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음을 멈추고 빛을 향해서
막10:46-52
46 그들은 여리고에 갔다. 예수께서 제자들과 큰 무리와 함께 여리고를 떠나실 때에, 디매오의 아들 바디매오라는 눈먼 거지가 길 가에 앉아 있다가 47 나사렛 사람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을 듣고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하고 외치며 말하기 시작하였다. 48 그래서 많은 사람이 조용히 하라고 그를 꾸짖었으나, 그는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49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시고, 그를 불러오라고 말씀하셨다. 그리하여 그들은 그 눈먼 사람을 불러서 그에게 말하였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50 그는 자기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서 예수께로 왔다. 51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 그 눈먼 사람이 예수께 말하였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니코스 카잔차키스가 쓴 『그리스인 조르바』에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주인공 조르바가 어린시절 그의 삼촌이 길가에 버려진 늙은 노새 한 마리를 집으로 데려왔습니다. 삼촌은 아침이면 노새를 풀이 많은 들판으로 데려다가 먹이고 저녁이면 마구간에 넣었습니다. 한동안 정성껏 돌보니 다 늙어 버려진 노새는 살이 오르고 어느 정도 튼튼해 보였습니다. 어느 날 마을의 한 사람이 삼촌에게 물었습니다. “이보게 하랄람보스! 아 그 늙은 걸 어디에다 쓰려고 그러나?” 삼촌은 그 사람에게 말하기를 “이건 내 똥 공장이라네. 거름 만들 똥 공장” 이라고 했습니다.
다 늙어 버려진 노새가 자신의 1년 농사에 필요한 거름을 만들 공장이라고 여기는 마음이 참 소중하게 느껴집니다. 아무리 보잘 것 없는 짐승이라도 이 땅에 태어나 살아간다면 그 자체로 존귀한 존재이며 누군가에게 유익함을 준다는 이야기입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시작되었다고 믿으며 그 안에 하나님의 숨결이 들어 있다는 것을 볼 수 있다면 하나님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생명의 신비함을 알 수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의 세상에서 이미 버려지고 잊혀진 한 눈 먼 사람의 상황과 마음을 따라 가면서 이 시대에 그와 같은 상황에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가져야할 믿음과 우리의 삶의 방향을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 예수와 제자들이 여리고에 들렀다가 다시 길을 떠날 때 많은 사람들이 함께 따라가고 있었습니다. 그 때 앞을 보지 못하는 디매오의 아들 바디메오가 길가에 앉아 있다가 나사렛 예수가 지나간다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우리가 여기서 눈여겨 볼 마을들이 있습니다. 여리고와 나사렛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에서 여리고는 저주 받은 곳입니다. 구약시대 여호수아가 출애굽 한 노예들을 이끌고 가나안 땅에 정착할 때 처음 만나 전쟁을 치룬 지역이 여리고입니다. 그 때 여리고의 성벽을 모두 무너뜨렸는데 그 성읍을 다시 세우는 사람은 저주가 있을 것이라고까지 했습니다. 우리는 여리고가 함성으로만 순식간에 무너졌다고 생각하지만 이스라엘 역사에서는 그 만큼 기억하고 싶지 않았던 상처가 있는 곳이라는 것을 짐작해 볼 수 있습니다. 또한 당시 여리고는 헤롯대왕이 궁궐을 지어 살았고 귀족들의 휴양지 지역으로 사용하였던 곳이었기 때문에 일종의 정치․경제적인 폭력과 차별, 양극화의 상징으로도 여겨졌습니다.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여리고는 무너져야 하는 곳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당시 나사렛 지역은 멸시의 대상이었습니다. 그곳에서는 예언자를 포함해 어떠한 지도자도 나올 수 없는 촌 동네라는 생각이 지배적이었습니다. 유대 종교․정치지도자들은 나사렛 출신인 예수와 그의 제자들을 상대하는 것 자체를 자존심 상한 일로 여겼습니다. 나사렛은 이스라엘 사회에서 중심이 아닌 변두리와 같은 대우를 받았던 곳으로 결코 희망이나 가능성을 찾을 수 없는 곳이었습니다.
여리고와 나사렛이란 동네의 특성을 생각하며 본문을 곰곰이 한 번 보아야 합니다. 눈이 멀어 어떠한 노동도 할 수 없어 구걸을 하며 여리고에서 살고 있는 바디매오가 나사렛 사람 예수를 부릅니다. 우리는 여기서 여리고의 눈 먼 사람 바디매오가 가장 절망스럽고 가능성이 없는 자리에서 가장 위대하고 희망적인 고백과 외침을 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다윗의 자손 예수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47).
