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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주적 몸으로 살라
요한복음 1:1-5

감사: 조그마한 시골 교회를 맡고 있는 어떤 목사님이 배추밭을 매고 있었다. 가을 햇볕은 뜨겁고, 잡초는 끝없이 이어지고..그때 악마가 나타나서 말했다. “목사님, 이래도 범사에 감사할 수 있습니까?” 목사님은 악마의 유혹을 물리치려고 한참을 궁리하다가 이렇게 말했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이 많은 잡초가 메뚜기처럼 이리저리 뛰어 다니지 않고 한 자리에 있어서, 제가 잡초를 다 뽑을 수 있도록 해 주시니 정말 감사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변의 모든 것들을 보고 어떤 감사를 하고 있습니까? 얼마나 감동하고 살고 있습니까?

창1:31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

하나님께서 지으신 그 모든 것은 지구상에 존재하는 모든 것들을 말합니다. 태초의 하늘과 땅과 강과 호흡하는 모든 생물들, 돌이든 산이든 모든 생명이 인간과 함께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져 심히 아름답게 존재하고 있습니다.

창2:7 ‘여호와 하나님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창2:19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라고 말씀하며 인간의 몸과 호흡하는 생물들의 몸이 흙으로부터 존재되었다고 말합니다. 인간과 들짐승, 공중의 새들이 같은 환경의 조건에서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는 말씀입니다. 곧 흙을 밟고 살아가야 하는 인간과 생물들의 모습입니다.

흙으로부터 지음 받은 인간의 몸이 흙으로부터 멀리 떨어지면 질수록 이상현상이 나타나는 것은 당연합니다. 서울엔 고층 아파트들이 많이 있습니다. 부천에는 여의도의 63 빌딩보다 더 높은 아파트를 짓겠다고 합니다. 고층빌딩에 살며 땅으로부터 멀어지는 인간의 몸은 자신도 모르게 좋지 않은 영향을 받을 것입니다. 시들시들해진 화분의 식물을 땅에 심어놓으면 금새 생기를 찾는 모습을 종종 보게 됩니다. 자신의 존재의 어머니인 땅의 기운을 곧바로 받기에 그러한가 봅니다. 이러한 모습을 볼 때면 분명 인간의 몸뿐 아니라 모든 생물들은 흙을 밟고 흙에 기대어 살아가야 함을 절실하게 느끼게 합니다.

그러나 산업화시대가 되며 도심에서는 땅을 밟기가 더욱 어려워졌습니다. 모든 땅들이 시멘트와 아스팔트로 뒤 덮였고 농촌의 땅들은 농약으로 뒤범벅이 되어 인간의 몸과 동식물들의 생명을 위협하는 오염된 땅으로 변해 버렸습니다.

  영혼 없는 몸은 죽은 몸이고 몸이 없이는 영혼이 존재할 수 없듯이 땅의 흙으로 지음 받은 인간과 자연은 하나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인간과 자연은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고대 시대에 기록된 성서는 자연과 인간의 몸에 대해 염려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고대에 인간은 땅과 더불어 땅을 의지하여 살아갔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인간은 땅을 숭배할 정도로 경외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대지의 신인 바알을 섬기기도 했습니다. 인간을 자연에 종속시켰고 지배자들은 자연을 두려워하는 인간의 종교성을 자신들의 통치 수단으로 이용했습니다.

자연은 인간에게 지배의 대상도 아니고 종속의 대상도 될 수 없습니다. 인간과 자연은 더불어 서로를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우주의 모든 생명들은 어느 것 하나 소홀히 여김을 받거나 멸종되어서는 안됩니다. 서로가 서로를 위해 존재하고 자신의 몸과 같이 사랑하고 섬겨야하는 한 몸으로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의 탐욕은 도구를 만들어냈고 그 도구를 이용해 자연을 지배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우주의 몸은 균형을 잃어버렸고 몸살을 앓고 있습니다.

