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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늘을 열어 보시시는 하나님
에스겔1:1-3
1 때는 제 삼십년 넷째 달 오일이었다. 그 때에 내가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그발 강 가에 있었다. 나는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보았다. 2 여호야긴 왕이 포로로 잡혀 온 지 오 년째가 되는 그 달 오일에, 3 주님께서 바빌로니아 땅의 그발 강가에서 부시의 아들인 나 에스겔 제사장에게 특별히 말씀하셨으며, 거기에서 주님의 권능이 나를 사로잡았다.

서태지와 아이들이 부른 ‘환상 속의 그대가 있다’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결코 시간이 멈추어질 순 없다 yo 무엇을 망설이나 되는 것은 단지 하나뿐인데
바로 지금이 그대에게 유일한 순간이며 바로 여기가 단지 그대에게 유일한 장소이다.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모든 것이 이제 다 무너지고 있어도 환상 속엔 아직 그대가 있다.
지금 자신의 내 모습은 진짜가 아니라고 말한다. ~ 자신은 꼭 잘될 거라고 큰 소리로 말하고 있다. 하지만 지금 그대가 살고 있는 모습은 무엇일까
환상 속엔 그대가 있다. ~]

이 노랫말을 살펴보면 변하는 세상도 인지하지 못하고, 현재의 자신도 보지 않고 자신만은 잘될 거라 환상 속에 사는 사람들아 깨어나라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23년 전 쯤 한국가요계에 서태지와 아이들이 무대에 올라 노래를 시작할 때 많은 어른들, 특히 기독교인들은 충격을 받았습니다. 자신들에게 익숙한 리듬과 춤이 아니어서인지 그들의 노래를 악마의 노래로 치부하기도 했습니다. 당시 기억에도 기독교계는 문화충격으로 한 동안 시끄러웠습니다. 어찌 보면 자신들에게 익숙한 문화적 환상에 빠져 살고 있었다고 해도 될 것입니다. 그러다 자신들만의 환상이 벗겨지니 혼돈이 온 것입니다. 혹시 우리도 내가 설정해 놓은 헛된 환상과 허울이 있지는 않는지 살펴볼 일입니다.

성경의 많은 부분에는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시는 환상과 인간을 해하는 거짓 환상에 대한이야기가 나옵니다. 먼저 인간에게 유익함을 주는 환상을 창세기에서 살펴보면 아브람과 야곱이 환상 가운데서 하나님을 뵙고 말씀을 듣습니다.

[창 15:1] 이런 일들이 일어난 뒤에,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 아브람에게 말씀하셨다. "아브람아, 두려워하지 말아라. 나는 너의 방패다. 네가 받을 보상이 매우 크다."
[창 46:2] 밤에 하나님이 환상 가운데서 "야곱아, 야곱아!" 하고 이스라엘을 부르셨다. 야곱은 "제가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보낸 예언자들에게 말씀하실 때 언제나 환상을 보여 주시고 자신의 백성들에게 자신의 계획을 알리시기도 하셨습니다.

[호 12:10] 내가 예언자들에게 말할 때에, 여러 가지 환상을 보였으며, 예언자를 시켜서 백성에게 내 계획을 알렸다.

이러한 환상은 신약성경에서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행 9:10] 그런데 다마스쿠스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있었다. 주님께서 환상 가운데서 "아나니아야!" 하고 부르시니, 아나니아가 "주님, 여기 있습니다" 하고 대답하였다.
[행 11:5] "내가 욥바 성에서 기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때에 나는 황홀경 가운데서 환상을 보았는데, 큰 보자기와 같은 그릇이, 네 귀퉁이가 끈에 매달려서 하늘에서 드리워져 내려서 내 앞에까지 왔습니다.

이와 같이 성경을 살펴보면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에게 중요한 말씀을 하실 때 항상 듣는 자의 눈을 열어 환상을 보여주시거나 환상 중에 나타나시어 말씀하시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곧 하나님의 말씀이 이미지 되어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더 정확하게 메시지의 내용을 파악하게 한 것입니다.

우리는 오늘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서 보여주시는 환상은 무엇이며 그 가운데서 들을 수 있는 말씀은 어떤 내용인지 에스겔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환상을 보여주시는 때와 장소

오늘 본문의 에스겔은 하나님께서 열어서 보여주시는 환상을 보았는데,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시도 때도 없이 나타나 환상을 보여주신 것은 아닙니다. 먼저는 에스겔이 경험한 환상의 때와 장소입니다.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신 환상을 본 때와 장소는 그가 여호야긴 왕과 함께 바빌로니아에 포로로 잡혀 온지 오 년째가 되는 해에 바빌로니아의 그발 강가에서 포로로 잡혀 온 사람들과 함께 앉아 있을 때였습니다.

에스겔에게 있어 자신의 수많은 민족과 왕까지 사로잡혀 먼 타국에 포로로 끌려온 현실은 받아들이기 힘든 상황이었을 것입니다. 5년이라는 시간이 지나고 이제 현실을 조금은 인정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함께 포로 된 자신의 민족들과 앉아서 왜 우리가 이렇게 포로로 끌려오게 되었을까 고민하며 끊임없는 이야기와 토론을 하였을 것입니다.

