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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시선! 회복과 은혜
창6:1-8
1 사람이 땅 위에 번성하기 시작할 때에 그들에게서 딸들이 나니 2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이 좋아하는 모든 여자를 아내로 삼는지라 3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나의 영이 영원히 사람과 함께 하지 아니하리니 이는 그들이 육신이 됨이라 그러나 그들의 날은 백이십 년이 되리라 하시니라 4 당시에 땅에는 네피림이 있었고 그 후에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에게로 들어와 자식을 낳았으니 그들은 용사라 고대에 명성이 있는 사람들이었더라 5 여호와께서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6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7 이르시되 내가 창조한 사람을 내가 지면에서 쓸어버리되 사람으로부터 가축과 기는 것과 공중의 새까지 그리하리니 이는 내가 그것들을 지었음을 한탄함이니라 하시니라 8 그러나 노아는 여호와께 은혜를 입었더라

인터넷에 '군대 다녀온 사람이 보면 눈물 나는 이야기'라는 제목이 눈에 들어와  호기심에 마우스를 클릭해 보았습니다.

어느 부대에 한 이등병이 있었습니다. 그 이등병은 추운 겨울날 밖에서 언 손을 녹여 가며 찬물로 빨래를 하고 있었습니다. 마침 그 곳을 지나던 소대장이 그것을 보고 안쓰러워 한마디를 건넸습니다. "이병,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하지." 그 이등병은 소대장의 말을 듣고 취사장에 뜨거운 물을 얻으러 갔지만, 군기가 빠졌다는 야단만 듣고 정작 뜨거운 물은 얻지 못했습니다. 다시 빨래를 하고 있는 이병 옆을 이번에는 중대장이 지나가다 보았습니다. "이병, 동상 걸리겠다. 저기 취사장에 가서 뜨거운 물 좀 얻어다가 물 좀 얻어다가 하지." 이병은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했지만, 취사장에 가지 않았습니다. 가 봤자 뜨거운 물은 고사하고 혼만 날것이 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계속 빨래를 하고 있는데, 이번에는 행정보급관이 그의 곁을 지나가며 보게 되었습니다. "이병, 취사장에 가서 더운 물 좀 받아 와라. 나 세수 좀 하게." 그 이등병은 취사장에 뛰어가서 보고를 하고, 즉시 더운 물을 받아 왔습니다. 그제야 그 행정보급관이 말했습니다. "그 물로 빨래해라, 양은 많지 않겠지만 손이라도 녹일 수 있을거야."

인격과 따뜻한 인간애보다는 명령과 복종만 존재하는 한국 군대에서 찬물로 빨래하는 최하위 이병을 보고 더운물로 하라며 마음써준 소대장과 중대장을 만나면 참 따뜻한 추억하나 가질 것입니다. 더군다나 행정보급관처럼 세심하게 부하를 챙겨주는 인정 많은 상관을 만나면 군대에 대한 추억은 그리 나쁘지 않게 남을지 모릅니다. 왜 인터넷에 글을 올린 이가 제목을 '군대 다녀온 사람이면 눈물 나는 이야기'로 했는지 이해가 갑니다. 한국 군대에서 눈물 나도록 인간적인 뜨뜻함을 경험하기가 쉽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아마 세상에서 가장 잔인하고 억압적인 폭력을 내제한 시선이 있는 곳이 있다면 군대 아닐까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군대는 전쟁을 전제하고 존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전쟁은 아군과 적군이라는 이분법적인 시선을 가지고 적군이라 규정된 모든 사람의 생명과 삶을 송두리째 빼앗고 파괴합니다.

모든 인간성을 파괴하고 잔인성과 폭력성의 시선을 거침없이 드러내는 현장이 전쟁의 한 복판입니다. 인간의 역사 속에 존재하게 된 군대는 정치와 경제를 움켜쥔 권력자들이 만들고 유지합니다. 21세기 민주주의를 이야기하는 오늘도 마찬가지입니다. 국민의 손으로 선출한 정부는 고대의 왕들처럼 전쟁을 준비하고 실행합니다. 문화는 그에 동조하여 전쟁영웅을 만들어 내고 사람들에게 전쟁의 잔인성을 감추고 거짓 영광을 생산해 내곤합니다. 용산에 있는 전쟁기념관 기념가게에 들어가 보면, 군복을 입고 총을 들고 있는 인형이 험상궂은 영화 속 람보나 코만도가 아닙니다. 가게 앞 진열대 창문 너머에는 귀엽게 생긴 어린아이 인형들이 방탄복을 입고 살인 무기를 들고 웃으며 어린 소비자를 기다리고 있습니다.  

