가이사랴 빌립보 지방은 부와 권력을 쫓아 살아 가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어떤 사회든지 권력과 부, 성공을 추구하면 모든 교육뿐 아니라 모든 삶의 분야에서 경쟁을 우선시합니다. 이는 힘 있고 많이 가진 사람들의 폭력이 정당화되는 사회를 만들어내고 경쟁에서 이긴 자들에 대한 칭송을 멈추지 않는 문화를 만들어 냅니다. 

 이러한 믿음과 신앙을 추구하는 종교는 자신들의 삶을 초월적이고 신비적인 힘으로 바꾸어 보고 싶은 강한 열망과 욕망이 숨어 있습니다. 정치, 종교, 경제, 삶의 자리들에서 욕망의 끝을 향해 달리는 가이사랴 빌립보 지역에 들어간 예수께서는 제자들에게 묻습니다. 

“사람들이 인자를 누구라고 하느냐?” 제자들은 “네 어떤 사람들은 세례 요한이라고 하고, 또 어떤 사람들은 엘리야, 혹은 예레미야나 예언자 중의 한 사람이라고 합니다.” 

 예수의 모습을 보았던 사람들은 그에게서 세례 요한의 모습, 엘리야, 예레미야와 다른 자신들이 알고 존경하는 예언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세례요한은 권력에 아부하지 않고 살았습니다. 헤롯왕과 권력자들의 부정과 부패에 ‘도끼가 나무에 놓였으니 돌이키지 않으면 찍어 불어 던져 넣으리라’고 외쳤습니다. 엘리야는 전능하다 싶을 정도의 능력을 가지고 민족의 개혁을 향해 살았던 선지자였습니다. 예레미야는 강대국의 틈 속에 전쟁의 위협으로 고난을 받아야 하는 민족을 향해 눈물을 흘리며 하나님의 약속된 땅을 바라보는 선지자, 민족의 회복을 꿈꾸는 선지자였습니다.

 사람들은 예수의 모습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예언자들의 모습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예수가 그들 중 한 분으로 오시었고 자신들에게 개혁과 비전, 회복을 주실 것이라 기대했습니다. 여기까지는 좋습니다. 예수의 모습 속에서 예언자들의 모습을 본 많은 사람들은 가이사랴 빌립보 사람들과 같이 권력과 부를 향한  숨겨진 욕망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당시 많은 사람들이 나와서 자신은 그리스도라고 외쳤습니다. 사도행전에는 드다라는 사람이 그리스도라고 칭하며 많은 사람들을 선동하여 로마정부에 대항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그리스도라고 외치던 사람들, 그들을 따랐던 사람들은 로마의 권력과 풍요를 뛰어 넘는 더 큰 권력과 부를 향한 욕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 또한 예수께서 언젠가 가장 높은 자리에 앉고 자신들은 그 보좌관들로 한 자리 차지할 줄 알았습니다. 그래서 만나기만 하면 누가 큰 사람인지 다투기 일쑤였습니다.

  아무튼 사람들이 많은 선지자 중의 한 사람으로 말한다는 제자들의 대답을 들은 예수께서 그들에게 다시 묻습니다. ‘그러면 너희들은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 대답이 쉽지 않은 질문입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세례요한처럼 정치종교지도자들, 권력자들을 향해서 독사의 자식들이라며 거침없는 질타의 말씀을 하시고, 물위를 걷고 물고기 두 마리와 떡 다섯 개로 오천명을 먹이는 엘리야와 같은 능력을 보았고, 예레미야처럼 예루살렘과 민중들을 보며 눈물을 흘리시는 것을 보았습니다. 제자들은 여느 다른 사람들처럼 예수님을 예언자 중의 한 명으로 생각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가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이십니다’라고 대답을 합니다. 우리는 베드로의 고백을 너무 많이 들어왔기 때문에 그리 감흥이 없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대답에 굉장히 흥분한 목소리로 말씀하십니다.

“시몬 바요나야, 너는 복이 있다. 너에게 이것을 알려 주신 분은, 사람이 아니라,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시다.”