바디매오는 눈멀어 구걸하며 살고 있는 자신의 처지를 알아주고 그 자리에서 회복시키고 구원해 줄 수 있는 메시야를 기다렸습니다. 제국의 침탈과 악독한 지도자들의 폭력의 역사 속에서 병들고 가난한 하나님의 백성들이 바랄 것은 다윗의 자손으로 오실 메시야뿐이었습니다. 그들이 메시야를 기다리는 것은 메시야가 오시면 자신들의 정치적이고 역사적인 상황뿐 아니라 개인들의 빈곤함을 풍요로움으로 완전하게 변화 시키실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민중들에게 다윗의 자손으로 오는 메시야는 역사의 해방자 그 자체인 것입니다.
바디매오도 마찬가지입니다. 자신의 처절한 현실에서 바랄 것은 메시아로 오신 예수와의 만남과 그의 능력으로 가능한 자신이 처한 상황의 변화입니다. 그런 그의 귀에 들려오는 건 나사렛 예수가 지나가신다는 말이었습니다. 그는 망설임 없이 예수를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주위 사람들은 바디매오의 외치는 소리를 좋아하지 않았습니다. 예수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정치, 경제에서 주류에 들지 못한 사람들이 대부분이었습니다. 그들이 볼 때 눈멀어 구걸하던 바디매오는 더 이상 희망이라곤 찾을래야 찾을 수 없는 현실 같아 보였을 것입니다. 그랬기에 자신들도 메시야를 기다렸지만 더 취착하고 낮은 자리의 바디매오의 외침은 무시해도 좋을 듯 보였던 것입니다.
우리의 삶에도 이런 경우가 많습니다. 자신의 상황이 가장 어렵게 느껴져 더 낮은 곳의 사람들의 처지를 외면하고 그들의 신음소리를 나무랄 때가 있습니다. 우리의 정치, 경제 상황이 어렵다고 기아나 질병, 전쟁, 학살로 고통 받는 민족이나 나라들의 신음소리에 둔감해 질 때가 있습니다. 원전사고가 난 체르노빌과 후쿠시마의 사람들, 전쟁과 갈등이 끊이지 않는 중동과 팔레스타인 사람들, 학살당하는 밀림의 원주민들, 사회적 차별을 당하는 성소수자들, 생활 빚으로 금융의 노예가 되어버린 사람들, 비정규직의 노동자들, 해고노동자들... 오늘 날에도 수많은 곳에서 여리고의 눈멀어 구걸하며 사는 바디매오와 같은 외침이 있습니다. 슬프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그 낮은 곳의 외침들은 쉽게 외면되어 집니다.
바디매오는 주변의 외면과 비난에 좌절하거나 포기하지 않고 더욱더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다윗의 자손님, 나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기적을 향한 바디매오의 외침은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지나 예수님께 닿았습니다. 바디매오의 외침을 듣고 길을 가던 예수께서 걸음을 멈추고 바디매오를 불러 오라고 하셨습니다.
있는 힘껏 외치던 바디매오를 꾸짖던 사람들이 그의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귀 기울이시며 그를 불러 오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바디매오에게 말합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일순간 변화된 사람들의 마음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의 변화는 어디에서 시작되었습니까? 바디매오의 외침을 듣고 가던 길을 멈춘 예수님의 모습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제자들과 함께 밤낮으로 이스라엘의 동네를 돌며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셨습니다. 피곤하고 바쁜 일정 속에 있었지만 가장 낮고 천하게 여김을 받는 자리에서 들려오는 소리에 가던 걸음을 멈추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눈멀어 구걸하며 사는 바디매오의 외침을 듣고 걸음을 멈추었을 때 바디매오의 외침과 절규를 함께 듣던 사람들은 측은지심을 일으켰고 희망을 향해 손을 내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은 바디매오에게 다시 한 번 그 자리에서 용기를 내어 얼어나 보라고 마음을 다해 권했습니다. “용기를 내어 일어나시오. 예수께서 당신을 부르시오.” 사람들은 문제의 해결자이시고 해방자이시며 온 세상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가던 길을 멈추고 바디매오를 부르고 있는 모습을 보고 자신들의 눈을 떴습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의 가던 길에 바빠 보지 못했던 바디매오를 예수를 통해 비로소 보게 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바디매오와 같은 상황에 있는 사람들은 친구들과 이웃들의 응원이 필요합니다. 먼저 우리는 여리고의 눈멀어 구걸하며 사는 바디매오와 같은 가장 처절한 상황에서 외치는 사람들의 소리에 민감해 져야 합니다. 그들의 상황과 신음소리가 들리면 예수님처럼 우리의 가던 길을 멈추어야 합니다. 그리고 그 소리에 귀 기울이고 그들에게 다가가야 합니다. 우리는 각자 자신의 삶을 가지고 최선을 다해 예수님과 동행하며 살아가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동행한다는 것은 그분의 삶에 우리의 삶을 맞추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걸어가신 길을 우리가 걷고 예수님의 걸음이 멈추는 곳에 우리의 걸음이 멈추어야 합니다.
