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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인공을 바꿔라
막2:23-28
23 안식일에 예수께서 밀밭 사이로 지나가시게 되었다. 제자들이 길을 내면서, 밀 이삭을 자르기 시작하였다. 24 바리새파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25 예수께서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안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ex) 백설공주 이야기는 많은 사람들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백설공주 이야기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장면은 어떤 것입니까? 아마 왕비가 거울 앞에서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가장 예쁘지?”라며 묻는 장면은 누구나 기억하고 있을 것입니다. 왕비의 물음에 거울은 항상 “백설공주입니다.”라고 말합니다. 왕비는 백설공주가 일곱 살 되었을 때 사냥꾼을 시켜 백성공주을 숲으로 데려가 죽이라고 했습니다. 사냥꾼은 백설공주의 애원을 듣고 차마 죽일 수 없어 다른 짐승의 심장을 왕비에게 가져다 줍니다. 왕비는 사냥꾼이 가져온 심장을 요리해서 먹어버립니다. 도망친 백설공주는 숲 속 깊은 곳에서 일곱난장이와 함께 살게 되었습니다. 왕비는 백설공주가 살아 있다는 거울의 말을 듣고 백성공주를 죽이기 위해 산 속의 오두막을 세 번이나 찾아갑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왕비가 마지막으로 독이 든 사과를 백설공주에게 먹였습니다. 그리고 공주가 죽은 줄 알고 왕궁으로 돌아와 거울에게 다시 한 번 묻는 장면이 나옵니다. 왕비는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 물으면 “이 세상에서 당신이 제일 예쁘십니다.”라는 거울의 말을 기대 했습니다. 그러나 이번에도 역시 “당신도 아름다우시지만 백성공주님이 가장 아름다우십니다.”라고 말하는 것을 듣고 왕비는 거울 앞에서 울부짓었습니다. “아니야, 거짓말이야! 그럴 리가 없어. 백성공주는 내 손으로 죽였어. 벌써 네 번째야, 이번에는 독이 든 사과를 먹고 죽었어. 이젠 절대로 살아날 수 없어. 백성공주가 죽었는데도 왜 여전히 백성공주가 제일 아름답다는 거지? 그리고 왜 백성공주는 매번 살아날 수 있는 거지?”

그러자 거울이 대답합니다.

“아름다운 백설공주를 만드는 것은 바로 왕비님의 질투와 열등감입니다. 왕비님 자신이 늙고 추하다는 열등감을 가지고 있는 한 왕비님의 마음은 백설공주를 계속 만들어 낼 것입니다. 왕비님이 마음을 바꾸지 않는 한 백성공주는 절대 죽지 않습니다.”

화가 난 왕비는 독이 든 사과를 먹었지만 다시 살아나 왕자와 결혼하려는 백설공주를 찾아가 죽이려 했습니다. 하지만 왕비는 병사들에게 잡혀 불에 달궈진 신발을 신고 죽을 때까지 뛰어다니게 되었다는 결말로 백설공주 이야기를 끝이 납니다.

  『이야기 테라피』라는 책을 쓴 이시스라는 상담심리학자는 왕비의 비극은 잘못 된 질문에서 시작되었다고 봅니다. ‘거울아 거울아 이 세상에서 누가 제일 예쁘지?’라는 질문은 왕비의 마음속에 질투와 열등감만을 만들어 낼 뿐이라는 것입니다. 질투는 어떠한 일을 할 때 강한 에너지를 발생시킬 수 있지만, 질투하는 사람의 내면을 황폐하고 거칠게 만들어 ‘나는 누구보다 못났어.’라는 결론을 내리게 됩니다. 또한 자신이 성장할 수 있는 마음의 모든 가능성을 제거하고 스스로 고통 속으로 추락하게 만들뿐입니다. 잘못된 질문과 오해는 자신뿐 아니라 다른 누군가에 대한 정죄와 멸시를 만들기도 한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에서도 바리새인들의 올바르지 못한 질문이 삶을 왜곡하고 파괴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유대인들은 오랜 역사를 이어온 선조들의 종교전통을 따라 살면서 전통과 관습을 제정하였습니다. 특히 안식일에 대한 규범은 어떠한 종교전통보다 예민하게 받아들였고 계승하였습니다. 그러다 보니 안식일에 일하지 말라는 가르침에 허황된 주인공을 세워놓게 되었습니다. 유대전통에는 안식일에는 모든 일손을 멈추어야 했습니다. 자신은 물론이고 일군이나 짐승까지도 일을 시키면 안 됩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에게 있어 안식일은 오로지 하나님만을 예배하여야 하는 날로 자신들의 죽음을 내놓는 일이 있다하더라도 지켜져야 했습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파 사람들은 철저한 교리주의에 빠져있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한 그들에게 예수님의 제자들이 들판을 지나면서 배가 고프다고 밀 이삭을 잘라 먹는 것은 받아들일 수 없는 죄악 된 일이었습니다. 그들은 바로 예수님께 항의합니다. “보십시오. 어찌하여 이 사람들은 안식일에 해서는 안 되는 일을 합니까?” 이 말은 안식일의 주인공은 하나님이신데 어찌 인간이 주인공이 되려 합니까?라고 묻는 것입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자신들이 따르는 종교전통의 규범들은 하나님을 주인공으로 세우고 자신들은 조연들로 그 임무에 충실하다고 믿었습니다. 모든 종교에서 중심이 되어야 하는 것은 하나님이지 인간이 될 수 없다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질문 속엔 “안식일의 주인인 하나님을 섬기는 방법엔 무엇이 있지?”라는 왜곡된 의미가 숨어 있습니다. 거울은 “안식일을 잘 지키려면 모든 전통과 규범을 철저하게 따라야 합니다”라고 말합니다.

