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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4 14:59

2016.01.03. 성문밖 주일예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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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01.03. 성문밖 주일예배

제목: 쉬지 말고 기도하라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설교 후 찬송: 어려운 일 당할 때, 찬송가 543

 

1. 데살로니가교회

바울은 3차에 걸쳐 전도여행을 했습니다. 그 여행 중에 많은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데살로니가 교회는 바울이 2차 전도여행에서 마케도니아의 수도에 세운 교회입니다. 바울은 자기가 세운 교회들을 다시 찾아가 돌아보는 방식으로 그들의 믿음을 굳게 하는 방식으로 교인들의 믿음을 세웠습니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데살로니가교회는 다시 가볼 기회를 갖지 못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자기가 전해준 믿음 때문에 환란을 겪고 있다는 소식을 들었습니다. 바울은 자신이 직접 가서 격려하고 싶은 마음, 굴뚝같았지만 여건이 되지 못해서 갈 수가 없었습니다. 바울은 그때의 상황을 회상하며 사탄이 자기의 앞길을 막아서(살전2, 18) 갈 수 없었다고 말합니다. 바울이 데살로니가교회를 생각하며 얼마나 노심초사했었는지 드러나는 대목입니다.

 

바울은 하는 수 없이 제자 디모데를 보내서 데살로니가교회의 형편을 보게 하고 전해 들었습니다. 일각이여삼추로 기다리던 바울에게 디모데는 좋은 소식을 가져왔습니다. 데살로니가교회가 박해를 받았지만 믿음을 잘 지켰다는 소식이었습니다. 바울은 디모데가 가져온 소식을 듣고 나서 자기의 기쁨과 격려와 권고를 담아 데살로니가교회에 편지를 씁니다. 이 편지는 바울이 쓴 편지 가운데 가장 오래된 것입니다. 대략 주후 50년에 쓰였다고 하니 가장 빠른 복음서보다 약 20여 년 빨리 쓰였습니다.

 

2. 편지의 내용

2.1 발신자

바울의 서신은 일정한 구조를 가지고 있습니다. 서두에 발신자가 누구인지 밝힙니다. 이어서 수신자인 교회를 생각하며 감사와 찬미를 올립니다. 이어서 교회의 사정과 관련된 문제를 다룹니다. 마지막으로 최종적 당부와 인사로 편지가 끝납니다.

 

데살로니가전서도 비슷한 구조를 가집니다. 서두에 발신자를 밝힙니다. 발신자는 바울과 실루아노와 디모데 세 명으로 되어 있습니다. 바울과 디모데는 익숙한 이름입니다. 그렇다면 실루아노는 누구일까요? 그는 사도행전 15장에 처음 등장하는 사람입니다.

 

사도행전 15장을 보면 예루살렘에서 최초의 교회 회의가 열립니다. 이미 생겨버린, 계속 생겨나고 있는 이방인 교회와 이방인 그리스도인들에게 유대인들의 율법, 즉 할례를 요구할 것인가 말 것인가 하는 것이 주제였습니다.

 

회의 결과 결국 이방인들에게 할례를 요구하지 않기로 결정하고 예루살렘 교회는 4명의 선교사를 파송합니다. 그들이 바로 바울, 바나바, 유다 그리고 실라인데, 실루아노는 실라의 라틴식 이름입니다.

 

바울은 1차 전도여행에서는 바나바와 함께 했지만 2차 전도여행은 바나바와 결별하고 바로 이 실라, 실루아노와 함께 했습니다. 그러니 실라도 데살로니가 교회를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디모데는 1차 전도여행 중 얻은 제자로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회의 형편을 알고 싶을 때 대신 보냈던 바울이 가장 사랑하는 제자이고 동역자입니다.

