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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
눅 3:21-22
21 백성이 모두 세례를 받았다. 예수께서도 세례를 받으시고, 기도 하시는데, 하늘이 열리고, 22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오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런 소리가 울려 왔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 한다.”

1981년 유네스코에서 세계 자연 유산으로 지정한 탄자니아의 세렝게티 공원은 세계 최대의 야생동물들이 살고 있는 곳입니다. 코끼리, 얼룩말, 들소 등 대형 포유동물이 약 300만 마리가 있는데 그 중 사자는 2000여 마리 정도가 살고 있다고 합니다. 얼마 전 동물의 왕국을 내셔널지오그라픽이라는 TV프로그램을 통해 보았는데 세렝게티의 독특한 사자 가족에 대한 것이었습니다. 보통 사자들은 4마리가 뭉쳐 가족을 이루고 사는데 세렝게티의 한 무리의 사자 가족은 무려 22마리가 모여 산다는 것입니다. 그야말로 사자왕국이었습니다. 보통의 다른 사자 무리는 먹이를 위해 2~3일에 하는데 이들은 날마다 사냥을 해야 했습니다. 다행인 것은 22마리의 사자가 모여 사는 사자왕국 지역엔 건기 때면 물을 찾아 이동하는 동물들의 행로가 있는 곳이었습니다. 프로그램에서는 이 사자 왕국이 유지되고 보호되는 것은 그들 스스로 신뢰와 역할감당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주었습니다. 암사자는 새끼들을 위해 사냥을 하고 수사자는 자신의 영역에 다른 사자들이 침범하여 새끼를 물어 죽이지 못하도록 지켜냅니다. 보통 사자새끼들은 4마리 중 1마리만 살아남아 어른 사자가 된다고 합니다. 야생의 왕국을 이루는 사자 무리일지라도 어린 생명이 다른 위험으로부터 위협받는 것은 별 다를 것이 없다는 것입니다. TV를 보면서 느낀 것인데 어른 암사자와 수사자는 새끼들을 지켜내기 위해 자신들의 온 힘을 기울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어린 사자들은 야생의 모든 위험 속에서 자라면서 어미들의 사냥하는 모습과 당당한 모습을 보고 경험하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어린 사자들은 자신들의 부모가 야생에서 거칠 것 없는 존재라는 것을 본능적으로 알고 또한 그 보호와 사랑을 받고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리고 자신들도 그러한 위용과 사랑을 닮아 어른 사자로 자갑니다.

2004년에 나온 임권택 감독의 「하류인생」을 보면 건달로 살다 결혼 한 남자 주인공 태웅(조승우)이 아내의 출산하는 고통을 보고 자신을 버리고 떠났다고 생각하여 원망하며 찾지 않았던 어머니를 찾아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버림받았다고 생각한 자신의 인생이고, 사람들의 등골을 빼먹는 한 인간에게 자신을 사랑으로 낳아준 어머니가 계시다는 사랑의 깨달음이 온 것입니다.

예수회 소속 신부이며 평화 운동가로서, 미국에서 가장 크고 오래된 평화운동 단체인 [화해친교단]의 사무총장으로 활동하고 있고, 데스몬드 투투 주교가 2008년 노벨평화상 후보로 추천한 존 디어 신부는 자신이 하나님의 사랑을 깨달은 순간을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대학시절 제멋대로 살아가는 동아리 활동을 하면서 교회를 떠나버렸다고 합니다. 그러면서 자신은 변호사가 되거나 아버지처럼 신문사를 경영할 꿈을 꾸고 있었고, 그 보다 좋은 것으로는 락 스타 가수가 되고 싶어 했습니다. 2학년 때 기관지염에 걸려 집에서 책을 읽으며 인생에 대해 고민하며, 3학년 때 한 정신병원에서 죄수들을 돕는 자원봉사를 시작하였는데 그들의 가난과 무기력과 대조되는 자신 가족의 부유함과 능력, 자신이 속한 동아리의 모습을 완전하게 뒤집어 놓았다고 합니다. 자신의 직업적인 야심과 가치관, 사람의 의미에 대해 의문을 갖고, 인생의 목적과 영적인 방향을 찾아 헤맸습니다. [만일 하나님이 안계시면 그 불쌍한 죄수들을 모른 체 하며, 가능한 한 많은 돈을 벌어서 평생 동안 멋대로 살아도 되지 않겠는가? 그러나 만일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불쌍한 사람들을 외면한 채 이기적인 자신의 안락만을 찾아 큰돈을 벌겠다고 귀한 시간을 낭비할 수 있단 말인가? 만일 하느님께서 정말로 살아 계신다면, 인생에는 의미가 있으며, 세상은 불쌍한 사람들을 위해 정의로워야 하며, 나 역시 정신을 차리고 살아야만 한다고 생각했다]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기도를 드리기 시작했고 빈민 운동가로 활동했던 사람의 생애를 읽던 도중, [인류는 하나님의 은총의 빛 안에서 서로 사랑하며 섬기고 살도록 부름 받은 것이 틀림없다! 그리스도는 내 곁에 현존하시며, 내가 만나는 사람들 모두 안에, 특히 가난하고 소외된 사람들 속에 현존하신다. 전혀 예기치 못했던 갑작스런 그 은총의 순간에, 나의 인생 전체를 완전히 예수께 봉헌하여, 내 일생을 불쌍한 사람들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섬기는 데 바쳐, 하느님의 평화와 사랑의 나라를 선포하며, 언젠가는 서품을 받아 예수회의 사제가 되고 싶다는 깊은 열망이 내게 일어났다.]고 합니다. 그는 겨울날 오후 자신의 방안에 비취인 햇빛처럼 하느님의 은총이 자신의 영혼을 가득히 채워지는 것을 느꼈고, 채플실로 달려가 예수회 신부에게 사제가 되고 싶다고 고백하였다고 합니다.

