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자료
2013.04.22 15:01

2013.4.21 주일설교 "마음 잇기" 말4: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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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 잇기

말라기 4:4-6

4 너희는 율법, 곧 율례와 법도를 기억하여라. 그것은 내가 호렙산에서 내 종 모세를 시켜서, 온 이스라엘이 지키도록 이른 것이다. 5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 내가 너희에게 엘리야 예언자를 보내겠다. 6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돌이키고, 자녀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이킬 것이다. 돌이키지 아니하면, 내가 가서 이 땅에 저주를 내리겠다.

‘세대 차이가 난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이 말이 언제부터 사용되었는지 정확히 알 수는 없습니다. 아마 아담이 가인을 낳고 키울 때부터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해 봅니다. 에덴동산에서 선악과를 따먹은 아버지 아담을 아들 가인은 도저히 이해할 수 없었을 것이고 또 그런 아버지를 받아들이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아담 또한 자신을 이해 못해 주는 아들 가인이 야속하고 철이 없어 그런다고 했을 것입니다. 아담의 두 아들, 가인과 아벨의 비극, 형 가인이 아벨을 들에서 돌로 쳐 죽인 사건의 발단은 아담과 가인, 가인과 아벨 사이의 철저한 소통의 부재에서 온 것 아닐까라는 생각을 해 봅니다.

살다보면 한 지붕 아래 부모자식 간의 소통이 안 되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그러니 다른 문화나 인종, 성, 전통과 규범 속에 살다 만난 사람들의 소통은 오죽할까 싶습니다. 전혀 다른 환경과 상황을 살아온 사람들이 소통하기 위해서는 익숙한 자신의 생각과 습관을 내려놓아야 하고 또한 상대의 문화와 생각, 전통을 그 안에 받아들여야 합니다. 사실 이와 같은 삶은 단순히 말로 끝낼 사한은 아닙니다. 자신을 버리고 넘어서는 과정에는 반드시 비방과 치욕이 따라붙곤 합니다. 그래서 그러한 상황을 잘 넘기고 받아낼 수 있는 성숙한 자신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법구경에 부처님께서 자신을 만들어가는 이야기가 있어 소개합니다.

ex) 부처님이 사위국에 계실 때에 어떤 장로가 와서 부처님을 뵈었습니다. 부처님은 앉으라 하시고 성명을 물으셨습니다. 그는 꿇어앉아 말했습니다. “자는 ‘가제담’이옵고, 선왕(先王) 때에 왕을 위해 코끼리를 다루었습니다.” 부처님이 코끼리 다루는 법을 물으시니, 그는 대답했습니다. “항상 세 가지로 그 큰 코끼리를 다룹니다. 첫째는 굳센 자갈로 그 억센 입을 제어하고, 둘째는 먹이를 적게 주어 그 몸이 불어나는 것을 제어하고, 셋째는 채찍으로 그 마음을 항복받습니다. 이렇게 하면 그것은 훈련이 잘 되어, 왕이 타시거나 싸움에 나가거나 마음대로 부려져서 지장이 없습니다.”
부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세 가지로 모든 사람을 다루고, 또 자신을 다루어 부처가 되었다. 첫째 지성으로 구업(口業)을 제어하고 둘째 자정(慈情)으로 몸의 억셈을 항복받고, 셋째 지혜로 마음의 어리석음을 멸한다.”

부처님은 넓고 깊은 지식으로 입에서 나오는 말을 제어하고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몸의 억셈을 항복받고, 모두가 평화롭게 지낼 수 있는 삶을 구하는 지혜로 마음의 어리석음을 멸하여 부처가 되었다고 가르칩니다. 부처님이 이 말씀을 하신 후 게송을 하셨습니다.

