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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에 협동하는 사람들
요한삼서 1:5-12

5 사랑하는 이여, 그대가 신도들을, 더욱이 낯선 신도들을 섬기는 일은 무엇이나 충성스럽게 하고 있습니다. 6 그들은 교회의 회중 앞에서 그대의 사랑을 증언하였습니다. 그대가 하나님이 보시기에 합당하게, 그들을 잘 보살펴서 보내는 것은 잘 하는 일입니다. 7 그들은 그리스도의 이름을 전하기 위하여 나선 사람들인데, 이방 사람에게서는 아무것도 받지 않았습니다. 8 그러므로 우리는 그런 사람들을 돌보아주어야 마땅합니다. 그래야만 우리가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9 내가 그 교회에 편지를 써 보냈습니다. 그러나 그들 가운데서 으뜸이 되기를 좋아하는 디오드레베는 우리를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10 그러므로 내가 가면, 그가 하는 일들을 들추어내겠습니다. 그는 악한 말로 우리를 헐뜯고 있습니다. 그는 그것으로도 만족하지 않고, 자기도 신도들을 받아들이지 않을 뿐만 아니라, 받아들이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고, 그들을 교회에서 내쫓습니다. 11 사랑하는 이여, 악한 것을 본받지 말고, 선한 것을 본받으십시오. 선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이고, 악한 일을 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뵙지 못한 사람입니다. 12 데메드리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좋은 평을 받았고, 또 바로 그 진실한 삶으로 그러한 평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또한 그렇게 평합니다. 그대는 우리의 증언이 옳다는 것을 압니다.

요한 3서는 AD 90년 경에 쓰여졌다고 성서학자들은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당시 교회 원로인 요한이 가이오라는 한 개인에게 보낸 서신입니다. 초대 예루살렘교회를 중심으로 유대지역으로 교회가 퍼져 나가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이 점점 확산되어 교회가 먼 지역에까지 세워지게 된 것입니다. 그런데 문제는 교회에 예수님의 삶과 가르침을 제대로 나눌 믿음의 형제들이 많이 없는 것이었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 초대교회 원로들은 예수님의 가르침을 제대로 전하고 세울 믿음의 형제들을 보냈습니다.

믿음의 형제들이 지역교회를 방문했을 때 두 부류의 사람들이 나타났습니다. 어떤 이들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와 같이 진리에 협동하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 디오드레베와 같이 진리와 협동도 하지 않을뿐더러 방해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원로인 요한은 “그리스도”의 이름, 예수의 이름을 전하기 위해 나서고, 불철주야 애쓰는 사람들을 돌보고 협동하는 것은 그리스도인으로서 마땅한 일이라고 말합니다.(8절) 또한 “그래야만 진리에 협력하는 사람이 될 것”(8)이라고 확고하게 전합니다. 우리는 먼저 진리에 협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기 위해  예수 안에 있는 진리가 무엇인지 알아야 합니다.

초대교회 원로인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가 진리에 협동하고 있다고 칭찬했습니다. 요한이 예수님께 배운 하나님의 진리는 “사랑 안에서 살아가야 한다”(요2:6)는 것, “형제를 미워하며 하나님을 사랑한다고 할 수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요한은 가이오와 데메드리오가 세상을 향해 예수님의 사랑 하나를 들고 외치며 전하기 위해 찾아 온 낯설지만 믿음의 형제들인 그들을 사랑으로 잘 보살핀 것은 하나님 보시기에 합당하고 잘하는 일이었습니다.(5~6절)

예수님의 가르침은 교리적이거나 율법적인 것이 아니었습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신 하나님의 진리는 예수님 자신을 아는 것이었습니다.(요8:23) 예수님을 안다는 것은 예수님의 존재와 그 분의 삶을 아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아들이고 모든 생명들은 예수님의 모든 삶을 통해 진리와 생명, 평화와 구원의 은혜에 아래 있게 됩니다. 예수님은 사랑의 아들로 이 땅에 오셨고 원수까지 사랑하는 최고의 사랑을 보여주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부활시키심으로 그 사랑이 온전하며 구원으로 가는 길임을 영원히 확증하셨습니다.

