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골방의 주기도문 3. 하늘의 용서를 담다.

마6:5-15 5 "너희는 기도할 때에, 위선자들처럼 하지 말아라. 그들은 사람들에게 보이려고, 회당과 큰 길 모퉁이에 서서 기도하기를 좋아한다. 내가 진정으로 너희에게 말한다. 그들은 자기네 상을 이미 다 받았다. 6 너는 기도할 때에, 골방에 들어가 문을 닫고서, 숨어서 계시는 네 아버지께 기도하여라. 그리하면 숨어서 보시는 너의 아버지께서 너에게 갚아 주실 것이다.
7 너희는 기도할 때에, 이방 사람들처럼 빈말을 되풀이하지 말아라. 그들은 말을 많이 하여야만 들어주시는 줄로 생각한다. 8 그러므로 그들을 본받지 말아라. 하나님 너희 아버지께서는, 너희가 구하기 전에, 너희에게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계신다. 9 그러므로 너희는 이렇게 기도하여라. 하늘에 계신 우리 아버지, 그 이름을 거룩하게 하여 주시며, 10 그 나라를 오게 하여 주시며, 그 뜻을 하늘에서 이루심 같이, 땅에서도 이루어 주십시오. 11 오늘 우리에게 필요한 양식을 내려 주시고,
12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13 우리를 시험에 들지 않게 하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나라와 권세와 영광은 영원히 아버지의 것입니다. 아멘. 또는 '시험에 빠뜨리지 마시고' 또는 '시련의 때로 이끌지 마시고'또는 '악한 자에게서'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ex) 뱀의 비폭력
농부들이 들에 나가기만 하면 뱀에 물려 돌아오기 때문에 일하러 나가려는 사람이 없을 지경에 놓인 마을이 있었습니다. 마을이 어려움에 처할 때일수록 덕망 있는 스님이 나서서 해결해야 할 일이었습니다. 스님은 뱀들을 길들여서는 비폭력을 규율로 삼아 실천하도록 설득했습니다. 마을 사람들은 뱀이 더 이상 사람을 물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에 마음이 놓였습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정반대 현상이 벌어졌습니다. 사람들이 애꿎은 뱀에게 돌을 던지거나 꼬리를 잡아 휘둘러대곤 하는 것이었습니다. 어느 날 밤, 사람들의 폭력을 견디다 못한 뱀 한 마리가 만신창이가 다 된 몸을 이끌고 스님의 집으로 찾아들었습니다. 그리고는 푸념을 길게 늘어놓았습니다. 뱀의 푸념을 듣고 난 스님이 말했습니다. “네가 이제는 마을 사람들에게도 겁도 주지 않는다고 하던데, 그건 못난 짓이다.” “아니, 그게 무슨 말씀입니까? 비폭력을 실천하도록 설득하신 분은 바로 당신이 아닙니까?” 뱀이 따지자 스님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바보야, 나는 단지 너희에게 마을 사람들을 물지 말라고 했을 뿐 겁을 주지 말라고 하진 않았어!”

이야기 속에 나오는 뱀과 인간의 대립을 생각해 보면 폭력과 비폭력 중 어느 것이 더 강한 힘이 있는지 고민하게 됩니다. 그리고 나는 저 뱀처럼 비폭력을 알고나 있는지, 또 스님이 뱀에게 가르친 겁을 주는 것은 무슨 의미가 있는지 생각해 보게 됩니다.

가끔 하나님의 백성들이 억울하고, 원망스럽고, 좌절하고 우울해 지는 상황들이 펼쳐지는데, 요즘 더 그런 생각을 더 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우리 삶의 전반에 나타나는 폭력과 거짓, 불의와 부정이 사라지기는커녕 더 큰 세력과 힘을 모으는 것 같아 보이기 때문입니다. 연약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삶을 조금이라도 변화시킬 수 있는 선거라는 기회가 주어집니다. 그런데 그나마 선한 목자를 조금이라도 닮은 일군들을 선별해 내지 못하고 있는 것 같기 때문입니다. 지난 10월 말 재 보궐선거 때 저는 원인모를 불안감과 깊은 우울증에 빠진 시간이 있었습니다. 내가 왜 이러나 곰곰이 생각해 보니, 국정원 선거개입 사건을 비롯해 4대강 공사에서 드러난 비리들이 산더미처럼 쌓여 압박하는데, 하나님의 정의를 조금이라도 밝힐 수 있는 희망이 싹둑 잘린 기분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럴라치면 마음 한켠에 애써 몰아넣어 놓은 분노가 치밀며 말과 언어, 행동에서 덕스러운 것들이 아닌 폭력적인 것이 불쑥불쑥 나타나곤 합니다. 잠시 동안 정치적 우울증에 걸려 있는 저를 보며 다시금 평화의 왕이신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긍휼을 구하곤 합니다.  

