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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의 별들처럼 빛을 내는 사람들

빌립보 2:12-18
그러므로 내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여러분은 내가 함께 있을 때에도 언제나 순종하였거니와 그 때뿐만 아니라 떨어져 있는 지금에 와서는 더욱 순종하여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여러분 자신의 구원을 위해서 힘쓰십시오. 13 여러분 안에 계셔서 여러분에게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힘을 주시는 분은 하느님이십니다. 14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지 마십시오.15 그리하여 여러분은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느님의 흠 없는 자녀가 되어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십시오. 16 생명의 말씀을 굳게 지키십시오. 그래야 내가 달음질치며 수고한 것이 헛되지 않아 그리스도의 날에 자랑할 수 있을 것입니다. 17 여러분이 바치는 믿음의 제사와 제물을 위해서라면 나는 그 위에 내피라도 쏟아 부을 것이며 그것을 나는 기뻐할 것입니다. 아니 여러분과 함께 기뻐할 것입니다. 18 그러니 여러분도 기뻐하십시오. 나와 함께 기뻐하십시오.

우리의 전래동화 중 ‘해와 달이 된 오누이’ 이야기가 있습니다. 간추리면, 어느 날 떡 장사를 나간 어머니를 기다리는 오누이에게 찾아온 건 엄마를 잡아 먹은 호랑이였습니다. 오누이는 자신들을 잡아 먹으려고 하는 호랑이를 알아 보고 미루나무로 올라갑니다. 그러자 호랑이도 나무에 올라오게 되는데 오누이는 하늘에 기도하여 동아줄을 내려 받게 되어 하늘로 올라가고 호랑이는 수수밭에 떨어져 죽습니다. 하늘로 올라간 오누이는 해와 달이 됩니다. 

 보통의 전설이나 신화에서는 주인공들의 영웅적인 행동을 칭찬하며 상징적인 무엇을 만들어 냅니다. 그러나 하늘의 ‘해와 달’이 된 오누이는 특별한 영웅적인 이야기가 없습니다. 그래서인지 선조들은 왜 어린 오누이가 해와 달이 되었다고 했을까 궁금증이 생깁니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 선조들의 아이들에 대한 특별한 마음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어른들은 이야기 속에서  세상의 모든 아이들은 하늘의 해와 달과 같은 존재들로 받아들여야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상의 모든 아이들의 모습에서 해와 달에서 빛나는 희망의 빛을 보는 사람은 행복할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빌립보의 예수공동체에게 “하늘을 빛내는 별들처럼 빛을 내라”(15절)고 권면합니다. 우리는 바울의 권면처럼 하늘에 빛나는 별들처럼 빛을 내는 그리스도인 되어야 할 것입니다.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는 그리스도인이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 본문에서 묵상 해 보겠습니다.

 먼저는 겸손의 왕에게 순종하며 구원을 위해서 사는 사람입니다. 

 본문이 속한 빌립보서 2장은 그리스도의 겸손, 즉 하나님의 본체이시지만 인간의 몸을 입으시고, 죽기까지 자신을 낮추신 예수 그리스도를 하나님께서는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고 가장 높이 올리셨다고 말씀해 줍니다. 그래서 모든 만물들이 그 겸손하신 그리스도 예수 앞에 무릎 꿇게 되었다고 강조합니다. 

 바울은 자신이 빌립보에 있을 때 모든 빌립보 공동체가 겸손하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 순종의 삶을 살았던 것을 기억하며, 자신이 함께 하지 않을 때 더욱 겸손하게 순종한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으며 그들을 칭찬합니다. 바울은 예수님과 같은 겸손한 삶이야 말로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구원을 이루는 일이라고 못 박습니다.(12절)

 바울은 겸손한 마음과 말과 행동은 인간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계시면서 당신의 뜻에 맞는 일을 하고자 하는 마음을 일으켜주시고 그 일을 할 수 있는 힘을 주신다고 말합니다.(13절)겸손한 말과 생각, 만남과 실천은 하나님의 영역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는 모든 사람을 자신보다 낫게 여기고 살며 섬기는 사람 안에 역사하시며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역사하시어 생기는 겸손한 마음과 구원을 이루며 사는 삶의 열매는 ‘무슨 일을 하든지 불평을 하거나 다투는 것이 없는’(14절)것입니다. 

ex) 신학을 공부할 때 강의실이나 복도에 쓰레기가 버려진 모습을 보고 굉장히 마음이 불편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다 줍는 것은 아니었지만 강의실 복도에 버려진 쓰레기를 가끔씩 주울 때 면 ‘누가 어떻게 여기다 쓰레기를 버릴 수 있지?’하며 투덜거렸습니다. 제 생각에는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들이 모인 곳인데 어떻게 쓰레기가 아무렇게나 버려질 수 있을까라는 마음에 불평이 더욱 컷 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한 전도사님이 그런 제 모습을 보더니 대뜸 하는 소리가 ‘난 네가 아무런 소리 없이 쓰레기를 치우면 더 은혜스러울거야’ 그러는 겁니다. 순간 뒤통수를 한 대 맞은 느낌을 받았습니다. 그 전도사님은 그저 흘린 이야기일 수 있었지만 제게는 삶의 어떤 도전과도 같은 말이었습니다. 세상을 겸손하게 섬긴다고 하는데 즐거움과 감사가 빠져 있고 불평과 다툼을 향해 있는 제 삶을 본 것입니다. 그 이후로 제 삶을 묵상 하면서 예수님과 같은 겸손과 섬김은 어떤 일에 있어 누군가에게 책임을 묻는 것도 아니고, 누군가를 원망하거나, 나를 알아 주기도 바라지 않는 것, 내가 하고 있는 일 그 자체를 즐거워하고 감사하는 일이라고 생각되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위기 앞에서 자신만 살겠다고 욕하며 부인하던 제자 베드로에게 불평하거나 원망하지 않으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와 같은 처절한 고통 속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섭리를 믿고 그 앞에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겸손하셨기에 인간 안에 있는 변화와 구원을 볼 수 있었고, 부활의 생명을 믿을 수 있었습니다. 죽기까지 겸손하신 예수님을 닮아 겸손히 순종하며 구원을 이루는 사람은 예수님처럼 어떤 곳에서 무엇을 하든지 불평과 다툼이 없을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신 겸손한 순례의 길을 즐거움과 기쁨으로 걷는 그리스도인들은 구원의 길을 걷는 사람들이며 온 세상에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는 사람들입니다.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려면 나무랄 데 없는 순결한 사람이 되어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가야 합니다.