바울은 에베소서에 예수 안에서 믿음을 가진 이들을 향해서 “함께 상속자가 되고 함께 지체가 되고 함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됨이라”(엡3:7)고 말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사랑으로 진리를 말하고 살면서, 모든 면에서 자라나서,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에게까지 다다라야”(엡 4:15)한다고 강조합니다. 우리는 사랑이신 하나님의 상속자로 사랑을 이어받았고, 사랑으로 한 지체가 되고, 사랑의 약속에 참여하는 자가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랑으로 예수님을 이야기하고 살아갑니다. 우리의 모든 말과 삶은 사랑이신 예수님께 다다라 가고 있고, 노력하고 소망합니다.

예수공동체는 낯설거나 친하거나 할 것 없이 예수님의 이름을 부르고 그 믿음 안에 있는 사람들을 형제와 자매로 여겼고 불렀습니다. 예수공동체는 서로를 “겸손함과 온유함으로 깎듯이” 만났고, “오래 참음으로써 사랑으로 서로 용납”하며 살았습니다. 그들은 “성령이 평화의 띠로 묶어서, 하나가 되게 해 주신 것”을 힘써 지켰습니다.(엡4:2-4)

가이오와 데메드리오의 예수공동체는 진리를 알았고 진리이신 예수님을 따라 충성을 다했습니다. 반면 그 안에는 디오드레베와 같이 자신이 가장 높은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이름을 높이고 그 안에서 사랑하고 섬기며 돌보는 사람들을 낯설다는 이유로 헐뜯었고,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디오드레베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않고 믿음의 형제들을 받아들이고 함께 하려는 사람들까지 방해하였습니다. 심지어 그는 교회에서 진리에 협동하며 사는 사람들을 내어 쫓기도 했습니다. 디오드레베가 상당한 권력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우리의 삶을 보아도 으뜸이 되고자 하여 진리를 방해하는 이들을 볼 수 있습니다. 교단총회나 한기총의 총회장이 되기 위해 전국을 돌며 로비를 하고, 온갖 부정과 부패를 일삼습니다. 자신들의 정치적인 입맛에 맞지 않는 사람은 온갖 교리를 붙여 교회에서 쫓아 보냅니다. 그리고 자신들은 국가 독재자를 축복하는 예배에 참석해서 권력유지를 위해 기도합니다. 그들은 전쟁을 찬성하고 물질과 풍요의 신, 권력의 신을 따라 움직입니다.

그의 이러한 행위는 하나님 보시기에 악한 행동이고, 진리에 전혀 협동하지 않는 삶입니다. 요한은 그러한 예수님의 진리에 협동하며 살지 않고 오히려 방해하는 디오드레베를 직접 찾아가 잘못을 낱낱이 밝히겠다고 경고합니다.

오늘 본문에서 초대 예수공동체로서 진리에 협동하는 사람들의 삶은 명백해 집니다. 진리에 협동하는 삶은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서로를 사랑하며 진리 안에 거하는 삶이고, 사랑하는 사람들을 지지하고 연대하며 신뢰하고 함께하는 사람이 진리에 협동하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라고 말합니다.

오늘 예수님께서 가르치신 진리에 협동하는 사람은 누구이고 진리에 협동하며 살아가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예수님을 믿고 그 안에서 예수를 닮아 살아가는 사람일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서 예수님을 믿고 닮아가는 삶은 [예수 믿으면 천국, 믿지 않으면 지옥, 예수 믿으면 축복, 안 믿으면 저주]라는 수학공식이 아닙니다. 오늘 우리의 삶 속에 진리에 협동하는 그리스도인, 예수님을 믿고 그 삶을 따라 살아가는 것이 무엇인지 묵상해야 합니다.