 

2.2 칭찬

발신자를 밝힌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합니다. 칭찬은 두 가지입니다. 하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많은 박해 가운데서 믿음을 잘 지켰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바울의 일행이 전하는 말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19-10절을 보면 교인들이 이전에 섬기던 우상으로부터 돌아서서 부활하신 예수의 재림을 기다리는 신앙을 잘 지키고 있다고, 그들의 관심이 이 세상에서의 삶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옮겨갔다고 칭찬합니다. 또한 그러한 소문이 마케도니아와 아가야와 그 외 모든 이방인 지역에 모범적인 사례로서 알려지고 있다고 바울은 칭찬합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이전에 섬기던 우상으로부터 돌아선 것이 바울의 입장에서 보면, 칭찬할 일이지만 그 지역에 사는 사람들의 입장에서 보면 지역공동체의 고유한 미풍양속을 저해하고 전통을 무너뜨리는, 공동체를 파괴하는 무리들로 보였을 것 같습니다.

 

저는 이 대목에서 아브라함이 생각났습니다. 아브라함은 나이 70에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자기의 본토 친척 아비집을 떠났습니다. 저는 아브라함이 떠날 수밖에 없었다고 생각합니다. 떠나지 않았다면 아브라함은 그 지역에서 핍박을 견디지 못했을 겁니다. 이것은 기존의 문화와 전통과 다르게 살기로 결심한 사람들의 공통된 운명이었습니다.

 

채식주의 같은 작은 소신도 지키기 어려운 게 현실입니다. 하나님 말씀에 실존을 건다는 것은 삶의 근거를 삶의 모토를 완전히 바꾸는 모험을 감행하는 일입니다. 특별히 고대사회에서는 더욱 그러했습니다. 이것은 전쟁으로도 이어질 만큼 고대사회에서는, 중세에서도, 근세에서도 심각한 일이었습니다. 그러한 사상적 투쟁은 오늘에도 형태를 달리할 뿐 계속되고 있습니다. 당장 여러분의 자녀교육 문제만 생각해 봐도 알 수 있습니다. 제도교육을 거부하고 대안교육을 한다고 할 때, 여러분이 직면해야 하는 현실은 전쟁 못지않습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당해야 했던 핍밥을 예루살렘교회가 유대인들에게 당한 핍박에 견주어 말했습니다. 스데반이 돌에 맞아 순교하고 예루살렘 교회의 지도자 예수님의 형제 야고고가 참수를 당한 사도행전 8-9장의 이야기가 바로 그것입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바울 자신을 통해 받아들인 복음 때문에 당하게 될 핍박을 잘 이해하고 있었기에 더욱 그들이 핍박에 굴하지 않고 신앙을 지켜내고 있는 것에 대해 기뻐하고 감사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의 기쁨과 환호가 39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하나님 앞에서 너희로 말미암아 모든 기쁨으로 기뻐하니 너희를 위하여 능히 어떠한 감사로 하나님께 보답할까?” 이런 기쁨이 복음전도자의 기쁨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는 복음 전도자의 염려와 기쁨을 설명할 때, 자주 롱펠로우의 시, 화살과 노래를 인용합니다. 그의 시를 거칠게 요약하면 이런 겁니다. “하늘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허공을 향해 노래를 불렀다, 나는 화살을 잃었다고 나의 노래는 잊혔다고 생각했다.” 여기까지는 염려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시는 이어집니다. “세월이 흐른 후 나는 내가 쏘아올린 화살이 부러지지 않은 채 어느 그루터기 둥치에 단단히 박혀 있는 것을 발견하였다. 그리고 내가 부른 노래가 친구의 가슴에서 처음부터 끝까지 기억되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자기조차 체념한 화살의 존재를 확인하며 느끼는 기쁨, 자기에게조차 희미해져 버린 노래가 친구의 가슴속에 뚜렷이 각인되어 있음을 확인하며 느끼는 기쁨을 느낄 수 있습니다. 이런 것이 저는 복음을 가르치는 전도자, 교사들이 발견하는 기쁨과 환희라고 생각합니다.

 

또한 바울이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칭찬하고 감사하는 이유는 그들이 바울과 그 일행이 전해준 복음을 사람의 말로 받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았다는 것입니다. 자기의 실존을 걸어야 하는 말씀으로 받았다는 말입니다. 그리고 실제로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그들이 받아들인 복음에 자기의 운명을 걸었습니다. 이 두 가지가 데살로니가 교인에 대한 바울의 칭찬이었고 기쁨이었습니다.