인간은 자신의 몸을 배불리고 편리하게 하기 위해 자연의 심장까지도 파내는 현실을 살고 있습니다. 고기를 많이 먹기 위해 대량으로 동물들을 기르고 항생제와 성장촉진제를 대량으로 먹이고 유전자변형 곡식을 생산합니다. 산과 밀림의 나무들은 이시간도 그 몸뚱이들이 잘려나가고 분쇄되고 있습니다. 우주의 심장에 빨대를 꽂고 그 진액을 먹는 소수의 사람들, 우리는 그들을 자본가라고 부릅니다. 그들은 빈틈도 없이 이 시대의 인간들의 눈을 가리우고 자신들의 행위가 옳은 것이라고 홍보하고 복지기금을 내어 놓기도 합니다. 우리는 그들의 선전이 무엇인지 알면서도 모른척하며 자연의 몸을 파괴하는데 동조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며 섬기며 살아가야하는 인간의 몸과 자연의 몸 곧 우주의 몸의 연합과 공생을 위해 어떠한 생각과 신앙을 가져야 하는지를 오늘 본문에서 찾아보았습니다.

먼저 자연, 특별히 우주와 인간의 관계는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나왔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는 세상의 모든 만물이 예수그리스도로부터 나와 존재한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 3절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지은 바 되었으니 지은 것이 하나도 그가 없이는 된 것이 없느니라’ 만물 속에 예수그리스도의 숨결이 있습니다.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허락 없이는 인간에게 허락되지 않는다고 예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참새 한 마리도 하나님의 섭리와 주권 속에 존재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인간의 손아귀에 잡힌 참새라 할지라도 함부로 업신여기지 말라는 것입니다.

예수께서는 세상에 생명으로 오셨다고 하셨습니다. ‘나는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라’는 말씀은 우주의 모든 생명들의 주인으로 창조주로 계신 분이라는 것입니다.

인간의 문화 속에는 가부장적문화라는 게 있습니다. 남성이 정치의 주도권을 잡으면서 남성위주의 문화를 만든 것입니다. 언어와 사회제도, 관습과 문화 등 인간 삶의 전반에 걸쳐 남성의 우월성을 조작하고 여성들의 생명을 억압한 것입니다. 이러한 가부장적인 문화는 많이 해체되었다고 하지만 아직도 갈 길이 멀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습니다.

남성의 가부장적인 문화는 인간과 자연과의 만남에서도 반복되고 있습니다. 서구의 기독교는 자연을 정복의 대상으로 보고 개발과 성장이라는 테두리 안에 두고 파괴를 일삼아 왔습니다. 한국 기독교는 서구신학을 그대로 답습하여 많은 문제를 야기하고 있습니다. 다행히 기독교내에서 잘못된 신학과 신앙의 결과로 사회의 개발논리를 제어하지 못했다는 것을 인지하고 자성의 목소리를 내고 있습니다.

창세기2:24 ‘이러므로 남자가 부모를 떠나 그 아내와 연합하여 둘이 한 몸을 이룰지로다’ 했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께서 짝지어주신 것을 인간이 임의로 파기할 수 없다’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을 인간과 인간이 만나 부부를 이루는 말씀으로 해석합니다. 좀 더 확대하여 생각해 보면 인간과 자연(우주)의 만남도 이러한 관계가 되어야 함을 알 수 있습니다. 우주와 인간은 따로 존재하는 것 같지만 더불어 살아가는 데는 서로의 섬김과 돌봄, 나눔이 필요합니다. 한 가정이 탄생하고 존속하는데 부부의 몸이 서로 평등을 이루고 동등한 존엄을 갖듯이 인간과 자연 또한 서로에 대한 존엄을 존중해야 합니다.

인간의 몸과 몸이 만나 서로를 사랑하듯이 인간의 몸과 자연의 몸이 만나 한 몸을 이루어야 합니다. 부부가 서로를 이해하고 서로를 존중할 때 가정은 행복해 집니다. 어느 한쪽이 자신의 권위를 내세우고 상대의 희생을 요구한다면 그 가정은 오래 가지 못하고 파탄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몇 년 전 집에서 풍란을 키운 적이 있습니다. 버려진 나무를 주워 풍란을 붙여 놓았습니다. 몇 달이 지나도 풍란은 뿌리를 뻗질 못했습니다. 어느 날 이른 아침 나무에 붙은 풍란을 바라보고 있는데 풍란과 제 몸이 섞여 하나 되는 느낌을 받았습니다. 순간의 느낌이었지만 풍란을 바라보는 제 느낌은 예전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풍란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게 된 것입니다. 그런 느낌이 있고 2-3일이 지나고 풍란에게 새로운 변화가 일어난 것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풍란의 뿌리가 힘 있게 뻗어 나오기 시작한 것입니다. 제 몸이 풍란의 몸과 교감을 이룬 순간 풍란의 생명뿐 아니라 저의 생명도 풍성함을 맺게 되었습니다.