잘 다루어진 노새도 좋고, / 인더스에서 나는 말도 좋고, / 큰 어금니를 가진 코끼리도 좋다. / 자기를 잘 다루는 사람은 더욱 좋다.
노새로도, 말로도, 또 코끼리로도 / 사람이 가지 못한 곳(열반) 갈수 없나니, / 오직 잘 다루어진 자기를 탄 사람, / 그 사람만이 거기를 갈 수 있다. (법구경 234p)

부처님은 자기를 탄 사람, 곧 자신의 감정과 이성을 잘 다룰 줄 아는 사람은 사람이 가지 못한 곳(열반), 좋은 세상을 향해 나가는 사람이라고 가르칩니다. 자신을 잘 다룬다는 것은 타인의 말과 마음을 잘 헤아릴 줄 아는 사람을 말합니다.

세상의 모든 폭력과 전쟁이 자신과 상대에 대한 불이해, 불통으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생각한다면 어느 한 사람을 이해하기 위한 노력이 얼마나 위대하고 소중한지를 깨닫게 해 줍니다.

하나님께서 태초에 인간을 살게 하실 때 서로를 더 깊이 사랑하고, 이해하며, 진실한 마음을 나누고, 평화롭게 서로를 섬기며 살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제국의 노예들을 탈출시켜 호렙산에서 십계명을 주시고 삶의 규범과 율법을 주셨습니다. 그 모든 율법의 핵심은 예수께서 말씀하신 대로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몸과 이웃의 몸을 하나로 생각하는 마음과 삶의 현장을 만들어갈 것을 원하셨습니다. 그리고 모든 세대를 거쳐 그 말씀을 전할 예언자를 보내시며 사람들과 소통하고자 했습니다.

본문은 구약성경의 마지막 부분으로 모든 세대에 걸쳐 선포된 하나님의 동일한 예언의 말씀이 선포되었습니다. 말라기가 기록될 당시 이스라엘은 형식위주와 십일조와 제물에 대한 속임수, 율법에 대한 무시, 마음의 무감각함이 성행하였습니다. 학개나 스가랴와 같은 선지자들이 성전만 지으면 포로에서 귀환한 이스라엘이 모든 민족과 나라들 위에 우뚝 설 것이라 예언했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예언은 이루어지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짓고 하나님께 예배하면 만사형통 하리라는 생각과 신앙은 예나 지금이나 다를 게 없습니다. 이러한 신앙의 내면에는 자신의 욕심을 하나님의 이름으로 교묘하게 감싸는 것일 뿐 진실한 삶의 방향은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성전을 짓고 난 후 자신들이 기대한 것만큼 큰 변화가 일어나지 않자 탐욕의 본심을 드러내었습니다. 본문에서는 각자의 욕심 된 마음으로 인해 어른들은 자식들에게, 자식들은 어른들에게 마음이 틀어져 갈등이 벌어졌다고 전합니다. 이 말은 전반적인 사회 분위기가 소통이 아닌 불통으로 가득 찼다는 말입니다. 하나님과 단절되고 이웃들과도 꽉 막힌 상황, 다른 사람의 말과 마음에 전혀 아랑곳 하지 않고 자신의 생각과 이기심만 내세우는 고집불통의 세상이 되어 버린 것입니다.

말라기는 이러한 불통의 시대가 계속되면 주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를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주의 날이 이르기 전 예언자 엘리야가 먼저 와서 사람들의 마음과 마음을 이어줄 것이라고 예언합니다. 마음과 마음이 연결되고 통하여 평화를 만들어 낼 때 하나님의 저주는 피해 갈 것이지만 그렇지 못한다면 주의 날에 저주가 내릴 것이라고 경고합니다.

오늘 한국 사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서로를 좀 더 이해하고 알아주는 진심어린 ‘마음 나눔, 마음 잇기’입니다. 사람들의 자살률이 늘어나는 것도, 남북한의 어리석은 대치상황도, 파괴되는 가정과 관계들도 모두 진실한 마음을 나누지 못하기 때문에 일어나는 아픔들입니다.

