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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1 14:34

2015.12.31. 성문밖 송구영신예배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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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5.12.31. 성문밖 송구영신예배 설교

제목: 약할 때 강하다!

본문: 고린도후서 121-10

설교 후 찬송: 약할 때 강함 되시네

 

1. 운세를 본다?

내일이면, 아니 몇 분 후면 새해입니다. 새해가 되면 토정비결이란 것으로 신년의 운세를 가늠해 보는 것이 우리의 풍습입니다. 그래서인지 페이스북과 같은 social network service에서도 신년 운을 예견해 주는 서비스가 유행입니다.

 

우리 교인 중에서도 신년 운세가 공개된 분이 계셔서 보니, 이분은 내년에 로또 당첨되신다고 합니다. 그뿐 아니라 이분의 전반적인 내년 재물 운세가 대단히 아름답게 펼쳐질 것으로 페이스북은 전망하고 있었습니다. 이분과 가까이 지내면 좋은 일이 있을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의 내년 운세는 어떻게 펼쳐질까요? 궁금하시지요?

 

이처럼 운명을 가늠하는 일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인간의 관심인지라 중국의 송나라때부터 명리학이란 학문이 있어 왔다고 합니다. 잘 알려진 팟캐스트를 하나 들었는데, 송년특집으로 명리학의 전문가가 나와 모든 인간의 관심인 운명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 전문가는 운명의 뜻을 이렇게 풀었습니다. 운명에서 명은 하늘이 주신 것으로 변하는 것이 아니라고 합니다. 반면에 운은 변화무쌍하다고 합니다. 글자 자체가 움직인다는 뜻의 운자입니다. 운동이니 운행이니 하는 말을 할 때 사용하는 글자입니다. 그리고 이 글자 안에는 군대를 뜻하는 군자가 들어있습니다.

 

아시는 것처럼 군대는 나아가고 물러나고 기다리고 우회하는 등 변화무쌍한 방법으로 전략을 이루기 위한 다양한 전술을 구사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운을 본다, 운세를 본다는 것은 자기의 삶을 실현하기 위해 좋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포착하고 때를 본다, 즉 나아갈 때, 물러날 때, 기다릴 때, 돌아갈 때를 잘 알아 좋은 기회를 포착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운을 본다는 것은 자기에게 주어진 명을 이루기 위해 방법을 모색한다는 말이기도 합니다. 명은 바뀌지 않지만 그 명을 이루는 방법, 즉 운은 다양하게 바뀔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겟세마네 기도도 그런 견지에서 이해해 볼 수 있습니다. 자기의 목숨이 경각에 달려 있음을 예견한 예수님은 이 순간을 피하게 해달라고 필사적으로 기도하셨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자기에게 부여된 하늘의 명을 거부하려 했던 것이 아니라 그 명을 이루는 방법인 운에 대해 고민했던 것으로 보입니다. 지금이 나아갈 때인가? 물러설 때인가?


우리가 우리의 운세에 대해 관심을 갖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리고 슬기로운 일입니다. 자기에게 부여된 생명의 의미를 실현하기 위한 방법을 모색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기의 명을 모르고, 자기의 생명에 부여된 하나님의 뜻을 모르면서 단순히 운세에만 관심을 갖는 것은 오히려 어리석은 일이고 의미 없는 일입니다. 군대로 말하면, 반드시 이루어야 하는 전략은 모르면서 전술을 고민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운세가 나빠도 누구보다 훌륭하게 명을 이룰 수도 있습니다. 아니 오히려 운이 나쁠수록 그가 이루어낸 명은 빛이 납니다. 감동을 줍니다. 길게 이야기할 것도 없이 순교자들을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운이 나빴던 사람들입니다. 그러나 그 나쁜 운이 그들이 하늘로터 받은 명을 이루는데 아무 문제가 없었습니다. 아니, 오히려 그들은 자기들의 명을 가장 감동적인 방식으로 이루어냈습니다. 그들은 운이 아닌 명에 집중했던 사람들입니다.

