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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의 주기도문 1, 하늘이 땅과 공감하다.

마6:5-10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어느 날 저녁 아들과 함께 잠자리에 누웠는데 아들이 물었습니다. "아빠, 난 요즘 이상하다. 괜히 이상한 생각니 들어. 어쩔때 내가 왜 이곳에 있지, 내가 왜 살고 있지라는 생각이 들면서 멍해져서 있을 때가 있다." 하는 겁니다. 아들의 질문에 이 아이가 지금 인간 존재에 대한 질문인가 아니면 단순한 공간에 대한 질문인가를 판단해야 했습니다. 동생이 중간에 끼여들어 자신도 그런다는 것입니다. 자신은 동물들을 보면 지금 제가 아플까, 배고플까하는 생각이 들면서 하늘에 묻는다는 겁니다. 또 누군가와 다투면 왜 그랬을까하고 묻는다 합니다. 그러면 말씀이 하늘에서 쭉하고 내려온다는 겁니다. 짧은 순간이었지만 아이들의 진지한 사고를 생각해 보는 시간이었습니다. 아이들에게 좀 더 깊은 존재를 향한 기도나눔이 있어야 하겠다는 생각을 해 보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정리한 인생 10훈에 ‘기도하기 위해 시간을 내라. 그것은 인생의 영원한 투자이다.’라는 말이 있습니다. 기도는 희노애락통을 겪는 인생들에게 끝없이 솟아나는 깊은 산속의 옹달샘과 같은 맑은 영혼과 인생의 깊은 의미를 담아내 줍니다. 줄리아 로버츠가 주연한 ‘먹고 기도하고 사랑하라’는 영화에서 인생에서 기도가 주는 행복을 잘 표현 해 줍니다. 영화에서는 도시의 삶에 지친 주인공은 인도로 여행을 떠나 깊은 기도의 세계에서 자신과 세상을 만나며 치유되고 새로운 인생의 의미를 발견합니다.

예수님의 공생애 시절 그를 따르는 제자들과 유대인들에게도 기도는 삶의 중심에 있었습니다. 그들에게 기도하는 인생은 하나님과 가장 가까이 있는 사람이었고 존경 하는 신앙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자신의 의로움을 나타내는 외식하는 기도를 하게 되었고 예수께서는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그러한 기도를 철저하게 경계 하셨습니다.

누가복음 11장에서 세례요한은 자신의 제자들에게 기도하는 법과 내용을 가르쳤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예수께서 어떤 곳에서 기도하고 기도를 마치셨을 때 제자들 가운데 한 사람이 기도를 가르쳐 달라고 말했습니다. 제자의 부탁을 받은 예수께서는 오늘 본문의 내용과 같이 기도하라고 가르치셨습니다. 우리는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가르치신 ‘주기도문’을 세 부분 9절과 10절, 11절, 12절과 13절로 나누어 묵상해 보고자 합니다.

오늘은 9절과 10절,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입니다.

예수께서 기도를 받으시는 분을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로 말씀하셨습니다. 기도를 받으시는 하나님은 ‘하늘에 계신 분’이라는 겁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 하면 왠지 저 높은 하늘 저편 구름 위에 왕궁을 세워놓고 왕좌에 앉아 둥그런 마법의 구슬을 보며 기도하는 사람들의 소리를 듣고 안일하게 계시는 하나님에 대한 느낌을 받게 될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8절에서 말씀하시듯 ‘우리가 구하기 전에 필요를 아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이십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인간의 필요를 아시는 분, 곧 땅의 필요에 온전하게 공감하시는 분이십니다. 필요를 안다는 건 오늘도 모자라는 부분에 필요를 채우기 위해 일하고 계시는 하나님이라는 겁니다.

오늘을 살고 있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무엇일까요? 말로 다 할 수 없이 많은 것들이 있습니다. 우리에게 필요한 가장 기본적인 건 의식주입니다. 덧붙이면 정치, 교육, 건강, 종교, 노동이 있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그 모든 것이 우리에게 필요하다는 것을 다 아십니다.

