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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하시는 일을 믿어라
요10:37-42
37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39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ex) 석가모니가 설법을 전하고 있는 시대에 ‘살차니건’이라는 바라문이 있었습니다. 그는 총명하고 지혜가 있어 나라의 제일이라 불렸습니다. 그는 총명과 지혜가 나라의 제일이었습니다. 오백의 제자를 거느리고 있어 스스로 뽐내어 천하를 돌아보지 않고, 항상 철판으로 배를 감고 있었습니다. 사람들이 그 이유를 물으면 지혜가 넘쳐나올까 걱정해서라고 말했습니다. 어느 날 살차니건은 부처님이 세상에 나와 널리 교화를 편다는 말을 듣고, 질투를 느껴 늘 마음이 편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하루는 깊고 어려운 일을 물어 부처님을 비판하고자 제자들을 거느리고 기원으로 갔습니다. 그가 멀리 문밖에서 부처님을 보자 그 위상이 아침 해가 솟는 것 같은 것아 기쁘고 두려운 마음으로 곧 부처님 앞에 나아가 물었습니다.
“어떤 것이 도며, 지혜며, 장로며, 어떤 것을 도가 있다 화며, 단정이라 하며, 어떤 것이 사문이며, 비구며, 인명이며, 봉계인가? 만일 이것을 분명히 해답하면 제자가 되겠노라.”
부처님은 게송으로써 대답했고, 살차니건과 오백 제자는 모두 알아듣고, 기쁜 마음으로 교만을 버리고 사문이 되었습니다. 살차니건은 보리심을 일으키고 제자들은 다 아라한 도를 얻었습니다. -법구비유경, 주법품

고대 인도의 가장 높은 계급에 있었던 살차니건이 묻고 깨달음을 얻은 석가모니의 가르침이 궁금해집니다. 부처님이 살차니건에게 설법했던 게송부분 중 눈에 띄는 가르침이 있습니다. “항상 사랑으로 남을 이끌고 마음을 바루어 법다이 행동하며, 정의를 지키고 지혜로운 사람, 이를 ‘도에 사는 사람’이라 부른다.” 위대한 인도문화 속에서 단연 뛰어난 인물은 석가모니라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의 가르침과 예수님의 가르침을 공부하면 만나는 부분이 많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랑으로 남을 대하고 마음을 바르게 하여 법을 어기지 않는 행동을 하며, 정의를 지키고 지혜롭게 행동하는 사람에 대한 가르침은 언제까지나 변하지 않는 종교진리에 속할 것입니다. 이러한 종교진리를 선포하는데 늘 반대하고 믿지 못하는 사람들이 있었다는 건 무언가 잘못된 우리 인간사회의 모습을 생각해 보게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자신을 믿지 못하는 사람들에게 말합니다. “내가 내 아버지의 일을 하지 아니하거든, 나를 믿지 말아라.(37절)”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일은 도대체 무엇인지 궁금합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이 하나님의 일이라고 하면 교회당에 나와서 청소하고, 성경공부하고, 가르치고, 예배하고, 전도하는 일로만 생각할 때가 많습니다. 자신들의 대부분의 삶은 하나님의 일과 멀리 떨어져 있다고 여기고 교회당에 나와 기도할 때면 세상일만 하다 나온 자신들이라면 가슴을 치고 회개하는 모습을 쉽게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얼마 전 서울의 한 교회에서 전도지를 만들었는데, 그 문구들이 교회에 나오면 남녀소개팅 시켜 주는 내용들로 이루어져 문제가 되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수님이 불쌍하다하고, 성을 종교적 상품으로 내어 놓는 것 아니냐라는 우려를 나타냈습니다. 이 전도지가 문제가 되자 해당 교회에서는 자신들의 의도와는 다르게 진행된 일에 대해 홈피에 해명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영등포역에 나가면 매 주 빠지지 않고 노래를 부르며 전도를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그날 마무리는 어김없이 한 사람이 큰 북을 치며 영등포역 주변 거리를 한 바퀴 도는 것으로 끝이 납니다. 그 분 뒤에는 손 마이크를 사용해 예수 믿고 천국가라고 끊임없이 외치며 따릅니다. 전도가 끝나고 나면 노숙인들에게 저녁을 주곤 하는데 시간은 저녁 아홉시가 넘어서입니다. 그 광경을 보고 있노라면 누구를 위한 전도며 누구를 위한 식사제공인지 궁금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의 일이라고 믿고 수고를 하지만 배타적인 신앙을 전달하기 위한 수단으로 밥이 이용되는 것 같아 씁쓸할 때가 있습니다. 그래도 노숙하시는 분들을 보면 안 주는 것보다는 낫다는 생각은 여전합니다.

