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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靈)을 분별 하는 능력

요한일서4:1-7 1  사랑하는 여러분, 어느 영이든지 다 믿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가를 시험하여 보십시오. 거짓 예언자가 세상에 많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2 여러분은 하나님의 영을 이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곧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 3 그러나 예수를 시인하지 않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은 영입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입니다. 여러분은 그 영이 올 것이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 영이 세상에 벌써 와 있습니다. 4  자녀 된 이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며, 여러분은 그 거짓 예언자들을 이겼습니다. 여러분 안에 계신 분이 세상에 있는 자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5 그들은 세상에서 났습니다. 그런 까닭에 그들은 세상에 속한 것을 말하고, 세상은 그들의 말을 듣습니다. 6 우리는 하나님에게서 났습니다. 하나님을 아는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고, 하나님에게서 나지 아니한 사람은 우리의 말을 듣지 아니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알아봅니다. 7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

중국 무협 영화 중 빠지지 않고 나오는 주제가 있는데 ‘정무문’이라는 쿵푸도장 입니다. 그 중에 하나를 보면 견자단이 주역을 맡은 '정무문 100대 1의 전설'이 있습니다. 정무문의 한 제자가 횡포를 일삼는 일본인 100명이 있는 도장에 찾아가 응징한다는 내용입니다.

구약성경 왕들의 열전에는 ‘정문문의 100대 1의 전설’보다 더 극한 장면이 나옵니다. 사사기에는 삼손이 나귀 턱뼈로 블레셋 군인 1000명과 싸워 이겼다는 내용 등 전설 같은 이야기가 많이 있습니다. 그 중 아합 왕과 이세벨 왕비의 녹을 먹고 있는 바알의 예언자 450명과 아세라의 예언자 400명 도합 850명과 하나님의 예언자인 엘리야와의 갈멜산 대결이 있습니다. 갈멜산 대결은 구약성경에서 가장 극적인 장면들이 많아 선과 악, 하나님과 우상숭배에 대한 이야기를 할 때 많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특별히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 제물을 태운 뒤 엘리야가 이스라엘 백성들을 향해 ‘하나님의 편에 설 것이냐?’ ‘바알의 편에 설 것이냐?’ 라고 물을 때는 갈멜산 대결에서 빼 놓을 수 없는 장면입니다.

오늘 본문은 엘리야의 요구처럼 하나님의 영과 그리스도의 적대자의 영을 분별하고 하나님의 영으로 나고 살아야 한다고 가르침을 주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을 이해하기 위해 갈멜산 장면을 조금 더 살펴보겠습니다.

바알과 아세라의 제사장들과 엘리야가 대결하게 된 계기는 아합 왕의 배교 때문이었습니다. 아합 왕은 이세벨을 왕비로 맞으며 바알과 아세라 신전을 세우고 섬겼습니다. 그 결과는 절대왕권이라는 힘의 정치를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강력한 군사력을 이용해 백성들을 억압하고 착취했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적으로 성장한 것 같아 보여도 사회 전반적인 부분은 부정과 부패로 가득했습니다. 아합의 통치 기간 중 3년 반이라는 오랜 가뭄이 들었을 때 백성들의 빈곤과 고통은 극에 달했습니다. 그러나 아합과 이세벨의 권력은 백성들의 가는 목을 더 움켜쥐었습니다.  

엘리야는 아합 왕의 절대왕권 통치에 반대하며 하나님을 섬기며 그 율법을 따라 백성을 통치할 것을 요구했습니다. 그러던 중 엘리야는 오랜 가뭄 끝에 아합과 그의 측근 세력인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을 만나 그들에게 누가 믿고 따라는 신이 진정한 신인지 가리자고 제안합니다.

엘리야와 바알선지자들은 갈멜산 제단 위에 제물을 잡아 각자의 신에게 기도하여 불을 내리는 쪽이 진리의 신일 것이라 합의 한 뒤 극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먼저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 850명의 기도로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제단에 제물을 올려놓고 아침부터 한낮이 될 때까지 ‘바알은 응답해 주십시오.’ 라고 부르짖었습니다. 아무런 응답이 없자 신접한 모습으로 날뛰기 시작하였지만 아무런 소리도 아무 기척도 없었습니다. 결국 타임오버에 걸려 엘리야에게 기회가 넘어갔습니다.

엘리야는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의 기도에 실망한 백성들을 가까이 오라고 불렀습니다. 그리고 백성들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무너진 하나님의 제단을 고쳐 쌓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 야곱의 열두 아들의 숫자에 맞게 돌 열두 개를 정성스럽게 올립니다. 그 위에 송아지를 잡고, 쌓아 놓은 나무에 넘치도록 물을 붓습니다. 물이 제단 주위로 넘쳐흘러 옆 도랑에 가득 괴었을 때 엘리야가 나와 큰소리로 외쳤습니다. "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이제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제가  모든 일이 당신의 말씀을 쫒아 한 것임을 모든 사람으로 하여금 알게 하여주십시오....." (왕상18:36)

엘리야와 바알의 예언자들이 신을 찾고 부르는 모습 속에 차이가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예언자들은 '오, 바알이여 대답 하소서'(왕상18:26) 라고 부르짖습니다. 그들은 바알신이 구체적으로 누구의 신이라는 것을 말하지 않습니다. 그들은 단지 바알은 풍요를 가져다주는 신이라고 믿었기 때문에 그의 이름을 부르고 있습니다.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에게 바알은 부와 명예와 권력을 가져다주는 전능한 신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사고와 신의 영역에는 3년 반 동안 온 몸으로 가뭄을 겪고 있는 이스라엘의 백성 어느 누구 한 사람도 끼어들 틈이 없습니다. 그들에게는 인간의 몸과 삶은 빠져있고 자신들을 풍요하게 해 줄 바알의 능력만이 중요할 뿐입니다.

