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회 수 2117 추천 수 0 댓글 0
Atachment
첨부파일 '1'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

단축키

Prev이전 문서

Next다음 문서

+ - Up Down Comment Print
씨뿌리는 노예들의 연가(戀歌)
시편 126:1-6
1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 우리는 꿈을 꾸는 사람들 같았다. 2 그 때에 우리의 입은 웃음으로 가득 찼고, 우리의 혀는 찬양의 함성으로 가득 찼다. 그 때에 다른 나라 백성들도 말하였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 일을 하셨다.” 3 주님께서 우리 편이 되시어 큰 일을 하셨을 때에, 우리는 얼마나 기뻤던가! 4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 5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사람은 기쁨으로 거둔다. 6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사람은 기쁨으로 단을 가지고 돌아온다.

연가(戀歌)라는 말을 살펴보면, 연(戀)은 ‘사모하다’ ‘그리움’ ‘사랑하는 이’ 라는 뜻이고, 가(歌)는 ‘노래하다’라는 의미가 있습니다. 영어로 하자면  a love song 이라 합니다. 그래서 나의 연가라고 하면 곧 ‘내가 부르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이 말을 세자로 줄이면? ‘애창곡’입니다. 이 애창곡을 노래방에서 하면? ‘18번’이라고 합니다. 여러분들은 매일 아침 눈을 뜨거나 잠들 때 생각하고 노래하는 ‘나만의 연가’를 가지고 있습니까? 힘들고 고단한 삶을 살아가는 현실에도 부를 수 있는 애창곡은 무엇입니까? 일본 후쿠시마에 지진과 해일,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하면서 이곳에 있는 우리가 상상하기도 힘든 상황을 그곳의 사람들은 맞고 있습니다. 그러한 고통의 순간에도 꿈을 꿀 수 있으며 노래할 수 있을까? 꿈을 꾼다면 어떠한 꿈을 꿀 것이며 노래를 한다면 어떠한 노래를 할 수 있을까?라는 생각을 해 보았습니다. 제가 그 상황 속에 있다고 생각하면 답은 그리 쉽게 나오지 않습니다. 어서 빨리 모든 고통이 사라지기를 바랄 뿐일 것 같습니다.


오늘 본문 시편 126편은 전쟁 포로로 끌려온 사람들이 해방의 땅, 자유의 바다를 향해 가며 부른 노래입니다. 바빌로니아 제국의 잔인한 칼부림에 가족을 잃고 끌려온 하나님의 백성들의 꿈은 해방과 자유였습니다. 70년이 넘도록 포로생활을 하였던 사람들의 삶의 애환은 말 할 수 없는 고통의 시간이었습니다. 권력 앞에 무력하게 피 흘려야만 했던 자신들의 삶에서 붙잡을 수 있었던 건 해방이 찾아오리라는 믿음과 희망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바빌로니아의 전쟁 포로로 70년의 세월을 살아야 했지만, 그들은 그곳에서 믿음을 가졌고 희망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언젠가는 자신들의 고향 땅으로 돌아갈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사실 70년의 기나긴 포로생활은 말처럼 쉬운 것은 아닙니다. 그 긴 시간 동안 하나님의 백성들은 웃음을 잃어버리고 살았습니다. 지금 한국 사회에서 외국인 노동자로 살고 있는 사람들을 생각해 보면, 수 많은 외국인노동자들은 포로와 별반 다른 것이 없습니다. 가난을 벗어나고 싶어 고향 땅에 있는 가족들과 이별하여 우리 사회에 들어와 안간힘을 쓰며 노동하는데 돌아오는 건 낮은 임금과 경멸뿐입니다. 행여 일하다 사고가 나면 불법체류자라는 낙인이 찍혀 치료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손발을 잘라내기도 합니다. 목숨을 잃는 일이 발생해도 어디 하소연하고 보상 받을 길이 없습니다. 악덕 업주들은 불법체류자라는 그들의 약점을 이용해 실컷 일을 시키고 자신의 탐욕을 채웁니다. 그리고 국가는 그들을 한 낮 공장의 부품쯤으로 여기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을 위한 제도를 우리와 동등하게 만들지 않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외국인 노동자들이 조금이나마 안전하고 마음 놓고 일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어야 합니다.