포로들은 하루의 고된 노역을 마치고 그발 강가에 세워진 더럽고 냄새나는 포로들의 게토에돌아 옵니다. 포로들은 주인들의 농사일이나 건물을 짓는 일에 강제노역을 했습니다. 그들은 최소한의 식량과 물품으로 하루하루를 죽지 못해 살아가는 힘겨움 속에 있었습니다. 에스겔이 37장에서 마른 뼈들이 골짜기마다 너부러져 있는 환상을 보는 것처럼 포로들은 살아있지만 바짝 마른 뼈와 같았습니다.

바빌로니아로 끌려간 포로들의 삶은 비참하기 그지없었습니다. 우리 선조들의 역사에도 이러한 포로시기가 많았습니다. 1636년 청나라가 조선을 공격하여 포로로 끌려간 조선인들이 50~60만명에 이른다고 [병자록]에는 기록되어 있습니다. 청나라로 끌려간 조선의 포로들은 소, 말 같은 동물로 취급을 받았습니다. 포로들은 심해의 노예시장에서 물건처럼 사고 팔려졌고 행여 도망치다 잡히면 잔혹하게 살해되었습니다. 건장한 남자 포로들은 조선영이라는 조선인 외인부대에 편입되어 청군의 보조부대 역할을 했습니다. 여자들은 더 비참했습니다. 왕실과 귀족들의 첩으로 팔려가거나 그곳에서 본 부인의 시기로 죽임을 당하기 일쑤였습니다. 또한 많은 여성들이 윤락가로 팔려갔습니다. 그러다 조선으로 돌아오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이들을 환향녀(還鄕女)라고 불었습니다. 그러나 남편들이 이들일 받아들이지 않아 친정에 있거나 자살을 하기도 하는 큰 사회문제가 되었습니다. 조정에서는 “홍제천에서 목욕을 하고 도성으로 들어오면 그 죄를 묻지 않고 차후에 환향녀들의 정조문제를 거론하는 자는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엄단하겠다.”는 조치를 취했으나 별 효과가 없었습니다. 환향녀들이 송환되어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는 아이들을 낳았는데 ‘오랑케에게 몸을 더럽혀 낳은 자식’이라 하여 오랑케 호(胡)에 포로(虜)자를 써서 호로자식이라 불렀습니다. 이 환향녀들은 생활이 궁핍하여 자녀들을 제대로 돌보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그 자녀들이 굶주림과 헐벗음으로 도둑질을 하거나 다른 아이들과 싸우면 호로자식이라 불리며 멸시와 천대를 받았습니다. 우리가 아직도 누군가를 멸시할 때 사용하는 환향녀와 호로자식이라는 말은 우리 선조들의 아픈 포로의 역사에서 비롯된 말인 것입니다. 당시 관료들의 무능함으로 전쟁이 일어나고 고통은 가난한 백성들이 고스란히 받게 된 것입니다.

바빌로니아로 끌려온 이스라엘 포로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인권과 존중은 사라지고 오로지 전쟁의 전유물로 전락한 존재가 되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의 고통가운데 앉아 함께 아파하고 슬퍼하며 해방과 구원을 열망하며 하늘을 향해 있는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 환상을 보이십니다. 그리고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놓고 자신의 말씀을 하십니다. 또한 에스겔은 그 가장 낮은 자리, 고통의 자리에서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을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환상을 보여주시는 때와 장소는 가장 낮은 사람들의 자리이며 그들과 함께 할 때입니다.

* 하늘이 열리는 가운데 에스겔이 듣고 선포한 말씀

에스겔이 삶을 절망하고 포기하고 있는 포로들이 모인 그발 강가에서 함께 앉아 있을 때 무슨 생각과 어떤 말과 삶을 살고 있었을까 궁금합니다. 에스겔은 자신의 철저하게 파괴된 현실에서 절망과 원망이 가득하진 않았을 것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하나님께 예언자로 부름도 받지 못했을 것입니다.

  에스겔은 포로들의 게토에서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하늘을 열어 주어 보여주신 환상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에스겔은 네 생물의 환상을 보았습니다. 이 네 생물은 광채가 나고 얼굴이 넷이고 날개도 각각 넷입니다. 발바닥은 송아지 발바닥처럼 생겼는데 광낸 놋처럼 빤짝거리고 날개 밑에는 사람의 손이 있습니다. 네 얼굴은 한쪽은 사자, 한 쪽은 황소, 한 쪽은 사람, 한 쪽은 독수리의 얼굴을 하고 있습니다. 이 네 생물은 이쪽 저쪽으로 번개처럼 빠르게 달리기도하고 한 영이 움직이는 데로 움직입니다. 3장을 보면 에스겔은 네 생물의 환상을 본 후 하나님의 말씀이 적힌 두루마리 환상도 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에 따라 그 두루마리를 먹습니다. 이는 곧 하나님께서 보여주신 환상이 자신의 온 몸으로 표현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하늘을 열어 보여 주시는 환상은 에스겔의 포퍼먼스와 말로 표현되고 선포됩니다. 에스겔은 그발 강가에서 하나님의 권능에 사로잡혀 하나님의 말씀을 온 몸으로 말하게 된 것입니다.

