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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방을 향하여
출애굽기 15:1-18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섬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음성을 들으시고 우리의 고통과 신고와 압제를 하감하시고” 영원히 잊지 못할 은혜의 증거로 “여호와께서 강한 손과 편 팔과 큰 위험과 이적과 기사로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하여 내셨다”(신26:5-9)는 신앙고백에서 확언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신들의 역사의 기원을 억압과 압제로부터의 경의로운 해방 사건에 두고 있습니다. 노예의 신분으로 고된 노역을 감당하며 온갖 멸시와 천대를 받던 자신들에게 하나님의 역사하심이 없었다면 자신들은 결코 이스라엘로 형성되지 못하고 계약공동체로서 존재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출애굽은 해방의 이야기로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하감하시고, 마침내 구원하시는 내용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고대 이집트인들은 왕권이 자연의 힘이라고 보았고, 바로는 인간이자 신이 인간의 육체로 인간 세상에 내려온 신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바로는 창조, 법과 정의, 조화, 진리, 지혜의 여신인 마트의 대리자로 존재하였기에 이집트의 정치, 경제, 문화의 지배자요, 주인으로 자처했고 이집트인들은 그것을 믿었습니다. 바로에게 보내지는 편지는 “나의 왕, 나의 주, 나의 태양이시여”라고 시작되었습니다. 그러하기에 파라오뿐 아니라, 바로를 왕으로 섬기는 이집트인 자신들은 주변 민족을 자신들이 밟는 흙먼지보다 못한 존재로 생각하고 그들을 멸시하였습니다. 제국 이집트인들에게 타 생명은 자신들이 지배하고 착취하고 억압할 수 있는 미천한 부류였던 것입니다.

모세는 히브리인들의 출애굽을 진행시킬 때 이집트의 신들과 싸우는 모습으로 묘사되지 않고 오만하게도 신의 자리에 앉아 역사를 주관하고 있다는 바로와의 대결로 나옵니다. 이는 바로가 곧 이집트의 신들과 동일한 모습으로 앉아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의 술사들은 모세가 일으킨 능력을 따라하지만 한계에 부딪쳐 하나님의 사자 모세에 미치지 못합니다. 바로의 술사들과 모세의 대결은 역사를 주관하는 진정한 신이 누구냐를 판가름 하는 한판 승부입니다. 그 승부는 모세의 압승으로 끝을 맺습니다. 곧 역사의 진정한 주관자는 바로가 아닌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김행선집사님은 ‘역사와 신앙’에서 그리스는 역사연구 방법에 대해 남겨주었다면, 이스라엘 민족은 역사철학과 역사의미를 가르쳐 주었다고 쓰고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역사에서 하나님을 찾았고, 하나님의 섭리에서 자신들의 역사를 찾았습니다. 그중 가장 근본이 되는 역사는 바로에게서 탈출한 히브리인의 해방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해방사건의 의미를 8가지 차원에서 찾아보고 우리의 현실에서 묵상해 보았습니다.

1. 정치 - 바로의 정치(절대권력)에서 해방입니다.
바로의 정치는 제국의 정치입니다. 제국의 정치는 힘과 정복을 배경으로 형성됩니다. 제국의 정치는 주변국들을 군사력으로 지배하여 주권을 빼앗고 자신들의 의도와 방향, 이익에 맞도록 모든 제도를 바꾸어 버립니다. 바로는 누구도 대적할 수 없는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정치를 하였습니다. 바로의 정치는 자신과 국민, 자국민과 타국민을 이분법으로 나누는 일을 합니다. 자신과 자국민은 우월하고 그 외의 모든 이들은 열등하다고 선을 긋습니다.      2010년 5월 15일자 한겨레 사설에서 “평화를 거부하는 세력이 즐겨 만들어 내는 것이 악마라는 환상이다.”라고 했는데, 수긍이 가는 부분입니다. 제국의 정치는 자신들과 다르다고 생각되는 타 생명을 악마로 규정합니다. 그래서 전쟁을 정당화합니다. 그들은 인간의 생명을 수단으로 전락시켜 그들을 제도적으로 억압합니다. 제국의 정치철학은 언제나 지배욕으로 가득합니다. 출애굽은 바로의 정치, 제국의 정치에서 해방되는 사건입니다. 정의로우시고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땅을 향해 가는 놀라운 구원의 역사입니다.
일제 36년 동안의 정치는 우리 민족을 억압하고 파괴하며, 말살하려는 정치였습니다. 우리 민족은 일제의 제국정치 아래서 말 할 수 없는 고통에 시달려야 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 천황의 무조건 항복에 해방을 얻었지만 일본정부는 아직도 제대로 진심어린 참회와 보상을 하지 않습니다. 오늘은 어떠합니까?  미국과 중국의 군사 대결에서 갈 길을 잃고 방황하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봅니다. 강대국들의 정치 틈 속에서 살아남기조차 힘에 겨워하는 한국의 정치현실을 직면할 때면 하나님의 해방과 자유를 더욱 희망하게 됩니다. 남한과 북한이 하나님의 평화의 정치를 깨달아 그 길을 향해 가야하는 절실함이 우리에게는 필요합니다. 그 길은 민족의 해방과 자유와 자치를 위해 반드시 걸어야 하는 길입니다.

