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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 아버지의 길을 걷는 사람
눅 10:21-24
21 그 때에 예수께서 성령으로 기쁨에 차서 이렇게 아뢰었다.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 이 일을 지혜 있는 사람들과 똑똑한 사람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는 드러내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이것이 아버지의 은혜로우신 뜻입니다. 22 아버지께서 모든 것을 내게 맡겨 주셨습니다. 아버지 밖에는 아들이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또 아들 밖에는, 그리고 아버지를 계시하여 주려고 아들이 택한 사람 밖에는, 아버지가 누구인지 아는 사람이 없습니다.”
23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돌아서서 따로 말씀하셨다. “너희가 보고 있는 것을 보는 눈은, 복이 있다. 24 내가 너희에게 말한다. 많은 예언자와 왕이 너희가 지금 보고 있는 것을 보고자 하였으나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지금 듣고 있는 것을 듣고자 하였으나 듣지 못하였다.”

ex) 집 옥상에 올라가면 빗물을 받아 놓은 적지 않는 통이 있습니다.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기 위해 가끔 옥상에 올라가는데 비둘기 두 마리가 그 물이 담긴 통에 앉아 물을 먹고 가곤 합니다. 날개 짓 소리를 내며 날아와 물통 가에 앉아 머리를 물에 푹 받고는 쭈욱 한 모금 들이키고 훌쩍 날아가 버립니다. 물을 먹기 위해 날아와 물을 마시고 날아간 비둘기 뒤 모습을 보며 저 새는 수많은 옥상 중에 어떻게 이 곳에 물이 있는지 알았을까? 허공에 길이라도 있는 것일까? 또 저렇게 날아가는데 어떤 길이 있어 그 길로 날아 오르는 것일까? 매일 허공을 날개 짓 하는 비둘기에게 길이 있을까? 아니면 자신이 날면 그냥 그곳이 길이 될까? 옥상의 물통에서 물 한 모금 잠깐 먹고 간 비둘기는 자신을 보고 네가 별 생각 다한다고 할 것입니다.

아메리카의 대 자연 속에서 살았던 인디언들의 길에 대한 지혜의 말이 있습니다.

모든 것이 너를 위해 펼쳐져 있다.
길은 네 앞에 곧게 뻗어 있다.
가끔 보이지 않을 때도 있지만
길은 분명히 그곳에 있다.
길이 어디로 이어지는지 모를지라도
그 길을 따르라.
그것은 준비된 길이며
네 앞에 펼쳐진 한줄기 유일한 길이다.
(오논다가 족의 ‘너의 길’)

인디언들은 자신의 선조들의 위대한 지혜를 품고 자신의 길을 걸으며 살아왔습니다. 인디언들은 수 천 년의 세월을 아메리카 대륙에서 자신들이 선하다고 믿는 길을 걸으며 자연과 더불어 그에 순응하며 살아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어느 순간 자신들이 옳다고 믿으며 살아왔던 길을 잃어버렸습니다. [인디언의 영혼]을 쓴 저자는 “인디언들이 문명과 접촉하면서 그들이 가진 삶의 방식과 정신세계가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나는 설명하였다. 한 마디로 인디언들은 서서히, 그러나 여지없이 본래의 모습을 잃어갔으며, 결국 자유를 잃고 가장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 인디언 보호 구역 안에 갇히게 되었다.”고 말합니다.

인디언들은 얼굴 흰 사람들과 그들의 문명을 접하면서 자신들의 선조들이 걸어왔던 길을 보지 못하게 되었고, 결국은 자신들마저 본래의 모습을 잃어버리고, 자유마저 빼앗기고 지금은 인디언 보호구역에 안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가끔 책을 통하여 인디언들의 지혜를 접하지만 그들의 삶의 방식과 철학은 현대 영성가들이 말하는 것 이상의 내용과 의미와 영성을 담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마치 예수님의 삶과 같게 느껴지기도 합니다.

성경에는 많은 사람들이 믿음의 길로 간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아브라함을 들 수 있습니다.

[창 12:4]
아브람은 주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길을 떠났다. 롯도 그와 함께 길을 떠났다. 아브람이 하란을 떠날 때에, 나이는 일흔 다섯이었다.

아브라함은 자신이 살던 땅에서 자신과 후손들을 위하여 위대한 여행을 떠납니다. 그가 걸었던 길은 하나님을 향한 믿음의 선택이었고 행함이었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들은 그를 믿음의 조상이라 불렀고 보이지 않고 정해지지 않는 곳을 향해 길을 떠난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 받기를 원했습니다.