에스겔의 사역은 크게 두 가지로 요약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포로들에게 그들이 끌려오기 전 지었던 그들의 죄를 상기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의 구원과 해방이 반드시 올 것이라는 것입니다. 에스겔이 보고 선포한 환상들은 포로들의 변화와 그들의 구원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를 쫓거나 제국의 나라들처럼 세상에 군림하는 민족상이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보여주시지 않는 환상을 보고 거짓된 말씀과 삶을 말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이들은 자신의 욕심과 탐욕, 쾌락대로 행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위해 예언을 하던 사람들입니다.

[사 28:7] 유다 사람이 포도주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린다. 제사장과 예언자가 독한 술에 취하여 비틀거리고, 포도주 항아리에 빠졌다.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리니, 환상을 제대로 못 보며, 판결을 올바로 하지 못한다.

독한 술에 취하여 휘청거리고 비틀거린다는 것은 돈과 명예, 권력에 취하여 사람을 올바로 보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올바른 판단을 해야 할 자리에 앉아 있어야 할 자리에서 돈을 받고 잘못된 판단을 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ex) 요즘 언론에서 이슈화되는 부정부패의 한 모습은 정치 실세들이 돈으로 공직의 자리를 사고판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기독교인이라며 공직에 앉아 부정과 부패로 얼룩진 사람들을 보고 있습니다. 돈에 취해 사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세상을 알지도, 보지도 못하고 제 멋대로 살아갑니다. 그리고 이들은 오로지 돈이 가득한 욕조에 누워 목욕하고 있는 자신들의 거만하고 오만한 미래만 보고 있습니다. 정부의 관료들이 내일을 내다보지 못하고 자신들의 이권과 이해에 얽혀 국민들에게 포로들이 겪는 아픔을 겪게 하고 있습니다. 20조를 들여 건설한 4대강의 16개 보(洑)에 대한 환상은 이미 물거품이 되어 터지고 있습니다. 일자리 창출, 돈 버는 4대강 환상은 헛된 환상과 거짓말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10년, 20년, 100년의 앞을 보지 못하는 걸까 신기할 정도입니다. 하지만 성경은 일찌감치 헛된 환상을 쫓는 이들에 대해 말씀했습니다.

  [미 3:6] 예언자들아, 너희의 날이 끝났다. 이미 날이 저물었다. 내 백성을 곁길로 이끌었으니 너희가 다시는 환상을 못 볼 것이고 다시는 예언을 하지 못할 것이다."

돈에 취해 경쟁하고 빼앗으며 속이는 사람들은 교회에 있건 교회 밖에 있건 모두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보여주시는 사람들의 변화를 이끌고 세상을 새롭게 하고 행복하게 하는 환상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그들의 미래를 향한 하늘은 닫혀 있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아무런 소리도 들리지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오늘 가장 낮은 자리, 가난한 이들의 자리, 포로된 이들의 아픔을 겪는 이들과 함께 앉아 하늘을 향해 눈을 들어 기도하며 애통하는 사람들에게는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자신의 환상을 보여주시고 말씀해 주실 것입니다. 한국사회가 산업화 되면서 노예처럼 일하던 노동자들과 함께 앉아 아파하고 노래하였던 사람들은 더 나아진 노동환경, 더 존중되는 인권에 대한 하나님의 환상과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리고 그 환상과 말씀은 현실이 되어 우리 앞에 펼쳐졌고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 우리는 더 암울하고 처절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의 자리도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시금 그들과 함께 앉아 함께 눈물 흘리고 함께 노래해야 합니다. 평화를 외치는 제주 강정에 가야하고, 해고된 노동자들과 비정규직노동자들 곁에 가야 합니다. 오늘 인권이 짓밟힌 아이들과 노인들, 여인들 곁에 함께 앉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과 마음이 그들과 함께 할 때 하나님께서는 하늘을 열어 자신의 환상을 보게 하시고 사랑의 말씀, 위로의 말씀, 정의의 말씀을 하실 것입니다. 그리고 우리는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혀 사는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행 2:17] 하나님께서 말씀하신다. 마지막 날에 나는 내 영을 모든 사람에게 부어 주겠다. 너희의 아들들과 너희의 딸들은 예언을 하고, 너희의 젊은이들은 환상을 보고, 너희의 늙은이들은 꿈을 꿀 것이다.

에스겔처럼 하나님의 권능에 붙잡혀 하나님의 영이신 성령으로 충만하게 사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하늘을 열어 주시어 그분의 환상과 꿈을 꾸며 그분의 해방과 구원의 말씀을 보고 듣는 삶을 한 주 동안도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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