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1801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파일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신인류 선언
마태복음 5:13-16
13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 소금이 짠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그 짠 맛을 되찾게 하겠느냐? 짠 맛을 잃은 소금은 아무데도 쓸 데가 없으므로, 바깥에 내버려서 사람들이 짓밟을 뿐이다. 14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 산 위에 세운 마을은 숨길 수 없다. 15 또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다 내려놓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다 놓아둔다. 그래야 등불이 집 안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환히 비친다. 16 이와 같이, 너희 빛을 사람에게 비추어서, 그들이 너희의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여라.

인류의 역사를 보면 새로운 인류를 꿈꾸는 사람들은 많이 있어 왔습니다. 진화학자들은 인류는 현재 보다 더 발전 된 상태로 끊임없이 진화하고 있다고 말하고, 종교인들은 더 높은 세계와 인류가 존재하는 내세를 말하기도 합니다. 인간 존재에 대해 다른 생각을 가지고 보면 진화학자들과 종교인들이 추구하는 인간존재의 형태는 더 나은 인류를 향한 추구이고 목적을 가지고 있습니다. 지금 살아가고 있는 인간의 상황 너머의 인간을 꿈꾸며 존재의 변화를 기대합니다.
인간에 대한 이러한 생각은 보다 더 나은 미래사회를 향한 사상이고 종교적인 해결 방법이라 할 수 있습니다. 개인이나 집단, 국가와 민족, 공동체를 형성한 모든 사람들은 항상 자신의 현재보다 더 좋고 아름다운 세상을 꿈꾸고 기대합니다. 그리고 자신들의 마음과 생각에 맞게 수련도 하고 협력도 합니다. 사람들의 이러한 노력들은 최종 목적을 향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러한 목적만을 가지고는 왠지 부족한 느낌이 들곤 합니다.
완전한 사랑과 완전한 나눔의 세상을 향해 가는 사람들의 발걸음은 참으로 귀하고 격려하고 함께 해 주어야 하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삼고 향해 가는 사람들에게 에크하르트 톨레라는 영성가는 이야기합니다.
  
당신의 삶 전체의 여행은 / 궁극적으로 당신이 이 순간에 밟고 있는 / 발걸음들로 이루어져 있다. / 이것은 당신이 어디로 가고 있는지 / 모른다는 뜻이 아니다 / 이 발걸음이 가장 중요하며, / 목적지는 이차적인 것이다. / 당신이 목적지에 도착했을 때 / 그곳에서 만나는 것은 / 이 한 걸음의 성질에 달려 있다. / 미래가 당신을 위해 준비하고 있는 것은 / 지금 이 순간의 / 당신의 의식 상태에 달려 있다. /  “NOW" 중, 에크하르트 톨레, 조화로운 삶.

에크하르트 톨레는 모든 사람들의 의식의 전환을 요구합니다. 목적지를 향해 가는 발걸음은 중요하지만 그것은 이차적인 부분이라는 겁니다. 그 목적지에서 만나는 것은 지금 현재 걷는 한 걸음의 성질에 달려 있다고 권면합니다. 미래의 더 나은 인류를 향해서는 지금 순간 어떠한 생각과 마음을 가지냐에 따라 결정되어 진다고 말합니다.

예수께서는 인간 존재의 ‘거듭남’ 곧 다시 태어남을 이야기 했습니다. 어느 날 니고데모라는 나이 많은 율법학자가 밤늦게 예수를 찾아와 ‘어찌하면 영생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한 예수의 대답은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단호하게 말했습니다. 거듭남이 무엇입니까? 새로운 존재로의 귀의입니다. 이 귀의는 자신의 존재를 완전하게 내어 맡기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를 내어 놓을 때 새로운 존재로 탄생이 가능하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나님께 자신의 존재를 내어 놓을 수 있습니까? 믿음입니다. 믿음은 보이지 않는 것을 보게 하고 증명해 줍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라고 누군가 묻는다면 무엇이라 말씀하시겠습니까? 이러한 질문은 저 높은 자리에 앉은 이들, 부자들이 갖는 질문이 아닙니다. 그들은 자신뿐 아니라 타인까지도 권력과 돈으로 자신들의 존재를 생각하고 규정합니다. 우리는 유전자를 변형시키고 복제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또한 자본의 논리에 의해 점유되고 상품화 되고 있는 현실을 가지고 있습니다.

