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씀자료
2016.05.25 22:54

2016년5월15일 두루마실헌신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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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러분은 제가 택배일을 하고 있는 걸아시죠? 택배일을 하다 보면 가끔 무거운 물건을 등에 지고 계단을 오를 때가 있습니다. 예전에 저는 그럴 때면 시를 외웠던 기억이 납니다. 무게를 조금 덜 의식하고 시도 외워보자는 일석이조의 야심찬 계획하에 추진되었던 일이었습니다. 하지만 조금 해보았더니 등짐의 무게는 그다지 줄어들지 않는 반면에 오히려 삼층까지만 올라가면 되는 것을 사층까지 심지어는 그 건물의 꼭대기층인 오층까지 그야말로 정상정복을 경험한 이후로 곧바로 그만두었던 기억이 납니다. 그 때 제가 십팔번으로 외웠던 시가 여러분도 잘 아시는 김지하시인의 황톳길이었습니다. 늘그막에 시인의 행동과는 무관하게, 시는 그 시를 읽는 독자의 것이다는 생각으로 외웠던 시입니다. 그 시에는 후렴구처럼 여러 번 반복되는 시구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부줏머리 갯가에 숭어가 뛸 때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이라는 시구입니다. 부줏머리 갯가의 숭어가 물살을 박차고 공중으로 뛰어 올라 공중에서 세바퀴반 몸을 비틀어 보이는 생명력을 과시하고 있을 때 사람은 가마니 속에서 죽어 있었다는 걸 노래하는 시구였습니다. 공교롭게도 저는 그 때 세월호의 어린 학생들이 가만히 있으라는 방송 때문에 억울하게 죽임을 당했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리고 가만히 있으라할 때의 가만히와 가마니 속에서 할 때의 가마니가 발음이 매우 유사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리고 국가폭력에 의한 힘없는 자들의 억울한 죽음이라는 면에서도 깊은 유사성이 있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저는 오늘 가만히 있지 않고 육이오때 쓰던 카빈소총으로 기관총과 탱크에 맞서 싸우다 비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들이 어떻게 저의 가슴에 씨앗이 되었는지를 이야기해보고자 합니다.



 



제가 오일팔을 처음 접한 건 광주에서 고등학교를 다니던 1985년이었습니다. 그 때 저는 광주에서 25키로정도 떨어진 나주에 있는 집까지 통학을 했습니다. 아마도 오월이었겠죠? 시골집에 가려고 버스터미널에 가는데 상당히 길게 보도블록 양쪽으로 사진들이 전시되고 있었습니다. 불과 오 년 전에 제가 지금 밟고 있는 그 땅에서 어떤 일이 벌어졌는지 보여주는 사진들이었습니다. 하지만 저는 가던 발걸음을 멈추지 않았습니다. 발걸음을 멈추고 그 끔찍한 사진들을 정면으로 응시할 수 없었습니다. 사진을 전시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인지 궁금하지도 않았습니다. 어떤 질문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습니다. 단지 스쳐지나가면서 본능적으로 두려움을 느꼈습니다. 그리고 다행인지 불행인지 금방 잊어버렸습니다. 저는 그 때까지 자라면서 여러 번의 부당한 폭력의 경험이 있었고 여전히 새롭게 가해질 수 있는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있었습니다, 저는 길가에 뿌려놓은 씨앗을 품은 사람이었습니다. 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희생된 사람들이 뿌린 씨앗을 너무나도 쉽게 빼앗아 가버렸습니다.



 





군대를 제대하고 직장생활을 할 때 제가 무척 따랐던 형이 있었습니다. 눈썹끝이 하늘로 치솟는 저와는 달리 눈썹끝이 조용히 자기의 내면을 향하는 것처럼 아래로 부드러운 곡선을 가진 형이었습니다. 오죽하면 제가 그 때 하루 종일 쳐다봐도 지겹지 않을 세 가지를 정했는데 그 때 정한 세 가지가 바다와 아이 그리고 그 형이었습니다. 물론 저의 내면에는 저의 집사람이 굳건히 자리하고 있다는 것을 이 자리를 빌려 고백합니다. 언젠가 그 형과 함께 한양대 노천극장에서 있었던 민주노총출범을 기념하는 공연을 보았습니다. 대학생활을 하지 않은 저로서는 새로운 세계였고, 많은 사람들이 새로운 시대, 새로운 질서를 원하고 있다는 걸 느꼈습니다. 어쩌면 이전까지 제가 몸담아왔던 세계와 작별을 고한 시간이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저는 새로운 세계로 진입하기 위해 많은 것들을 새롭게 알아야했습니다, 보다 많은 것이 궁금해졌습니다. 그 때 고등학교시절 버스터미널에서 보았지만 저에게 별다른 의미를 갖지 않았던 그 사진들이 떠올랐습니다. 그래서 제가 읽었던 책이 여러분도 잘 아시는 황석영작가의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라는 책이었습니다. 거기에 의하면 계엄군의 발포에 무기력하게 쓰러지던 시민들이 계엄군에 맞서기 위해 무기를 탈취하러 지방으로 빠져 나갑니다. 그렇게 광주 시내버스에 탑승한 시위대 30여명이 제가 태어나고 자란 동네에서 겨우 2키로정도 떨어진 읍내로 들어왔습니다. 그리고 이 곳 주민들과 합세하여 500여명으로 불어난 사람들이 나주경찰서에 진입해서 군용 래커차로 경찰서 무기고를 들이받고 파괴시킨 다음 많은 무기를 획득했다고 합니다. 이렇게 얻은 무기로 시민군은 무장했고 곧 무자비하게 진압됐습니다. 집권한 전두환정권의 탄압은 극심했고 많은 사람들은 더 이상 가마니 속에서 네가 죽은 곳을 노래하지 않았습니다.



 



518의 숭고한 희생은 좋은 땅에 뿌린 씨앗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씨앗을 품었습니다. 기나긴 시간의 시련을 이겨내고 수백 배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87년 대항쟁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저 또한 그 씨앗을 단단히 품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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