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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향해 달린다.

딤후 4:6-8 6 나는 이미 부어드리는 제물로 피를 흘릴 때가 되었고, 세상을 떠날 때가 되었습니다. 7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 8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


최근 진행된 한 TV프로그램에서 75세인 가수 패티김씨가 나와 70이 되기 전 갱년기 때문에 찾아온 우울증으로 힘겨웠던 사연을 밝혔습니다. 그녀는 "가수로서의 화려한 삶과 가족의 사랑에도 불구하고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온 갱년기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힘들었고, 갱년기 때문에 찾아온 우울증으로 모든 것이 허무하게 느껴지고 심지어 인생을 포기하고 싶었다"고 할 때가 있었다고 털어놓았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우울증은 감기와 같이 찾아오는 질병입니다. 최근 16세~64세의 사람들 중 1년 동안 치료를 받아야하는 우울증 환자가 100만 명에 달한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국민보건복지부에 따르면 우울증 환자는 매 해 증가추세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대인들에게 우울증이 찾아오는 건 갱년기이기 때문만은 결코 아닙니다. 생활의 빈곤, 질병, 소외 등 수 많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독일의 한 대학에서 재직하고 있는 한병철교수는 『피로사회』라는 책에서 현대인들의 우울증이 왜 일어나는지를 보여줍니다.

“우울증은 성과주체가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을 때 발발한다. 그것은 일차적으로 일과 능력의 피로이다. 아무것도 가능하지 않다는 우울한 개인의 한탄은 아무것도 불가능하지 않다고 믿는 사회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더 이상 할 수 있을 수 없다는 의식은 파괴적 자책과 자학으로 이루어진다. 성과주체는 자기 자신과 전쟁 상태에 있다. 우울증 환자는 이러한 내면화된 전쟁에서 부상을 입은 군인이다. 우울증은 긍정성의 과잉에 시달리는 사회의 질병으로서, 자기 자신과 전쟁을 벌이는 인간을 반영한다.” (p28)

저자는 오늘의 시대는 푸코가 말하는 병원, 정신병자 수용소, 감옥, 병영, 공장으로 이루어진 규율시대에서 피트니스 클럽, 오피스 빌딩, 은행, 공항, 쇼핑몰, 유전자 실험실로 이루어진 성과사회로 변모했다고 진단합니다. 사회의 주민도 이젠 “복종적 주체”가 아닌 “성과주체”로 불린다고 합니다. 저자는 현대인들은 성과주체에서 아무것도 할 수 없는 자신이라고 규정할 때 곧 참된 자신을 잃어버린 상태가 되었을 때 우울증에 빠질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오늘의 한국 교회의 특성을 보면 성장주의에 빠져 있는 것이 가장 큰 폐단 중에 하나라고 말합니다. 이러한 성장을 향해서 질주하는 한국교회와 사회의 모습은 성경을 왜곡하여 받아들인 부분도 크게 작용하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도 자칫하면 그런 오해를 받을 수 있는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바울은 자신이 걸어온 길에 대해서 흠이 없이 달려 온 듯 자랑하고 있습니다. 6절을 보면 “나는 이미 부어드린 제물로”라고 하는데 이는 어린 양을 제단에 올려놓고 불사르기 직전 제물에 포도주를 붓는 의식(민28:24)을 말합니다. 곧 자신의 임박한 죽음을 예견하고 남은 생명을 아낌없이 순교의 현장에 내어 놓겠다는 것입니다. 굉장한 결단이고 헌신입니다.

7절에서는 “나는 선한 싸움을 다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습니다.”라고 말하며 더 확고한 자신의 달려온 길을 이야기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 바울의 삶을 살펴보지 않고 본문에서 말하는 내용만을 보면 그가 성과에 치우쳐 살아온 사람으로 보일 수도 있는 대목입니다.

실제 예수를 알기 전 바울의 오만은 그 누구도 따라오지 못할 정도였습니다. 그는 조상들의 종교에 열심 있었고, 율법을 공부하고 지키는 데 최 정점에 있었습니다. 그런 그였기에 자신의 신념이나 종교, 사상에 벗어난 이단아들을 살해해도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초대교회 일곱 집사 중 한 사람인 스데반을 죽이는데 증인을 섰고, 많은 그리스도인들을 옥에 가두고 죽이는데 앞장섰습니다.

