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자료
2012.01.27 09:56

2012.1.22 주일설교 "말의 힘" 잠 18: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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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힘
[잠 18:20~21]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21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ex) 칭찬하는 말이 주는 힘
한 소년이 극도의 콤플렉스에 빠졌다. 아홉 살 때 있었던 한 사건 때문이었다. 우물가를 지나던 소년은 물 긷는 여인들로부터 충격적인 말을 들었다. “저 애 참 못생겼다. 훌쭉한 얼굴에 ... 눈은 왜 저렇게 음푹할까.” 소년은 그날부터 외모에 대해 자신감을 잃었다. 무지한 여인들이 실없이 던진 말이 가슴속에 상처로 남았다. 머리가 명석한 소년은 스물네살 때 미국 프린스턴 대학에 유학 갔다. 그러나 6년이 지나도 박사학위를 받지 못했다. 그런데 아름다운 한 미국 여성이 칭찬에 힘을 얻었다. “당신처럼 잘생긴 동양학생은 처음이예요.” 자신감을 회복한 그는 열심히 공부해 박사학위를 받았다. 그 소년의 이름은 문동환 박사다. [아름다운 내일을 여는 213가지 이야기 중)

잠언 12장 18절에는 ‘함부로 말하는 사람의 말은 비수 같아도, 지혜로운 사람의 말은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다.’라고 했습니다. 우물가의 여인들이 지나는 못생긴 아이를 보고 함부로 나눈 이야기는 비수가 되어 어린아이가 외모의 콤플렉스를 가지게 했습니다. 그 콤플렉스는 외모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어떤 일에 있어 자신감이 결여된 소극적인 사람으로 만들어 버렸습니다. 반면 지혜로운 말 한마디는 아픈 곳을 낫게 하는 약이 되어 자신감을 회복시키고 문박사님의 공부도 마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문동환박사는 고 문익환 목사의 동생이기도 합니다. 그는 2005년도에는 6.15선언 실천을 위한 남북 공동행사 준비위원장으로 수고도 하셨습니다. 문 박사님은 정치란 방향을 명확히 하고 국민을 깨우치는 것이라면서 정치인들의 말이 옳다고 사람들이 달라붙을 수 있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곧 정치인들은 옳은 말을 하고 바른 말만 하여야 한다는 겁니다. ‘진실한 말을 하면 영원히 남지만, 거짓말은 한순간만 통할 뿐’(잠12:19)이기 때문입니다.

바른말과 진실한 말은 정치인들에게만 요구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사람들이 살아가는데 반드시 필요한 덕목입니다. 언어학자인 촘스키는 인간이 사용하는 일상적인 말은 인간이 지금까지 이룬 어떠한 성취보다 뛰어나고, 말 속의 규칙들, 그리고 창조 되는 그 독창적인 특성에 경외감을 가지게 된다고 했습니다.[촘스키 러셀을 말하다. p95]

우리들이 사용하는 말에는 마술과 같은 힘과 능력, 창조성이 가득 차 있습니다. ‘따뜻한 말은 생명나무와 같지만, 가시돋힌 말은 마음을 상하게 한다’(잠15:4)고 했습니다. 즉 우리의 말에는 생명을 살리기도 상하게도 하는 힘이 있습니다.

가정에서 부부들이 서로를 무시하는 말을 들어 보십시오. 얼마나 기분이 상하고 마음이 움츠러드는지 모릅니다. 우리는 가정에서 말 한마디에 상처받고 하루가 우울해 지고 하는 일도 제대로 되지 않는 경우를 경험합니다. 남자와 여자가 처음 창조될 때 남자가 처음 여자를 보고 했던 말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이제야 나타났구나, 이 사람! 뼈도 나의 뼈, 살도 나의 살, 남자에게서 나왔으니 여자라고 부를 것이다.”(창2:23)입니다. 다시 말하면 ‘네 뼈나 나의 뼈나, 너의 살이나 나의 살이나 별 다를 것이 없이 우리는 하나다.’라는 것입니다. 세상의 모든 남자와 여자는 다를 것이 없이 평등한 존재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을 남성우월주의로 잘못 해석해서 남자들은 여자들을 업신여기고 억압하는데 사용했습니다. 보통 남자들은 여자들이 시사정보에 어둡다고 멸시하고 여자들은 남자들이 능력이 없다고 구박하기도 합니다. 서로의 입장과 상황을 신중하게 생각하지 않고 말을 ‘툭’하고 던져 버립니다.

