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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자의 노래

에스겔 34:11~15
11 참으로 나 주 하나님이 말한다. 내가 나의 양 떼를 찾아서 돌보아 주겠다. 12 양 떼가 흩어졌을 때에 목자가 자기의 양들을 찾는 것처럼, 나도 내 양떼를 찾겠다. 캄캄하게 구름 낀 날에, 흩어진 그 모든 곳에서, 내 양떼를 구하여 내겠다. 13 내가 여러 민족 속에서 내 양떼를 데리고 나오고, 그 여러 나라에서 그들을 모아다가, 그들을 땅으로 데리고 들어가서, 이스라엘의 산과 여러 시냇가와 그 땅의 모든 거주자에서 그들을 먹이겠다. 14 기름진 초원에서 내가 그들을 먹이고, 이스라엘의 높은 산 위에 그들의 목장을 만들어 주겠다. 그들이 거기 좋은 목장에서 누우며, 이스라엘의 산 이에서 좋은 풀을 뜯어 먹을 것이다. 15 내가 직접 내 양떼를 먹이고, 내가 직접 내 양 떼를 눕게 하겠다. 나 주 하나님의 말이다.

ex) 어둠 속에서 염소를 데리고 집으로 오다.
어린 시절 집에서 염소를 3대까지 키운 적이 있습니다. 봄이면 들판에는 싹이 나고 풀이 자라기 시작하면 아침에 염소를 논두렁이나 산 밑 평지에 푸른 풀이 나 있는 곳에 매어 두고 해가 질 무렵이면 안전하게 데려와야 했습니다. 비가 오는 날을 제외하고는 날마다 그 일을 해야 했습니다. 문제는 해갈 질 무렵 염소를 데려와야 할 시간에 마징가Z나 미래소년 코난 같은 재미있는 만화를 해 준다는 것입니다. TV를 볼 욕심에 시간을 넘기다 보면 겁 많은 염소 목에는 줄이 매어져 있고 단단히 막힌 말뚝은 빠지지 않았기 때문에 꼼짝없이 몸을 움추리고 주인을 기다려야 했습니다. TV를 한 참 보고 있노라면 산 밑 풀밭에 매어 둔 염소가 생각납니다.
어둡고 위험하지만 염소가 밤새도록 이슬을 맞으며 무서움에 떨도록 둘 수는 없었습니다. 부리나케 염소가 있는 곳으로 달려가면 어둑한 산 그림자에 겁을 먹곤 했습니다. 염소가 매여져 있는 장소에 가까이 다가가면 풀 속에 웅크린 몸을 일으키는 염소를 볼 수 있었습니다. 그래도 보이지 않으면 염소 울음소리 흉내를 내며 염소의 반응에 귀기울였습니다. 염소는 어둠 속 공포에서 자신을 안전하게 돌보아주고 데려가 줄 주인의 발자국 소리와 목소리를 알아듣고 자신의 위치를 확인해 주곤 했습니다.  
어둠 속에서 염소를 집까지 데리고 오는데 반드시 놓치지 않아야 할 것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염소를 매어둔 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쇠말뚝이 줄 끝에 달려있기 때문에 줄을 놓고 달리다 보면 말뚝이 돌이나 나무 더미에 걸려 염소가 함께 달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어두운 풀 밭 길을 달리면서 염소 줄을 놓지 않는 것은 겁 많은 염소와 함께 안전하게 최대한 빨리 집으로 가는 최선의 선택이었습니다.

성경에는 목자들에 대한 비유가 많이 나오는데, 그 이유를 살펴보면 이스라엘 민족들은 유목민들이 시조였기 때문입니다. 창세기 4장에는 아담의 아들들인 아벨과 가인이 나오는데 의인이라는 칭호를 받는 아벨이 처음 목자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아벨의 제사를 받으시고 농부가 된 가인의 제사는 받지 않았다고 기록하는 것으로 보아 농경사회보다 유목민사회를 더 선호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창세기 46장에는 팔레스타인에 흉년이 들었을 때 유목민들이 이집트로 이주해 들어온 것을 볼 수 있습니다. 창세기 후반 부에서는 야곱과 그 후손들이 요셉의 도움으로 이집트에 정착하게 되는 과정을 말하고 있습니다. 농경사회 중심이었던 이집트인들은 유목민들을 꺼렸기 때문에 그들의 정착촌에 가까이 하지 않았고 고대 이스라엘 선조들은 안전하게 이집트의 고센 땅에 정착할 수 있었습니다.  

