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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나라를 누리라
눅17:20-21
20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으니, 예수께서 그들에게 대답 하셨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는다. 21 또 ‘보아라, 내가 여기에 있다’ 또는 ‘저기에 있다’하고 말할 수도 없다. 보아라,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가운데에있다.” Once, having been asked by the Pharisees when the kingdom of God would come, Jesus replied, "The kingdom of God does not come with your careful observation, nor will people say, 'Here it is,' or 'There it is,' because the kingdom of God is within you."

한 제자가 스승에게 물었습니다. “깨달음에 이르는 길에 최대의 장애가 되는 것은 무엇인지요?” 스승이 대답했습니다. “두려움이다.” “그렇다면 그 두려움은 어디서 오나요?” “망상에서다.” “망상이란 무엇입니까?” 스승이 설명했습니다. “예를 들어, 주면에 피어 있는 꽃을 독사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제자가 다시 물었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개달음에 이를 수 있습니까?” “ 두 눈을 똑바로 뜨고 응시해야 한다.” “무엇을 응시하라 하십니까?” 제자의 물음에 스승은 이런 말로 대화를 끝마쳤습니다. “주변에는 독사는커녕 물뱀 한 마리도 없다는 사실을 말이다.”

세상을 있는 모습 그대로 보지 못하고 사는 사람은 깨달음을 얻을 수 없다는 교훈입니다. 우리 인간의 역사를 살펴보면 꽃을 꽃이라 보지 못하는 어리석음을 저질러 왔다는 것을 부인 할 수 없습니다.

어느 순간부터 인간은 자신들을 우주적 생명공동체에서 분리시켜 자신들이 우월하다고 생각하면서 우주적 생명공동체의 한 일원으로 살아가는데 중요한 것을 보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은 영장류로 모든 지구 생명체의 주인은 당연한 것이고 타 생명체를 마음대로 먹고, 쓰고, 버려도 된다고 여겼습니다. 이 시대 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욕망과 자본을 따라 사는 자신이 무엇을 보고 사는지도 깨닫지 못합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인간이 보지 못하고 사는 것이 무엇인지 무엇을 보며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해 보겠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예수께 바리새파 사람들이 하나님 나라가 언제 오느냐고 물었습니다. 바리새파 사람들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신앙이 각별해 보이는 사람들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나라가 로마제국이 외부에서 침입해 들어 왔던 것처럼 홀연히 찾아와 자신들이 그 나라의 신민이 될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천군들이 하늘에서 지상으로 내려와 자신들을 억압하는 모든 삶의 질고를 끊어줄 것이라 믿었습니다. 제국의 폭력과 내부의 정치, 경제, 종교의 폭력을 견디면서 그들은 자연스럽게 하나님 나라가 빨리 왔으면 하고 기다렸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나라가 저 하늘에서 비행접시처럼 내려와 모세 때와 같은 기적과 이적으로  자신들을 구원해 줄 것을 기대 했습니다.

그러나 바리새파 사람들은 예수께 하나님의 나라는 저 멀리 하늘에서 다가오는 것이 결코 아니라는 대답을 듣습니다. 곧 하나님 나라는 눈으로 볼 수 있는 모습으로 오지 않고, 너희들 가운데에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보아라 여기에 있다’ ‘저기에 있다’라고 말할 수 없는 것이라 말씀하시며 바리새인들의 욕망에 찬물을 부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바리새파 사람들의 욕망을 정확하게 꼬집어 말씀신겁니다.

  바리새인들이 눈으로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것에는 두 가지 어두운 욕망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바리새인들은 세상 사람들과 세상 나라에서 주인이 되고 싶고 왕이 되고 싶은 욕망의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기대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가 눈으로 볼 수 있게 임하면 하나님은 통치자가 되고 자신들은 분봉 왕이 되어 모든 세계를 다스릴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가 도래하면 자신들은 세상에서 부와 권력을 가진 큰 권세가가 될 것이라 믿었습니다.

마치 예수님의 열두제자들이 세상을 제대로 보지 못하고 누가 가장 큰 사람이고 뛰어난 사람인가를 끊임없이 논하고 다투었던 것처럼 말입니다. 예수님의 제자 중 세베대의 두 아들 요한과 야고보는 자신의 어머니를 모시고 와 예수께서 왕좌에 오르시거든 하나는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앉혀 주십사하고 간청을 드리도록 했습니다. 예수께서 통치하는 하나님 나라에서 자신들도 한 자리 차지하고 부귀영화를 누려볼 생각을 하였던 것입니다. 그들 또한 예수께 ‘그 자리는 누구를 위하든지 하나님 뜻대로 될 것’이라는 냉담한 대답만을 들었을 뿐입니다.