결혼초기 아이들을 낳고 늘어진 아내의 뱃살을 보고 헛된 말을 했다 심하게 야단맞은 적이 있었습니다. 아내의 몸은 생명을 잉태하고 기르고 낳은 몸이기에 변화를 갖는 것이 당연한데도 실없는 남편의 마음과 말 때문에 상처를 받았었습니다. 성경은 ‘선한 말은 꿀송이 같아서, 마음을 즐겁게 하여 주고, 쑤시는 뼈를 낫게 하여 준다.’(잠16:24)고 했습니다. 우리는 가장 가까이 사는 가족이나 친구들에게 어떠한 상황에서든지 신중하게 생각하며 가장 선한 말을 하고 따뜻한 말을 해야 합니다.

살다보면 우리는 원치 않는 말을 들을 때가 많이 있습니다. 우리 몸 중에 다른 사람에게 가장 공격당하기 쉬운 부분이 있습니다. ‘귀’입니다. 눈은 자신이 보기 싫으면 감으면 되고 코는 막으면 됩니다. 손은 집지 않으면 되고 발은 가지 않으면 됩니다. 그런데 귀는 쉽게 되지 않습니다. 자신이 듣기 싫은 말도 들려올 때가 많이 있습니다. 지하철을 타고 가다보면 전화를 큰 소리를 받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경우에 맞는 말은, 은쟁반의 담긴 금 사과’(잠25:11) 같지만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큰 소리로 전화 받는 소리를 들어야만 하는 귀는 내용을 떠나 완전 밥맛입니다.

또 누군가가 내 험담을 하거나 나를 차별하고 무시하는 말을 들어보십시오. 이건 도저히 견디기 힘든 부분입니다. 안 들으면 좋겠는데 들려오면 어쩔 수 없이 당하게 되는 폭력입니다. 그래서 전 7:21에는 “남들이 하는 말에 마음을 쓰지 말아라. 자칫하다가는 네 종이 너를 욕하는 것까지 듣게 된다.”고 했습니다. 남들이 나에 대해 말하는 소리가 귀에 들릴 수는 있습니다. 그런데 그 말에 마음을 쓰지 말고 빼앗기지 말라고 합니다. 자칫하다가는 가장 가까운 사람들이나 별 시덥지 않은 사람의 말에도 넘어질 수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른 말을 해 주는 것이 우정’(잠24:26)이라는 교훈을 잊지는 말아야 합니다. 곧 나에게 유익된 달고 쓴 말은 얼른 삼켜 내 것으로 만들고 자신이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이것은 성경의 지혜자가 우리에게 해 주는 말입니다.

얼마 전에 상영된 ‘혹성탈출’이라는 영화가 있었습니다. 인간의 뇌질환을 치료하기 위해 ‘큐어’라는 약물을 만들어 침팬지를 실험하였는데 한 침팬지로부터 ‘시저’라는 새끼 침팬지가 태어납니다. 시저가 태어날 때 그 어미가 새끼를 보호하기 위해 난폭해 졌는데 연구가 실패하였다고 보았습니다. 그래서 연구소는 모든 침팬지들을 몰살 시킬 것을 결정하지만 과학자는 포기하지 않고 어린 침팬지를 자신이 집에 데려갑니다. 이 시저는 뇌기능이 인간 수준으로 발달하게 되어 말도 알아듣고 의사전달은 수화로까지 하게 됩니다. 시저는 자신과 함께 살던 뇌질환 노인을 보호하기 위해 이웃집 남자에게 해를 가하고 침팬지 보호시설로 가게 됩니다. 그곳 관리인의 동물학대는 도를 넘고 관리인의 폭력적인 행동에 ‘No' '안돼’라고 소리칩니다. 영화 속 침팬지가 인간의 말을 하였는데 폭력에 대한 거부를 그리고 있습니다. 결국 시저가 그곳의 침팬지와 다른 유인원들을 데리고 자유를 찾아 숲속으로 향하게 됩니다. 시저는 탈출 과정에서 다른 유인원들이 인간을 죽이려하면 ‘안돼’라고 소리칩니다.