[창 46:34] '종들은 어렸을 때부터 줄곧 집짐승을 길러온 사람들입니다. 우리와 우리 조상이 다 그러합니다' 하고 대답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형님들이 고센 땅에 정착하실 수 있습니다. 이집트 사람은 목자라고 하면, 생각할 것도 없이 꺼리기 때문에, 가까이 하지 않습니다."

  성경과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목자라는 칭호와 상징은 매우 중요합니다. 목자라는 말은 이스라엘의 선조들의 뿌리를 이야기 하는 것이고 더 깊게는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목자와 같은 보호자, 구원자라는 의미가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창 48:15] 야곱이 요셉을 축복하였다. "나의 할아버지 아브라함과 아버지 이삭을 보살펴 주신 하나님, 내가 태어난 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나의 목자가 되어주신 하나님,

유목민들은 자신들이 키우고 돌보는 양 떼와 집짐승들을 자신의 몸을 돌보듯 했습니다. 양이 아프면 잠을 자지 않고 돌보아 주었고 다리가 부러지면 싸매주고 치료에 최선을 다하였습니다. 자라나는 털을 정리해 주고 들짐승들의 위험에서 양들을 지켜주었습니다. 양들은 목자가 자신들을 얼마나 잘 돌보아 주는지 본능으로 압니다. 그래서 목자의 목소리와 그 발자국 소리도 기억하고 주인이 가까이 올 때면 그에 반응하곤 합니다.

  목자들은 양들을 돌보는 것에만 탁월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이야기꾼이었고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목자들은 자신의 양떼를 푸른 풀 밭으로 데려다 풀을 뜯게하고 양 떼를 바라보며 악기를 연주하며 노래하곤 했습니다. 양떼들은 목자의 노래를 들으면서 한가로이 풀을 뜯고 배가 부르면 풀밭에 한가롭게 누워 잠을 자기도 했습니다.

양떼들에게 있어 목자가 부르는 노래 소리는 사나운 들짐승들이 가까이 없다는 소리이고 자신들은 보호받고 있으며 안전하다는 평화의 노래였습니다. 이스라엘에게 목자는 단순히 양떼들을 인도하고 돌보아주는 직업이 아니라 민족을 안전하고 평화롭게 인도하는 지도자 상이 되었습니다.

고대 이집트에 정착하여 유목민으로 살던 야곱의 후손들, 이집트에서 권력도 없이 살던 유목민들은 세월이 흐르면서 존재도 잊혀져 노예로 전락하게 되었을 때 다시 한 목자가 나타납니다.

[출 3:1] 모세는 미디안 제사장인 그의 장인 이드로의 양 떼를 치는 목자가 되었다. 그가 양 떼를 몰고 광야를 지나서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갔을 때에,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목자이셨고 자신이 백성들을 노예에서 해방하고 구원하시는데 양을 치던 목자 모세를 부르시고 보내셨습니다. 모세는 노예들의 목자가 되어 이집트 제국의 손에서 노예들을 탈출 시켰고 해방시켰습니다. 모세는 출애굽 한 노예들을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푸른 초장 앞으로 인도하였습니다. 목자 모세의 노래는 노예들의 해방과 구원을 향한 노래였고 새로운 공동체를 향한 노래였습니다.

출애굽하여 가나안에 정착하여 살던 이스라엘은 시간이 지나면서 주변 나라와 부족들에게 침략당하고 약탈당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이스라엘 민족은 주변 국가들처럼 자신들을 인도할 왕을 원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초대 왕을 세우시면서 그를 말하기를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삼하 5:2] 전에 사울이 왕이 되어서 우리를 다스릴 때에, 이스라엘 군대를 거느리고 출전하였다가 다시 데리고 돌아오신 분이 바로 임금님이십니다. 그리고 주님께서 '네가 나의 백성 이스라엘의 목자가 될 것이며, 네가 이스라엘의 통치자가 될 것이다' 하고 말씀하실 때에도 바로 임금님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백성들을 양떼로 말씀하시고 그 양떼를 인도하고 지도하며 돌보는 정치, 경제, 종교 모든 삶의 자리에서 지도자를 세우시면서 그들에게 목자와 같이 살라고 하셨습니다. 대표적으로 다윗을 들 수 있습니다.

‘어미양을 돌보던 그를 데려다가 주님의 백성 야곱과 주님의 유산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게 하셨다’(시78:71)

그러나 하나님의 백성이고 하나님의 소유인 이스라엘을 돌보고 푸른 초장으로 인도하여야 할 목자들이 자신의 욕심과 탐욕에 치우쳐 양떼를 자신의 이익추구에 이용하기 시작하였습니다. 그들은 가난한 사람들, 곧 그들이 돌보아야할 양들의 털과 살을 도려내어 자신들의 배를 채웠습니다. 당시 목자였던 아모스는 하나님께 선지자로 부름을 받아 외칩니다.