예수께 모여든 사람들은 대부분 서민들이었습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수급대상자들이었고, 차상위계층이나 저소득층의 사람들입니다. 예수 주변에 모인 사람들은 오늘 일용할 양식이 없어 굶주리거나 물로 허기를 채워 나가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들 대부분은 내일 양식을 걱정하고, 자식들의 앞날을 염려해야 하는 사람들, 자신들의 일자리를 하루아침에 잃어버리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사람들입니다. 예수께서는 현실의 문제들에 얽혀 사는 사람들을 향해서 존재에 대한 새로운 선언을 합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다’(13절) ‘너희는 세상의 빛이다’(14절)
존재에 대한 위대한 선포입니다. 예수는 지금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들의 과거와 현재의 삶을 묻지 않습니다.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의 내용으로 존재를 말하지 않고 있는 모습 그대로를 인정해 주고 소금과 빛이라고 선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자신에게 찾아온 사람들을 향해서 한 가지를 요구하시는데, 자신을 소금과 빛으로 인정하라는 겁니다. 그리고 자신뿐 아니라 모든 이들을 소금과 빛으로 먼저 바라보라고 하십니다. 이는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모양과 형상으로 존재한다고 믿는 것과 같은 맥락입니다. 또한 이 말씀은 빈부귀천을 떠나 모든 사람들은 자신의 자리에서 자신의 권리를 갖고, 인권이 있다는 것과 같습니다. 어느 누구도 어떤 타인을 향해서든지 자신과 동일한 권리와 평등과 자유를 가진 존재로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세상의 소금과 빛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를 하곤 합니다. 이러한 기도의 내용은 예수께서 요구하시는 말씀이 어떤 의미인지 정확하게 모르고 있다는 겁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우리를 향해 선포하고 선언하시는 소금과 빛입니다.  

예수께서는 우리를 소금과 빛으로 선포하시면서 삶을 이야기 하셨습니다. 소금은 짠맛을 내야하고 빛은 높은 곳에 두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맛을 잃어버리고 숨겨진 빛은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거미줄 하나
어느 집 낡은 헛간의 서까래 위에 거미 한 마리가 살고 있었습니다. 거미는 어느 날 줄을 길게 늘어뜨려 기둥 아래쪽까지 내려왔다가, 그곳이 먹이 구하기에 편리한 곳이라는 사실을 깨달았습니다. 그래서 아예 그곳에 터를 잡기로 하고 열심히 거미줄을 쳤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어느 날.
자기가 타고 내려왔던 거미줄 한 가닥을 발견한 거미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이제 이 줄은 필요 없어. 오히려 거추장스럽기만 할 뿐이지.’
이어 거미는 힘껏 그 줄을 잡아당겨 끊어버렸습니다. 순간 며칠 동안 공들여 지어놓은 새 거미집이 지탱할 곳을 잃고 통째로 바닥에 나뒹굴고 말았습니다.

거미는 자신이 지탱하고 있는 정말 중요한 줄 하나를 버렸을 때 모든 수고가 깨어져 버린 것을 알고 구르면서 생각했을 겁니다. ‘괜히 그랬어, 괜히 그랬어, 그 줄을 끊지 말아야 했는데~’ 아마 땅을 치고 후회를 했을 겁니다.

그리스도인이 자신은 소금과 빛이라는 사실을 잃어버리거나 잊고 살아간다면 그 삶은 통째로 무너지고 말 것입니다. 빛과 소금은 하나님의 형상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은 다른 사람들, 그리고 모든 생명들과 함께 사랑하고 나누며 존중하고 배려하며 친절한 말과 행동입니다. 우리는 거미가 타고 내려온 거미줄 한 가닥처럼 하나님께 우리의 존재를 찾고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향해 ‘너희는 나의 형상대로 존재하는 소금이고 빛이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의 한 해 동안의 삶이 어떠했던지, 아니면 2011년의 삶을 어떻게 꾸려갈 것인지에 대해 물으시기보다 지금 너는 소금이고 빛이다라고 인정해 주시고 선언하시면서 그 말씀을 믿음으로 받아들여 빛과 소금으로 세상을 살아가라 하십니다.

