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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의 끝자락에서 보내는 사랑의 편지
딤후 1:3-7
3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 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6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디모데 후서는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에베소에 있는 디모데에게 보내는 유언과 같은 편지입니다. 바울은 복음을 전하다 유대인들의 폭력으로 살해 위협을 당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던 바울은 네로황제에게 재판 받는다고 상소했습니다. 로마 시민권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면 그가 어디에 있든지 로마에 가서 황제의 재판을 받을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로마로 이송된 바울은 바로 감옥으로 보내지지 않고 자신이 얻은 셋방에서 살았습니다. 바울은 로마에서 재판을 기다리는 동안 자유롭게 자신이 가진 신앙을 전할 수 있었습니다. 사람들은 바울의 말을 들으러 찾아왔고 많은 그리스도인들도 바울과 만났습니다. 상소한지 2년이 지났지만 황제에게 기소가 되지 않아 풀려난 바울은 에베소, 마게도냐 등 교회가 세워지거나 불모지에 가서 그리스도 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힘을 쏟았습니다.

AD 67년 경 네로의 그리스도교 박해가 심할 당시 다시 체포된 바울은 자신의 운명이 어떻게 될 것인가 짐작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로마 지하 감옥에서 디모데에게 마지막 편지를 씁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삶의 끝자락에 선 바울의 사랑의 편지 한 부분을 살펴보면서 오늘 우리들의 삶에서 가장 간절하게 가져야할 마음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3절을 보면 바울은 밤낮 기도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목사로 살아가다 보면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데 특히 연세가 들거나 몸이 불편하신 분들을 자주 만나곤 합니다. 목사로서 그분들과 이야기를 하면 기도하시라는 부탁을 많이 하게 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긴밀한 만남을 주고 하나님과의 만남에서 영원한 삶의 의미와 목적, 방향을 깨닫기 때문입니다. 또한 기도 속에는 사랑하는 사람들에 대한 연민과 사랑이 충만하기 때문에 자신의 연약함을 이길 수 있는 에너지를 기도 중에 얻는 것이 충분하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나는 밤낮으로 기도를 할 때에 끊임없이 그대를 기억하면서 하나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조상들을 본받아 깨끗한 양심으로 하나님을 섬깁니다.”(3절)라고 말합니다. 바울의 기도는 조상들이 신앙하고 신뢰하였던 하나님을 향해 있고 그 하나님 앞에서 자신의 존재를 내어 놓고 드리는 것이었습니다. 바울은 기도할 때마다 온 세상을 만드신 창조주 하나님, 그리고 자신들의 조상들을 노예에서 해방시고 제국의 포로에서 고향으로 귀환시키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로 가득 했습니다.

바울이 자신의 조상들을 구원하시고 인도하신 하나님 앞에서 양심을 내어 놓고 앉았을 때 그의 머리와 가슴에는 언제나 디모데가 기억났습니다. 로마 감옥의 차디찬 바닥에서 기도하는 바울의 기도에는 디모데를 향한 사랑이 가득합니다. 바울은 기도하면서 디모데를 생각하고 만나는 장명을 생각만 해도 기쁨으로 충만해 지고 위로를 얻었습니다.

바울의 삶이 서산의 해처럼 기울어지고 있을 때 그의 마음에는 사랑하는 사람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간절했던 것입니다.  

어거스틴은 “참되고 완전한 기도는 사랑 외에 아무것도 아니다”라고 전해 줍니다. 바울의 기도는 하나님 앞에서 디모데를 향한 거짓이 없는 사랑이었습니다. 우리의 기도도 마찬가지가 되어야 합니다. 아무리 많은 기도의 시간을 가진다 하여도 사랑으로 채워지지 않는 기도는 울리는 꽹과리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는 삶의 끝자락에서 기도하는 바울에게 디모데가 바울에게 어떠한 사람이었는지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또한 누군가를 기억하고 기억해 주는 그러한 사람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4 나는 그대의 눈물을 기억하면서, 그대를 보기를 원합니다. 그대를 만나 봄으로 나는 기쁨이 충만해지고 싶습니다. 5 나는 그대 속에 있는 거짓 없는 믿음을 기억합니다. 그 믿음은 먼저 그대의 외할머니 로이스와어머니 유니게 속에 깃들여 있었는데, 그것이 그대 속에도 깃들여 있음을 나는 확신합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눈물을 흘리는 사람’으로 기억됩니다. 성서 해석가들은 디모데의 눈물은 바울이 로마로 첫 번째 환송될 당시의 상황일 것이라 이야기 합니다. 디모데와 그 외의 그리스도인들은 바울을 영영 보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하고 서로에게 작별 인사를 나누고 기도하였다. “그리고 모두 실컷 울고서, 바울의 목을 끌어안고, 입을 맞추었다.(행20:37)”고 했습니다. 디모데도 그 가운데 있었는데 바울과 디모데뿐 아니라 초대 교회의 끈끈한 정과 사랑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바울이 기억하는 디모데의 눈물은 그 한 가지가 아닐 것입니다. 바울은 편지에서 디모데를 아들이라고 표현합니다. 바울은 디모데와 2년이 넘도록 동거동락했습니다. 그렇게 많은 시간을 함께 보내는 동안 디모데의 마음속에 있는 사랑과 열정을 보았을 것이고 삶을 보았을 것입니다. 바울은 자신뿐 아니라 사람들에 대한 디모데의 생명을 향한 사랑과 연민의 눈물을 기억할 것입니다.