2. 경제 - 착취와 강제노역의 노동에서 해방되는 사건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람세스와 비돔을 건축하는 중노동에 시달렸습니다. 노예들의 노동은 철저하게 착취당하였습니다. 극심한 노동으로 그들의 신음소리는 하나님께까지 상달되었습니다.
도시를 건설하는데 강제 동원된 노예들의 고통은 말할 수 없이 큽니다. 노동을 시키는 바로의 관리들은 노예들을 자신의 발바닥 먼지쯤으로 생각하기에 더욱 그러합니다. 출애굽 사건은 강제 노동에서 벗어나는 해방사건입니다. 이스라엘의 예언자들은 자신들의 땅을 갖고 열심히 일하며 그 소산을 먹는 것을 꿈꾸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히브리 노예들에게 노동의 공간과 시간과 그 공정한 댓가를 약속하셨습니다. 모세와 함께 약속의 땅을 향해 가는 히브리 노예들은 이제 해방된 노동자로 출애굽을 합니다.  
일제는 우리의 선조들을 구소련과 일본에 강제 이주시켜 군수공장, 탄광 등에서 강제 노동을 시켰습니다. 일본 나가사키 부근에 군함도라는 섬이 있습니다. 군함도는 당시 석탄이 많이 나는 곳으로 탄광 노동자의 절반이 강제로 끌려온 조선민족이었습니다. 그들의 노동현실은 비참이라는 말밖에 할 수 없을 정도로 극심한 것이었습니다. 8.15 해방은 강제노동을 당하는 조선민족 노동자들에게는 출애굽한 노예들과 같은 노동해방 사건입니다. 일본은 자신들의 과거 잘못을 숨기고 군함도를 유네스코 역사유적지로 등록하려고 하고 있는데 이집트의 고대 건물들이 관광명소가 되는 것과 같은 이치입니다. 그 역사 뒤에는 수많은 생명들의 피와 땀과 눈물이 배어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노동해방의 역사가 함께하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됩니다.
  오늘 한국사회는 비정규직, 외국인근로자의 열악한 노동현실을 외면하고 있습니다. 정당한 노동의 댓가를 받지 못하고 착취당하고 불이익당하는 노동의 현실이 하나님께서 바라시는 공평하고 정의로운 노동해방의 길로 가야합니다.  