당신은 누구십니까? 인간은 누구입니까? 누군가 묻는다면 무엇이라 하겠습니까?
‘예, 저는 세상의 소금입니다. 예, 저는 세상의 빛입니다.’ ‘인간은 소금이고 빛입니다’라고 고백해 보십시오. 교만과 우쭐함이 아닌 자신을 내어주고 희생하는 소금과 빛으로 진심을 다해 말해 주십시오.

인간을 소금과 빛으로 선포하신 예수께서는 이전과는 전혀 다른 인간에 대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예수의 이러한 선포는 인간이 더 나은 존재로 진보하거나 내세에서 변화될 것이다라는 목적을 향한 선포가 아닌 지금 이 순간 완전한 빛과 소금으로 자신과 타인을 받아들이고 인정하며 그와 같이 살아가는 것을 말합니다. 이러한 선언의 한 걸음 한 걸음이 하나님 나라를 오게 하고 그 나라의 만남을 가지게 할 것입니다.

성문밖교회는 2010년을 ‘새로운 도약과 발전을 기대하고 꿈꾸는 교회’로 표어 삼고 힘차게 달려왔습니다. 그리고 각자의 삶을 성실하고 아름답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며 달려왔습니다. 이젠 2011년을 향해 더 행복한 걸음을 시작하는데 소금과 빛의 걸음을 하시기 바랍니다.

우리가 걷는 걸음마다 짠 맛이 나고 빛이 밝혀져 함께하는 사람들이 더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일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성문밖교회는 세상의 소금 가마니가 되어야 하고 태양과 같은 빛을 내는 등불이 되어야 합니다. 모이면 더 행복하고 흩어지면 배가 되고, 가정과 직장, 학교에서 우리들만 보아도 웃음이 나는 존재들입니다.

나를 보고 누군가 화를 내거나 짜증을 많이 내거나 갈등이 심해진다면 거두절미하고 기도의 굴로 들어가야 합니다. 정치인들 중에 자신들이 그리스도인이라고 자랑스럽게 이야기 합니다. 교회는 다니고 등록도 합니다.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합니다. 그런데 맛도 없고 빛도 없는 분들이 있습니다. 15년 전 군복무 할 때입니다. 그곳은 파견부대이기 때문에 소령이 대장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부대에 가자마자 아침에 호출을 하더니 국방부장관 공관에 가서 아침 예배를 드리자고 데리고 가는 거였습니다. 얼떨결에 따라가 예배를 했습니다. 그때 국방부 장관은 장로였고 대장은 그에게 잘 보이기 위해 기독교인이라며 예배를 함께 드린 것입니다. 사병들은 대장을 부르기를 부대는 대장의 파라다이스라 했고, 장로였던 국방부장관은 나중에 비리 혐의로 구속되었습니다. 지금은 어쩐지 모르겠지만 그때 당시 이들은 맛 잃은 소금이고 빛이었습니다.
사회의 어떤 이슈를 가지고 예를 들었지만 우리의 삶의 작은 부분들을 살펴보아야 합니다. 나와 가장 가까운 이들에게 내가 어떤 존재로 남아 있는가가 중요합니다. 혹시 맛 잃은 소금과 빛은 아닌지 말입니다.

우리는 이미 소금과 빛이기에 작은 맛에도 사람들은 감동받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입니다. 우리는 볼펜을 들고 이것은 볼펜이야라고 말합니다. 그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나와 너를 향해서 너는 소금이야, 빛이야 하십니다. 다시 한 번 자신을 인정하고 서로를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해넘이를 하고 해맞이를 하는 이 순간 새로운 인류를 향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포를 경험하시기 바랍니다.

Title
Board Pagination ‹ Prev 1 ... 3 4 5 6 7 8 9 10 11 12 Next ›
/ 12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