 

2.3 권고와 약속

바울은 편지의 말미에 몇 가지 권고와 약속의 말씀을 덧붙이는 것으로 편지를 마무리합니다. 바울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향하여 거룩함을 지키라고 말합니다. 그 실천 사항이 다섯 가지입니다. 첫째, 음행을 멀리하라, 둘째, 형제를 사랑하라, 셋째, 자기 손으로 일해서 타인에게 신세지지 말고 품위 있게 살 것을 권면합니다.

 

2.4 죽은 자들의 부활

바울은 또한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이 지연되면서 일어나는 데살로니가 교인들을 위로했습니다.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살아생전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대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재림이 있기 전 죽어가는 공동체의 식구들을 보면서 두려움에 빠지곤 했습니다. 그러나 바울은 소망을 가지라, 그들은 모두 재림의 때에 먼저 들려 올라가 그리스도를 먼저 뵙게 될 것이니 믿음을 잃지 말라고 권고합니다. 그리스도의 재림은 도적같이, 안전하다, 평안하다 할 때 임신한 여자에게 진통이 오듯 갑자기 올 것이니 언제나 깨어 있으라고 권고합니다. 밤에 속한 사람이 되지 말고 낮에 속한 사람이 되라고 말합니다. 깨어 있어야 한다는 말은 현재만이 아니라 종말에 마음을 두고 살라는 말씀입니다.

 

2.5 마지막 권고

바울의 권고는 이어집니다. 교회 생활에 관한 것입니다. 교회의 지도자들을 존경하라, 서로 화목 하라, 무질서한 사람을 훈계하고, 마음이 약한 자를 격려하고, 힘없는 사람을 도와주고, 모든 사람에게 오래 참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항상 선을 좇으라는 것이 권고의 내용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오늘의 본문이 나옵니다. 항상 기뻐하라. 쉬지 말고 기도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3.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 그러나 그것이 가능한가?

오늘의 본문은 2016년 성문밖 공동체의 모토이기도 합니다. 저는 성문밖 공동체의 식구들이 항상 기뻐하기를 바랍니다.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항상 기뻐하는 것이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그렇다면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가능할까요? 가능하지 않습니다. 왜 가능하지 않을까요? 우리가 사는 현실은 고정된 현실이 아닙니다. 늘 변하는 것이고 지나가는 것입니다. 늘 변하고 지나가는 것에서 항상적 기쁨이나 감사를 구한다는 것 자체가 모순입니다. 오히려 현실에서 발견하는 것은 항상적 기쁨이나 감사의 불가능성입니다. 그러나 현실, 세상에서 항상적 기쁨과 감사가 불가능하다는 것을 아는 것이 곧바로 절망은 아닙니다. 오히려 항상적 기쁨과 감사에 대한 진정한 추구의 시작일 수 있습니다.

 

4. 항상 변하고 지나가는 것에 대한 집착을 끊어야 보이는 길

법륜스님의 강론을 들으면 수행자와 비수행자의 차이를 이렇게 말합니다. 수행자는 어떤 상황 속에서도 괴로워하지 않는다, 그러나 비수행자는 괴로워한다. 수행자는 다만 할 뿐이고 비수행자는 결과를 바라고 한다.

 

법륜스님은 괴로워 죽겠다는 중생들과 함께 자주 다음과 같은 노래를 부릅니다. 행복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불행도 내가 만드는 것이네. 진실로 행복과 불행은 남이 만드는 것 아니네. 이것은 불교의 교리 一切唯心造일체유심조를 노래로 푼 것입니다.

 

행복과 불행이 상황에 달린 것이 아니라 상황을 대하는 나에게 달렸다는 말입니다. 행복과 불행은 어떤 고정된 상태가 아니라서 그것에 집착하는 한 행복은 없다는 말입니다. 우리가 잘 아는 새옹지마라는 고사성어도 현실의 행과 불행은 고정된 것이 아님을 말합니다. 행이 변하여 불행이 되고 불행이 변하여 다시 행이 되듯이 상황은 늘 그렇게 변한다는 겁니다. 그래서 현실 속에서 행복과 불행이란 고정된 실체를 붙잡고 피할 수 있다는 생각은 모두 내 마음이, 집착이 지어내는 현상이니 마음을 비우면, 집착을 놓아 버리면, 늘 변하는 현실의 실제를 이해하면 오히려 행복을 얻을 수 있다는 겁니다.