3. 문화(가정, 국가간-예수공동체의 문화)
바로의 문화는 권위주의적 문화입니다. 강요되고 폭력적인 권위주의 문화는 가정과 단체, 국가에서 폭력의 문화를 양산합니다. 폭력의 문화는 기득권세력을 정당화하기 위해 왜곡된 문화를 만들어내고 유지하고 교육합니다. 자신들의 문화를 우월하다 생각하고 타 문화에 대해 배타적인 자세를 유지하고 말살하고 억압합니다. 애굽에서의 해방은 히브리 노예들이 자신들의 고유한 문화를 찾아가는 사건입니다. 선조 때부터 내려오는 언어와 생활양식을 유지하고 교육하며 자유롭게 계승하며 발전시키는 해방의 공간과 시간으로 향하는 문화해방입니다.  
일제는 자신들의 언어를 조선민족에게 강요했습니다. 창씨계명을 시켰고, 학교에서는 한국말을 쓰지 못하게 했습니다. 얼마 전 어느 할아버지의 증언을 듣게 되었는데 그 할아버지께서 초등학교를 다닐 때 선생님들이 벌칙쪽지를 나누어 주었다고 합니다. 일본말을 쓰지 않고 한국말을 쓰면 한 번에 한 번씩 체크를 해서 어느 정도의 선을 넘으면 불이익을 주었다고 합니다. 지금처럼 자유롭게 한국말을 쓰고 교육하고 연구하는 것은 우리 민족이 문화의 억압에서 벗어나 해방되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문화가 혹 강대국이나 자본의 논리로 강요를 당하거나 등한시 되고 있지는 않나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진정한 우리의 문화를 찾아가야 합니다.

4. 왜곡된 사회에서 진실하고 올바른 사회로 향하는 해방의 사건입니다.
  바로가 지배하는 사회는 많은 부분에서 왜곡된 모습을 가지고 있습니다. 개인과 집단의 관계를 종속관계로 규정합니다. 성과 교육, 결혼, 의학, 범죄와 처벌 등 전반적인 사회 활동에 지배자와 피지배자라는 논리가 있습니다. 그곳에는 차별과 배제, 배타로 인해 소외된 영혼들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애굽 사회에서 철저하게 소외된 계층으로 살았고 그들이 받는 사회적 멸시와 억압은 아프리카 흑인노예들의 삶보다 처절한 것이었습니다. 출애굽은 정의가 바로선 사회를 향한 해방사건입니다.
  일제의 억압과 폭력에서 해방을 향해나간 독립운동가와 신앙인들이 있습니다. 1929년 5월 기독신우회가 발기인 대회를 하면서 선언을 하였습니다. 그 선언문 내용 중 “우리는 이 고통과 죄악으로 포위된 생을 타세계에 의거, 식히랴 함보다도 자유, 평화, 정의의 천국을 인간사회에 임하게 하랴. 거기에서 우리는 우리의 인격의 진선미를 완성코 대아의 구활로써 소아의 활로를 개척코져 한다. 무한한 애와 역의 원천이 되는 신으로부터 교섭한 영삼의 동력을 우리의 개체의 경험내에 사장치 안코 그 세력을 단결운동하야 인격의 발휘의 방애되는 사회의 죄악을 제거코쟈 한다.” 일제강점기 아래 조선 크리스챤들이 단결운동을 하여 자유, 평화, 정의의 사회로 나가려 했습니다.

5. 종교영성
바로는 서두에 말씀드린 것과 같이 자신을 신의 환생으로 내세우며 신의 자리에 있었습니다. 그리고 자신은 신의 대리자요, 곧 신의 영역에 있기 때문에 자신의 모든 말과 권위에 신성을 부여하여 모든 국민과 사람들이 받아들일 것을 강요했습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바로의 종교에 억압되고 지배당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 바로의 종교아래서 고통당하는 자신의 백성을 인도하여 시내산에서 예배하게 하였습니다. 출애굽은 바로의 종교, 우상의 종교에서 해방되는 사건입니다.
일제 또한 조선민족에게 신사를 참배하게 하였습니다. 자신들이 섬기는 태양신 신사를 섬기도록 한국그리스도인들과 민족에게 강요하였던 것입니다.
“슬프다 이강산 금잔디 옥동산에 / 이름모를 들집승이 짓밟아 버리니 / 어찌 울지 않고 볼소냐 / 이리 뛰고 저리 뛰며 좋은 것은 다 짓밟으니 / 그중에 한국교회 상처가 크도다 / 목사, 장로, 교인들 신앙이 있는 사람이면 / 죽이고, 내쫓고, 폐인을 만들었으니 / ... .../ 아! 장하도다 그의 투쟁 / 태양신께 굴복 아니하는 그의 장한 투쟁 / 매질과 욕설로도 정복 못하고 / 두메산골 거친 곳에 은폐시키여 / 이것으로 그의 싸움은 끝은 아니다” 김익두 목사가 쓴 시로 일제 식민지 말년에 신사참배령을 반대하였다가 함구령이 내려져 1942년 호아해도 은율군에 있는 어느 과수원에서 민족의 아픔에 대한 심정을 토로한 시입니다. 조선 그리스도인들은 일제가 강요한 신사참배를 우상숭배로 규정하고 종교해방을 위해 저항하고 나아갔습니다.  