자연의 몸 곧 대 우주의 몸은 소우주인 인간의 몸과 한 몸을 이루길 원합니다. 소유주인 인간의 몸이 대우주의 몸에 사랑으로 마음을 열 때 온전한 한 몸을 이룰 수 있습니다. 인간의 몸이 주인인양 행동한다면 우주는 생명들의 신음소리로 가득할 것입니다. 인간의 몸과 우주의 몸이 연합하여 한 몸이 될 때 우주의 질서는 평온을 찾게 될 것입니다.

두 번째는 빛이 어둠에 비치어 있지만 어둠은 깨닫지 못한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예수께서 대우주 안에 소우주의 몸으로 오셨을 때 자신의 백성들마저 그를 알아보지 못하고 십자가에 못 박아 버렸습니다. 아무리 선을 행하고 능력을 행하여도 그들은 도무지 깨닫지 못하고 자신의 욕심을 따라 예수를 외면했습니다. 군중들은 눈먼 자들이 가리키는 곳만을 바라보고 따라갔습니다.

현재 우리의 정부는 4대강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강의 생명을 무자비하게 파괴하고 있습니다. 강을 파헤치는 중장비에는 사랑이 털끝만치도 들어가 있지 않습니다. 그들은 자본의 노예가 되어 눈이 멀어 생명의 강을 파헤치고 있습니다.

소경이 소경을 인도하면 둘 다 구덩이에 빠지게 됩니다. 몇 칠 전 한기총 회장 이하 그들 단체는 정부의 4대강 개발을 찬성하고 지지한다는 성명서를 냈습니다. 눈먼 기독교 지도자 몇 사람으로 인해 한국교회는 한국사회에서 무식한종교, 탐욕의 종교, 기득권의 종교로 전락해 버리는 위기에 처해 있습니다. 지금 한국교회는 자본과 성장에 물들지 않는 기독교인을 필요로 합니다. 옳지 않은 것을 볼 수 있고 보았을 때 아니다라고 말하는 기독교인이 절실합니다.

김지하씨가 오적을 이야기했다면 지금의 한국교회는 10적, 12적, 가룟유다의 제자를 이야기해야 한다고 어느 선생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깨닫지 못하는 한국교회의 어리석음에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오늘도 끊임없이 비취며 살아가야 합니다.

마지막으로 인간의 몸과 우주의 몸이 온전하게 다시 만난다는 순간을 믿음으로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의 몸은 바울이 고백하는 것과 같이 연약한 존재입니다.

롬7: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 내랴

바울은 자신이 얼마나 연약한가를 고백하며 예수그리스도를 더욱 바라보고 의지하였습니다. 자신의 몸을 위해 죽으신 예수그리스도로 인하여 감사하노라며 외치고 자신의 몸을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승화시키고 있습니다.

우리의 몸은 성령이 거하시는 성전입니다.

고전6:18 19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의 것이 아니라 20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

우리의 몸은 이제 어둠 속에서 깨닫지 못하는 어리석은 몸이 아닙니다. 성령이 거하시면서 하나님의 진리를 깨우치시고 생명을 따라 살도록 부르시니 몸이며 예수그리스도의 살과 피로 산 거룩한 몸이 되어 살아가야 합니다.

롬8:23 23  이뿐 아니라 또한 우리 곧 성령의 처음 익은 열매를 받은 우리까지도 속으로 탄식하여 양자 될 것 곧 우리 몸의 구속을 기다리느니라

인간의 몸뿐 아니라 온 우주의 생명들이 예수그리스도의 온전한 구속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소우주의 몸인 우리의 몸은 대우주의 몸과 하나 되어 예수그리스도와 혼인잔치를 벌일 것입니다. 태초의 순간으로 돌아가 아픔도 눈물도 없이 죽임과 억압도 없이 서로에게 사랑의 호흡을 보내고 바라보며 섬기며 살아갈 것입니다.

예수그리스도의 몸으로 나온 온 우주 만물이 함께하는 오늘 비록 깨닫지 못하는 어둠의 자식들이 있을지라도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않아야 합니다. 그리고 온 우주 생명들이 하나 되어 웃으며 예수그리스도와 만나 즐거운 혼인잔치를 벌이는 순간을 기대하며 희망하며 살아가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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