하물며 이스라엘의 70년 포로생활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긴 고통의 시간입니다. 포로로 끌려와 노예와 같은 시간을 보내야 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가에는 웃음이 떠난지 오래입니다. 불평등과 차별은 이제 생활 속 깊이 들어와 저항할 힘도 사라져 버렸습니다. 그들의 고통은 폭력에 젖고 타성에 젖어 있을 수밖에 없는 현실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에게 버릴 수 없고 포기할 수 없었던 것은 하나님의 약속이었습니다. 때가 차면 하나님께서 자신들을 구원하시리라는 하나님에 대한 신뢰였습니다. 선조들에게 자유의 땅, 해방의 땅, 행복의 땅을 약속한 하나님, 이집트 제국 노예로 살던 선조들을 탈출시키신 하나님, 주변 강대국들의 손에서 자신들을 보호하신 하나님에 대한 신뢰를 끝까지 놓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하는 포로들의 믿음과 희망을 외면하지 않고 해방과 자유가 있는 시온으로 돌려 보내셨습니다. 시편 126편은 포로라는 참담한 현실에서 벗어나 하나님이 임재가 계신 성전으로 올라가며 부른 노래입니다. 포로생활이 끝나고 해방을 맞이하며 성전에 오르는 그들의 현실은 꿈을 꾸는 것과 같았습니다. 변할 것 같지 않은 현실의 암흑을 밝혀주시는 분이 하나님이시라 고백하고 노래합니다.

“주님께서 시온에서 잡혀간 포로를 시온으로 돌려보내실 때에”(1절)

잡혀간 포로를 돌려보내시는 주님은 어떤 분이십니까? 주님은 억눌린 사람들을 풀어주고, 눈먼 자를 보게 하고, 갇힌 사람들을 해방시키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께서는 고통 받으며 웃음을 잃어버린 자신의 자녀들에게 꿈과 같은 현실을 이루게 하시고 웃음을 찾아 주시는 분이십니다.

포로에서 해방되어 성전에 오르는 하나님의 백성들의 입에는 웃음이 가득하였고, 해방의 노래, 사랑의 노래와 함성으로 가득 찼습니다. 주변 나라 백성들이 그들을 볼 때에도 너무나 행복해 보여 말하였습니다. “주님께서 그들의 편이 되셔서 큰 일을 하셨다”(2절) 그들이 현실을 볼 때 결코 벗어날 수 없을 것처럼 보였는데 어려운 현실이 꿈과 같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니 이는 분명 하나님께서 그들을 돌보고 계시기 때문이라며 칭송합니다. 모든 나라 백성들도 하나님의 백성들과 함께 폭력자들과 제국의 손에서 포로들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고 함께 노래합니다.

본문의 시를 지은 시인은 하나님께 한 가지 소원을 다시 한 번 아뢰고 있습니다. “주님, 네겝의 시내들에 다시 물이 흐르듯이 포로로 잡혀간 자들을 돌려보내 주십시오.”(4절) 포로에서 귀향하는 하나님의 백성들은 일부였습니다. 모두 함께 손을 잡고 돌아왔으면 좋겠지만 그렇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시인은 자신이 누리는 기쁨과 노래에 머물지 않고 아직 포로로 남아 있는 형제자매들을 위해 간구합니다. 네겝의 시내는 언제나 말라 있었습니다. 물이 흐른 적이 없는 시내에 물이 흐르듯이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일어나기를 염원하고 있습니다.

시인은 포로로 살며 얼마나 눈물을 흘리며 살았는지, 눈물을 흘리며 얼마나 기도하고 노력했는지 모릅니다. 시인은 농부처럼 이른 아침에 나가 하루 종일 씨를 뿌리며 싹이 나고 자라기를 소원했습니다. 농부가 씨를 뿌리면 혹은 길가에 혹은 가시밭에 혹은 돌밭에 떨어져 나지 못하거나 잠시 났다 말라버리거나 새들이 쪼아 먹어버립니다. 그러나 농부는 울며 뿌린 씨앗이 옥토밭에 떨어져 잘 자라고, 열매 맺히기를 얼마나 기다리는지 모릅니다. 시인은 현실의 참혹함이 얼마나 비정하고 답답한지 알고 있기에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갔고, 결국 기쁨으로 그 열매를 수확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시인은 아무리 현실이 어둡다 하더라도 반드시 빛은 찾아오고 믿음과 희망은 성취될 것을 확신했습니다. 시인이 이렇게 확신할 수 있었던 것은 그 일을 이루시는 분은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라 고백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신뢰하고 사는 그리스도인입니다. 이 세상이 아무리 힘겹고 어두워 보일지라도 구원하시는 하나님을 기대하고 바라보며 사는 사람들입니다. 마태복음에는 해방하시고 자유하게 하시는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는 빛이 없는 땅에 오셔서 빛을 주시는 분이라고  이사야서를 인용해 고백합니다.