하나님의 일은 우주의 생명체 수만큼 다양합니다. 그런데 마치 특정한 몇 가지 일들에만 국한 되는 것처럼 말 하는 것은 곤란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일에 대해 말씀하십니다.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예수께서 하신 일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말로 다 표현 할 수 없는 것처럼 예수의 모든 삶을 이해하기 힘들 것입니다. 하지만 예수께서 하신 일 중 크게 세 가지를 생각해 보았습니다.

첫째, 예수께서는 자신을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유대인들에게 자주 하셨던 말씀은 ‘나는 하나님의 자녀이다.’라는 것입니다. 이 말은 유대인들의 사고에서는 ‘나는 하나님과 하나다.’와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이 듣기에 거북스러움을 넘어 살인충동까지 일으키는 충격적인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과 똑 같은 한 청년이 조상대대로 목숨 걸고 믿어 온 하나님과 동일시하는 예수의 도전적인 막말을 용서할 수 없어 매 번 죽이려고 혈안이 되었었습니다.

오늘날 한국 사회의 노동운동, 평화운동, 환경운동 등 시민운동사회에서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가 하늘이다.’ ‘당신이 하늘입니다.’라는 말입니다. 자본의 하수인들이 큰 힘을 가지고 민중들의 몸과 삶을 철저하게 파괴하는 요즘 가장 적당한 구호가 아닐 수 없다는 생각을 해 봅니다.

자본과 제국의 권력의 끝이 어디인지, 그 끝에서는 어떤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예상하지 못합니다. 분명한 것은 지금 이 순간 자본과 제국의 폭력으로 사람과 생태계의 신음소리가 곳곳에서 흘러나오고 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호흡과 함께 시작된 우주의 모든 만물이 우리의 편리함과 탐욕으로 인하여 고통 받고 있다는 것을 생각하면 변화된 삶을 추구하지 않을 수 없을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노동자들과 생명체들이 자신들의 존재를 외치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아프다고 말하며 자신들의 권리와 인권을 요구하는 이들의 존재의 뿌리는 하나님입니다. 하나님께 존재와 권리를 받은 하나님의 자녀로서 당연한 외침이고 요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정의와 사랑, 평화, 생명을 외치는 소리가 되어야 하고, 함께 연대하고 응원해야 합니다.
  
둘째, 예수께서는 차별하지 않고 모든 사람을 동등한 인격의 소유자로 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여자와 아이를 재산의 일부로 전락시켜버린 극심한 가부장사회에서 모든 사람을 평등한 존재로 선포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남녀노소, 빈부격차를 구분하지 않고 차별 없이 섬기시고 사랑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예수께서 만져주시기를 바라고 나오는 어머니와 아이들을 가까이 오지 못하도록 막았지만,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가 어린아이들의 것이라며 어린아이를 한 인간이 가진 인격의 존재를 온전하게 인정하셨습니다.

초대교회가 시작되고 교회 안에 빈부격차를 비교해 대우하는 문제가 불거진 일이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 야고보는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들을 인정하시고 그 나라를 주셨는데, “너희는 도리어 가난한 자를 업신여겼도다. 부자는 너희를 억압하며 법정으로 끌고 가지 아니하느냐?(약 2:6) 며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사람을 사람으로 보지 않고 돈으로 판단하고 업신여겼던 것입니다.