평화의 왕 아기 예수를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 한국정부를 포함해 세계 강대국들의 전쟁무기 수출입 경쟁 소식을 듣고 있으면 오늘 본문처럼 죄악으로 가득 찬 노아시대를 생각하게 됩니다. 그리고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따라가게 됩니다.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오늘의 우리 정치 사회와 여전히 힘을 추구하고 있는 세계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고민하며 대림절 셋째 주를 맞이해 봅니다.

태초에 평화의 하나님께 지음 받은 인간들이 자신이 가진 힘을 의지하여 탐욕의 의지대로 사람을 대하는 건 노아시대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어 보입니다. 하나님의 아들들이라 불리는 사람들은 사람의 딸들을 자신이 원하는 대로 취했습니다. 그 사이에서 태어난 사람들을 네피림, 곧 용사라고 불렀습니다. 네피림은 전쟁영웅입니다. 멋있어 보이는 무기, 튼튼한 근육, 아무도 따라올 수 없는 계략과 지략을 갖춘 용사의 용맹스러운 모습은 예나 지금이나 많은 사람들에게 숭앙되곤 합니다. 왜 그럴까 생각해 보면 사람들은 힘을 원하기 때문일 거란 결론에 이릅니다. 오늘날 사람과 세상을 지배하는 힘은 자본이 낳고 키우고 유지한다고 말들을 많이 합니다. 인정하긴 싫지만 우리의 현실에 나타나는 현상이 그러하기 때문에 거부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한국사회를 삼성공화국으로까지 부릅니다. 자본이 정치경제문화교육노동, 심지어 종교 현장을 지배하고 통치하며 사람들의 삶을 화려하지만 어둠으로 이끄는 현실이 안타까울 뿐입니다.

  사무엘상에는 힘을 원하는 사람들에게 경고합니다. "왕이 너희를 어떻게 다스릴 것인지 알려 주겠다. 그는 너희 아들들을 데려다가 병거대나 기마대의 일을 시키고 병거 앞에서 달리게 할 것이다. 천인대장이나 오십인대장을 시키기도 하고, 그의 밭을 갈거나 추수를 하게 할 것이며 보병의 무기와 기병의 장비를 만들게도 할 것이다. 또 너희 딸들을 데려다가 향료를 만들게도 하고 요리나 과자를 굽는 일도 시킬 것이다. 너희의 밭과 포도원과 올리브밭에서 좋은 것을 빼앗아 자기 신하들에게 줄것이며, 곡식과 포도에서도 십분의 일세를 거두어 자기의 내시와 신하들에게 줄것이다. 너희의 남종 여종을 데려다가 일을 시키고 좋은 소와 나귀를 끌어다가 부려 먹고 양떼에서도 십분의 일세를 거두어 갈 것이며 너희들마저 종으로 삼으리라"(삼상8:11-17)

고대 왕권이 형성하게 된 주된 이유는 주변국들보다 더 강력한 힘의 보유에 있습니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오늘날에도 마찬가지로 강력한 정부를 요구하고 추종합니다. 민주주의의를 시작했다는 서구열강들의 모습에서 보여지는 건 서구 국민들 안에 뿌리깊게 자리한 힘에 대한 동경이 자리하고 있습니다. 그러지 않고는 그들이 선출한 정부가 펼쳐놓은 전쟁과 금융경제 시스템을 방관하고 있지는 않을 것이기 때문이비다. 민주주의를 추구하는 우리 또한 피해 갈 수 없는 딜레마입니다.

노의 방주의 날 네피림이 가진 힘은 가장 강력한 삶의 도구였습니다. 네피림의 힘은 자신이 원하는 모든 것을 구할 수 있고 만들어 낼 수 있는 신의 축복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네피림이 가진 힘은 온 세상을 죄악으로 가득하게 하고 흐르는 모든 시냇물을 피로 물들여 하나님께서 살게하신 모든 생명의 평화를 산산히 조각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생각이 악한 것뿐이고 자신의 이익만을 쫓아 사는 네피림이 활개치는 세상을 보시면서 사람을 지으신 일을 후회하셨습니다. 하나님의 후회는 결국 홍수심판으로 이어졌고 모든 네피림과 그 후손들은 깊은 물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어느 날 예수께서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가시고 모든 것을 둘러보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에는 비둘기와 염소를 팔고 돈을 바꾸어 자신들의 이득을 위해 일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 뒤에는 성전의 상좌에 앉아 교만과 독선, 오만으로 가득한 제사장 있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성전에 가득찬 사람들의 권력과 탐욕을 보셨습니다. 성전을 나온 예수께서는 아무런 열매를 맺지 못하는 무화나무를 보시고 그 무화과 나무가 말라 죽을 것이라 저주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저주대로 열매없는 무화과 나무는 반나절이 못 되어 말라 죽었습니다.