 

우리도 그럴 수 있다면, 자기의 명에 대한 확고한 믿음이 있다면 아마도 자기에게 닥치는 모든 변화무쌍한 운이 그에게는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운이 나쁠수록 어쩌면 그의 삶은 더욱 감동적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송구영신의 시간을 맞아 자기의 운과 명을 성찰해 보시는 시간을 이런 관점에서 가져 보시는 것도 유익하리라 믿습니다.


2. 연말연시에 일어나는 성찰의 욕구

일 년 중 어느 때 책이 가장 많이 팔리는지 아시나요? 독서의 계절이라고 말하는 가을이 아니라고 합니다. 바로 이맘 때, 곧 연말에 책이 가장 많이 팔린다고 합니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시점에 사람들에게는 성찰의 욕구가 가장 왕성하게 일어난다고 합니다.

 

연말에 이르러 성찰의 욕구가 왕성하게 일어난다는 것은 올 한해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을 정리하고 싶은 욕구일 겁니다. 자기에게 일어난 일들에서 어떤 의미를 발견하고 싶은 욕구일 겁니다. 자기가 살아온 한 해의 삶을 그렇게 어떤 성찰로써 매듭짓고 싶은 욕구일 겁니다.

 

여러분은 올 한해 어떤 일들을 경험하셨나요? 올 한해 경험한 그 일들로부터 여러분의 마음속에서 올라오는 어떤 감정을 느끼셨나요? 혹시 인간이 느끼는 감정의 숫자가 얼마나 되는지 아시나요? 스피노자라는 철학자는 인간의 감정을 48가지로 분류했다고 합니다. 우리가 그렇게 다양한 감정을 느끼는지 예전엔 미처 몰랐습니다.

 

어쨌거나 올 한해를 보내시면서 생각해 보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무엇이 나를 기쁘게 했고 무엇이 나를 슬프게 했는가? 무엇이 나를 놀라게 했으며 무엇이 나를 안심하게 했는가? 무엇이 나를 평화롭게 했으며 무엇이 나를 분노하게 했는가? 무엇이 나를 고통스럽게 했으며 무엇이 나를 치유해 주었는가? 무엇이 나를 절망에 빠뜨렸으며 무엇이 나에게 희망을 주었는가?

 

어떤 감정들은 나를 긍정하게 만드는 좋은 기운을 주었을 것이고 또 어떤 감정들은 나를 부정하고 싶게 만드는 안 좋은 기운을 주었을 겁니다.

 

그렇다면 나를 부정적으로 만드는 감정이 따로 있고 나를 긍정적으로 만드는 감정들이 따로 있는 것일까요?

 

그렇다면 나는 내게 일어나는 감정이 어떤 것이냐에 따라 나는 긍정도 되고 부정도 되는 그렇게 감정에 지배받는 그런 존재인 것일까요?

 

만약 우리가 그런 존재라면, 우리 안에서 일어나는 감정에 지배받는 그런 존재라면 우리는 되도록 부정적인 감정이 일어날 상황을 만들지 말아야 할 겁니다.

 

또는 그런 감정이 일어났다면 얼른 그것을 잊어버리기 위해 노력하거나 그것을 회피하기 위해서 노력해야 할 겁니다. 또는 그런 감정을 없애 달라고 기도해야 할 겁니다.

 

그러나 앞에서 말씀드린 운과 명의 관점에서 보면, 우리의 존재는 명에 해당하고 우리의 감정은 운에 해당한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감정은 변화무쌍하지만 그것이 우리의 존재를 결정하지는 않습니다. 저는 감정을 무시하자고 말씀드리는 것이 아니라 감정을 어떻게 이해할 것인가? 감정과 어떻게 교제할 것인가? 나아가 감정과 어떻게 화해할 것인가? 이런 이야기를 하려는 겁니다.