안식일의 주인공이 누구인지 알지 못하고 모호해 질 때 인간의 몸과 삶은 온데 간데 사라집니다. 인간은 스스로 전통과 규범을 자신의 주인으로 섬겨 그 안에 갇혀 헤어 나오지 못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에겐 심판과 죄의식만이 남아 있게 됩니다. 안식일의 주인공을 전통과 규범으로 바꾸어버린 바리새파 사람들은 배가 고파 밀 이삭을 잘라 먹은 예수의 제자들을 비난하고 정죄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25 “다윗과 그 일행이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릴 때에, 다윗이 어떻게 하였는지를 너희는 읽지 못하였느냐? 26 아비아달 대제사장 때에, 다윗이 하나님의 집에 들어가서, 제사장들 밖에는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 빵을 먹고, 그 일행에게도 주지 않았느냐?”

  바리새파 사람들이 가장 존경하고 바라는 다윗 왕이 하나님의 성전에서 제사장들 외에 먹어서는 안 되는 제단의 빵을 자신과 일행들이 함께 나누어 먹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임재를 상징하는 성전 안에서 다윗의 행동은 결코 잘못된 것이 아닌 정당한 일이라고 확언 하셨습니다. 이러한 예수님의 말씀에 바리새파 사람들도 이의를 제기하지 못했습니다.

굉장히 종교적인 바리새파 사람들은 제단에 드려진 떡은 오로지 제사장만이 먹을 수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장 굶주려 죽을 지경이 된 다윗과 그 일행들은 중요치 않다고 말하지 못했습니다. 왜냐하면 다윗 왕은 그들에게 있어 비난할 수 없는 성인과 같은 역사의 주인공이기 때문입니다. 예수께서는 다윗과 그 일행이 배가 고파 제사장만 먹을 수 있는 떡을 먹었던 이야기로 삶의 주인공이 누구인지에 대한 잘못된 바리새인들의 생각에 일침을 놓으셨습니다.

27 그리고 예수께서는 그들에게 말씀하셨다. “안식일이 사람을 위하여 생긴 것이지, 사람이 안식일을 위하여 생긴 것이 아니다. 28 그러므로 인자는 또한 안식일에도 주인이다.”

안식일의 주인이 사람이라는 말씀은 모든 사람 각자의 삶의 자리에서 그 자신이 주인공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말합니다. 구약시대에는 일주일 중 한 날을 안식일로 정하여 그 날 최선을 다해 그 의미를 살리려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에는 구약시대의 안식일 규정을 따를 필요는 사라졌습니다. 왜냐하면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인자는 또한 인실일에도 주인이다.”라고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이는 안식일이든 다른 날이든 모든 날의 주인은 사람의 아들 곧 예수 자신이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모든 날의 주인이라는 말씀은 온 천하보다 귀한 한 사람 한 사람의 존재와 삶이 주인공이 된다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역으로 모든 사람들을 자신의 존재와 동일한 존재로 확정하셨습니다. 종교전통으로 살던 바리새파 사람들은 인생의 주인이 자신들의 전통에 있고 사람들은 그 전통을 잘 따라야 한다고 생각했지만 예수께서는 무엇보다 사람이 중심임을 보여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안식일에 구덩이에 양이나 소가 빠지면 구해 내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씀하시며 모든 생명자체는 문화와 종교, 정치와 법을 우선한다고 선포하셨습니다.

