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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활의 선물 평화!
마28:1-10
1 안식일이 지나고 그 이튿날 동틀 무렵에 막달라 여자 마리아와 다른 마리아가 무덤을 보러갔다. 2 그런데 갑자기 큰 지진이 일어나면서 하늘에서 주의 천사가 내려와 그 돌을 굴려내고 그 위에 앉았다. 3 그 천사의 모습은 번개처럼 빛났고 옷은 눈같이 희었다. 4 이 광경을 본 경비병들은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쳤다. 5 그 때 천사가 여자들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무서워하지 마라. 너희는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를 찾고 있으나 6 그분은 여기 계시지 않다. 전에 말씀하신대로 다시 살아나셨다. 그분이 누우셨던 곳을 와서 보아라 7 그리고 빨리 제자들에게 가서 '예수께서는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셨고 당신들보다 먼저 갈릴래아로 가실 터이니 거기에서 그분을 뵙게 될 것이오.' 하고 알려라. 나는 이 말을 전하러 왔다." 8 여자들은 무서우면서도 기쁨에 넘쳐서 제자들에게 이 소식을 전하려고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다. 9 그런데 뜻밖에도 예수께서 그 여자들을 향하여 걸어오셔서 "평안하냐?" 하고 말씀하셨다. 여자들은 가까이 가서 그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하였다. 10 그러자 예수께서는 그 여자들에게 "두려워하지 마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래아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들은 거기서 나를 만나게 될 것이다."하고 말씀하셨다.    

아이들이 1년 중 가장 기다리는 날이 있습니다. 자신들이 태어난 생일입니다. 생일이 되면 부모나 친구들로부터 자신이 원하는 생일축하 선물을 하나쯤은 받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보통 아이들이 원하는 것을 다 들어 줄 수는 없지만 필요한 부분을 의논하여 선물해 주곤 합니다. 새 생명의 탄생과 시작은 가장 귀하고 아름다우며 인생에서 가장 의미 있는 시간 중 하나입니다.

예수께서 새로운 생명으로 시작하는 사건을 기념하여 축하 하는 부활절행사는 교회가 존재하는 모든 곳에서 행해집니다. 미국의 백악관에서는 부활절이면 미국 내의 3만 여명의 아이들을 초청하여 부활절 행사는 한다고 합니다. 미국 대통령인 오바마는 농구를 좋아하여 이번 부활절에 어린아이들과 골 넣는 게임을 하였는데 20개 중 2골을 넣어 망신을 당하였다는 기사를 보았습니다. 기사를 보면서 ‘저들의 부활절 행사가 무슨 의미가 있을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국의 어린아이들을 백악관에 초청해 즐기는 부활절행사와 지금 이곳 한반도에서 부활을 축하한 우리 아이들에게 무슨 의미, 어떤 차이가 있을까?’ 라는 것입니다.

오늘날 미국은 자신들을 Neo-Empire라고 자처합니다. 그러한 미국의 부활절 행사 기사를 접하면서 생명을 축하하고 일으키는 예수의 부활을 제대로 알기나 하고 행하는 것일까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세계 곳곳에서 전쟁을 행하고 분쟁의 중심에 서 있기 때문입니다. 또한 자유주의 경제체제를 모든 나라에 강요하면서 자신들의 다국적 기업의 이익을 위해 힘을 과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제국은 어린 생명들을 짓밟아 왔고 헤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앞으로도 그러할 것입니다.

예수를 죽인 권력, 특히나 제국의 힘은 예수의 부활의 생명과 능력을 결코 알 수 없습니다. 백악관에 초청한 아이들 생명이 귀한 줄 알면 아프카니스탄, 이라크, 팔레스타인, 북한과 남한의 어린아이들의 생명도 귀한 줄 알아야 하고 그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제국의 힘을 과시하는 미국의 백악관에서 하는 부활절 행사는 아무리 화려하고 자비로운 얼굴을 가진다 하여도 그저 종교의 탈을 쓴 한편의 쇼에 불과할 뿐입니다. 그들의 사랑스럽고 자비하며 온화한 부활절행사 그늘엔 수많은 어리고 여린 지구생명체들이 예수의 시체처럼 무덤 안에 갇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제국이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일어나서는 안 되는 민중의 생명사건입니다. 권력의 종교와 정치, 경제와 사회는 예수의 몸을 무덤에 가두었습니다. 그것도 모자라 병사들로 지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이 지키고 덮어 놓은 무덤은 생명으로 오신 예수를 가두어 두지 못했습니다.

예수님의 무덤 문을 지키던 병사들은 지진과 주의 천사들이 내려와 무덤을 막은 돌을 굴렸을 때 그 광경에 겁에 질려 떨다가 까무러쳐 죽은 자 같이 되었습니다. 생명이 죽임을 이기고 일어날 때는 아무리 단단한 바위가 막고 있다 하여도 틈이 생기고 갈라지게 됩니다. 가끔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식물을 볼 때가 있습니다. 예수님의 부활은 절대 갈라지지 않을 것 같은 제국의 힘을 한 순간에 무너뜨리는 능력입니다.