한 인간이 온 세상에 가득한 하나님의 사랑을 느끼고 깨달으며 그 사랑에 헌신하는 일은 세상에서 가장 귀한 일입니다. 이는 하나님께는 백 마리의 양 중 잃어버린 한 마리의 양을 찾는 기쁨이고 사람에게는 인생의 어떠한 순간보다 가치 있는 순간이고, 자신의 모든 것이 변화되는 순간, 거듭남의 순간일 것입니다. 어떠한 사람이든지 하나님의 은총을 경험하는 순간 그는 새 하늘과 새 땅이 자신 앞에 펼쳐지는 것을 보게 됩니다.

존 디어 신부는 ‘인생이란 하느님을 향한 긴 여정이라는 것을 나는 배우고 있다.’고 했습니다. 우리가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하나님을 향한 여정에 우리의 생각과 말과 행동을 맡긴다면 우리는 그 길 어디선가에서 인생에 대한 의미와 목적,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깊은 영성에 참여하게 될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의 살아계심과 그 사랑과 은총이 우리에게 열려있고, 환영하고 있으며, 충만하게 임하여 있는지 깨닫게 되겠습니까? 그리고 그 깨달음으로 가는 돌파구는 무엇이겠습니까?

우리의 주변 문화를 둘러보십시오. 자본을 섬기는 문화들은 우리를 보고 말합니다. ‘너는 못생겼다. 너는 보잘 것 없다. 너는 작다. 너는 뚱뚱하다. 너는 바보다. 너는 아이큐가 낮다. 너는 가난하다....’ 자본의 문화는 우리를 완전하게 무시합니다. 그러나 예수님 안에 들어와 보십시오. ‘너는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아니다. 너는 세상에서 가장 귀한 사람이다. 너는 온 천하보다 귀한 생명이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너는 내꺼 중에 최고다.’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의 말씀을 듣는 순간 우리는 예수님처럼 우리들 자신이 하나님의 자녀라는 것을 깨닫게 되고 예수님과 같이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 속에 살아가게 됩니다.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의 말씀처럼 하나님께서 자신을 사랑한다는 소리와 자신을 좋아한다는 말씀을 듣고 전혀 다른 삶을 살아갔습니다. 그 세례를 받으시고 성령이 비둘기 같이 임하시면서 하늘에서는 소리가 났습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이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 이 영적인 체험 이후 예수께서는 광야로 나갔고 정치, 종교, 사회 지도자들에게 새로운 세상의 비전을 제시하셨고 변화를 요구하셨습니다. 그리고 가난한 자들과 연약한 자들의 친구로 사셨고 넘어진 자를 일으켜 세우셨고 인생의 주체로 살게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사랑 속에 자신의 존재를 두고 살며 어떠한 시련과 아픔, 고통이 오고, 심지어 죽음의 순간이 오더라도 그 모든 시간을 견딜 수 있었고 넘어 섰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좋아하는 사람”으로 체험되고 선포되며 믿어졌습니다. 이는 예수의 정체성이 뚜렷하게 드러난 것입니다. 이제 예수는 나사렛의 목수, 마리아와 요셉의 아들 이전의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좋아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확인과 승인은 예수에게 새로운 삶을 부여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죄를 이길 힘과 용기를 주었습니다. 예수께서는 십자가의 고통도, 죽음도 이겨낼 수 있는 용기와 평화를 가지고 사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의 정체성을 알려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기쁨으로 받았고, 그 말씀을 부여잡고 평생을 하나님께 헌신하며 하나님과 사랑을 나누며 살았습니다.