 

5. 집착을 끊는 길, 바울

오늘의 본문, 항상 기뻐하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도 비슷한 통찰을 바탕으로 하고 있습니다. 어떤 점에서 그럴까요? 이 세상이 주는 기쁨이나 괴로움은 모두 지나가는 것이다, 영원하지 않다, 그러니 그것은 집착할 것이 못 된다는 통찰은 같습니다. 그러므로 늘 변하고 흘러가는 것들에 온통 마음을 다 주어버리면 항상적 기쁨이나 감사는 불가능하다는 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여기서 법륜스님은 말씀하십니다. 알면 끊어야지 붙잡고 있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담배 끊는 이야기 자주 하십니다. 해로운 줄 알면 그냥 끊어라, 방법이 따로 없다, 그냥 끊어라. 제 부친께서도 그러셨습니다. 어느 날 갑자기 끊으셨습니다. 어떻게 끊으셨나 여쭈어보니, 피고 싶어도 안 피면된다, 하시더군요. 명쾌합니다. 저는 이 지점에서 불교에 매력과 질투마저 느낍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한 중생은 그리 명쾌한 존재가 아닙니다. 약한 존재입니다. 깨달음을 곧바로 실천한 능력이 없는 경우가 태반입니다.

 

로마서 7장에 보면 이런 우리의 무능력을 이렇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내게 원함은 있으나 행함은 없도다,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내가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이처럼 기독교는 끊임없이 원함은 있으나 행함은 없는, 아는 것을 실천할 능력이 없는 인간의 약함에 주목하고 인간의 약함을 연민합니다.

 

교회의 역사 속에 반복적으로 등장했던 인간의 의지에 대한 논쟁이 있었습니다. 인간의 의지 자유의지인가? 노예의지인가? 아우구스티누스와 펠라기우스, 루터와 에라스무스 등등, 이러한 논쟁에서 기독교는 언제나 인간의 의지는 노예의지라는 쪽에 손을 들었습니다.

 

저는 예전에는 동의할 수 없었습니다. 기독교의 인간론은 깔끔하지가 못하고 끈적끈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전에는 이런 점이 싫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점을 사랑합니다. 저는 기독교만큼 인간의 약함을 깊이 이해한 종교가 없다고 생각합니다.

 

바울은, 기독교는 그래서 세상에 대한 집착을 그냥 끊어라, 내려놓으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성령의 도우심을 말합니다. 인간의 삶에 맺히는 모든 아름다운 열매는 인간의 열매가 아니라 성령의 열매라고 말합니다. 522절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바울은 빌립보서 413절에서,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다고 고백합니다. 이것은 인간에 대한 부정 같지만 약한 인간에 대한 인정이며 격려이며 또한 위로입니다. 이것은 자기의 유한성을 인정함과 동시에 초월의 가능성을 고백하게 합니다.

 

또한 늘 변하고 지나가는 세상의 것에 대한 집착을 놓는 길에 바울은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기를 말합니다. 바울의 유명한 말이 있습니다. 빌립보서 3장의 말씀입니다. 이전에 유익하다고 여긴 모든 것을 배설물로 여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하기 때문이라.

 

이 세상의 것, 지나가는 것, 늘 변화하는 것에 대한 집착은 더 고상한 것을 보았을 때, 끊을 수 있다고 말합니다. 더 고상하고 더 아름다운 것을 보았을 때, 그렇지 못한 것을 자연스럽게 내려놓게 된다고 말합니다. (결국은 아름다움이 우리를 구원한다!)

