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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돈 속의 창조
창 1:1-2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셨다.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어둠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은 물 위에 움직이고 계셨다.

BC 369~ BC289년경에 살았던 장자는 자신의 몸과 삶을 세심하고 의미 있게 관찰하면서 ‘그 어떤 근원’과 ‘참된 주인’을 찾습니다.

ex) 심신(心身)을 다스리는 것은 누구인가?
[희로애락이 있다. 근심하여 탄식하고 겁이 있어 변덕스럽다. 요염하여 방탕하고, 솔직함과 꾸밈이 있다. 음악은 빈 곳에서 나오고 습기는 곰팡이를 만든다. 밤낮으로 서로 바뀌어 나타나지만 어디서 생겨나는지 알 수가 없다. 두어라, 두어라, 아침저녁으로 이를 보게 됨은 그 어떤 근원이 있어서다. 그 근원이 없으면 내가 존재할 수 없고, 내가 없으며 그것들을 취할 수도 없다. 매우 밀접하건만 그 근원을 알지 못한다. 참된 주인이 있는 것 같은데 그 징조를 찾을 수 없다. 작용 하는 것은 확실하지만 그 모양을 찾을 수 없다. 존재하기는 하나 모습이 없다. 백 개의 뼈마디와 아홉 구멍과 여섯 창자가 있다. 내가 어느 것과 더 친할까. 너는 모두 기쁘게 해주겠느냐. 어느 것을 편애하겠느냐. 이것들이 모두 종이 될 수 있겠느냐. 참된 주인이 있을 것이다. 그것을 찾든 못하든, 그것이 참인 것에 더하고 덜할 것이 없다.] -『장자』 p43 참조

장자는 우주의 혼돈 속에서 하늘과 땅을 창조하시고 섭리하시는 하나님을 고백한 창세기의 기자처럼 자신의 몸과 삶의 참된 주인을 의심 없이 인정하고 있습니다.

창세기가 기록되어진 시기는 성서학자마다 다른 의견들이 있을 수 있지만 대체로 고대 이스라엘 민족이 바벨론으로 끌려간 기간에 기록되었을 것으로 봅니다. 모든 성서는 선조들의 입으로 전해 내려오던 이야기를 현세와 후세들에게 가르침과 교훈, 신앙의 내용을 전해 주기 위한 의도와 목적을 가지고 기록한 것입니다.

바벨론 제국의 포로들은 인권과 재산 등 인간의 가장 기본적인 권리와 존중을 받기 힘들었습니다. 창세기는 포로시절을 보내고 있는 고대 이스라엘인들에게 선조들의 신앙의 뿌리를 찾을 수 있는 근거를 마련해 주고, 현재의 삶을 조명하게 해 주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선조들이 가졌던 신앙과 꿈을 자신들의 신앙과 이상으로 확대 시키고 목표로 삼아 살게 하였습니다.

창세기를 듣고 읽는 포로들은 자신들의 왜곡된 현실을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깨어진 권리와 파괴된 평화, 억압받는 생명의 회복을 기대할 수 있었습니다. 또한 제국의 포로라는 혼란한 현실 속에서 재창조에 대한 기대와 신앙이 나오게 되었습니다.

창조의 순간을 찾아가는 것은 아무 것도 바랄 수 없고 세울 수 없는 혼돈되고 깊은 어둠의 시대 상황 속에서 온전한 질서와 평화에 대한 바람이고 이상이며 그것을 향한 혁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창세기 1장 2절에 나오는 아무도 살 수 없을 것 같은 혼돈과 공허한 우주, 상상할 수조차 없는 어둠의 깊이는 바벨론 제국으로 끌려온 포로들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보여줍니다.

포로 생활 하는 사람들은 온 우주의 생명이 꿈틀대는 창조의 순간 하나님의 영(기운, 바람, 혼, 얼)의 움직임을 상상했고 믿었습니다. 그들은 창조의 순간에 불었던 생명의 바람, 곧 하나님의 기운이 혼란과 공허한 자신들의 삶에도 불 것이라 확신했습니다.