바리새인과 제자들은 하나님 나라가 로마제국과 같은 나라와 같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눈에 보이는 힘의 통치와 힘의 평화 그리고 그 위에 자신들의 권력을 갖고 싶어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그러한 하나님 나라는 결코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예수께서 볼 수 있고 누릴 수 있는 하나님 나라는 어떤 나라입니까?

C. S. 루이스의 원작으로 한 영화 ‘나니아 연대기, 새벽호의 출정’에 사자로 나오는 나니아 왕국의 에슬론 왕의 마지막 부분 대사가 있습니다. 에슬론은 주인공들과 함께 자신의 나라를 사이에 둔 바닷가에서 말합니다. “최후에 들어갈 왕국은 겸손한 자들을 위해 존재 한다” 인간이 가장 가고 싶은 왕국, 곧 하나님 나라는 겸손한 사람들이 경험 할 수 있는 나라라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과 제자들은 겸손히 누군가를 섬기는 마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이미 자신들의 마음에 존재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를 보지 못했습니다. 자신들은 오로지 세상의 주인이 되고 왕이 되어 누리고 싶었습니다. 바리새인들처럼 더 큰 권력과 힘, 더 많은 자본을 가지려는 마음의 소유자는 하나님 나라가 이미 자신들의 마음에서부터 존재하고 있다는 것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바래새인들이 욕망을 가지고 바라며 누리고 싶어 한 하나님 나라는 오늘날 한국교회의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바라고 누리고 싶어 하는 하나님 나라와 비슷합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의 부와 권력을 하나님께서 주셨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이는 자신들이 가져 누리고 있는 부와 권력이 현세에서 내세까지 영원히 지켜지고 이어지고 더 많아지기를 기도하며 내심 바라고 있습니다.

  환상 속에 천국을 다녀왔다며 집회 강사로 활동하는 이들은 하나님 나라는 황금길과 고급 맨션으로 되어 있다고 쉽게도 말합니다. 좋은 의미로 말할지 몰라도 그 안에는 위험한 욕망이 꿈틀거리고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초가집이고 오솔길이라면 어떻습니까? 물론 내세의 하나님 나라가 그 만큼 좋다는 말을 하고 싶어서겠지만, 왠지 이 땅에서 가진 부와 권력을 영원히 이어가고 싶어 하는 욕망처럼 보입니다. 이미 그 도를 넘어 선 교회들이 많습니다.

지금도 더 크고자 하고 높고자 하며, 더 많이 가지고자 하는 욕망으로 하나님 나라를 바라고 사는 사람에게는 결코 하나님 나라가 보이지도 않고 느껴지지도 않을 것입니다. 오늘 한국 교회는 하나님 나라는 가장 낮은 마음, 가장 낮은 자리에 있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섬김을 받기 보다는 먼저 섬기고, 순종을 요구하기보다 먼저 순종하는 모습을 가져야 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기보다 상대를 높여주는 마음과 실천이 있는 곳이 하나님 나라가 존재하는 곳입니다. 자신의 부와 권력을 내려놓을 줄 아는 이들이 하나님 나라를 볼 것 이고 누릴 것입니다.

둘째로는 눈에 보이는 하나님 나라를 묻는 바리새인의 질문에는 자신과 타인들을 분리 하는 배타적인 마음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오늘날 유대인들의 선조격인 바리새파 유대인들은 특별한 選民意識이 강했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도 아브라함의 자손이라 자부하는 사마리아 사람들을 혼혈 민족으로 몰아붙이며 편견과 독선으로 대 했습니다. 그들은 사마리아 사람들의 동네에도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유대인 외의 민족들을 스스로 거부하고 멸시했습니다. 그들은 철저하게 자신들이 세상의 모든 민족보다 우월하다고 여겼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방인이라 낙인찍고는 함께 밥도 먹지 않았습니다.

사도들이 사역을 시작할 때 베드로의 모습을 살펴보면 그 배타성이 얼마나 강했는지 알 수 있습니다. 초대교회가 태동할 때 많은 비유대사람들이 교회를 형성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교회 안에서 유대인들의 불만이 커졌습니다. 유대인들이 아닌 사람들과 밥을 함께 먹어야 되는지도 제대로 가름하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어느 날 유대인이 교인들과 식사를 하다가 유대인들이 온다는 말을 듣고는 자리를 슬그머니 일어나 피하였던 것입니다. 그는 유대인들의 배타성에 자신이 홀대를 당할까봐 생명의 밥상 공동체를 거부하는 위선적인 모습을 보였습니다. 성경은 베드로의 위선적이고 배타적인 행동을 두고 바울이 베드로를 심하게 비판했다고 전해 줍니다.

자신들을 우월하게 생각하고 다른 생명들을 열등하다고 여기는 마음은 하나님과 인간, 인간과 인간, 인간과 자연, 하나님과 자연을 분리시켰습니다. 그들은 분리하는 것에서 머무르지 않고 차등을 두고 편견을 갖고 배타성을 가졌습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그러한 모습을 정당화 하면서 아무런 회개와 변화의 모습도 갖지 못했습니다. 이러한 모습은 많은 독재자들의 모습을 떠오르게 합니다.