성전 안에 가득찬 제사장들과 백성들의 탐욕과 열매없이 잎만 무성한 무화과 나무를 바라보시는 예수님의 시선은 노아시대 사람들을 바라보는 하나님의 시선과 다를바가 없습니다.

세상에 존재해서는 안되는 힘과 탐욕을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은 심판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의 죽음을 선포하기보다 인간의 회복과 정화, 변화를 요구하는 시선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의 날 방주를 준비할 동안 사람들이 돌이키길 기다리셨고(벧전3:20), 소돔과 고모라를 심판하실 때 사람들의 변화를 기대했습니다. 예루살렘의 멸망에 앞서 의인 한 사람을 찾았습니다. 예수께서는 농사짓는 농부가 열매없는 나무가 열매 맺을 수 있도록 3년이라는 시간을 노력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도 모든 악인들이 돌이키길 기다리신다고 성경은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이 모든 사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가운데 가두어 두심은 모든 사람에게 긍휼을 베풀려 하심이로다. 깊도다 하나님의 지혜와 지식의 풍성함이여, 그의 판단은 헤아리지 못할 것이며 그의 길은 찾지 못할 것이로다. 누가 주의 마음을 알았느냐 누가 그의 모사가 되었느냐 누가 주께 먼저 드려서 갚으심을 받겠느냐 이는 만물이 주에게서 나오고 주로 말미암고 주에게로 돌아감이라 그에게 영광이 세세에 있을지어다. 아멘"(롬11:32-36)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로마서를 보고 세상 사람들을 볼 때 믿음이 있는 사람은 구원 아니면 심판으로 구분하곤 합니다. 그러나 로마서는 모든 사람들이 주님께로 돌아가 의로운 사람으로 거듭나고 새로운 삶을 살아갈 것이라말합니다. 설령 그가 지금 당장 악인의 길에 서 있다 하더라도 말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자신이 가진 힘으로 세상을 지배하고 살아가는 사람들이 그 악한 길을 돌이키시길 원하는 하나님의 시선과 그들로부터 자행되어 나타나는 세상이 아픔과 고통을 감당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은혜를 베푸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기억해야 합니다.

죄악이 세상에 가득차고 모든 사람들의 생각과 계획이 악하다 할지라도 그 가운데는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노아와 같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노아는 세상의 죄악을 보았고 그 아래 고통과 고난을 견디며 평화와 정의를 기다렸습니다. 하나님의 시선은 그러한 노아에게 향해 계셨고 자신의 뜻을 그를 통해 나타내시고 이루셨습니다. 세상은 다시한 번 노아와 그 가족으로부터 다시는 홍수가 없는 무지개언약이 있는 세상으로 새롭게 출발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지금 이 순간 고통과 눈물이 없는 새 하늘과 새 땅을 향해 부르짖고 살아가는 사람들을 은혜의 시선으로 바라보십니다. 그들을 통해 힘과 폭력의 시대를 종식하고 평화와 정의가 가득한 세상을 열어가시길 원하시고 은혜를 베푸십니다.

신26:7 우리가 우리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우리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마9:36 무리를 보시고 불쌍히 여기시니 이는 그들이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함이라

  우리는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보시고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하며 기진한 사람들을 향한 하나님과 예수님의 시선을 따라 우리의 눈을 돌려야 합니다. 힘과 권력으로부터 오는 편안함과 우아함을 버리고 눈물과 고통이 있는 사람들에게 우리의 시선이 머물러야 합니다. 우리의 시선에 하나님의 시선은 함께 하시고 사람들은 우리의 눈에 비친 하나님의 눈을 보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죄악에서 모든 사람들이 돌이키길 원하시는 눈으로 바라보시는 하나님의 시선을 기억하면서 모든 힘에 대한 숭배를 버려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도 자신을 향해 부르짖는 힘 없는 사람들을 보십니다. 밀양의 송전탑 건설로 삶의 자리를 잃어가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을 위해 희망버스를 보내시고 후원하는 사람들을 보내십니다. 핵발전소의 죄악을 돌이키길 원하시고 핵없는 세상으로 갈 내일을 만들어낼 사람들을 모으시고 힘을 주시며 용기를 주십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억눌린 사람들, 눈먼 사람들, 말 못하는 사람들, 눈물 흘리는 사람들을 예수께서는 눈여겨 보시며 그들의 작은 움직임을 따라 움직이십니다. 그리고 그들의 삶에 오시어 영광과 평화를 선포하실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이 예수를 닮은 사람들로 회복되고 은혜로운 삶을 살기를 바라는 하나님의 시서으로 지체들과 이웃들을 보시며 대림절 한 주간을 따뜻하게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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