“스불론과 납달리 땅, 요단 강 건너편, 바다로 가는 길목, 이방 사람들의 갈릴리, 어둠에 앉아 있는 백성이 큰 빛을 보았고, 그늘진 죽음의 땅에 앉은 사람들에게 빛이 비치었다”(마4:15,16)

스불론과 납달리, 갈릴리 땅은 앗수르의 침략으로 인해 초토화 되었던 땅입니다. 그들의 땅은 인간의 잔인한 폭력으로 얼룩져 있었고, 가난과 질병이 많은 지역이었습니다. 예수께서는 그 참혹한 땅에서 가장 먼저 복음을 전하셨던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폭력과 질병, 가난의 무거운 짐을 지고 가는 사람들에게 ‘회개하여라. 하늘나라가 가까이 왔다’(마4:17)고 선포하시며 자신들의 삶을 새롭게 하기를 원하셨습니다.

억눌리고 고달프며 질병에 찌들린 사람들이 회개할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당장 겪고 있는 현실을 견디어 내기도 벅찬데 무엇을 어떻게 회개하라는 것입니까? 도대체 너무나 힘든 상황 속에 하나님 나라가 어디에 있단 말입니까? 라고 되물을 수 있습니다. 일본에서 일어난 지진과 쓰나미로 많은 생명들이 죽어갔는데도 한국의 대형교회 어떤 원로목사는 그들이 우상숭배가 많아서 심판을 받았다고 설교했습니다. 그렇게 잘 먹고 잘사는 그리스도인들은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와 하나님 나라는 결코 알 수 없습니다. 그들의 배는 돈과 명예와 권력으로 채워져 이미 축 늘어져 땅에 닿았고 그들이 염원하는 천국은 탐욕으로 가득합니다.

고통을 경험하고 있는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의 사람들에게 예수께서 말씀하시는 회개와 하나님 나라는 재앙과 폭력, 억눌리는 힘으로부터 돌이켜 본연의 네 자신, 태초의 네 자신, 진리로 충만하고 가득한 네 자신으로 돌이켜 찾아가라는 것입니다. 웃음을 잃어버리게 하는 현실의 고통 속에 네 자신을 두지 말고 다시 한 번 일어나 환한 생명의 빛으로 나오라는 것입니다.

구 소련의 체르노빌 원자력발전소가 폭발했을 때 주변의 모든 생명들은 지옥 같은 시간을 보내야 했습니다. 25년의 시간이 지난 지금까지 그 땅은 황폐되어 있습니다. 그때 오염된 방사능은 동물뿐 아니라 인간의 생명에도 많은 악영향을 주었습니다. 방사능에 노출된 소의 우유를 먹고 2000명의 아이들이 갑상선암에 걸렸고 24명의 아이들이 사망했다는 보고도 있습니다. 1차 피해를 넘어 2차 피해까지 당해야 하는 어린 생명들이 가슴 아프게 다가옵니다. 원전사고의 현장은 전쟁과 같은 참혹한 일들을 겪어야 했습니다. 체르노빌 땅에 많은 웃음이 떠나갔고 희망이 사라져버렸습니다.

오늘 웃음과 노래를 잃어버린 사람들이 너무도 많습니다. 전쟁의 포화 속에 있는 사람들, 자연재해 속에 있는 사람들, 기아에 굶주린 사람들, 빚더미에 앉은 사람들(자본의 노예), 학대당하는 사람들(노인, 여성, 아동, 장애인, 연약한 사람), 권리를 빼앗긴 노동자들(비정규직, 외국인 노동자 등)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죄악의 포로로 잡혀 있습니다.