지금 우리 사회는 자신의 이야기를 들어주라고 아우성치고 있습니다. 슬프고 아파서, 외롭고 힘들어하며 내는 소리가 곳곳에서 들려옵니다. 아파트에서 떨어진 학생들의 신음소리, 빚에 시달리다 온 가족을 차에 태우고 강으로 돌진하며 울부짖는 소리, 폭발로 놀라는 아이의 울음소리, 모두 자신을 그렇게 몰아간 누군가에게 그리고 자신을 기억해 주는 사람들과 사회에 이해의 손을 내미는 것입니다. 그러나 어느 누구도 그 손을 잡지 않고 그들의 소리를 들어주지 않는다면 그보다 더한 비극은 없을 것입니다.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들의 죽음과 분신하는 노동자, 거리와 종탑에서 자신의 소리를 내는 노동자들의 내미는 손을 잡지 않는 사측과 정치권과 무관심하게 지나는 시민들을 보노라면 어쩌면 지금 우리 사회는 소설 ‘눈 먼 자들의 도시’처럼 변해 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썩어가고 더러워진 인간사회의 진실을 보지 못하고 있는 도시, 어쩌면 우리는 도시에 사는 것만으로도 눈먼 자로 살아가고 있는 것 같습니다.

70억 인구가 살아가는 지구에서 나는 식량은 120%가 넘게 생산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20%의 인구는 굶주려 죽어가고 있습니다. 언제부터인가 사랑하고 나누는 마음을 잃어버린 비정상적인 우리들의 모습을 어떻게 보아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배고픈 사람에 대한 몸과 마음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 살아가는 우리의 현실이 강하게 다가올 때면 나의 몸과 영혼은 멍 때리고 있을 뿐입니다.

잘 정비된 도시와 화려하고 높은 건물들, 저녁이면 휘황찬란하게 빛을 내는 네온사인들, 아침이면 어김없이 운행되는 지하철과 버스들...어느 작가는 도시를 규정하기를 익명성이 보장되고 그것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이 사는 곳이라 했습니다. 그리고 도시사람들은 익명성 속에서 누군가 자신에게 말을 걸어오기를 한 없이 기다리는 외로운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분주하고 화려한 도심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내면과 삶은 외로움과 정서적이고 관계적 궁핍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과 마음이 익명성이라는 낯선 경계로 닫혀버린 도시에서 살아가고 있습니다. 옛말에 몸 떨어지면 마음도 멀어진다고 했습니다. 서로의 마음을 더 깊이 알아주고 만나려면 몸이 가까이 만나야 합니다. 같은 공간, 같은 시간을 함께 가져야하는 수고를 아끼지 말아야 합니다. 장애인과 만나고, 소수자와 만나고, 해고노동자, 비정규직노동자와 만나고, 전쟁 난민들과 피해자들과 만나야 합니다. 닭과 돼지와 소, 나무와 뭇 생명의 몸과 가까이 만나는 시간을 가져야 합니다. 그래야 그들의 마음을 만날 수 있고 함께 마음을 잇댈 수 있기 때문입니다. 몸이 멀리 있다 보면 익명성이라는 거대한 도시의 파도가 우리의 마음까지도 남김없이 삼켜버릴 것입니다.

그렇기에 가족, 친구, 공동체의 만남의 시간을 소중하게 여기시기 바랍니다.  어느 곳 어느 시간이든지 서로의 마음과 마음을 잇대는 시간으로 가득 채우시기 바랍니다. 남과 북은 무조건 만나야 합니다.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무엇이든 좋으니 만나서 서로의 마음 잇기를 해야 합니다. 영화 아바타를 보면 주인공 아바타와 동물이 서로 교감하는데 아바타의 머리카락과 동물의 촉수가 연결 될 때 한 마음이 됩니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이 만든 ET의 한 장면은 어린 주인공과 외계인 ET의 손가락 터치장면입니다. 영화에서 표현하듯이 우리의 마음 잇기도 큰 것이 아닙니다. 누군가를 향한 작은 사랑의 마음, 자비롭고 응원하며 함께하는 작은 마음과 실천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 성령으로 하나 된 줄이 되어 우리의 삶에 남을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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