바울 자신도 고백하기를 “나는 유대 사람입니다. 나는 길리기아의 다소에서 태어나서, 이 도시 예루살렘에서 자랐고, 가말리엘 선생의 문하에서 우리 조상의 율법의 엄격한 방식을 따라 교육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나는 오늘날 여러분 모두가 그러하신 것과 같이, 하나님께 열성적인 사람이었습니다.”(행 22:3)

바울은 예수를 알기 전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갚아야 하는 원수에게는 복수하라고 배웠고 다르면 섬멸하는 것도 괜찮다고 교육받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당대의 모든 성공을 거머쥐고 살아갈 것을 요구받았고 그 성공 길 위에 있었습니다. 바울은 그가 고백하듯 그 누구보다 하나님께 열성적이었던 사람이었습니다.

  바울이 예수를 알기 전 자신의 종교와 신념을 위해 살인까지 저지르는 모습을 한병철 교수가 『피로사회』에서 주장하듯이 규율사회와 성과사회에서 발생되는 인간의 병적인 모습이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바울은 그 시대의 질병을 벗어나지 못하고 배타성과 폭력성을 그대로 가지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던 바울이 그리스도인들을 잡아 옥에 가두기 위해 다멕섹으로 가는 길 위에서 예수를 만나는 체험을 했습니다. 예수 안에서 새로운 자신을 만나기 위해 광야로 나가 3년이라는 시간을 보냈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우리는 바울이 어떠한 예수를 만났는지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예수일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며, 어린 아이들과 여인들을 평등하게 대해 주며, 가난한 사람들을 멸시하지 않고, 질병에 시달리는 사람들 곁에 계셨고 죄인들의 친구로 사시고, 세상의 폭력에 평화로 대하시며 원수까지 사랑하시고, 죽는 그 순간에도 자신을 못 박은 병사들을 용서하시며, 가장 고통스런 자리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놓지 않으신 예수, 세상의 공중권세 잡은 자는 그를 십자가에 죽였지만 다시 부활하여 영원히 하나님의 보좌에 앉은 예수, 그리고 또 다시 세상에 오시어 완전한 평화와 생명을 주실 것이라 약속한 예수, 그 이전에 하나님의 나라는 우리의 마음에 있다고 하신 예수, 한 생명을 온 천하보다 귀하다 말씀하시는 예수, 바울은 때를 얻든지 못 얻던지 예수에 대해 듣고 묵상하며 전하며 알아갔습니다.

그리고 새롭게 발견된 자신을 보며 옛 모습의 자신은 오물과 같이 버렸다고 고백합니다.

“나는 내게 이로웠던 것은 무엇이든지 그리스도 때문에 해로운 것으로 여기게 되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내 주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귀하므로, 나는 그 밖의 모든 것을 해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 때문에 모든 것을 잃었고, 그 모든 것을 오물로 여깁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으로 인정받으려고 합니다. 나는 율법에서 생기는 나 스스로의 의가 아니라,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오는 의 곧 믿음에 근거하여, 하나님에게서 오는 의를 얻으려고 합니다.”(빌3:7-9)

또한 바울은 예수님을 믿고 알고 난 후 가장 배타적인 정점에서 가장 포괄적이고 다원적인 자신에로 향하게 되었습니다.

“유대 사람도 그리스 사람도 없으며, 종도 자유인도 없으며, 남자와 여자가 없습니다. 여러분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이기 때문입니다.”(갈 3:28)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참된 자신을 만나게 해준 예수님을 자신의 민족에게 뿐 아니라 세상 끝까지 전하고 싶어 했습니다. 그가 추구하는 것은 세상에 하나님 나라가 완전하게 이루어지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 앞부분에서는 디모데에게 권면하기를 예수그리스도의 말씀을 기회가 좋든지 나쁘든지 꾸준하게 전하기를 엄숙하게 명령했습니다. 본문의 마지막 절에서는 자신이 달려왔던 인생길에 후회도 없으며 하나님께 인정받을 것이라고 확신합니다.

  “이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마련되어 있으므로, 의로운 재판장이신 주님께서 그 날에 그것을 나에게 주실 것이며, 나에게만이 아니라 주님께서 나타나시기를 사모하는 모든 사람에게도 주실 것입니다.”(딤후 4:8)

바울이 어떠한 삶을 살았기에 그런 자신감이 나올 수 있었을까요? 예수를 만나고 바울의 삶의 태도는 완전하게 변하였던 것입니다. 바울은 매일 매 순간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가득찬 자신을 향해 달렸습니다.

