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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배의 유혹을 버리라
역대지상 21:1-8
1 사탄이 이스라엘을 치려고 일어나서, 다윗을 부추겨,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게 하였다. 2 그래서 다윗은 요압과 군사령관들에게 지시하였다. “어서 브엘세바에서부터 단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의 인구를 조사하여, 그들의 수를 나에게 알려 주시오.” 3 그러자 요압이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의 백성을, 지금보다 백 배나 더 불어나게 하여 주시기를 원합니다. 높으신 임금님, 백성 모두가 다 임금님의 종들이 아닙니까? 그런데 어찌하여 임금님께서 이런 일을 명하십니까? 어찌하여 임금님께서는 이스라엘을 벌 받게 하시려고 하십니까? 4 그러나 요압은, 이 이상 왕을 설득시킬 수 없었으므로, 물러나와서 온 이스라엘을 두루 돌아다닌 다음에 예루살렘으로 돌아왔다. 5 요압이 다윗에게 백성의 수를 보고 하였다. 칼을 빼서 다룰 수 있는 사람이 온 이스라엘에는 백십만이 있고, 유다에는 사십칠만이 있었다. 6 그러나 요압은 왕의 명령을 못마땅하게 여겨, 레위와 베냐민은 이 조사에 포함시키지 않았다. 7하나님께서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이스라엘을 치셨다. 8 그래서 다윗이 하나님께 자백하였다. “내가 이런 일을 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을 일을 하였습니다.”

ex) 한 인디언 추장이 추장직을 물려주기 위해 젊은이들을 모아 놓고, 높은 산봉우리를 가리키며 제일 먼저 올라갔다. 내려오는 사람에게 추장직을 물려주겠다고 했습니다.
세 사람이 열심히 뛰어 산을 올라갔다 왔습니다. 한 사람은 산에서 고산성 식물을 뜯어서 추장에게 주었습니다. 또 한 사람이 헐레벌떡 뛰어 왔습니다. 그는 높은 산봉우리 꼭대기에서 뜯은 푸른 이끼를 추장에게 바쳤습니다. 그리고는 추장직을 달라고 했습니다.
이때 마지막 한 사람이 뛰어들어 왔습니다. 그는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는 추장에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나는 저 위에 올라가서 넓은 옥토를 보고 왔습니다. 이 부족을 제게 맡기십시오. 제가 이 부족을 잘사는 부족으로 만들겠습니다." 추장은 그에게 추장직을 계승해 주었습니다.

한 부족을 섬기기 위한 추장의 자격은 부족의 구성원 하나하나의 삶을 생각하고 그들이 자유롭게 살아가는 내일을 준비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입니다. 추장이 되기 위해 경쟁하고 일등하며 생명을 함부로 하는 사람은 추장으로서 자격 미달입니다.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는 사람은 무엇을 취하고 지배하기보다 있는 그대로를 바라보고 그 안에서 서로를 인정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일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은 성경의 다윗 왕 하면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는 말을 연상하곤 합니다. 그러나 다윗이 왜 하나님의 마음에 들었던 사람인지는 깊이 있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일반적으로 다윗처럼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열심히 하나님을 믿고 교회생활하고 헌금하고 봉사 잘하면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언제나 승리를 향해 질주하는 열정으로 하나님을 섬기면 된다고 여깁니다. 그리하면 하나님께서 다윗과 같은 승리를 주실 것이라 믿습니다. 과연 다윗이 하나님에 대한 종교적인 열심만으로 하나님의 마음에 인정 되었을까요? 다른 왕들에게는 다윗과 같은 열심 있는 마음이 없었을까요? 민족과 국가를 위해 힘을 키우고 승리를 원했던 왕은 다윗 뿐 아니라 이스라엘의 모든 왕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왕들이 그러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에게는 무언가 다른 점이 있었습니다.