누군가를 사랑하고 염려하여 눈물을 흘릴 줄 아는 사람이 디모데였고 그런 디모데를 사랑한 사람이 바울이었습니다. 두 사람은 그렇게 눈물로 마음을 나누고 삶을 나눈 사람들이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삶에서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형제자매의 아픔을 끌어 앉고, 공동체의 연약한 지체들을 삶을 끌어안고 눈물을 흘리는 사람, 죽어가는 4대강의 생명들, 깨어진 강정의 평화와 전쟁과 기근, 탐욕자들의 폭력으로 신음하는 피조세계를 향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은 기도하는 사람에게 기억될 것이고 하나님의 생명책에 그 이름이 선명하게 기록되어질 것입니다.

또한 바울이 그랬던 것처럼 오늘 누군가를 위해 눈물을 흘리는 사람을 기억해 주고 그를 품고 기도해 주어야 합니다. 삶이 어려워지고 힘겨워 지는 순간 일수록 더욱 그래야합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주변을 가만히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가 만나고 이야기하는 사람 중에 나의 친절과 사랑의 기도를 애타게 기다리는 사람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한 사람과 생명이 생각나거나 필요하다고 느낀다면 디모데처럼 눈물을 흘려주십시오. 혹시 그가 몰라주어도 좋습니다. 그러나 진실한 마음과 말은 4대강에 보를 아무리 높게 세워도 그 보를 넘어가 바다로 흘러들어가는 강물처럼 언젠가 그 사람에게 흘러가게 될 것입니다.

바울에게 디모데는 ‘만나 보기만 해도 기쁨이 충만해 지는 사람’이었습니다. 디모데가 유머스러운 사람이라고는 말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에게 불만과 짜증이 아닌 기쁨을 주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들에게 기쁨을 주는 사람은 어떤 사람입니까? 희망을 나눌 줄 아는 사람입니다.

중국의 ‘옌렌커’라는 작가가 쓴 『四書』라는 장편소설이 있습니다. 그 책의 차례는 총 16장으로 되어 있는데 1장에서 15장까지 제목이 ‘하늘 아이’ ‘옛길’ ‘죄인록’이 반복적으로 되어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16장만이 ‘시스포스의 신화’로 끝을 맺고 있습니다. 시지푸스가 끊임없이 반복되는 형벌 속에서 희망을 찾고 살아가 듯 그 마지막 장은 인간의 가장 처절한 상황 속에서 사람과 삶을 사랑하는 내용으로 되어 있습니다. 작가는 더 크게는 동양과 서양의 다른 것 같지만 같은 삶의 양식 속에서 그 희망을 찾아가자고 종용하고 있습니다.

희망은 인간을 가장 기쁘게 하는 능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사자굴에 던져지면서도 자신들을 버리지 않고 영원한 안식처로 인도해 줄 예수님의 사랑에 희망을 잃어버리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지난 해 한진중공업 희망버스가 수많은 비정규직과 해고 노동자들에게 어떠한 희망을 주었는지 보았습니다. 노동의 소외 속에 살아가는 많은 노동자들이 마치 예수가 다시 오심 확신하며 희망하고 사는 그리스도인들처럼 자신을 잃어버리지 않는 노동을 기대하고 희망하며 그 힘든 나날을 견디어 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희망이 있기에 동료와 가족을 보며 웃을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 희망을 버리지 않고 포기하지 않는 이들은 많은 사람들에게 기쁨을 준다는 것을 보았습니다.

지하 감옥 밑바닥에서 희망 없이 살아갈 법한 바울이 디모데를 만나길 간절히 원했던 것은 그에게서 희망을 보고 느끼기 때문입니다. 바울은 디모데를 만나 디모데의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확인하며 더욱 뜨거운 열정을 가지도록 부탁하고 싶어 했습니다.