   

3. 약점에 대한 바울의 성찰

오늘 우리가 함께 읽은 바울의 고백을 들어보면서 좀 더 생각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바울은 누가 뭐래도 교회 역사에서 가장 위대한 전도자입니다. 또한 가장 위대한 신학자입니다. 그러나 바울도 살아생전엔 그런 인정을 받지 못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직접 만나 배운 적이 없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교회를 핍박한 사람입니다.

 

이런 사실은 두고두고 바울의 적대자들이 바울을 공격하는 빌미가 되었습니다. 바울은 예수를 만난 적도 없고 예수에게 배운 적도 없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도가 아니다, 바울의 가르침은 사이비다, 더구나 바울은 교회를 핍박했던 사람이다, 이런 식의 공격은 바울이 세운 교회 안에서도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면 바울은 이러한 공격에 대해 격렬하게 반박하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자기를 공격할 때 그런 것이 아니고 자기가 전하는 복음의 내용을 공격할 때 그런 것입니다. 복음의 내용이 공격 받는다고 생각하면 바울은 상대가 누구라 하더라도, 그가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라 하더라도 주저하지 않고 공격했습니다.

 

그러나 적대자들의 공격이 자기의 이력에 대한 것이거나 자기의 외모에 대한 것이거나 자기의 실력에 대한 것이거나 자기의 헌신을 비웃는 것이라면 자기도 할 말이 많지만 그런 공격에 반박하기 위해서 자기의 자랑거리를 사용하지 않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사실 바울은 자기의 외적인 조건들을 자랑하기는 했습니다. 빌립보서 3장에 보면, 나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바리새인 중의 바리새인이요,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요, 등등, 그러나 결론적으로 그 모든 것을 나는 가치 없는 것으로 배설물처럼 여긴다고 말하는 방식으로 하기는 했지만 말입니다. 그러나 우리는 바울의 말이 진심인 것을 믿습니다.

 

오늘의 본문에서도 바울은 자기에게 있는 신비한 경험을 자랑하고 싶지 않지만 이미 말이 나왔으니 말하겠다 말합니다. 굳이 이 경험의 주체가 자기라고 말하지 않고 자기가 아는 어떤 사람의 이야기라고 말합니다.

 

그 사람이 십사 년 전에 낙원에 올라가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신비로운 경험을 했다고 이야기합니다. 이 사람의 경험은 바울의 적대자들이 자랑하는 그 어떤 신비 경험보다 우월한 경험이라는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런 경험을 자랑하고 싶지 않다고 말합니다.

 

왜일까요? 이런 신비경험이 자기를 온전하게 만드는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이전의 바울은 철저한 율법준수와 신비로운 환상과 계시경험이 자기를 더 온전한 사람이 되게 해줄 수 있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결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사람은 결코 그런 방식으로 온전해 질 수 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바울은 장점이나 업적이 아니라 오히려 자기의 약점과 실패들이 자기를 온전케 만든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자기의 약점과 실패를 자기의 자랑거리로 삼겠다, 드러내겠다고 말합니다.

 

이것이 5절의 말씀입니다. 나는 나의 약점밖에는 자랑하지 않겠습니다! 이것은 바울 자신의 고상한 인격을 통한 깨달음이거나 관념적인 지식은 아니었습니다. 오랜 내적 투쟁의 결과였습니다.

 

바울에겐 치명적인 약점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었지만 바울은 그것을 내 몸의 가시, 사탄의 하수인이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서 자기를 치셨다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세 번이나 이것이 떠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고 합니다. 세 번 기도했다는 것은 필사적으로, 생사를 걸고 기도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것은 겟세마네에서 하셨던 예수님의 기도를 떠올립니다.