어느 날 사람들이 예수께 와서 비난을 했습니다. “왜 당신은 세례 요한과 그의 제자들, 바리새파 사람의 제자들은 금식하는데 당신과 당신의 제자들은 금식하며 기도하지 않습니까?” 예수께서는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서 말했습니다. “혼인 잔치에 온 손님들이 신랑과 함께 있는 동안에 금식할 수 있느냐? 신랑을 자기들 곁에 두고 있는 동안에는 금식할 수 없다. 그러나 신랑을 빼앗길 날이 올 터인데, 그 날에는 그들이 금식할 것이다.” 이 말씀을 다시 하면 “요한은 요한의 길이 있고, 나는 나의 길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왔던 사람들은 자신들의 선조 때부터 전통적으로 내려오는 관습과 규율을 철저하게 지키며 그 길이 옳다고 믿었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선조의 길을 잃어버리고 어느 순간부터 삶의 의미와 목적이 삐뚤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결국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하며 자신의 길을 가는 예수의 모습에서 자신들과 전혀 상반된 길이 있다고 생각하고는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기까지 했습니다.

예수님께서 가신 길과 그를 죽이는 사람들의 길은 분명한 차이가 있었고 그 결말도 너무나 다른 곳이었습니다. 예수께서 가신 길은 생명의 길, 진리의 길, 영원한 안식으로 가는 길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반대하고 죽이는 사람들의 길은 폭력의 길, 사망의 길, 자신뿐 아니라 많은 사람들을 구덩이에 빠지게 하는 길이었습니다.

오늘 사순절 넷째 주를 지나고 있는 우리는 자신이 걷고 있는 길이 어떠한 길인지 보고 있고 그 길 위를 어떻게 걷고 있나 본문을 통해 성찰해 보았습니다.

*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며 사는 인생

본문에서는 ‘그 때’라는 대목이 나옵니다. 여기서 ‘그 때’라 함은 귀신들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굴복하고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이 번개 불처럼 하늘에서 떨어지는 때이고, 세상의 뱀과 전갈을 밟고 원수의 모든 세력을 누를 권세가 예수를 따르는 제자들에게 있다는 것이 드러난 때입니다.

세상의 모든 권세가 하나님님께 무릎 꿇고 있는 모습, 사망의 권세들이 예수님의 발아래 짓밟혀 있는 순간을 경험한 적이 있으십니까?

ex) 핵 없는 세상을 위한 동북아 평화여성 컨퍼런스에 지난 화요일에 다녀왔습니다. 그곳에서 한 프로그램으로 대전평화여성회 공동대표로 있는 이정희 대표께서 음악과 함께 명상 춤춤을 소개하고 함께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명상 춤의 내용은 달을 감상하기 위해 창문을 열고 바라보는 순간을 담아내는 것이었습니다. 명상 춤을 인도하시는 분은 ‘우리는 모두 달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여는 순간이 있습니다.’라고 마지막 말로 끝내셨습니다. 달을 보기 위해 창문을 여는 순간을 음악과 춤으로 표현해 보는 시간 동안 순간의 미학, 순간의 깨달음과 그 여운을 길게 가져보았습니다.

달을 보기위해 창문을 여는 순간을 느끼는 것처럼, 예수께서는 세상의 모든 불의한 세력들이 하늘에서 번개 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성령으로 기뻐하시며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향해 감사 기도를 드렸습니다. 예수께서 감사 기도를 하신 대목은 공관복음에 나오는 유일한 대목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지 않고 회개하지 않는 도시들, 사람들, 권세자들이 있지만 자신을 믿고 따르며 사랑하고 있는 제자들의 신앙과 삶이 모든 어둠을 비추는 빛으로 다가오고 감사의 마음을 갖게 한 것입니다. 그리고 세상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부르며 감사를 드립니다.

오늘 본문 21절과 22절을 자세하게 보면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라는 호칭을 무려 6번을 사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유대사회에서는 용납될 수 없는 내용이었습니다. 하나님과 인간의 격은 창조주와 피조물, 주인과 종의 관계로 인식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르는 것은 신성모독으로 간주 되었습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예수를 십자가에 죽일 때 신성모독 죄를 덧붙였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는 마지막 순간에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불렀습니다. 사도바울은 더 나아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불러야 된다고 말해 줍니다. 로마서 8:15 “여러분은 또다시 두려움에 빠뜨리는 종살이의 영을 받은 것이 아니라, 자녀로 삼으시는 영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영으로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고 부릅니다.“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로 부르고 사는 인생은 은혜로운 인생입니다. 이러한 인생은 철학이나 지식, 부와 명예, 권력을 가진 사람들은 결코 부를 수 없는 이름입니다. 이 일은 철부지 어린 아이들에게 드러난 일입니다. 어린 아이처럼 세상을 바라보는 사람은 천지의 어머니이며 아버지이신 하나님을 볼 수 있습니다.