‘이 말을 들어라. 가난한 사람을 짓밟고 흙에 묻혀 사는 천더기의 숨통을 끊는 자들아, 겨우 한다는 소리가 “곡식을 팔아야 하는데 초하루 축제는 언제 지나지? 밀을 팔아야 하겠는데 안식일은 언제 지나지? 되는 작게, 추는 크게 만들고 가짜 저울로 속여며 등겨까지 팔아먹어야지. 힘없는 자, 빚돈에 종으로 삼고 미투리 한 켤레 값에 가난한 자, 종으로 부려먹어야지.”하는 자들아’(아모스8:4-6)

종교지도자들, 예언들은 양떼들을 위해 올바른 예언도 하지 않았습니다. 예언자들은 부자들과 왕들은 부패하고 패역한 길로 해하는데 그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 하고 그들이 하는 일마다 잘 될 것이라고만 외쳤습니다.

‘주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터무니없는 환상을 보고 허무맹랑한 말을 하였다. ... 허황한 환상이나 보고 속임수로 점이나 치는 예언자라는 것들을 이 손으로 치리라.... 그 예언자라는 것들은 무엇 하나 잘되는 것이 없는데도 잘만 되어간다고 하며 나의 백성을 비뚤게 이끌었다. 그래서 백성이 담을 쌓으면, 그 위에 회나 바르는 것들이다.’(겔13:8-10)

이스라엘의 정치, 경제, 종교의 지도자로 세운 목자들의 노래는 양떼들이 듣기에 탐욕의 노래였고 그들이 다가오는 발자국 소리는 두려움과 공포의 소리였습니다. 그들은 양 떼들의 식량을 약탈해 가고 새끼 양을 빼앗아가는 폭력의 소리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이스라엘의 목자들은 자신의 몸으로 양들의 몸을 보살펴야함에도 양들의 몸을 가지고 자신들의 몸만 돌보는 지도자들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불법과 탐욕으로 가득하여 빈민들을 약탈하고 그들을 노예로 부려 먹으며 죄악에 치우쳐 돌이키지 않았을 때 그들의 부귀영화는 전쟁으로 하루아침에 물거품이 되었고 모든 것이 파괴되었습니다.

본문의 이스라엘은 의지하고 보호해 줄 목자도 없고 자신들을 이끌어주며 희망을 주는 목자도 없을 것 같은 포로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자신들의 목자라는 지도자들은 도망가거나 파멸했고, 자신들을 끌고 온 바빌로니아는 그 어떤 나라도 견줄 수 없는 제국의 막강한 힘을 떨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주 야훼가 말한다. 너희는 나의 양떼이다’(겔34:17) 하나님께서 친히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시겠다고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목자들이 양들을 약탈하고 양들이 뜯을 목초지를 짓밟고 마실 물을 흐리게 하였지만 이젠 하나님께서 몸소 이스라엘의 목자가 되어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

거짓 목자들은 양들을 밀쳐내고 뿔로 받아 우리 바깥으로 쫓아 흩어 버리기까지 하였지만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양떼를 구해 주어 다시는 노략질 당하지 않게 하고, 양과 양 사이의 시비를 가려주며 평화롭게 살게 해 주는 그들의 선한 목자가 되겠다고 하신 겁니다.

포로 생활에서 지치고 힘겨운 이스라엘 민족에게 하나님께서 친히 목자가 되신다는 것은 옛 선조들의 신앙과 삶, 하나님과의 약속, 곧 푸른 초장에서 풀을 뜯으며 듣는 목자의 노래를 떠오르게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들의 선조들에게 기거할 땅을 주셨고 그곳에서 외세의 침략도 받지 않고 영원한 안식과 평화를 누리리라는 약속을 하신 분이십니다. 그러기에 하나님께서 친히 자신들을 푸른 풀밭으로 인도하고 아프면 싸매주고 낫게 해주며 돌봐주고 보호해 주는 목자가 되겠다고 하시니 그 얼마나 좋은 말씀인줄 모릅니다. 목자가 되신 하나님의 노래는 그의 양 떼인 이스라엘이 듣기에 평화와 공생의 노래이며 상생의 노래입니다. 다시는 사망이 없고 해 함도 없는 나라를 향한 희망의 노래입니다.