예수께서는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믿음과 희망을 잃지 말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고 살아갈 것을 주문하십니다. 예수께서는 우리와 같이 성정이 같은 몸으로 오셔서 모든 시험과 고통을 당하셨기 때문에 신앙을 굳게 지키라고 권면합니다.

“우리의 대제사장은 우리의 연약함을 동정하지 못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그는 모든 점에서 우리와 마찬가지로 시험을 받으셨지만, 죄는 없으십니다”(히14:14,15)

예수께서 고난과 시험을 받으시면서 하신 일은 무엇입니까? 사랑하기를 쉬지 않으셨습니다. 죄를 짓는 다는 것은 사랑하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죄를 회개한다는 것은 사랑하는 삶으로 돌이킨다는 것입니다. 고통을 이기는 노래, 슬픔과 좌절을 견디고 다시 일어설 수 있는 노래, 잃어버린 웃음을 찾을 수 있는 노래가 무엇입니까? 인간을 인간으로 만나고 사는 사람, 작은 생명을 품을 줄 아는 사람, 자신을 못살게 구는 사람을 사랑할 줄 아는 사람이 부르는 사랑의 노래입니다.

오늘 모든 고난과 고통 속에 눈물 흘리는 포로들은 사랑의 씨앗을 뿌리고, 사랑의 노래를 불러야 합니다. 예수와 같이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권력과 자본에 억눌린 사람들, 질병과 재앙 속에서도 잃지 말고 불러야 하는 노래는 예수의 노래, 곧 섬김과 나눔이 있는 사랑의 노래여야 합니다. 이 노래는 눈물 나는 현실에서 뿌려져야하고 불려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을 신뢰하고 뿌리는 씨앗과 사랑의 노래를 결코 잊지 않으시고 이루실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하늘에 올라가신 위대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계시기 때문입니다.

고통 속에서도 사랑하기를 쉬지 않고 하나님 나라를 노래하신 예수를 따라 사는 귀한 한 주간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 드립니다.

Title
List of Articles
번호 분류 제목 글쓴이 날짜 조회 수
412 말씀자료 11.28 주일설교 "가까이 계시는 하나님" 신30:11-14 file 고성기 2010.11.30 2161
411 말씀자료 2011.11.20. 주일설교 "38년의 희망" 요5장1-9절 file 고성기 2011.11.29 2158
410 주보자료 2009년 3월 22일 주보 file 손은정 2009.03.24 2155
409 기타자료 설교자료 독사 2012.01.27 2154
408 주보자료 2010년 8월 15일 주보입니다. file 유영기 2010.08.21 2150
407 기타자료 사순절 다섯 번째 주일 묵상 김희룡 2015.03.31 2148
406 주보자료 2013년 4월 주보입니다. file 김규중 2013.10.05 2147
405 기타자료 주현절 묵상3 김희룡 2015.02.09 2147
404 주보자료 11월 29일 주보 file 임도사 2009.12.04 2142
403 주보자료 2013년 2월 주보입니다. file 김규중 2013.10.05 2140
402 주보자료 2009년 10월 18일 주보 file 윤은주 2009.10.17 2135
401 주보자료 1.1 주보, 성문밖 현장의 함성과 내 서랍 속의 책 한 권 file 고성기 2012.01.07 2134
400 주보자료 2010년 6월 20일 주보입니다. file 유영기 2010.06.19 2133
399 말씀자료 2012. 2.12 주일설교 "목자의 노래" 겔 34:11~15 file 고성기 2012.02.14 2127
398 주보자료 2010년 10월 10일 주보입니다. file 유영기 2010.10.09 2126
Board Pagination ‹ Prev 1 ... 5 6 7 8 9 10 11 12 13 14 ... 37 Next ›
/ 37

나눔글꼴 설치 안내


이 PC에는 나눔글꼴이 설치되어 있지 않습니다.

이 사이트를 나눔글꼴로 보기 위해서는
나눔글꼴을 설치해야 합니다.

설치 취소

Designed by sketchbooks.co.kr / sketchbook5 board skin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Sketchbook5, 스케치북5

XE Log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