먼저 이웃들의 아픔에 공감하고 그들을 돌보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ex) 노숙을 하시는 분들치고 사연이 없으신 분은 거의 없습니다. 거의 모두 과거에 경험한 극심한 고통과 절망으로 삶의 좌절 속에서 살아갑니다. 그런 분들 중 한 분인데 그분은 새벽 한 시, 두 시에 영등포시장 통로 안이나 큰 길 버스정류장에서 추위에 떨고 계실 때가 많습니다. 그런데 어디서 다치셨는지 양쪽 다리의 정강이에 고름이 나오는 반 주먹만 한이 환부가 있었습니다. 119를 불러 병원을 보내드려도 잠깐이면 나오시어 반복된 노숙생활을 하십니다. 그런데 2,3주가 지나자 짧게 치료했던 터라 다리가 더 심하게 부패되었습니다. 발등은 움푹 들어가 진물이 나고 정강이와 종아리는 욕창으로 진물이 뚝뚝 떨어졌습니다. 근무시간이 마칠 때까지 병원에 가시라고 설득하고 협박을 해도 소용이 없었습니다. 병원을 절대 안가시겠다는 그분을 두고 근무를 마치게 되었습니다.
그 추운 거리에 살에 욕창이 나고 짓물러져 가는 사람을 두고 집에 돌아와 잠을 자기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인지 그 노숙인의 짓물러져 움푹 들어가 진물이 새어나오는 발등의 아픔이 아침잠을 자는 동안 제 발에 계속되었습니다. 어디 부딪힌 기억도 없는데 발등이 아픈 것입니다.
언젠가 KBS에서 ‘마음’이라는 다큐멘터리를 보았는데 그 프로그램에 ‘환지통’에 대해서 설명한 내용이 있었습니다. 환지통이라는 것은 신체의 어느 부위가 없는데 뇌가 상상해서 없는 신체부위를 만들어 그 고통을 고스란히 당하는 병입니다. 아마 그 다큐멘터리를 보아서 그랬을 것입니다.  
여하튼 환상속이든 비몽사몽이든 너무 발등이 고통스러워 하나님께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이게 무엇입니까? 그때 제 마음에서 들려오는 주님의 음성은 ‘내 아들의 아픔에 진실하고 애틋하게 공감했느냐?’ ‘네가 만나는 사람들과 생명에 얼마나 함께 하고 있느냐?’라는 것이었습니다.

진리에 협동하고 살기 위해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함께 하는 사람들에 대한 온전한 공감입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진실한 말과 겸손하고 온유한 마음으로 서로를 만나야 합니다. 우리 옆에는 얼마나 많은 사회적 약자들이 있는지 모릅이다. 먼저는 우리 아이들, 노인들, 청년들, 소수자들, 해고노동자들, 비정규직 노동자들, 외국인노동자... 말도 못하게 많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깝고 자주 만나는 지체들의 몸과 삶, 그들의 안녕과 평화, 고민과 고통에 온 몸과 마음으로 공감하며 그들과 협동하는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협동조합운동도 이런 맥락에서 이해야해 할 것입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다양한 분야에서 협동운동이 일어나는데 그들이 왜 협동운동을 하려하는지를 먼저 생각하고 함께하여야 합니다. 좁게는 자신들의 삶을 가치 있고 의미 있게 좀 더 유익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 신앙으로 볼 때는 허락된 서로 삶을 공감하며 하나님 나라를 위한 연대와 실천, 참여의 인생으로 나가려는 것입니다.

두 번째는 기도로 진리에 협력하며 사는 그리스도인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도 기도로 우리에게 협력하여 주십시오. 많은 사람의 기도로 우리가 받게 된 은총을 두고, 많은 사람이 우리 때문에 하나님께 감사를 드리게 될 것입니다.”(고후 1:11)
  
기도의 협력은 거대한 진리의 협동을 만들어 낼 것입니다. 천군만마를 가진 병사는 쓰러지고 넘어지지만 하나님 앞에 기도하는 한 사람은 결코 포기하거나 좌절하지 않습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수고하는 사람들을 위해 기도로 협력하는 사람과 예수공동체는 사랑과 정의를 자신의 삶의 자리에 더 충만하고 든든하게 이루며 나갈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위해 애쓰는 사람들과 단체들이 있습니다. 평화를 위해, 환경을 위해, 인권과 권리를 위해 수고하고 애쓰는 사람들은 종교와 인종, 남녀노소를 떠나 하나님의 진리에 협동하고 있습니다. 비록 잘 모르고 낯설다 하더라도 예수님의 사랑과 정의를 이야기하고 살아간다면 함께하지 못할 이유가 전혀 없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그들을 위해 후원하고 연대하여야 합니다. 무엇보다 기도로 협력하십시오.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채워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기도와 후원, 연대와 참여는 진리에 협동하는 거룩한 하나님의 은총이라는 것을 기억하시고 진리에 더 풍성한 협동이 있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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