우리의 정치에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아십니다. 인류가 발전시켜 온 정치에서 가장 앞선 정치는 민주주의정치입니다. 국민들의 자발적인 참여와 권리가 보장된 사회를 만들어가는 정치야 말로 우리 사회에서 가장 기본적인 필요입니다. 예수께서는 '한 생명이 온 천하보다 귀하다'라는 말씀으로 주체적인 생명과 그 권리를 보장하셨습니다. 하지만 요즘 우리 사회에서 민주주의의 가장 기본권인 선거권이 국정원, 국방부, 사법부, 행정부의 기득권을 유지하려는 폭력 세력에 의해 유린당했습니다. 이를 바로 세우고 회복시키기 위해 많은 날들 하나님의 백성들이 모여 촛불을 들고 있습니다. 이 촛불엔 우리 정치에서 가장 필요한 부분을 채우시는 하나님의 뜻과 섭리가 깃들여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아시는 우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더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사는 시대를 세계화시대라고 합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세계화는 기본적으로 자본이 그려놓은 경제성장을 밑그림으로 하고 있습니다. 경제성장의 붓으로 그려진 세계화는 인간의 마음과 삶에 편의와 안락함이라는 두 얼굴을 갖게 하였습니다. 편의와 안락함의 추구는 세계화 속 인간들이 가장 열렬하고 구체적으로 가지고 있는 색깔입니다. 자신의 안락함을 위해 타인의 눈물을 훔치고 빼앗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전쟁과 분쟁이 끊이질 않고, 나무는 잘려 나가고, 물은 고이고 썩어갑니다.

이봉현 한겨레경제연구소 연구위원은 이와 같은 현실을 '무관심의 세계화와 사이코패스 사회'라고 규정합니다. 그 이유를 밀양의 765kV 송전탑건설을 반대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의 눈물을  외면한채 경기도 성남시에서 분당구 구미동의 송전탑을 철거하고 345kV를 2.5km 땅속에 묻는 공사를 최근 마무리 하고 1시간 30분 동안 축하 행사에 3000만 원의 예산을 썼다는 것에서 찾습니다. 밀양에서는 송전탑을 건설한다고 평생을 살아온 사람들의 평화를 산산조각 내고 전기를 주로 사용하는 도시에서는 송전탑을 뽑아냈다며 잔치를 벌였던 것입니다.

이러한 타인의 아픔과 고통에 공감하지 못하는 싸이코패스적인 인간성은 우리 나라만 있는 건 아닙니다. 얼마 전 이탈리아 최남단 람페두사에서 내전과 핍박을 피해서, 가족과 더 나은 삶을 위해 아프리카 난민 500명이 탄 폐선이 전복사고가 났었습니다. 육지까지 800미터를 남기고 전복사고가 난 후 364명의 사람들이 익사했습니다. 당시 해양경찰선과 다른 배들이 있었지만 피니보씨 이민법을 이유로 어린아이들 붙들고 죽어가는 사람들을 지켜보고만 있었습니다. 심지어 통통배로 구조에 나선 어민들에게 법을 강조하며 구조활동을 멈추라고까지 했습니다. 사고에서 살아난 사람은 155명에 불과했습니다. 1999년부터 아프리카에서 유럽으로 나온 아프리카 난민들은 20여 만명이고 그 중 2만 명은 바다에서 생을 마쳐야 했습니다.

  올 3월에 즉위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사고 직 후 람페두사를 찾아 '무관심의 세계화'를 질타했습니다. '돈이라는 우상을 중심에 놓는 경제 체제가 비극을 불러오고 있다'고 비판하며 가난과 불평등에 싸울 것을 촉구했습니다. 프란치스코 교황은 말합니다.