그러나 엘리야가 하나님을 부르는 하나님은 바알과 전혀 다른 모습으로 불려집니다. 엘리야는 "오,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야훼여, 이제 당신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고 제가 당신의 종이며..." 엘리야는 역사와 육신으로 이어져 있는 하나님을 부르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자신이 믿고 기도하는 신은 3년 반 동안 온 몸으로 가뭄을 견디고 있는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저 하늘 높이 앉아 인간들을 구경하시는 분이 아닌 인간 역사와 현실 속에 존재하시는 하나님, 인간의 몸이 경험하는 희노애락통을 직접경험하시고 알아주시며 그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고 믿어 그 하나님께 기도한 것입니다.

  엘리야와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들의 대결은 엘리야의 승리로 끝이 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의 기도에 불로 응답하셨고 자신은 모든 현실을 경험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나님 이라는 것을 확인시켜 주셨습니다.

오늘 요한 1서 4장 1~6절에서는 어느 영이든지 다 밀지 말고, 그 영들이 하나님에게서 났는지 시험하여 보라고 명합니다. 왜냐하면 역사적인 예수를 경험한 열두 제자들과 그 밖의 많은 제자들이 세상을 떠나고 시간이 흐르면서 예수의 역사성, 즉 하나님의 아들 예수가 육체로 태어나서 살았느냐라는 의문을 가진 사람들이 교회 안에서도 나타나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의 육신을 부인하는 그들은 세상의 모든 육체를 철저하게 죄악시하고 부정했습니다. 그래서 인간의 육체뿐 아니라 이 땅의 모든 것은 썩어질 것이고 사라질 것에 불과했습니다.

요한은 사람들의 믿음과 신앙, 진리의 척도를 단순하게 이야기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육신을 입고 오셨음을 시인하는 영은 다 하나님에게서 난 영입니다.”(2절) 육신을 가진 예수는 3년 동안 가뭄을 겪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육신과 다를 게 하나도 없습니다. 예수를 육신으로 보내신 하나님과 육신으로 오신 예수, 그 안에 거하시는 성령은 진리의 영이십니다. 진리의 영은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에게서 나지 않는 미혹의 영은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을 부인합니다.

우리는 엘리야의 ‘네가 하나님 편에 설 것이냐? 바알의 편에 설 것이냐?’ 라는 물음을 기억하며 ‘네가 육신의 편에 설 것이냐? 영의 편에 설 것이냐?’라고 질문할 수 있습니다. 많은 기독교인들은 생각하기를 육신과 영이라고 하면 ‘육신’은 나쁘고 ‘영’은 좋은 거 아니냐고 합니다. 그러나 결코 아닙니다. 예수님의 육신과 영은 나누어지지 않습니다. 그러하기에 예수님의 육신을 부인하면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된다고 오늘 본문은 강하게 경고합니다.

예수의 육신을 거부하던 적 그리스도인들은 인간의 육신 또한 거부했고 하찮게 여겼습니다. 그들의 영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영은 마치 바알과 아세라 제사장들이 불렀던 응답 없고 아무 소리도 없는 거짓의 신에게서 난 것에 불과합니다.

그리스도를 적대하는 미혹의 영은 이미 우리 종교와 삶에 깊이 들어와 있습니다. 영의 충만함과 구원만을 외치며 사는 기독교인들, 사실 그들의 육신은 재물과 명예와 권력으로 치장하기 좋아하고 끊임없이 추구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영혼이 그 모든 것을 영원토록 누릴 것이라고 종교적인 확신에 차 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되지 않으면 갈멜산의 거짓 예언자들처럼 온 몸에 종교적인 칼부림을 하며 하나님과 무지한 백성들을 협박할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육신과 영을 나누고 육신을 거부하고 죄악시하는 그리스도의 적대자들을 분명하게 보고 있습니다. 종교와 인종, 성과 성적지향, 문화가 다르다 하여 그들의 육신에 대한 혐오증을 나타내고 폭력을 가하는 일들을 쉽게 봅니다. 세상의 작은 육신 하나를 소홀히 하고 거부하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적대자가 되는 것입니다.

이제 나와 우리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 중 어디에 속해 있는지, 내가 하나님께로부터 난 사람인지 적대자의 영에게서 나온 사람인지는 분명해 집니다. 육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에 따라 하나님의 편에 서 있는지 바알 편에 서 있는지 판가름 나게 되는 것입니다.

요한은 진리의 영과 미혹의 영을 예수님의 육신을 인정하는 것으로 알아본다고 강조하면서 육신을 가진 그리스도인들에게 요구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7)

요한이 하고 싶은 이야기는 육신을 사랑하는 그리스도인이 되자는 것입니다. 사랑하고 있는 사람은 사랑이신 하나님에게서 난 사람들이라고 말합니다. 두려움이 있는 사람은 육신을 부인하고 사랑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예수그리스도의 육신을 믿고 고백하는 사람, 예수님과 자신의 육신, 세상의 모든 육신이 하나라는 것을 깨달아 알며 믿고 사는 사람은 아무런 두려움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사랑이신 하나님께로 모든 육신이 나왔고 그 안에서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모든 육체를 가진 생명을 사랑하는 것, 그것은 예수그리스도의 성육신을 믿는 것이고 하나님의 사랑을 실천하는 믿음의 열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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