  2월 12일 이집트의 대통령 호스니 무바라크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로 30년 독재에서 물러났고, 지금은 42년 동안 리비아에서 독재정치를 해온 카다피가 국민들의 민주화 요구를 받고 있습니다. 카다피가 연설하는 모습을 한 미디어를 통해 듣게 되었는데, 그는 “내 아버지와 할아버지의 조국을 결코 떠나지 않겠다. 시위대와 싸우다 내 조상의 땅에서 순교자로 죽겠다” 라고 말하며 자신의 지지자들에게 싸울 것을 주문했습니다. 그의 말이 섬뜩하게 다가왔습니다. 마지막 한발의 총알이 다할 때까지 싸우겠다는 카다피의 말에는 국민들의 생명은 안중에도 없었습니다. 그는 이미 2000명이 넘는 국민들을 학살했습니다. 국민을 국민으로 인정하지 않고 적으로 간주하는 그러한 모습은 참으로 두려운 통치자의 모습입니다.

카다피의 연설을 들으면서 그의 오만과 폭력이 자본을 쫓아 살며 수많은 소와 돼지, 염소와 사슴, 오리와 닭, 4대강 강가의 생명들을 무참하게 학살하고 있는 우리의 모습과 참 많이도 닮았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우리뿐만 아닙니다. 지구공동체 안에서 인간이 다른 생명지체들에게 저질러온 폭력은 말로 할 수 없습니다. 오늘도 사람들은 자신이 세상의 주인이며 개발자이고, 먹이사슬의 가장 꼭대기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공평한 하나님의 나라의 생명공동체 세상을 있는 그대로 보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리고는 욕심과 탐욕의 마음이 가는 대로 따라 살며 땅과 물과 하늘을 짓밟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자신 안에 존재한다는 것을 경험하고 살기 위해서 가져야 할 첫 번째 마음이 겸손이라면 두 번째 마음이 무엇입니까? 우주의 생명과 나의 생명을 분리하지 않고 사랑하는 것입니다.

인간은 하나님께서 충만히 거하시는 우주적 생명공동체의 한 지체로 살아갑니다. 아마 우주가 인간에게 편견을 가졌다면 우리 인간의 모습은 방안에 떨어진 과자 부스러기를 찾아다니는 개미와 같이 보고 있을지 모릅니다. 다행인 것은 하나님께서 충만하게 거하시는 우주는 편견이 없다는 겁니다. 그래서 모든 우주의 생명체 하나하나는 자신이 주체가 되어 하나님과 같은 존귀함을 제각기 가지고 있습니다. 또한 어느 누구 그 무엇도 우주의 한 생명을 열등하게 분리할 수 없으며, 그 생명체는 함부로 살생하지 못하는 권리를 가지고 있습니다.

지난 수요일 5개 종교와 동물사랑실천협회의 주관으로 ‘구제역 살처분 방식의 개선 촉구 기자회견’을 서울 경운동의 수운회관에서 가졌습니다. 동물사랑실천협회에서 생매장되는 돼지들을 찍은 동영상을 상영하였습니다. 천 마리가 넘는 돼지들을 한 구덩이에 산채로 내 몰려 밑에 깔린 돼지들은 압사 당하고 위로 차오르는 돼지들은 수직으로 세워져 머리만을 올린 채 울어댔습니다. 그 고통의 소리들은 밤이 새도록 들려왔다고 합니다. 영상을 보며 돼지들은 우리 인간과 동일한 고통을 받는 존재라는 것을 느꼈습니다.

우리 안에 하나님 나라가 존재한다는 것은 무엇을 말합니까? 자신의 생명과 타 생명체가 동일한 고통을 느끼는 존재라는 것을 인정하며 그들과 함께 사랑의 공동체를 만들어 가는 마음과 삶을 말합니다.

자신을 사랑하듯 가족과 이웃을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내 곁을 기어 다니고 뛰어다니며 날아다니는 생명체를 사랑하십시오. 오늘 함께 모여 예배하는 성문밖공동체를 사랑하십시오. 아기들, 아이들, 청소년들, 청년들, 한 지체 한 지체의 모습과 그 삶을 사랑하십시오. 가식과 욕심 없이 바라보시고 만나십시오. 노동의 현장에서 땀 흘리며 애쓰는 이들, 평화를 위해 울부짖는 이들에게 겸손하게 그리고 사랑으로 충만하여 손을 내밀고 그들과 함께 땀 흘리며 눈물을 흘리십시오.

하나님의 나라가 여러분 안에 있다는 것을 충만하게 경험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사랑 안에서 하나님 나라를 충만히 누리며 살아가는 한 주간이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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