 

죽음을 목전에 두고 예수님도 세 번 기도하셨습니다. 누가복음에 보면 예수님께서 기도하시는 모습을 보면, 그 흐르는 땀이 마치 흐르는 피처럼 보일 정도로 간절히 필사적으로 투쟁하듯이 기도하셨다고 합니다. 바울도 그랬을 겁니다. 사력을 다해 하나님과 투쟁하듯 기도했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에게 들려온 대답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내 능력은 약한 데서 완전하게 된다.”였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고쳐주지 않는다는 대답입니다. 바울은 언제까지나 자기의 약점과 더불어 살아야 한다는 대답입니다.

 

운과 명의 관점에서 말하면, 바울에게서 육체의 가시라는 부정적 운세가 떠나지 않을 것이란 대답입니다. 바울을 향한 하나님의 뜻은 하나님의 명은 바울의 부정적인 운세 속에서 더욱 완전히 실현된다는 말씀입니다. 어떻습니까? 만족할 만한 대답입니까?

 

이것은 바울의 생각을 뛰어넘어서 들려온 하늘의 소리였습니다. 바울이라고 처음부터 이런 생각을 했을 리가 없습니다. 그랬다면 자기의 약점을 없애 달라고 기도하지도 않았을 겁니다. 그러나 바울은 이 말씀을 하나님의 음성으로 수용했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10절에서 다음과 같이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나는 그리스도를 위하여 겪는 나의 모든 병약함과 모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란을 기뻐합니다. 내가 약할 그 때에 오히려 내가 강하기 때문입니다.

    

4. 약함을 상처가 아닌 자산으로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저는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는 이 말씀으로 우리의 2015년을 정리하고자 합니다. 또한 2016년 새해를 살아갈 우리의 모토로 삼으려 합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올 한해를 보내시면서 자기의 약함을 절감할 수밖에 없는 경험들을 하셨습니까? 그러나 그 경험들을 회피하지 않고 직시해야 했기 때문에 괴로우셨습니까? 잘하셨습니다.

 

우리는 자기가 죽을 수밖에 없는 존재임을 절감할 때에야, 나의 생명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나의 건강도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결국 나의 운명이 나의 것이 아님을 알게 됩니다. 그때에야 비로소 우리는 우리의 생명이 선물로서 주어진 것임을 인정하고 내게 주어진 생명의 의미를 간절히 묻게 됩니다. 그렇게 물어가며 살아갈 때 우리의 생명은 가장 가치 있는 곳에서 가장 가치 있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습니다.

 

올 한 해를 살면서 자기의 약점과 직면하며 살아야 했다는 것은 우리의 삶이 가장 가치 있는 방식으로 실현될 수 있는 길이 무엇인지를 그만큼 더 고민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 그런 경험이 비록 쓰디썼다 할지라도 잘된 일입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는 말씀은 개인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라 공동체에도 적용되는 말입니다. 공동체에서 공동체의 형제들과 자매들 때문에 실망하셨습니까? 괴로우셨습니까? 그것도 잘된 일입니다.

 

바로 그러한 실망으로부터 이 교회가 이해와 취미를 함께 하는 공동체가 아님을 알게 되고 신앙공동체로서 교회의 의미가 과연 무엇이냐를 묻게 됩니다.

 

저도 개인적으로 올 한해를 보내며 저 자신의 많은 무능력과 부족함 그리고 제가 선천적으로 또한 후천적으로 가진 여러 약점들을 드러내야 했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감출 수 없었습니다. 그런 것들이 저를 괴롭게 했고 다른 사람들도 힘들게 했습니다.

 

그러나 그런 일들을 겪으며 저는 교회공동체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고 교회공동체를 섬기는 목회가 무엇인지를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제가 목회자로서 교우들에게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도 다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교회공동체는 신앙공동체가 되어야 합니다. 신앙공동체는 공동체 구성원들의 고상한 인격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가 아닙니다. 신앙공동체인 교회는 하나님 말씀 위에 세워지는 공동체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이러합니다.

 

너의 약점을 감추지 말고 자랑하라, 드러내고 직시하라, 그럼으로써 너는 더 강해지고 온전해질 것이다.