예수님의 걸음이 바디매오의 외침이 있는 길가에 멈추었을 때 변화는 시작되었습니다. 주변 사람들의 마음이 측은지심으로 변하여 바디매오의 상황에 함께 동화되었고 그의 응원자가 되었습니다. 그리고 바디매오는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지고, 벌떡 일어나 예수께 나오게 되었습니다. 구걸하는 사람에게 겉옷은 가진 것의 전부입니다. 바디매오가 자신의 겉옷을 벗어 던졌다는 것은 자신의 상황에서 뛰쳐나왔다는 것입니다. 눈이 멀어 아무것도 볼 수 없었던 바디매오는 예수님의 초대와 주변 사람들의 응원에 변화와 치유의 빛을 향해 자신의 상황과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예수께로 갈 수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앞으로 뛰쳐나온 바디매오에게 "내가 너에게 무엇을 하여 주기를 바라느냐?"(51)고 물으셨습니다. 그 눈먼 사람 바디매오는 예수께 말하였습니다. "선생님, 내가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는 세상의 모든 생명체에게 자신의 생명을 풍성하게 살아가라고 하셨습니다. 그 누구도 자신의 이 권리를 억압받거나 차별받지 않게 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세상 무엇도 침범할 수 없는 진리입니다. 바디매오는 눈이 멀어 노동도 할 수 없고, 사람들과 제대로 된 관계도 맺을 수 없는 자신의 처절한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누리게 하신 삶의 풍성함을 찾고 싶었고 보고 싶었습니다. 그러한 자신의 권리를 가로막고 있는 현실은 보이지 않는 눈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께 다시 볼 수 있게 하여 주기를 간절하게 원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서는 바디매오의 마음과 결단에 응답하셨습니다.
52 예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다. "가거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다." 그러자 그 눈먼 사람은 곧 다시 보게 되었다. 그리고 그는 예수가 가시는 길을 따라 나섰다.
예수께서는 눈이 멀어 자신의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실패하였지만 다시금 볼 수 있으리라는 희망과 믿음을 가진 바디매오를 빛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디매오의 믿음은 눈먼 자신을 빛이신 예수로 향하게 했고 다시 볼 수 있는 변화와 치유를 갖게 했습니다.
오늘 우리의 주변에는 빛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터널 한 가운데에 있는 것과 같은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때론 우리 자신이 그 가운데 있기도 합니다. 그러할 때 좌절하지 말고 빛을 향해 걸어가야 한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1972년 10월 17일에 발생한 유신독재가 40년이 되었습니다. 폭력적인 역사의 페이지가 끝난 것처럼 보이지만 아직 그 잔재와 어둠은 남아 있는 것을 봅니다. 자신의 권력과 부를 위해 누군가의 심장에 상처를 주는 일들이 우리의 내면에 있지는 않는지, 그리고 우리 사회에 어떠한 형태로 그 어둠들이 존재하는지 세심하게 살펴야 하고 그 모든 것이 빛을 향해서 걸어가도록 해야 합니다.
우리의 인생길을 걷는데 어둠 속에서 외치는 소리가 나거든 가 던 길을 멈추십시오. 그리고 그들을 부르고 그들에게 용기를 주십시오. 함께 걷던 사람들의 마음은 측은지심으로 변할 것이고 서로 응원하며 용기를 줄 것입니다. 그리고 그 신음하며 외치던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빛을 향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를 따라 다시금 하나님 나라를 향해 함께 걷게 될 것입니다.
정치․경제․문화... 사회 곳곳에서 나는 억울하고 소외된 소리가 나는 사람들 곁에 자신의 걸음을 멈추시기 바랍니다. 어린아이의 칭얼대는 소리에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환한 빛이 나는 친절하고 미소가 있는 얼굴과 손길로 다가가시기 바랍니다. 세상의 모든 어둠들 곁에 우리의 걸음이 멈춘다면 그 모든 어둠은 빛을 향해 뛰쳐나올 것이고 온 세상의 생명들은 하나님 나라의 사라지지 않고 변하지 않는 사랑과 정의의 빛을 보며 기쁨으로 가득하게 될 것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