영화에서 많은 이야기를 할 수 있겠지만 생명을 죽이고 상처 주는 일에 있어 단호하게 ‘안돼’라고 말해야 하는 용기와 결단, 인내가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하는 것 같았습니다. 현재 우리 사회의 시스템은 경쟁이라는 매트릭스에 걸려 있습니다. 서로를 비교하고 평가하며 더 뛰어나야 살아남는다고 종용하고 있습니다. 이 경쟁이라는 매트릭스에서 빠져나가면 죽을 것 같은 이야기를 하고 그 시스템에 맞추어 살아야 되는 것이 진실이라고 말합니다. 정치인이고 경제인이고, 교육자건 할 것 없이 거의 모든 사람들이 경쟁에서 이겨야 된다고 말합니다.

그런데 이 말은 독이 되어 아이들을 우울증과 죽음으로 몰아넣고 있습니다. 이 독이 든 말은 맹렬하게 타오르는 불이 되어 사람들을 악으로 꾀이고 있습니다. 정치인들은 거짓말을 하고, 경제인들은 시장을 독점합니다. 자본은 계속해서 이 독이든 경쟁시스템을 재생산 하고 부추기고 더 견고히 합니다.

민족의 고유명절인 설날인 오늘 하나님께서 우리가 사는 세상에 어떠한 말을 하고 살아야 하며 그 말에는 어떠한 힘이 있는지 말씀하고 계십니다.

[잠 18:20-21]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의 열매가 사람의 배를 채워 주고, 그 입술에서 나오는 말의 결과로 만족하게 된다. 죽고 사는 것이 혀의 힘에 달렸으니, 혀를 잘 쓰는 사람은 그 열매를 먹는다.

사람의 입에서 나오는 말은 열매와 같아서 사람들의 배를 채워주고, 또한 입술의 말의 결과로 만족을 얻는다고 하십니다. 서로를 칭찬하고 높여주며 존대해 주는 말은 사람의 배를 채워줍니다. 예수께서는 사람은 떡으로만 사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아간다고 하셨습니다. 세상의 경쟁시스템이 아무리 견고하다 하더라도 우리의 입술에서부터 섬김과 나눔, 배려의 말들이 시작되고 전파된다면 우리 주변을 거미줄처럼 둘러싸고 있는 거짓된 매트릭스는 드러나고 파괴될 것입니다.

우리가 사는 진정한 세상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만물이 되어 오늘 우리의 삶과 함께 하고 있습니다. 태초에 하나님께서 ‘빛이 있으라’하니 빛이 있었고, ‘땅은 푸른 움을 돋아나게 하여라’하니 씨를 맺는 식물과 열매 맺는 나무가 그 종류대로 땅에서 돋아났습니다. ‘하늘 창공에 빛나는 것들이 생겨서, 낮과 밤을 가르고, 계절과 날과 해를 나타내는 표가 되어라’ 말씀하시니 태양과 달과 별이 생기고 낮과 밤이 존재하게 되었고 우리는 계절과 날과 해를 보내고 있습니다. ‘물은 생물을 번성하게 하고, 새들은 땅 위에 하늘 창공으로 날아다녀라’ 말씀하시니 우리가 보는 것처럼 새들이 하늘을 날고 있습니다.

인간과 모든 생명체들이 존재하고 살아갈 수 있는 것은 태초부터 하나님의 ‘생명의 언어’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살게 하신 지구생명들은 서로를 위해 존재합니다. 그래서 모든 생명들은 ‘생명의 언어’를 주고받아야 합니다. 서로의 생명을 살리고 충만케 하는 말을 사용해야 합니다. 서로를 죽이는 말을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결코 바라시지 않는 것입니다.  

[엡 4:29] 나쁜 말은 입 밖에 내지 말고, 덕을 세우는 데에 필요한 말이 있으면, 적절한 때에 해서, 듣는 사람에게 은혜가 되게 하십시오.

적절한 때에 하는 덕스럽고 은혜스러운 말은 듣는 사람들에게 메마른 땅에 심겨진 식물에게 물을 주는 것과 같습니다. 그 말의 힘은 듣는 사람의 몸과 영혼을 소생시키고 성숙하게 할 것입니다. 먼저 내 자신에게 그 은혜롭고 덕스러운 힘이 넘치는 말을 많이 해 주십시오. 그리고 가족과 친구들, 이웃들, 공동체의 지체들 서로에게 해 주십시오. 그 말의 힘은 우리 자신뿐 아니라 입에서 입으로 전해져 온 세상에 가득하게 되고 결국 세상의 모든 악을 변화 시킬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서면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내가 너를 사랑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그 음성을 들으며 그 받은 사랑의 힘을 더 풍성하게 누리고 전하는 한 주간이 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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