6. 생태
바로는 나일강의 범람을 막기 위해 해마다 거대한 토목공사를 했습니다. 토목공사는 고대나 현대나 자연의 한 부분을 파괴합니다. 인간의 도시 건설과 유지를 위해 더 많은 땅과 숲과 강이 오염되고 멸해져 가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히브리 노예들을 출애굽시킨 것은 생태적인 삶을 살게 하기 위함입니다. 신약성경에는 세사만물은 지금도 하나님의 아들들이 나타나기를 확수고대하고 있다고 전합니다. 곧 하나님의 아들들은 모든 만물의 생명을 섬기는 영성, 해방의 영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7. 건강에서의 해방입니다.
강제노동과 착취는 노예들의 건강을 송두리째 빼앗아 갑니다. 바로는 히브리 노예들의 몸을 거들떠보지도 않기 때문에 그들의 건강은 국가권력으로부터 보호받지 못하고 도외시되고 착취당하였습니다. 건강하면 강제노동을 해야하고 병들면 버려지는 현실을 안고 살아가야하는 노예들 이었습니다. 출애굽은 노예들의 건강을 위한 해방입니다.
오늘 해방을 이야기 할 때 우리의 건강이 먹거리와 노동시스템으로 억압되거나 착취당하거나 하지는 않는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자본의 힘으로 인해 인간의 건강이 위험에 처한 현실을 거부할 수는 없습니다. 오늘을 사는 그리스도인들은 건강의 해방을 위해 어떠한 신앙으로 살아야 하는지 고민해야 합니다.

8. 출애굽은 평화를 향해가는 해방사건입니다.
바로의 통치아래에서 사는 히브리 노예들은 철저하게 깨어진 평화 속에 살았던 삶입니다. 개인과 가정, 민족의 평화는 사라지고 고통과 신음만 가득한 삶을 살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제국의 전쟁에 참여하여야 했고, 제국의 사회 시스템에 종속되어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이 원하는 샬롬, 곧 전반적인 삶에서의 평화를 기대할 수 없었습니다.
일제 강점기 한국 민족은 강제 징집을 당해 북간도에 끌려가 일본병사들의 총알받이 역할을 해야 했습니다. 그것도 수많은 청소년들이 끌려가 죽음을 맞이해야 했습니다. 8.15해방사건은 강제징집도 없는 평화를 맞이하는 해방사건입니다.

히브리 노예들은 바로의 정치와 경제, 문화와 평화, 사회와 종교에서 해방되기를 너무나 간절히 원했습니다. 그들의 아우성과 기도는 하늘에 사무쳤고 하나님께 상달되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은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며 부르짖으니 그 고된 노동으로 말미암아 부르짖는 소리가 하나님께 상달된지라”(출2:23) 하나님께서는 자신의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와 종교, 건강을 부르짖는 노예들에게 주시기를 원했습니다. 그리하여 모세를 부르시고 이적을 행하시며 히브리 노예들을 해방하셨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애굽에서 해방되어 약속의 땅으로 가면서 난관들을 만납니다. 가장 먼저 만난 건 홍해를 앞에 두고 애굽 군대의 추격을 받은 것입니다. 도저히 건널 수 없을 것 같은 홍해를 눈앞에 두고 두 부류의 사람들이 있습니다. 한 부류는 해방을 두려워한 사람들이고, 다른 부류는 해방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입니다.