오늘 날에도 이러한 차별은 쉽게 볼 수 있습니다. 양극화가 극심히 지고 있는 오늘날 불평등한 차별은 빈부격차에서만이 아니고 노동현장에서도 뿌리 깊게 자리하고 있습니다.
교회 내에서 가장 쉽게 일어날 수 있는 차별은 돈이 있고 없고를 따져 대우한다는 것입니다. 특히 목회자 사이에서 이러한 차별현상이 강하게 나타납니다. 담임목사들 중 재력이 있는 교인에게는 심방을 가고, 가난한 교인들에게는 부목사를 보내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불행하고 안타까운 일이지만 목회현장에서 쉽게 찾아 볼 수 있는 일들입니다.
노동현장에서는 말할 것도 없이 비정규직을 떠올릴 수 있습니다.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비정규직 문제는 사람을 차별하는 데서 오는 악한 것입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 같은 노동을 시키면서 더 낮은 임금을 주는 것은 권력을 거머쥔 사람들이 다른 사람의 인격에 폭력을 가하는 것과 같습니다. 노동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입니다. 이러한 복을 모든 사람이 동일하게 누릴 수 있도록 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입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을 자신의 몸과 같은 존귀한 몸으로 만나고 함께 해 주셨습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자신의 몸과 같이 모든 몸을 동일하게 만나고 함께 해야 합니다. 내 몸이 하는 노동과 사랑이 귀하듯 다른 몸의 노동과 사랑이 귀하다는 것을 인정해야 하고 우리 삶에서 차별이 없이 몸과 몸이 만나도록 힘써야 합니다.

셋째, 예수께서는 모든 사람, 모든 생명을 사랑하는 일로 하나님의 존재를 드러내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자신의 아버지로 선포하시고 자신의 일을 보고 하나님께서 자신과 함께 있다는 것을 믿으라고 하셨습니다.
  
38 그러나 내가 그 일을 하고 있으면, 나를 믿지는 아니할지라도, 그 일은 믿어라. 그리하면 너희는,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시고, 또 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달아 알게 될 것이다.

우리 안에 사랑을 믿으십시오. 사랑을 믿는 것이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사랑은 정의이고 정의는 평화입니다. 사랑과 정의와 평화를 믿으십시오. 하나님을 믿는 것입니다. 생명을 믿으십시오. 하나님은 살아있는 모든 생명을 생명으로 존재하게 하시는 생명 그 자체이십니다.

하나님의 하시는 일은 지금 우리의 마음과 삶에, 이 사회와 국가, 온 우주에 충만하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사랑이 곧 하나님의 일이며 하나님의 존재를 거부할 수 없는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죽음을 앞두고 흔들리는 제자들을 향해 다시 한 번 강조하셨습니다.

[요 14:11] 내가 아버지 안에 거하고 아버지께서 내 안에 계심을 믿으라. 그렇지 못하겠거든 행하는 그 일로 말미암아 나를 믿으라.

지금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현존과 그 하시는 일이 무엇인지 깨달아 질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 안에 계셨던 하나님께서 내 안에, 네 안에 함께 하신다는 것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도 자신의 일을 쉬지 않으십니다.

[요 5:17] 예수께서 그들에게 이르시되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하시매

예수께서는 사랑하기를 쉬지 않으시는 하나님을 사랑했고, 자신과 사람들 사랑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몸이 죽기까지 사랑하셨고,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아들을 죽이기까지 사랑하셨습니다. 이 사랑은 의인을 위해 희생하는 사랑을 넘어 죄인을 향한 사랑입니다. 자신을 상처주고 죽이는 사람까지 사랑하는 변함없고 쉬지 않는 사랑입니다.

본문의 39절을 보면 “(그러므로) 그들이 다시 예수를 잡으려고 하였으나, 예수께서는 그들의 손을 벗어나서 피하셨다.” 고 하였습니다. 오늘도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군사기지를 반대하는데 감옥에 가고, 인권을 이야기하는데 고문을 합니다. 죽이지 말라고 외치는데 결박합니다. 화해를 이야기하는데 배신자라고 비난합니다.

우리는 우리 스스로 하나님의 자녀라고 선포합니다. 위대한 선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우리가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믿지 못합니다. 누가 알아주지 않는다고 실망하거나 사랑하기를 포기하지 마십시오. 우리가 가지고 행하는 사랑, 곧 정의, 평화, 생명의 일은 하나님의 일입니다. 그 일들이 우리의 내면과 삶에 있다면 족합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의 그 일을 보고 하나님을 인정하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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