"안락을 추구하는 문화는 오직 우리 자신만 생각하도록 합니다. 참으로 무관심의 세계화로 이끄는 것입니다. … 여기 형제, 자매들의 죽음에 누가 애통해하고 있습니까? … 어린 것을 안고 있는 이 젊은 엄마들을 위해, 가족을 위해 일자리를 찾아 나선 이 남자들을 위해 우리는 어떻게 울어야 하는지를 잊었습니다. … 이웃과 함께하는 '고통' 말입니다. 무관심의 세계화가 우리에게서 슬퍼하는 능력을 제거해 버렸습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도 무관심의 세계화가 인간에게서 제거해버린 슬퍼하는 능력을 채우십니다. 예수께서는 골방의 기도에서 이 능력을 채우라고 가르치십니다. 골방은 홀로 있는 시간과 공간입니다. 그 자리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자리이고 인간의 필요를 채우는 곳입니다. 주기도문의 첫 부분에서는 하늘과 땅이 만나는, 곧 인간에게 가장 필요한 타인과의 공감능력을 채우는 기도를 하라 합니다.

예수께서 가르치신 주기도문의 첫번째 가르침은 골방에서 채워지는 하늘의 능력들입니다. 그곳에선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르고, 그 이름의 거룩함이 나타납니다. 또한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며, 하나님의 뜻이 하늘에서 온전함 같이 땅에서 온전해 지는 곳입니다. 골방의 주기도문 첫 번의 가르침엔 하늘의 것을 땅으로 초대하고 그 능력에 연합하는 인간이 있습니다. 예수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성육신은 하늘이 땅에 온전하게 연합하고 공감한 위대한 하나님의 뜻이자 실천입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은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아버지라 함은 하나님과 나, 나와 우리를 구분하지 않고 하나님의 존재에 모든 생명의 시작과 끝을 두는 것입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의 이름은 홀로 안락하고 만족하는 인간에게는 거룩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은 우리가 우리 될 때 거룩하여집니다.

어느 교회에서 초등학생들을 모아 놓고 자신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에 대해 그림을 그리도록 했습니다. 아이들이 그린 그림은 좋은 아파트와 건물들로 가득했다고 합니다. 그 그림들 중 타인과의 어떤 나눔도 사랑도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눈물 흘리는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곳입니다. 고통과 아픔이 있는 사람들을 위로해 주는 곳입니다. 그러나 주기도문을 수 없이 반복하는 어린 교회학교 아이들의 기도와 마음에는 안타깝게도 가난하고 연약한 이웃들과 함께 즐거워하고 나누는 하나님 나라가 아니었습니다. 그저 좋은 집과 편안한 자신들의 생활만 있었습니다. 이는 우리 한국교회 안에 잘못 그려지고 추구되어지는 하나님 나라를 보여줍니다.

  우리 생명의 존재가 되시는 하나님의 뜻은 예수님을 통해 이미 이루어졌고 우리는 그 나라를 오늘 지금 이 순간 땅으로 초대합니다.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께서 땅에 공감하시듯 한 가족 처럼 서로의 아픔에 공감하는 기도가 우리가 해야 하는 기도입니다. 이 맘때면 모든 교회가 수능생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는 수능을 준비하든 취업을 준비하든 결과를 쫓아 기도하지 않습니다. 다만 우리의 자녀들이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과정에서 최선을 다하되 타인과의 삶을 평등하고 정의로운 하나님 나라를 이루어 가길 기도합니다.

하늘에 계신 하나님께서는 이 순간 우리 마음의 골방에 계십니다. 누군가 알아주지 않고 보아주지 않아도 스스로 타인과 공감하며 서로의 필요에 민감하게 움직이며 채워주는 마음과 삶에 살아계시는 하나님은 계시고 그 기도를 들으십니다. 하늘과 땅이 연합하여 서로의 필요에 공감하며 노래하고 춤추는 골방의 주기도문을 한 주간도 드리시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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