“6 이런 이유로 나는 그대를 일깨워서, 그대가, 나의 안수로 말미암아, 그대 속에 간직하고 있는 하나님의 은사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려고 합니다.”

디모데를 만나는 것은 바울이 예수님을 온 땅에 전하기 위한 수고가 헛되지 않았다는 증거이고 더 큰 희망을 품을 수 있는 일입니다. 바울은 이제 자신의 태양은 기울어 가지만 결코 기울지 않는 하나님의 빛을 디모데와 뜨겁게 나누고 싶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서로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우리는 오늘 이곳에 모여 온 땅에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지길 소원하며 함께 하는 것만으로도 서로에게 힘이 되고 기쁨이 됩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원하셨던 하나님 나라의 도래를 기대하며 모든 사람들과 생명체들에게 평화가 선물되어지기를 희망하며 하루하루의 순간들을 선한 양심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확신하며 서로를 신뢰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리고 서로의 마음에 있는 하나님의 은사를 알아주고 더욱 강한 열정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격려하고 연대와 연합의 길로 가야 합니다.

바울은 하나님과 사람에 대해 거짓 없는 믿음으로 함께 했던 디모데를 신뢰했습니다. 이 신뢰는 디모데의 외할머니 로이스와 어머니 유니게에게도 있었던 것입니다. 우리의 유전자 속에는 조상들에게 있던 삶의 지혜뿐 아니라 성향과 역사를 포함한 수많은 정보가 들어 있습니다. 그래서 조금은 다른 의미를 가질지 모르지만 학자들은 ‘이타적 유전자’ ‘이기적 유전자’를 말하기도 합니다. 디모데의 거짓이 없는 믿음은 별똥별처럼 뚝하고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외할머니와 어머니가 가진 믿음을 상기시킵니다. 이 믿음은 어머니와 같은 마음과 사랑이 있는 믿음입니다. 세상의 모든 어머니는 자녀들에게 거짓 된 삶을 가르치지 않습니다. 어머니들은 자녀들이 언제나 서로를 돕고 의지하며 신뢰하며 살아갈 것을 권하고 가르칩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그 어머니 속에 깃들여 있던 거짓이 없는 마음에서 나오는 믿음을 알았고 즐거워했습니다.

모든 사람이 그런 것은 아니지만 우리는 부모와 함께하는 주변인들로부터 많은 영향을 받고 살아갈 수밖에 없는 사회적 존재들입니다. 말 한마디가 가슴에 남아 감동을 주기도 하고 아픔을 주고 좌절을 주기도 합니다. 나의 말 한마디가 개인과 공동체에게 유익이 된다는 것을 기억하며 어머니가 사랑하는 아이를 위해 살아가듯 서로를 위해 오늘을 살아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바울은 디모데에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에 대해 말합니다.

“7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비겁함의 영을 주신 것이 아니라,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을 주셨습니다.”

한 사람이 성숙하게 살아가는 데는 수많은 사람들의 능력과 사랑, 절제가 필요합니다. 바울은 로마 지하 감옥에서 비겁해 질 수도 있었을 것입니다. 실제 수많은 그리스도인들이 고문과 폭력 앞에서 배교를 하였습니다. 바울은 디모데에게 삶의 굴곡이 내려갈 때에 절대 비겁해지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신다면 어떻게 자신을 믿는 사람들을 사자굴 속에 던져 넣는 상황에서도 가만히 계시느냐고 생각할 수 있지만 약한 마음을 갖지 말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능력은 무엇입니까? 다시 생각하면 하나님의 능력은 무엇입니까? 시편 99편에는 이렇게 말합니다.

[시 99:4] 주님의 능력은 정의를 사랑하심에 있습니다. 주님께서 공평의 기초를 놓으시고, 야곱에게 공의와 정의를 행하셨습니다.

모든 고난과 연약함을 인내하고 고난을 권세자들에게 정의를 외치고 나갈 수 있는 능력과 사랑, 절제의 영이 우리 안에 있습니다. 바울은 사형을 앞 둔 삶의 끝자락에서 자신이 사랑으로 기억하는 디모데에게 능력과 사랑과 절제의 영으로 힘 있고 강하게 살아갈 것을 권합니다.

오늘 우리는 밤 낮 기도하면서 삶에 대한 희망을 노래하며 서로에게 기쁨을 주며 거짓이 없는 믿음으로 서로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있는 힘껏 불어 넣어주며 살아가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영이 정의를 사랑하며 살아가도록 우리를 이끌어 주시기 때문입니다. 한 주간도 삶의 순간마다 서로에게 사랑의 에너지를 충만하게 나누시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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