  자신의 존재를 돈, 명예, 권력에서 찾고 유지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은 아침 안개처럼 해가 뜨면 사라지고 마는 것들입니다. 자신의 존재와 삶의 목적과 의미를 어디에 두고 살고 있느냐에 따라 삶의 한 순간 순간이 달라 질 것입니다. 스크루지가 돈만 쫓아 살 때는 퉁명하고 불친절하고 욕심쟁이였습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들도 돌아보지 않고 오직 자신의 이익만을 위해 살았습니다. 그러나 그가 돈이 아닌 사람을 중심으로 생각하고 삶을 변화시켰을 때 아침인사가 달라졌습니다. 사랑을 받아들였을 때 그는 어린아이들에게 크리스마스 인사를 반갑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의 존재를 어디에 두고 살아야합니까? 하나님의 변함없는 사랑에 두고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에게 있어 하나님은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물음과 인생의 의미를 넘어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사랑하시는 분으로 계시고 영원한 확증으로 성령을 주신 것입니다. 우리 또한 예수님과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님을 통해 자신이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확증하셨고, 그 증거로 우리 안에 성령을 부어주셨고 거하게 하셨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께서는 살아계시는 분뿐 아니라 우리와 함께 하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아버지와 어머니 같은 분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해야 예수께서 들었던 “너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한다.”는 말씀을 들으며 예수님처럼 자신뿐 아니라 다른 사람들을 하나님께로 불러낼 수 있겠습니까?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하나님께 조용하고 친밀한 기도로 나갔습니다. 여기서 세례는 성례전으로 하는 세례식 이상을 말합니다.

[고전 12:13] 우리는 유대 사람이든지 그리스 사람이든지, 종이든지 자유인이든지, 모두 한 성령으로 세례를 받아서 한 몸이 되었고, 또 모두 한 성령을 마시게 되었습니다.
[벧전 3:21] 그 물은 지금 여러분을 구원하는 세례를 미리 보여준 것입니다. 세례는 육체의 더러움을 씻어 내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힘입어서 선한 양심이 하나님께 응답하는 것입니다.

세례는 성령이 임재 하는 것이고 우리 안에 선한 양심이 살아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례를 받을 때 회개하라는 요한의 말을 들었고, 세례를 받은 후 기도를 드렸습니다. 기도를 하고 계실 때, 하늘이 열렸고,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예수 위에 내려 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나는 너를 좋아 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예수께서 단 한 번의 생각과 우연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은 것이 결코 아닙니다.

예수께서는 어릴 때부터 성경을 공부했고, 소박한 자신의 부모로부터 하나님께로 나가는 리듬을 배웠을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성장하면서 때로 밤늦도록 하나님의 음성을 듣기 위해 침묵과 고독 속에서 지냈을 것이고, 로마의 폭력적인 사회문화 속에서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과 의미를 찾았습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삶을 살아계시는 하나님께로 향하여 내어 놓았을 때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수 있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칭호를 받으시고 광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참다운 한 인간으로 자신의 정치와 문화, 경제, 삶의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을 찾아가는 여정에 몸을 맡기고 살았습니다. 그는 자신이 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슴에 새길 줄 알았고 잊지 않았습니다. 어떠한 순간에도 하나님의 현존이 자신과 함께하고 있다는 것을 거부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예수의 삶을 하나님께서는 인정하셨고 죽음의 순간에도 버리지 않고 부활의 영광으로 인도하셨습니다.

바울은 우리에게 권면합니다. [살전 1:6] “여러분은 많은 환난을 당하면서도 성령께서 주시는 기쁨으로 말씀을 받아들여서, 우리와 주님을 본받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사순절 동안 마태복음과 마가복음을 우리의 손으로 만질 것입니다. 기도하는 마음과 삶으로 말씀을 기록하시기 바랍니다. 하늘이 열리고 성령이 임할 것입니다. 그리고 하늘에서 하나님의 “너는 내 사랑하고 좋아하는 사람”이라는 음성을 듣게 될 것입니다. 성령으로 충만하여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을 들으시며 사순절 한 주간을 보내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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