“항상 기뻐하십시오. 끊임없이 기도하십시오. 모든 일에 감사하십시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여러분에게 바라시는 하나님의 뜻입니다.”(살전5:16-18)

항상 기뻐하고 끊임없이 기도하며 모든 일에 감사하는 삶은 예전의 바울에게는 찾아 볼 수 없었습니다. 유대적 종교 신념과 철학과 사상, 가치관과 문화로 꽉 차 있던 바울은 비뚤어진 충성과 열정, 폭력과 허무로 가득할 뿐이었습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난 후에는 매일 매 순간이 기쁨과 기도와 감사로 가득하게 되었습니다.

그렇다고 바울의 세포까지 변하게 되었을까요? 아닙니다. 바울은 매 순간 예수를 믿는 믿음 안에서 자신을 향해 달렸습니다. 길을 걸을 때도, 일을 할 때에도 성경을 볼 때에도, 사람들과 이야기하고 식사를 하고 휴식을 취할 때도 기뻐하고 기도하고 감사하는 자신이 되도록 달린 것입니다.

어느 날은 바울이 하도 괴로워 금식을 했습니다. 완전한 자신이 되지 못한 것을 하나님께 묻기 위해서입니다. 그는 죽을 만큼 세 번 금욕하며 하나님께 물었습니다. 그때 그에게 들려오는 하나님의 음성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는 것이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동안 자신의 모습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찾아가는 것, 그리고 그 안에서 자신을 발견하며 살아가는 것이 가장 귀하다는 것입니다. 항상 기뻐하기 위해서, 끊임없이 기도하고 모든 일에 감사하기 위해서는 자신이 지금 경험하고 앉은 자리, 서 있는 자리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달아야 합니다.

바울의 몸이 마지막으로 거하던 곳은 로마의 차디찬 감옥바닥이었고 공포와 두려움이 가득한 참수 형장이었습니다. 누가 보아도 바울의 마지막은 실패로 보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인간을 옥죄는 모든 권세를 뛰어 넘어 자신의 길을 확고하게 갔고 그 길이 자신이 만족하고 하나님께서 인정한 영광스러운 길이라고 고백하고 그 길을 함께 가자고 손을 내밀었습니다. 바울이 그럴 수 있었던 것은 자신의 생은 주님께서 주신 것이라 확신했기 때문입니다.

오늘 현대인들은 물질과 명예, 권력에서 성공한 인생이 되라고 말하는 것은 물론이고 평화를 위해, 정의를 위해, 사랑을 위해 무엇인가를 해야만 한다는 성과주체로서의 나가 될 것을 심하게 요구 받고 있는지 모릅니다. 우리가 우리의 길을 달려가면서 기쁨과 감사를 잃어버린 자신의 모습을 발견 한다면 우리가 달려야 할 길을 제대로 가고 있는지 살펴보아야 할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대성당 지하묘지에는 어느 성공회 주교의 묘비명에 새겨진 글이 있습니다.

"나는 세상을 변화시키겠다는 꿈을 가졌었다.
그러나 좀 더 나이가 들고 지혜를 얻었을 때
나는 세상이 변하지 않으리라는 것을 알았다.
그래서 내 시야를 약간 좁혀 내가 살고 있는 나라를
변화시켜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그것 역시 불가능한 일이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마지막 시도로 나와 가장 가까운 내 가족을
변화시키겠다고 결심했다.
그러나 아아, 아무것도 달라지지 않았다.
이제 죽음을 맞기 위해 자리에 누워 나는 문득 깨닫는다.
만약 내가 나 자신을 먼저 변화 시켰더라면
그것을 보고 가족이 변화 되었을 것을
또한 그것에 용기를 내어 내 나라를 더 좋은 곳으로
바꿀 수도 있었을 것을
그리고 누가 아는가,
세상까지도 변화되었을지... "

오늘 우리는 예수 안에 존재하고 있는 나와 우리가 얼마나 존귀한 존재인지를 먼저 발견하는 것이 세상의 변화의 시작이라는 것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성과가 없어도 예수 안에서 자신의 존재에는 변함이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자신을 사랑하고 인정하며 또한 동일하게 온 생명을 인정하고 사랑하며 나가야 합니다. 그러한다면 우리는 매일의 삶뿐 아니라 죽음이 손을 내밀지라도 자신 있고 확신 있게 “나는 나의 달려갈 길을 달려왔다.”고 말하며 웃을 수 있고 동료와 아이들에게 나와 같이 살라고 말 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한 주간 예수 안에 있는 사랑으로 나를 향해 달리며 그것이 세상을 변화 시키는 길임을 확고하게 믿으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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