우리는 오늘 본문에서 다윗 왕이 다른 고대 이스라엘의 왕들과 같은 점과 다른 점이 무엇인지 살펴보고 우리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묵상하고자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다윗은 이스라엘의 2대 왕입니다. 다윗은 초대 왕 사울과의 왕위 쟁탈전에서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다윗이 왕 위에 오른 것은 그의 군사력이나 정치력이 뛰어나서라기보다 사울 왕가가 블레셋 민족과의 전쟁에서 패하였고 그 전쟁 중에 사울과 그의 아들 요나단이 죽었기 때문입니다. 사울 왕이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그의 아들들과 함께 전사하자 그를 따르던 이스라엘의 열 부족은 다윗에게 찾아가 다윗을 자신들의 왕으로 추대하였습니다.

다윗은 사울 왕에게 쫓기던 신세에서 민족 간에 큰 분쟁 없이 이스라엘 통일왕국을 열게 된 것입니다. 다윗 왕이 이스라엘을 통일하고 주변 민족과 나라들과 많은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잘 조직된 그의 군사력은 주변국들을 정복하고 조세를 받게 되었고 영토 확장을 위해 전쟁을 끊임없이 치루었습니다. 다윗은 군사력이 주변국들을 제압하기 시작하자 더 크고 강한 지배력을 갖길 원했습니다.

그래서 다윗이 행한 정책은 이스라엘 백성들에 대한 인구조사였습니다. 이 인구조사는 오늘로 이야기하면 민간인 사찰에 해당할 것입니다. 다윗은 백성들의 가정사를 속속들이 조사하여 통치에 이용하겠다는 것입니다. 특히 군사력 증강에 있어 징용은 필수적인 것이었기 때문에 더더욱 인구조사가 필요했습니다. 그것뿐 아니라 인구조사는 백성들에게 세금을 걷는데 유용하였기 때문에 다윗에게는 피해갈 수 없는 유혹이었습니다.

얼핏 보기엔 왕으로서 당연한 정책이라 볼 수 있기에 다윗은 백성들의 삶을 더 잘 알아보고 그에 맞는 정책을 펼치기 위해서라고 말했을 것입니다. 다윗 왕의 인구조사에 대해 군대장관인 요압이 반대를 하지만 그의 반대도 지배를 향한 다윗의 욕망을 제어하지 못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의 모든 곳의 인구를 조사하여 당장 징집할 수 있는 군인들 백이십칠만명을 파악했습니다.

본문 1절에서는 이러한 다윗의 모습은 사탄이 이스라엘을 벌 받게 하려고 다윗을 부추겨서 생긴 일이라고 합니다. 다윗의 직접적인 잘못을 은근슬쩍 피해가려는 편집의도가 보이지만 다윗의 죄가 분명하게 나타난 것은 감출 수 없었고 감추어서도 안 되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은 백성들을 자신의 완벽한 통치하에 두기 위해 인구조사를 벌였지만 그의 권력지향적인 모습을 고발하는 사람들의 반대에 부딪히게 되었습니다.

전제적인 지배를 원했던 다윗 왕의 정책은 역사 속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의 뜻과 맞지 않는 일이었습니다. 다윗의 이러한 지배욕은 역사의 폭력자들이 가진 것입니다. 역사와 생명을 억압하고 빼앗는 지배자들은 자신들 안에 꿈틀거리는 지배욕이 무엇인지 잘 인지하지 못합니다.

이는 마치 1980년 5.18광주민주화운동 때 수많은 시민들을 죽이고도 아무런 죄책감이나 부끄러움없이 골프를 치고 다니고 육군사관학교에 사열을 받으러 다니는 지배자들의 모습과 같습니다. 또한 그들의 모습을 정당화 하고 숭앙하기까지 하는 사람들의 어리석은 마음과 동일합니다.

다윗은 세상의 모든 지배자들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오로지 세상을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에 사로잡혀 내면에서 소리치는 정의에 대한 외침도, 주변의 충고도 듣지 못했습니다. 다윗 왕과 다른 왕들 사이에 딱히 이렇다 할 다른 점이 없어 보이지만 그에게 한 가지 다른 점을 찾아 볼 수 있는 것은 그가 자신의 실패를 힘으로 감추지 않고 회개하였다는 것입니다.