제국과 종교가 합세하여 지키던 무덤을 열고 나오신 예수께서 선물하신 것이 있습니다. 먼저 기억해야 할 것은 십자가에 달려 무덤에 묻힌 예수의 시신을 가장 먼저 찾아 온 이들은 여인들이었다는 것입니다. 그녀들은 절망 중에서 한 줄기 빛을 찾고자 했을 것입니다. 그녀들은 당시 가부장문화로 짓눌리던 자신들의 삶에 한 줄기 희망을 주신 예수님의 말씀과 삶을 추억하고 다시금 용기를 얻어 보려 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여인들이 기대하고 상상했던 것보다 위대한 일을 행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에 달린 예수를 찾아온 여인들에게 제국의 힘으로 결코 가두거나 없이할 수 없는 부활의 소식, 곧 영원한 생명을 선물해 주셨습니다. 여인들은 자신 앞에 펼쳐지는 광경과 천사들의 말을 듣고 무서우면서도 기뻐서 제자들에게 부활의 소식을 전하러 무덤을 떠나 급히 달려갔습니다.

여인들이 달리고 있을 때 뜻밖에도 예수께서 그 여인들을 향해 걸어오셨습니다. 여인들에게 다가오신 예수께서는 “평안하냐?”라는 한 마디였습니다. ‘평안’은 걱정이나 탈이 없는 것을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아무런 걱정과 탈이 없이 지내느냐고 묻습니다. 로마 병사들과 유대종교지도자들의 폭력을 가감 없이 경험하고 있는 여인들에게 ‘평안하냐?’라는 예수님의 질문은 다소 이해하기 불편한 부분입니다.

아무리 천사들이 십자가에 달린 예수가 살아났다는 말을 전해 들었다 하더라도 그 소식을 들은 지 불과 채 몇 분도 되지 않은 상황에 있는 여인들입니다. 그리고 그녀들은 지금 무서움과 기쁨이 범벅된 상태로 달리고 있던 참이었습니다.

그러한 여인들에게 ‘평안하냐?’라는 예수님의 물음 속엔 여인들을 혼란스럽게 하는 모든 폭력적이고 연약함을 넘어 서게 하는 평화의 능력이 있었습니다. ‘평화를 누리고 있느냐?’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그녀들은 뛰던 걸음을 멈추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평화’를 말씀하실 때 그 ‘평화’는 여인들에게 선물이 되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 앞에 선 여인들에게 두려움과 기쁨, 인간이 경험하는 모든 감정과 이성을 뛰어 넘어 존재하는 ‘평화’가 다가왔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여인들에게 주신 선물은 제국의 정치와 종교의 평화가 아닌 당시 여자로서 살아가며 원했던 ‘여인들의 평화’였습니다.

그녀들은 달리던 걸음을 멈추고 예수의 두 발을 붙잡고 엎드려 절을 하였습니다. 예수님의 평화는 자신들의 평화였기에 자신들 앞에 서 계시는 예수의 두 발 아래 설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예수께 절하며 그 평화의 왕 앞에 엎드렸습니다. 자신들이 기억하고 따라가야 하는 평화의 사람은 예수라는 것을 분명히 한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여인들에게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고 전하여라. 그러면, 거기에서 그들이 나를 만날 것이다.’고 하십니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형제라 말씀하시고 갈릴리에서 자신을 만날 것이라 하신 것은 깊은 큰 의미가 있습니다. 갈릴리는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차별받는 지역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갈릴리를 중심으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셨고 그들을 사랑했고 그들로 하여금 차별과 억압, 폭력이 없는 새롭고 평화로운 세상을 꿈꾸게 했습니다. 부활하신 예수님의 형제들은 갈릴리 사람들이고, 예수의 평화를 선물 받을 사람들도 갈릴리 사람들입니다.  

황제의 자리가 있는 로마와 헤롯이 지은 성전에서는 부활의 예수께서 주신 평화를 결코 알 수 없고 말할 수도 없습니다. 부활하신 예수께서 부활을 기대하고 꿈꾸는 사람들에게 주신 선물은 평화입니다.

아무리 아름다운 색을 칠한다 하여도 제국의 정치와 종교를 가진 이들은 길릴리 사람들이 바라고 원하는 평화를 알 수 없습니다. 남한의 사람들이 바라는 평화와 미국이 바라는 평화, 북한이 바라는 평화는 다릅니다. 우리는 우리의 평화를 원합니다. 전쟁하는 연습소리도 나지 않는 평화, 남과 북이 서로 협력하여 서로에게 도움을 주고 함께 누리는 평화입니다. 지금의 강대국과 무모한 남북한의 정부 인사들은 갈릴리여인들이 원했고 우리가 바라는 평화를 전혀 알지 못합니다. 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무덤에 묻었듯이 하나님의 백성들이 원하는 평화를 생각지도 못할뿐더러 행여 살아날까 힘으로 재갈물리고 있고 더 강하게 조여 맬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어두운 무덤 문을 열고 나와 여인들에게 평화를 선물했듯이 오늘 우리에게 평화를 선물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두려움과 기쁨으로 달리고 있는 우리의 모든 감정과 이성을 예수의 두 발 아래 두어야 하고 그 앞에 엎드려야 합니다. 예수의 두 발을 붙들고 엎드린 우리를 향해 예수님께서는 원수를 사랑하라고,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갈릴리로 가서 자신을 만나라고 말씀하실 것입니다. 갈릴리에서 부활하신 예수를 찾는 사람들은 ‘자신들이 원하는 평화’를 선물 받을 것입니다. ‘평안하냐?’고 물으시는 부활하신 예수의 물음에 긴 호흡을 한 번 하시고 평화를 위해 예수의 두 발을 붙잡고 무릎 꿇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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