과학이 아무리 발전하고 철학과 지식이 아무리 많이 쌓이는 현대에 살고 있더라도 우리는 하나님을 나의 아빠처럼, 엄마처럼 느끼는 순간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엄마와 아빠가 되시는 하나님은 나를 넘어 세상의 모든 생명의 아빠와 엄마로 계신다는 것을 느끼고 경험하는 체험을 가지고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부르고 사는 사람, 그리고 그 아버지의 길을 알아 그 길로 걷는 사람은 세상에 그리 많지 않습니다. 더 가까이 더 확고하게 더 깊 있게 하나님을 아빠로, 엄마로 부르시고 느끼며 그 길을 걸으며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빠, 엄마가 되시어 우리를 안아 주십니다. 그리고 우리의 맘을 고치시고 상처를 만져 위로하시고 낫게 하시며 우리의 영혼을 자신의 길에 세우십니다.  

예수께서 자신의 인생은 하나님 아버지의 은혜 속에 있다는 것을 아셨습니다. 그리고 그 위에 함께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것에 감사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을 아버지로, 어머니로 느끼며 그 길로 걷는 사람들은 스스로 깨닫기 보다는 하나님의 은혜이며 계시로 알게 된다고 확고하게 말씀하십니다.

* 하나님을 아빠 아버지라 부르며 사는 사람이 걷는 오늘

예수께서는 자신은 하나님의 아들이라 선포하며 자신의 인생길을 가셨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길, 예수께서 걸으셨던 그 길은 어떠한 길입니까?

자신이 하나님 아들이라는 곧 자신의 존재에 대해 확고한 신념과 신앙, 믿음을 가지고 살아가는 길입니다. 그리고 그 길의 삶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을 동등하게 대하며 그들의 벗으로 위로자와 동행자로 함께 하는 것입니다. 예수께서 가신 하나님 아버지의 길은 가난한 사람들을 인정해 주고, 병든 사람들을 위로하고 그들의 치유를 위해 함께 눈물 흘리며, 세상의 불의에 대해 돌이킬 것을 외치며, 원수를 사랑하며 살아가는 길이었고 하나님 나라를 이루기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내어 놓는 길이었습니다.

성경의 모든 예언자와 왕들은 하나님을 어머니와 아버지라고 부르며 사는 인생, 그 길을 걷는 인생을 보고 싶어 했지만 그러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예수께서는 자신 이후로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고 그 길을 걷는 사람들에 대해 말씀하셨습니다. 먼저는 자신이 그 길로 가셨고 오늘 우리에게 그 하나님 아버지의 길로 걸으라고 하십니다.

하늘과 땅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라 부르는 사람들은 오늘 공중의 권세 잡은 사탄들이 하늘에서 번개 불처럼 떨어지는 것을 볼 것입니다. 그리고 오늘 이 순간 자신이 어떠한 길 위에 있는지를 분명하게 보는 사람이 될 것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의 역사에서 사탄과 같은 권세 잡은 자들이 있습니다. 거짓과 불의로 가득차 자신들의 이익을 쫓아 살며 사람들과 뭇 생명들에 상처를 주고 죽음의 그림자를 드리우는 권세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아빠로 엄마로 부르며 그 길 위를 걷는 사람들은 이미 사탄의 권세들이 땅에 번개 불처럼 떨어진 모습을 볼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예수께서 그러하셨듯이 세상의 죄악들을 용납하지 않고 그 모든 악에 대해 저항하고 변화시켜 나갈 것입니다. 또한 하루하루의 순간을 성령과 함께 기쁨으로 충만할 것이며, 또한 감사하는 말과 삶을 살아갈 것입니다.

사순절 넷째 주 한 주간을 엄마와 아빠 되시는 하나님을 더 가까이 더 친근하게 부르며 모든 삶에서 성령으로 충만한 기쁨을 누리며 하나님 아버지의 길을 보며 그 길 위를 걸으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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