사랑도 정의도 깨어지고 무너진 혼란한 시대, 혼돈과 공허만이 남은 자신들의 생활에 기댈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온 우주를 품으신 성령의 운행하심이 있을 때 하나님의 창조의 말씀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은 어둠에 빛을 내었고, 그 말씀으로 낮과 밤이 생겼습니다. 그 말씀에 따라 바다와 육지가 나뉘었고, 땅은 푸른 움을 모든 열매 맺는 나무들을 돋아냈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해와 달이 나오고,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니 물속의 생명들이, 육지의 동물들이 지음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안에 사람을 만드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모든 생명을 보시니 너무나 아름다웠고 보시기에 심히 좋았습니다.

  혼돈과 공허한 세상에 창조된 모든 생명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육하고 번성하며 살아가는 권리와 자유를 받았습니다. 창조의 순간 모든 생명에게 주어진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하나님의 생명의 질서는 그 누구, 그 어떤 권력으로도 깨트려지지 않을 영원한 진리가 되었습니다.

제국에 끌려온 포로들은 창조주의 말씀으로 확정된 생명의 질서가 제국의 정치, 경제 등 생명을 짓밟는 모든 힘의 질서를 거부하는 것이라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들은 제국의 힘의 질서는 창조의 동산에서는 결코 먹어서는 안 되는 악마의 유혹이라는 것도 창조의 이야기에서 찾아냅니다. 그리고 제국의 땅에서 고향으로 돌아갈 희망을 품고 그 희망을 향해 모든 삶을 살아냈습니다.

혼돈 속의 창조는 예수그리스도를 통해 다시 한 번 확고하게 나타납니다. 요한복음 1장에서는 예수그리스도는 창조의 순간부터 함께 한 진리의 말씀이라고 선포합니다. ‘모든 것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 되었으니, 그가 없이 창조된 것은 하나도 없다. 창조된 것은 그에게서 생명을 얻었으니, 그 생명은 사람들의 빛이었다. 그 빛이 어둠 속에서 비치니, 어둠이 그 빛을 이기지 못하였다.’(요1:2-5)

하나님의 말씀은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오셨고, 그 육신이 창조의 순간 허락된 생명의 풍성함을 대변해 주었습니다. 요한복음을 읽는 사람들은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보면서 자신들의 몸 또한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되고 인지하게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모든 생명을 풍성하게 하러 오셨습니다. 그의 삶은 힘과 폭력이 아닌 섬김과 사랑이고, 가난한자 연약한 자들의 정의가 되셨습니다.

강력한 로마제국의 힘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힘의 질서 아래 몰아넣고 그것이 진리라고 선언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은 로마제국의 힘의 질서를 파기하시고 창조의 질서, 곧 모든 생명이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는 상생과 섬김의 질서를 세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죽은 예수의 몸을 부활시키심으로 그 이름과 삶을 모든 만물 위에 두시고 그 발아래 무릎 꿇게 하셨습니다. 곧 힘의 질서를 따르는 세상을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다시 한 번 재창조하신 것입니다.

창조의 순간은 바람이 어디서 어떻게 불어오는지 모르게 일어납니다. 마치 마가다락방의 기도하는 제자들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어 그들의 마음에 새로운 마음과 삶을 창조하셨듯이 오늘 우리의 역사와 삶에서도 그 창조의 역사를 하십니다.

저는 1919년 3월 1일은 제국주의라는 혼란한 세상에 우리 민족이 해방과 자유를 창조하는 날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우리는 3.1절을 국경일로 삼아 그 정신을 잊지 않고 후손에 남겨주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하지만 며칠 전 가슴 아픈 뉴스를 접했는데 한 대형마트 포스터에 ‘지루한 3.1절, 공룡체험으로 즐겁게’라는 문구를 사용했다는 것입니다. 3.1독립운동을 지루하게 생각한 발상부터 문제지만 이미 우리 사회가 자본주의라는 혼란한 문화 속에 빠져 역사의 재창조를 생각하지 못하고 있다는 현실이 안타까웠습니다. 아무리 자본주의가 사람들의 마음과 삶을 혼란스럽게 하여도 의미 있는 날로 재창조할 수 있어야 하는데 속수무책으로 당해 버린 것입니다.