 교회가 교회답지 못하고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종교적인 권위로 짓눌러 비뚤어진 세상을 바로보지 못하게 할 때가 많이 있습니다. 그리고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자신들의 허물과 죄악마저 덮어버립니다.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정의를 외면하거나 왜곡하기 일쑤입니다. 이런 그리스도인들은 순결한 마음을 잃어버리고 권력에 붙어 살거나 자본을 신으로 섬기고 살아갑니다. 며칠 전 한 신문에 18대 대통령 당선인의 생신을 기리는 축복 기도회를 몇 몇 목사들이 모여서 했다고 광고를 했습니다. 참으로 낯 뜨거워 접하기 힘든 장면이었습니다. 철저하게 힘과 돈을 의지하여 성장과 개발을 추구하며 기도하는 교회는 비뚤어진 세상의 자식들로 살아가는 부끄러운 모습이 아닐 수 없습니다.

 ‘나무랄 데 없이 순결한 사람이 되어 하나님 앞에 흠 없는 자녀’로 살아간 다는 것은 누군가에게 상처를 주지 않고 살아가는 삶을 말합니다. 자신이 가진 지위나 권력, 재산과 지식으로 누군가에게 해를 가하는 일을 하는 것은 순결치 못한 마음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우리의 역사와 개인들의 삶에서 얼마나 많은 상처가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전쟁과 분쟁, 대립과 다툼, 거짓과 탐욕, 시기와 질투, 경쟁과 폭력이 이곳 저곳에서 들려오는 소리를 너무나 쉽게 듣습니다. 자본과 권력이 신이 된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들려오는 가난하고 연약한 하나님이 백성들의 신음 소리들이 멈추지 않는 파도와 같이 들려옵니다.

 바울은 악하고 비뚤어진 세상에서 생명의 말씀을 겸손하고 확고하게 붙들며 지키라고 합니다. 바울은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굳건하게 지키고 살아가는 인생은 후회가 없는 인생이라고 확신합니다. 바울이 예수님을 닮아 사는 겸손한 삶과 의로운 삶을 확신하는 이유는 그리스도의 날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은 미래의 끝입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높은 자리에 앉아 군림하려고 합니다. 자신이 높아지고 더 많이 가지기 위해 이웃을 짓밟고 가난한 자들의 것을 빼앗아 갑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 밤까지 누가 더 높고 잘 났느냐로 다투었습니다. 혹 우리가 사는 동안 인간의 욕심과 탐욕은 끊임없이 계속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리스도의 날이 반드시 오리라고 믿고 오늘을 삽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그리스도의 날, 즉 미래의 끝은 오늘 이 순간이 됩니다. 우리의 겸손한 삶과 사랑과 정의를 향한 오늘의 작은 실천들은 미래의 끝이 되고 영원이 됩니다.

 우리의 섬김과 정의로운 삶에 대해 우리는 아무런 보상도 원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예수님처럼 겸손하게 순종하며 정의로운 인생을 가는 인생이 옳다하시면 족합니다. 바울은 이러한 삶을 사는 이들을 믿음의 제사와 제물을 드리는 사람들이라 말하며 이를  위해 자신의 피를 쏟아 붓는 헌신도 기뻐할 것이라 고백합니다. 그리고  모든 그리스도인들에게 그 기쁨에 함께 동참하라고 초대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겸손하고 정의로운 삶은 하늘에 빛을 내는 별들처럼 영원히 빛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순간에 불평과 다툼이 없는 예수님과 같은 겸손함이 있는지, 비뚤어진 세상에 하나님의 정의를 얼마나 추구하고 사는지 더 깊이 있게 성찰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그러한 삶의 헌신에 기쁨이 얼마나 있는지 살펴보아야 합니다. 고난당하는 모든 생명들을 돌보고 함께 아파하고 아름다운 세상을 위해 연대하는 일들은 결코 땅에 묻혀 있지 않을 것입니다. 

그들의 상처를 싸매며 함께 치유와 회복을 위해 나가는 우리의 모든 삶의 달음질과 수고는 성령의 열매가 되어 그리스도의 날에 더 큰 기쁨으로 마주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도 그리스도의 날을 기대하고 희망하며 함께하는 이들, 들려오는 고난당하는 이들과 겸손과 순결한 사랑을, 정의를 충만하게 나누시며 하늘을 비추는 별들처럼 빛을 내뿜고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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