오늘 우리가 사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께서 세우신 목자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종교, 정치, 경제, 문화, 교육 등 사회 각 처소에서 활동하고 있고 하나님의 양떼를 위해 일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시 한 번  하나님께서 양 떼를 돌보라고 세운 목자들이 자신들의 몸만 위하는지 양 떼를 위하는지 우리의 삶을 면밀하게 돌아보아야 하고 성찰해야 합니다. 그들이 양 떼 옆에서 어떠한 노래를 부르고 있는지 자세하게 들어 봐야 합니다. 안타깝게도 우리는 종교, 정치, 경제, 교육에서 연약한 양 떼를 돌보아야 할 목자들이 자신들의 배만 채우는 모습을 수도 없이 보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돌보며 함께 살라하신 산과 강을 자신들의 잉여를 위해 파헤치고 파괴합니다. 서민들의 주머니를 털어 자신들의 권력을 유지하고 창출하는데 혈안이 되어 있고, 어린 양 떼들의 아픈 상처는 거들떠보지도 않고 자신들의 향락을 위해서만 노래를 부릅니다. 자신은 회사의 ceo라 하여 배가 터지도록 수익금을 챙겨 흥청망청 쓰고 마시며 노래를 부릅니다. 자신들의 평화, 이익을 위해 전쟁을 아무런 가책도 없이 저지릅니다.

오늘 하나님의 양 떼들은 미가선지자가 그랬던 것처럼 하늘을 향해 다시금 울고 있습니다.  

[미 7:14] 주님, 주님의 지팡이로 주님의 백성을 인도하시는 목자가 되어 주십시오. 이 백성은 주님께서 선택하신 주님의 소유입니다. 이 백성은 멀리 떨어진 황무지에 살아도, 그 주변에는 기름진 초장이 있습니다. 옛날처럼 주님의 백성을 바산과 길르앗에서 먹여 주십시오.

예수께서는 굶주리고 헐벗은 사람들을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며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친 사람들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마 9:36] 예수께서 무리를 보시고, 그들을 불쌍히 여기셨다. 그들은 마치 목자 없는 양과 같이, 고생에 지쳐서 기운이 빠져 있었기 때문이다.

오늘 하나님의 양들은 경쟁하여 살아남아야 한다고 다그치는 나쁜 목자들의 지팡이에 얻어맞아 온 몸이 시퍼렇게 멍이 들어 있습니다. 아이들은 학교와 학원에서 맞고, 서로를 물어뜯습니다. 청년들은 자신들이 쉴만한 풀밭을 찾지 못하고 있고 어른들은 털 깎이고 젖을 있는 대로 쥐어 짜내어져 몸과 영혼이 비쩍 말라 있습니다. 노인들은 갈 곳이 없고 안식할 곳이 없어 방치되고 기운 없이 거리를 떠돌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비록 힘겨워 보일지 모르지만 우리는 하나님께서 세우신 삶의 아름다움을 노래하라고 부르시고 세운 작은 목자들임을 기억해야 합니다. 양들을 돌보며 그들의 몸을 위해 헌신하는 목자들은 목자장이 어떠한 분이신지 알고 있습니다.

[히 13:20] 영원한 언약의 피를 흘려서 양들의 위대한 목자가 되신 우리 주 예수를 죽은 사람들 가운데서 이끌어내신 평화의 하나님이

우리의 목자장이신 예수께서는 자신이 피를 흘려 영원한 구원에 대한 약속을 주셨습니다. 목자장 예수께서는 죽음을 모든 죄악을 자신의 몸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셨고 죽음의 권세를 이기시고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을 목자장으로 삼고 따르는 목자들은 그분의 가신 길을 걸어야 하고 그 삶을 닮아 살아가야 합니다. 어린 양들을 품에 안고 기도하시며 축복하신 것처럼 연약한 양들을 돌아보고 그들과 함께 나눔과 사랑의 삶을 살아가야 합니다. 또한 양들의 피와 살을 희생삼아 탐욕을 채우는 이들에 대해 단호하게 ‘회개하라’고 외쳐야 합니다. 목자장의 삶을 따라 사는 오늘의 목자들에게 성경은 말씀합니다.

[벧전 5:4] 그러면 목자장이 나타나실 때에 변하지 않는 영광의 면류관을 얻을 것입니다.

변함없는 목자의 사랑을 가지고 양 떼를 돌보고 보호하며 그들의 평화를 위해 노래하고 헌신하는 목자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의 면류관은 예비 되어 있고 반드시 얻게 될 것입니다. 한 주간도 하나님의 선한 목자 예수님처럼 하나님의 푸른 초장에서 양 떼들과 함께 즐겁고 기쁜 노래를 마음껏 부르시며 사는 한 주간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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