역대 이스라엘 왕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기 위해 일족을 멸하거나 학살했습니다. 그들은 자신들이 저지른 범죄 이후에 회개하는 일이 없었습니다. 사울 왕은 소수민족인 기브온 민족을 학살했지만 전혀 돌이킴이 없었습니다. 아합 왕은 나봇을 죽이고 그의 포도원을 빼앗고 전혀 거리낌이 없었습니다. 모든 왕들은 하나같이 자신들의 전제지배를 정의로 생각하였고 백성들의 고통은 아랑곳 하지 않았습니다.

다윗도 다른 전제국가의 왕들과 마찬가지로 인구조사를 실시하고 백성들을 더욱 옥죄어 지배하려 할 때 이스라엘에 큰 전염병이 돌았습니다. 본문 이후에 전염병에 대한 이야기가 예언처럼 등장하지만 다윗의 전제통치하에 큰 영향을 준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전염병으로 인해 백성들의 고통과 신음소리는 날이 갈수록 커졌습니다. 나라에 가득 찬 고통의 소리를 듣고 보며 다윗은 하나님 앞에 자신의 지배욕에 대한 잘못을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서 무력하게 있을 수밖에 없는 자신을 깨달았습니다. 세상의 어떤 곳 무엇이라도 정복하고 지배할 수 있을 것 같았던 다윗은 자신의 욕망을 한 순간에 버립니다.

“내가 이런 일을 하여, 큰 죄를 지었습니다. 그러나 이제, 이 종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를 빕니다. 참으로 내가 너무나도 어리석은 일을 하였습니다.”(8절)

어떤 왕에게서도 쉽게 찾아 볼 수 없는 고백입니다. 왕으로 있으면서 자신의 부족한 점, 잘못된 점을 스스로 고백하고 그 어리석음에 대한 용서를 구하는 다윗의 모습은 하나님 마음에 합한 사람으로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지배의 유혹에 빠져 백성들을 전제정치로 통치하려했던 다윗 왕은 그 길을 버리고 돌이켰지만 오늘을 사는 지배자들의 욕망은 하늘을 치닫고 있는 모습을 우리는 봅니다. 지배하고 빼앗고 억압하는 자신들의 잘못을 감추려는 이들이 있습니다. 미국은 인디언들을 학살한 자신들의 역사를 감추기 위해 보호구역을 만들어 인디언들을 통제하고, 일본은 식민지여성들을 유린했던 과거를 감추기 위해 분주합니다. 교회는 자신들의 폭력과 비리를 감추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으로 포장합니다.

우리의 현 정부는 민간인 사찰은 물론이고 자신과 측근들의 비리를 감추고 호도하기 위해 삼권분립이라는 민주주의의 기본 원칙을 하찮은 것으로 여기는 행태를 보이고 있습니다.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은 정치뿐 아니라 종교 안에도 있습니다. 한국교회의 많은 문제들이 목사와 장로로 구성된 당회에서 많은 문제점들이 나옵니다. 당회의 순기능은 공동체를 더 세심하게 섬길 수 있는 것인데 한국교회 거의 모든 당회에서는 인사와 재정에 거의 모든 개입을 하며 지배 하려는 자리에 앉아 있다는 것이 큰 문제가 됩니다. 공동체 내에서 지배자의 통치자의 위치에 자신도 모르게 서 있는 경우가 많이 있습니다. 곧 내 것, 내가 아니면 안돼라는 생각입니다.