베드로는 예수와 함께 동거동락했습니다. 어느 사람과 다름없이 생활하던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인정한 베드로의 고백은 예수께서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말과 같은 위대한 외침입니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로 외치신 것은 엘리야, 예레미야, 세례 요한과 어떤 예언자에게서도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예수님의 선포와 베드로의 고백은 모든 철학과 종교, 문화, 정치, 역사를 넘어 가장 근원적이고 위대한 인간존재의 외침입니다.

이를 다른 말로 하면 ‘임마누엘’ 곧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다’입니다. 베드로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와 함께 동거동락하며 임마누엘을 자신의 삶으로 만났고 함께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의 삶으로 오신 것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의 고백이며 실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과 함께 하며 온 몸으로 하나님의 사랑의 현현을 경험한 것입니다. 그러기에 예수님께서 ‘너희는 나를 누구라고 하느냐?’라고 물으실 때 망설임 없이 ‘선생님은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곧 ‘임마누엘’이라고 말 할 수 있었습니다.

  이러한 고백을 동학의 시천주사상에서 찾아 볼 수 있습니다. 동학인들은 하늘님이 인간 안에 거하신다고 믿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혼란한 조선말 상황에서 소외되기 쉬운 아이들과 여인들, 가난하고 병든 사람들을 존중했습니다. 인간 안에 하늘님이 거하신다는 믿음은 아무렇게나 생기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하늘과 땅에 대한 깊은 영적인 감성이 있어야 알 수 있고 느끼고 고백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가끔 동학의 시천주사상을 생각하면 ‘임마누엘’의 신앙이 만나 가슴이 뛰곤 합니다.

  가이사랴 빌립보의 수많은 신전들 사이에서 베드로의 고백은 나사렛 촌 동네로 오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들으시기에 너무나 가슴 벅차고 흥분된 고백이었습니다. 그 흥분을 이어서 예수께서 말씀하십니다.

“18 나도 너에게 말한다. 너는 베드로다. 나는 이 반석 위에다가 내 교회를 세우겠다. 죽음의 문들이 그것을 이기지 못할 것이다. 19 내가 너에게 하늘나라의 열쇠를 주겠다. 네가 무엇이든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이요. 땅에서 풀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이다.”

권력과 부, 명예를 얻기 위해 하나님을 따르는 걸음은 죽음의 문을 열고 들어가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가장 낮은 사람들 곁으로 오셨습니다. 그리고 인간을 향해 용서와 평화, 사랑과 정의가 무엇인지 보여주셨고 선물해 주셨습니다. 원망하고 없이하고 싶은 원수를 향해 어떻게 해야 하는지를 십자가에서 보여주셨습니다. 끝없는 인류애가 하나님의 뜻이고 구원의 길이라고 가르치셨고 그 길을 가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의 고백 위에 자신의 교회를 세우셨습니다. 세상의 어떠한 죽음의 세력들도 예수께서 세우신 교회를 무너뜨리지 못할 것입니다. 혹여 교회가 아무리 부패하여 간다하여도 예수를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로 고백하는 사람들 위에 자신의 교회를 다시 세우실 것입니다.

교회로 부름을 받은 땅에 사는 그리스도인들, 오늘 현실을 살아가는 그리스도인들은 정의와 평화를 말하며 땅 위의 모든 정의롭지 못하고 평화롭지 못한 모든 권력과 경제, 문화와 교육을 잡아매야 합니다. 우리가 땅에서 매면 하늘에서도 매일 것입니다.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의 용서와 사랑으로 땅 위에의 모든 매이고 막힌 인간관계, 국제관계의 끈들을 풀어내야 합니다. 오늘 순간을 풀어내면 하늘에서도 풀릴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며 우리 안에 함께 하십니다. ‘임마누엘’ 그 사랑과 은혜를 베푸시는 삶의 능력을 온 몸으로 경험해 보십시오. 그리고 베드로처럼 예수의 가슴을 뛰게 하는 고백을 하십시오. 벅찬 가슴으로 네 안에 내가 있고 내 안에 네가 있다며 기뻐하시는 예수님의 고백을 들을 수 있을 것이고 삶의 새 힘을 얻을 것입니다.

권력과 부를 쫓아 경쟁하는 서울 한 복판 이 땅 위의 모든 삶의 얽힌 매듭을 풀어내고 하늘이 땅이 되고 땅이 하늘이 되는 귀한 순간들을 살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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