오늘의 세상은 경쟁을 강조하고 경쟁에서 승리한 한 사람을 세상의 주인공으로 세우고 모든 사람에게 그와 같이 되라고 몰아 부칩니다.

백설공주 이야기에서 왕비는 끝까지 올바른 질문을 하지 못하고 오직 주인공인 백설공주를 죽여야 자신이 주인공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왕비는 스스로 세상의 주인공이 되려는 욕망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입니다.

  왕비의 문제는 거울의 말을 철저하게 믿었던 것에 있습니다. 실제적으로 거울은 자기 마음대로 말할 뿐 거울이 말하는 것이 진리는 아닙니다. 사람들은 살면서 세상이라는 거울 앞에서 왕비와 같은 올바르지 않은 질문을 자주 하곤 합니다. “명문대에 들어가야 큰 회사에 들어가 남들에게 인정받겠지?” “비주얼이 뛰어나야 알아주니 성형수술을 좀 해야 하겠지?” “명품 가방을 들어야 사람들에게 멸시 받지 않고 부러움을 사겠지?” “남자친구가 연봉이 그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는 집의 크기는 저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 사람들은 날마다 주변 사람들을 시선과 생각을 의식하면서 그 허망한 거울에 자신을 내 맡기고 있습니다.

경쟁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세상이 만든 거울을 보면서 세상 사람들은 언젠가 나를 인정하고 높이는 날이 올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거울이 자신을 주인공으로 말해 줄 것을 기대하고 자신의 마음에서 끝없는 허영심을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세상은 경쟁에서 살아남는 자가 백설공주라고 말합니다. 곧 자신을 주인공으로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못하고 더 뛰어나고 똑똑하며 돈 많은 사람들을 주인공으로 세워놓고 자신을 조연으로 밀어내고 있습니다.  -『이야기 테라피』01 참고

이 세상의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은 조연이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날 모든 순간 모든 공간에서 각자가 주인공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 하신 달란트비유가 있습니다. 주인이 먼 나라로 여행을 하면서 종들을 불러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 마지막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고 자신이 다시 돌아올 때 그것을 정산하겠다고 하였습니다.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최선을 다해 갑절로 남겼습니다. 그러나 한 달란트 받은 이는 받은 한 달란트를 땅 속에 묻어 놓고 아무 것도 하지 않았습니다. 주인이 돌아 왔을 때 다섯 달란트와 두 달란트 받은 종들은 남긴 달란트로 인해 주인에게 칭찬을 받고 잔치에 참여하지만 한 달란트 받은 종은 심한 꾸지람을 듣게 됩니다. 이 비유에서 한 가지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자신의 상황과 재능을 다른 누군가와 비교하여 열등감이나 패배감에 싸여 아무것도 하지 않는 이에 대한 교훈입니다. 한 달란트 받은 종은 다른 종들보다 달란트를 적게 받은 자신을 조연쯤으로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주인이 요구하는 것은 달란트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네가 살면서 어떠한 삶을 살았느냐입니다. 예수께서 이 비유에서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자신을 주인공으로 인식하고 자신의 삶을 주체적으로 살아가기를 원하신다는 것입니다.

이집트에 한 신화가 있습니다. 사람이 죽어서 내세에 갔을 때 저승사자가 두 가지 질문을 하고 그 대답에 따라 죽은 자를 천국 혹은 지옥으로 보낸다고 합니다. 첫 번째 질문은 “살아 있는 동안 너는 스스로 행복했는가?”이고 두 번째 질문은 “살아있는 동안 다른 사람을 행복하게 했는가?”입니다.
이 질문은 우리의 삶에 좋은 질문이 됩니다. “너는 네 삶에서 주인공으로 살고 있느냐?”하고 스스로 질문해야 합니다. 그리고 “너는 네 삶에서 다른 사람을 주인공으로 여기고 살고 있느냐?”라고 함께 질문해야합니다. 이러한 질문은 예수께서 우리에게 가르치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명령과 부탁에 우리 자신을 이끌어 줄 것입니다.

하늘은 높고 만물이 익어가는 가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삶 속에서 자신을 주인공으로 여기고 주체적인 삶을 살아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만나는 모든 사람들을 자신과 동일한 주인공으로 대하시면서 더 높여주고 섬기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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