한국불교에 큰 스님인 법륜스님이 계십니다. 그분께서 불교에 입문에 절을 옮길 때였습니다. 법륜스님은 자신의 성향 상 어떤 일을 할 때 굉장히 열심히 하는 부분이 있었다고 합니다. 법륜스님의 스승이 되시는 분의 절에 가게 되었는데 그날도 열심히 청소를 하고 있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절의 주지스님이 하시는 말씀이 “네가 없을 때도 절은 잘 돌아갔다~”하시더라는 것입니다. 법륜스님은 그 말씀에 큰 깨달음을 얻었다고 합니다.

  어떤 깨달음인지는 말하면 말하는 순간 도가 아니기에 알아서 생각하시면 됩니다. 가정의 부부사이에서 서로를 지배하려는 모습을 찾아 볼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다르겠지만 서로의 개성이 다르고 강하여 서로의 발전을 가로막기도 합니다. 헨렌 니어링이 쓴 『아름다운 삶, 사랑 그리고 마무리』에서 남편 스코트가 보낸 편지 내용을 보면 부부가 어떠한 관계로 함께 해야 하는지 보여줍니다.

“우리는 서로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이 일을 염두에 두어야 합니다. 내가 당신을 소유할 수 없고 당신도 나를 소유할 수 없다는 것, 우리가 같이 발전하고 서로 자신의 고유한 도구를 사용해야 하지만....당신은 내 반려자이고 나는 당신을 사랑합니다. 지금까지 그래왔듯이 당산은 자유롭게 어디든 갈 수 있지만... 내가 당신의 발전에 방해가 된다고 느끼는 때가 오면 언제든지 내게 알려주고, 당신 스스로를 위해 앞으로 나아가십시오.”(p97)

서로를 지배하지 않고 소유하지 않으며 서로의 개성을 존중하며 자유를 향해 나갈 수 있는 배려와 용기를 가진 부부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마음은 부부뿐 아니라 자녀, 또는 친구와 동료들 사이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오늘 우리 사회에서는 나 자신의 개성을 드러내기보다 상대의 개성을 살려 줄 수 있는 배려가 절실히 필요할 때입니다.

넓게는 정치, 경제, 문화, 사회에서 지배하려는 욕망, 좁게는 공동체와 가정, 관계에서 지배하려는 유혹이 언제든지 다가오면 튀어 올라 물려고 준비하는 뱀처럼 꽈리를 틀고 있습니다. 우리는 다윗 왕이 그랬던 것처럼 한 순간 하나님 앞에 모든 인간은 평등하며 자유하고 존귀하다는 것을 잃어버리는 순간 자신의 힘을 과시하기 시작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우리는 날마다 순간마다 우리 자신을 지배가 아닌 섬김의 자리에 놓아야 합니다.

그리고 종교와 정치, 경제 안에 존재하는 지배하려는 세력과 그 힘을 거부해야 합니다. 차별과 싸우고 모든 폭력에 대해 아니요라고 외쳐야 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이 그 모든 지배하는 힘에 미칠 것이라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는 또한 자연에 대한 지배욕을 버려야 합니다. 사람들은 한 세기 동안 탐욕을 채우기 위해 지구의 모든 자연을 지배하고 착취하였습니다. 그 결과는 지구의 종말을 두려워해야 하는 위험한 수준까지 되어 버렸습니다. 우리는 안락함을 추구하는 우리의 삶의 방식을 바꾸어 좀 더 불편한 삶의 방식을 만들어 가야 합니다. 자연을 지배의 대상이 아니라 인간을 살게 하는 동반자의 관계로 섬겨야 합니다.

오늘날 지배자들로부터 자신의 일터를 빼앗기로 평화를 짓밟힌 사람들, 생명들을 하나님께서는 모른체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아무리 지배하는 자들이 날뛰는 시대라 하여도 결국은 자유와 평등과 박애를 추구하고 지키는 하나님의 백성들이 웃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한 주간 내 자신뿐 아니라 세상의 모든 삶의 자리에 지배하고자 하는 욕망을 버리고 섬김을 지향하며 서로를 풍성하게 세워줄 수 있는 삶을 살아 갈 수 있도록 기도하고 힘써 살아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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