1919년 3.1독립운동 이후 1927년 초 일본 동경에서는 조선 유학생들이 모여 ‘조선성서연구회’라는 모임을 시작하였습니다. 조선은 이미 일본의 속국이 되어 민족의 장래에는 아무런 희망도 기대도 바랄 수 없는 혼란의 시대였습니다. 그러나 동경 외곽에 위치한 스기나미촌에서 여섯명의 조선 유학생들의 마음에 일어난 것은 ‘조선의 희망을 성서에서 찾자’였습니다. 김교신을 비롯하여 함석헌(咸錫憲)ㆍ정상훈(鄭相勳)ㆍ송두용(宋斗用)ㆍ양인성(梁仁性)ㆍ유석동(柳錫東) 이 여섯 명은 매주 한 차례씩 모여 성서 속에서 조선을 생각하였습니다. 성서공부모임이 시작되고 그들의 마음에는 조선의 희망을 찾고자 그 해 1927년 7월 ‘성서조선’이라는 월간 동인지를 발행하였습니다.

1935년 10월호에서 김교신은 ‘성서조선’이 창간된 의의와 목표를 말하였습니다.  “조선의 기독교가 전래한지 약 반세기에 이르렀으나 아직까지는 선진구미선교사 등의 유풍(遺風)을 모방하는 지경을 벗어나지 못하였음을 유감으로 알아, 순수한 조선산 기독교를 해설하고자 하여 [성서조선]을 발행한 것이다.”

김교신과 그의 동료들은 제국주의의 기독교가 판을 치는 조선의 땅에서 제국의 기독교가 아닌 조선산 기독교를 새롭게 창조하고 싶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민족의 정신과 평화로운 삶이 파괴되고 억압되는 혼란한 시대 속에서 민족의 자유와 권리를 찾고 이루고자하는 그들의 마음의 결단과 모임은 태초에 있었던 창조의 순간과 같은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정치, 경제, 문화, 교육, 사회는 혼돈과 깊은 어둠 속에 있습니다. 독재정치의 유전자가 되 살아 나고 사회 전반에서 승자독식사회를 향해 질주합니다. 이러한 혼란과 어둠 속에서 우리는 성령께서 품고 계시는 세상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예수그리스도의 몸을 통해 말씀하시는 소리를 들어야 합니다. 오늘도 성령과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창조를 시작하십니다. 성령의 창조는 우리의 삶에서 사랑과 희락과 오래참음과 자비와 양선과 충성과 온유와 절제와 화평입니다. 오늘 우리의 모든 생각과 만남에서 성령의 운행하심 속에 말씀하시는 하나님을 느끼고 귀담아 들을 수 있어야 합니다.

그럴 때 우리는 현실의 부정과 부패가 있는 역사의 현장에서 사랑과 정의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노동, 평화, 생태운동을 포함하여 모든 생명의 몸을 살리고 섬기는 마음과 실천은 한 처음 있었던 하나님의 창조와 같은 것입니다.

오늘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지어진 세상의 모든 것에서 하나님의 선한 창조를 찾고 누리시기 바랍니다. 또한 오늘 이 순간 마음과 삶에 하나님 나라를 창조하십시오. 용서와 나눔을 창조하십시오. 가족, 친구, 이웃, 공동체, 사회, 국제관계에서 선한 창조의 순간들을 만들어 가시기를 바랍니다.

사순절 기간을 지나고 있는 순간순간에 모든 삶의 자리에서 성령의 운행하심과 하나님의 말씀에 자신을 내려놓고 태초의 창조 영성과 실천을 마음껏 누리시기를 예수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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