 

그리스도라는 가장 아름답고 고상한 가치를 발견했을 때, 이전에 소중한 것으로 붙잡고자 했던 것들을, 집착을 놓을 수 있었다고 고백하는 겁니다. 담배 끊는 이야기 하나 더 하지요. 제 신학교 동기 중 저보다 나이가 20살은 많았던 분의 이야기입니다. 그분은 담배를 하루에 다섯 갑을 피우셨답니다. 참 대단한 분이시지요? 밥을 먹는 도중에도 한 대를 피워야했답니다. 그런데 이제 안 피우신다는 겁니다. 저는 물었습니다. 어떻게요? 그분 말씀이 나는 끊은 것이 아니라 안 피우게 됐다, 그러셨습니다. 저는 바울의 말이 떠올랐습니다. 바울은 이전의 것이 싫어서 배설물처럼 버리게 된 것이 아닙니다. 더 아름답고 고상한 것을 보았기 때문에 그것에 더 이상 흥미를 잃은 겁니다. 하루 다섯 갑의 담배를 피우다 안 피우게 된 분도 그러시지 않았을까 생각했습니다.

 

6. 쉬지 말고 기도하라

오늘의 설교제목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 입니다.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은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 위한 전제조건입니다. 기도는 세상의 것, 지나가고 변하는 것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을 성찰의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으로써 삶의 비 본질을 버리고 본질을 잡기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입니다. 또한 성령의 도우심을 받기 위하여, 그리스도에게 집중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그리하여 기도는 우리가 영원한 것을 바라보며 항상 기뻐하고 항상 감사할 수 있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입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이라고 합니다. 기도 없는 신앙인은 외부에 가해지는 핍박이 없어도 스스로 질식하며 시들어 갈 수밖에 없습니다. 또한 기도는 하나님과 단독자로 선 대화입니다. 기도는 대화 그 자체가 목적인 대화로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형성하는, 가장 솔직한 자기의 내면과 직면하는 유일한 방법입니다. 세상은 늘 흔들리고 유동하고 변하는 토대라면, 그리하여 우리가 그토록 원하는 항상적 기쁨과 감사의 근거를 제공해 주지 못한다면, 하나님은 흔들리지 않는 터전입니다. 그리하여 우리에게 항상적 기쁨과 감사의 근원이 되십니다. 이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바울과 기독교는 이것을 전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러한 복음의 권고를 받은 데살로니가 교인들은 이 복음과 권고에 자기의 실존과 운명을 걸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문밖 교우 여러분, 2016년이 시작되었습니다. 또 한해가 우리에게 주어졌습니다. 새해에는 우리가 비 본질이 아닌 본질에 더 집중하고 그럼으로써 세상의 것, 지나가는 것, 영원하지 않은 것에 대한 집착에서 벗어나 상황에 따라 일희일비하는 삶에서 벗어나시기를 바랍니다. 영원한 것에 집중하면서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기를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 쉬지 말고 기도하는 삶을 실천하시길 빕니다.

 

우리는 비록 약하지만 기도하면 성령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더 의지하실 수 있습니다. 그럼으로써 우리는 우리의 약함을 넘어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약할수록 더 많은 은혜를 경험하게 됩니다. 죄가 많은 곳에 은혜가 더 했다는 말씀을 저는 그렇게 이해합니다. 이러한 은혜가 함께 하시길 빕니다.

 

기도

주님, 항상 기뻐하고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우리가 늘 변하는 이 세상에 집착한다면 결코 이룰 수 없는 현실입니다. 그리고 이 세상의 것들에 대한 집착을 끊는 것도 우리의 능력만으로는 어려운 일입니다. 이것은 성령과 그리스주도의 도우심으로만 가능할 일입니다. 그러니 주님, 우리가 새해에는 더 많이 기도하게 하옵소서. 기도를 통해 연약한 자기를 더 깊이 직시하게 하시고 성령과 그리스도의 도우심을 더욱 간구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늘 변하고 지나가는 세상의 것이 아니라 영원한 것에 우리의 관심을 두고 살아가게 하옵소서.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는 성령을 보내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축도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을 통한 아름다운 교제가 쉬지 말고 기도함을 통하여 스스로는 도저히 끊어내지 못하는 변화하고 지나가는 세상 것에 대한 집착을 놓아보리고 영원한 것에 마음을 두고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사랑하는 성문밖 식구들 모두의 삶 속에 영원히 함께 하시기를 간절히 비옵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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