해방을 두려워한 사람들은 바로의 억압과 압제가 어떠한 것인지 알지 못하는 사람들, 더 자유롭고 주체적인 삶을 향해 나가기를 두려워한 사람들입니다. 바로의 폭력적인 힘을 알고 죽음의 공포를 경험하고 그 안에서 숨죽여 살며 비겁한 평안을 추구한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애굽에서 당신에게 이른 말이 이것이 아니냐 이르기를 우리를 내버려 두라 우리가 애굽 사람을 섬길 것이라 하지 아니하더냐 애굽 사람을 섬기는 것이 광야에서 죽는 것보다 낫겠노라’(출14:12) 고 말하며 해방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을 향해서 반대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사람들은 1910년 조선의 주권을 침탈하고 짓밟은 일본제국에 자신들과 국가를 송두리째 넘겨주었던 사람들과 다를 게 없는 사람들입니다. 큰 권력 아래 자신들의 안위를 맡기고 자신들만 편안한 삶을 살려는 이기적인 생각으로 가득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에게는 민족과 후손들의 자유와 평화, 주권은 안중에도 없습니다. 그들은 오로지 자신들의 탐욕과 이기심을 쫓아 살아갑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해방을 믿지도 못하고 찾으려고 하지도 않은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하나님을 의지하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해방과 구원을 향해 나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모세가 백성에게 이르되 너희는 두려워하지 말고 가만히 서서 여호와께서 오늘 너희를 위하여 행하시는 구원을 보라 너희가 오늘 본 애굽 사람을 영원히 다시 보지 아니하리라”(출14:13) 말하며 절대권력을 행사하며 해방을 방해하는 세력과 싸우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믿음의 사람들은 정의와 사랑의 하나님, 해방의 하나님께서는 억압하고 압제하며 폭력을 행사하는 세력들을 영원히 사라지게 하실 분임을 확고하게 신뢰하고 있습니다.

바로와 그의 군대는 노예들의 해방을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자신들의 정치와 경제, 문화 모든 면에서 해방되면 자신들의 사회는 지탱될 수 없다고 판단하고 힘으로 다시금 되돌려 놓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 해방의 땅을 향해 가고 있는 이스라엘을 뒤쫓아 온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홍해에 수장시키셨습니다. 그리고 해방을 향해 가는 노예들은 홍해의 마른 땅을 밟고 수벽 아래로 걷게 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홍해를 건넌 사건은 절대 잊을 수 없고 잊으면 안 되는 놀라움과 경이로운 해방사건입니다. 홍해를 건너는 것은 어떤 의미가 있습니까?
바울은 이스라엘이 홍해를 건넌 사건을 그리스도인이 예수를 믿고 세례를 받는 사건과 동일한 것이라고 전합니다. 곧 노예로 살던 옛 생활을 모두 버리고 새로운 삶, 새로운 생명으로 거듭나 사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10:1-4 형제들아 나는 너희가 알지 못하기를 원하지 아니하노니 우리 조상들이 다 구름 아래에 있고 바다 가운데로 지나며 2 모세에게 속하여 다 구름과 바다에서 세례를 받고 3 다 같은 신령한 음식을 먹으며 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그들을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우리는 세례를 받고 그리스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시는 하나님의 자녀입니다. 우리는 이제 옛 생활의 죄악들을 벗어버리고 새로운 예수의 삶을 살아가는 사람들입니다. 세상의 정치와 경제, 문화, 사회, 생태, 건강, 평화에 새로운 의미와 목적을 부여해야 하고 건설해야 합니다. 바로의 아래 있던 히브리 노예들이 해방을 향해 나아갔던 것처럼 우리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세상을 향해 해방을 외치고 이루며 살아가야 합니다.
우리민족이 일제에게서 해방 된지 60해가 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는 우리 민족이 나아가야할 해방의 방향이 어느 곳이어야 할지를 깊이 있게 고민하고 기도하며 나아가야 합니다. 한국의 지정학적인 상황에 사는 그리스도인으로서 하나님의 해방의 역사를 바라보며 이 땅에 날마다 시마다 이루어며 살아가야 합니다.

특별히 해방절에 그루터기 헌신예배로 드리는데 모든 부서원들이 역사의 선배들로 해방의 역사를 보여주었고 그 삶을 이루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가야할 해방의 길은 멀게 느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러할지라도 낙심하지 말고 애굽군대를 홍해에 수장하셨던 하나님을 바라보며 믿음으로 해방을 위해 살아가야 합니다. 그러한 모습과 믿음을 후배들이 배우고 자녀들이 따라 갈 것입니다. 해방을 향하여 믿음의 힘찬 삶을 살아가시는 그루터기가 되시고 모든 성도님들이 되시기를 간절히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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