 

약점은 내가 누구인지 착각하지 않게 합니다. 약점은 나를 겸손하게 합니다. 약점은 내가 하나님께 깊이 의존해서만 살아갈 수 있는 존재임을 깨닫게 합니다. 그리하여 약점은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문이 됩니다.

 

야곱의 꿈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야곱이 형 에서에게 쫓겨 도망 중 광야에서 노숙하는 처지가 되었을 때, 그가 가장 약한 존재임이 드러났을 때, 야곱은 바로 그곳에서 잠을 자다가 꿈에 하늘로 올라가는 사다리를 봅니다.

 

야곱은 꿈에서 깨어 바로 그곳이, 자기의 약함이 가장 적나라하게 드러난 그곳에 대하여 이렇게 고백합니다. “여호와께서 이곳에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곳이여 이곳은 하나님의 전이요, 하늘의 문이로다.”

 

우리는 모두 약점이 많은 사람들입니다. 그 많은 약점들이 올 한해도 어쩔수 없이 많이 드러났을 겁니다. 그런 일들로 우리의 마음으로부터 여러 가지 소위 부정적인 감정이라 부르는 것들이 올라왔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들이 사실은 나의 진실 된 모습을 가감 없이 보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계시였다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나의 수많은 약점들을 통해, 나를 온전함으로 부르시는 하나님의 계시였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우리 공동체도 마찬가지입니다. 많은 약점들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결코 우리 공동체의 장애가 된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우리가 신앙공동체로서 온전케 되기 위한 자산이 된다고 믿습니다.

 

그러므로 목회자로서 제 역할은 그런 것일 겁니다. 우리가 우리 자신의 약점과 우리 공동체의 약점을 하나님의 계시로서 받아들이도록 돕는 것, 그래서 우리가 그것들과 더 잘 교제하고 화해하도록 돕는 것, 그래서 우리가 우리의 약점을 상처가 아닌 온전함으로 나아가는 자산으로 삼게 돕는 것일 겁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자기의 약점을 사랑하고 자랑하십시오. 그 약점이 솔직한 자기를 만나고 하나님을 만나는 통로임을 믿으십시오. 또한 우리 공동체의 약점도 사랑하고 자랑합시다. 약점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우리 안에서 그리스도의 능력은 더 온전해질 겁니다. 우리의 약점이 우리를 하나님께 인도하는 통로가 되듯 우리 공동체의 약점도 우리가 서로를 더 뜨겁게 사랑하는 통로가 될 것을 믿습니다.

 

자기의 약점을 하나님의 계시로 믿고 자기의 약점을 사랑하고 자랑하는 우리에게 어떤 운세도 하나님의 명을 이루는데 아무런 장애가 되지 않을 것을 믿습니다.

 

주님의 은혜가 우리에게 2015년 내내 충분하였음을 고백합니다. 또한 앞으로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기도

주님, 주님께서 주신 2015년이 지나고 이제 2016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총 속에 지나갔고 또 지나가게 될 것을 믿습니다. 우리는 또 많은 부분에서 잘못할 것이고 우리 자신의 약점을 노출하게 되겠지만 이제는 더 이상 그것들을 두려워하지 않고 오히려 그것들을 자랑하며 직시하며 그 약점들을 통해 나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계시에 집중하겠습니다. 그리하여 모든 부정적 경험과 약점을 하나님께 이르는 디딤돌로 삼아가겠습니다. 우리의 약함 속에서 더 큰 능력을 보여주실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통한 아름다운 교제가 내가 약할 때 오히려 강하다는 말씀을 마음에 품고 자기의 모든 약점을 오히려 사랑하고 자랑하며 더 잘 교제하고 화해하여 자기의 모든 약점을 나를 향한 하나님의 계시로서 받아들이며 하나님께 나아가는 통로로 삼기를 다짐하는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들의 삶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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