이 땅의 노동자들의 투쟁 역사를 이미지로 생각해 보면 투쟁방식에 변화가 있습니다. 처음 노동운동을 할 때 정부의 폭력에 맞서 돌과 화염병으로 대치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투쟁 중에 돌과 화염병을 사용하지 않습니다. 정치와 재계의 권력이 약해져 최류탄을 쏘아대는 억압과 폭력이 사라졌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들의 폭력은 2009년 용산참사나 쌍용차사태 등 노동투쟁현장을 보면 더 교묘해지고 잔인해 졌습니다. 단지 폭력을 이기는 힘은 더 큰 폭력이 아닌 비폭력, 곧 폭력을 덥고도 남는 절대 평화와 연대가 더 큰 힘이 있다는 것을 사람들이 깨닫고 그 길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골방의 주기도문을 3주 동안 묵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비폭력을 뿌리로 가진 용서입니다. 용서는 평화를 알고 지향하는 사람만이 할 수 있는 가장 위대한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용서와 평화, 사랑은 예수그리스도의 십자가 위에서 가장 뚜렷하고 확고하게 나타났습니다. 십자가는 인간이 경험할 수 있는 가장 처절한 폭력의 현장입니다. 그러기에 예수그리스도의 용서는 단순한 시혜가 아닌 가장 고되고 힘겨운 시간과 공간을 우리에게 요구합니다.

도스토예프스키는 “행동하는 사랑은 가혹하고 무서운 것이다”라고 했습니다. 행동하는 용서는 우리에게 가혹하고 무서운 현실에 대면하게 하고 그 현실 너머에 있는 하나님 나라를 향해 가라고 합니다. 이는 마치 가시가 돋친 선인장을 힘껏 끌어 않는 것과 같습니다.

지난 10월 31일 천안의 한 지역에서 30대 초반 삼성전자 수리기사가 차안에서 숨진 채 발견되었습니다. 그는 단체 카톡을 하며 전태일과 같이는 못하지만 자신은 ‘전태일을 따라 간다’는 유서를 남겼습니다. 그는 노조활동을 한다는 이유로 회사로부터 심한 탄압을 받았습니다. 그가 죽음을 선택하기까지 얼마나 많은 스트레스와 고통을 받았을까를 생각하면 용서라는 말을 쉽게 강요 할 수 없을 것입니다. 우리는 권력과 재계의 결탁으로 행해지는 폭력으로 목숨을 다한 하나님의 백성들의 상처와 고통을 개인의 짐으로 말하지 않습니다. 이는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져야할 상처이고 고통입니다. 그래서 “용서” 또한 우리 모두가 함께 짊어지고 가야할 짐입니다. 우리는 함께 상처받고 함께 용서하는 하나님의 생명들입니다.

오늘 예수께서는 “‘우리’가 ‘우리’에게 죄 지은 사람을 용서하여 준 것 같이 ‘우리’의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라고 기도합니다. 예수께서는 용서를 ‘내’가 해야 하는 것으로 말씀하지 않고 ‘우리’가 해야 할 것으로 말씀하셨습니다. 복음서가 쓰여 질 당시 로마제국의 폭력은 삶의 전방위에서 행해졌습니다. 정치, 경제, 문화, 종교, 노동, 교육은 제국이 가진 힘의 논리에 의해 강요되어졌고 그것에 빗나간 사람들에겐 잔인한 억압과 폭력이 뒤따라야 했습니다.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사자에 던져지고, 십자가에 못 박혀야 했습니다. 그들은 로마제국의 폭력을 피해 카타콤이라는 동물무덤에 들어가 살아야 했습니다. 그곳에서 그들은 끊임없이 말했습니다.

‘사람들을 보기를 주님 보듯 하고 대 하십시오’ ‘할 수 있으면 모든 사람과 더불어 평화하라’

초대 예수공동체는 예수께서 당하신 참혹한 현실을 경험하면서도 예수께서 보여주시고 가르치신 ‘용서’를 잃지 않았습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자신들에게 가해진 모든 폭력자들에게 용서라는 인간이 가질 수 있는 가장 날카로운 칼을 들어 대응했습니다. 폭력자들은 돌을 들어 던지나 함께 돌을 던지지 않았습니다. 칼을 들어 찔렀으나 함께 칼을 들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하늘의 용서를 가슴과 삶에 담았습니다.

하늘의 용서 앞에는 사람들에게 가해지 모든 상처와 폭력들, 곧 모든 죄들이 낮의 해처럼 드러납니다. 제국의 폭력, 독재자의 억압, 탐욕으로 가득 찬 정치인들과 경제인들의 죄들이 남김없이 보여 집니다. 예수님을 통해 보여진 하늘의 용서 앞에 빌라도의 꼼수도, 유대인들의 교만과 오만도, 병정들의 잔인함도, 국정원의 타락도, 삼성의 탐욕도 숨을 곳이 없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하늘의 용서를 담았기에 우리에게 죄 지은 자들을 용서합니다. 그들처럼 폭력과 죄악을 되풀이 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시험’에 들지 않기 위해 기도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 자신이 얼마나 약한 존재인지 잘 알고 있습니다. 우리는 권력과 재물을 가진 인간이 얼마나 초라해 지고 더 움켜잡으려는지 압니다. 그래서 잠언의 지혜자는 하나님 앞에 선하고 착한 사람으로 살고 싶으니 ‘더도 말고 덜도 말게’ 채워주시라고 말합니다.

하늘의 용서를 담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세상의 악에 저항하고 거부합니다. 정치와 경제, 종교와 문화, 노동과 교육, 우리 개인의 삶의 현장에서 행해지는 모든 죄를 고백하며 하나님의 은혜 아래 살기 위해 기도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고, 악에서 구하여 주십시오”

용서는 우리의 내면에서부터 시작되어 하늘로 이어집니다. 폭력이 난무하는 시대  우리는 삶의 순간순간 하늘의 용서를 담아내야 합니다. 하늘의 용서는 우리 삶에 행해지는 모든 잘못들, 모든 폭력들을 몰아낼 것입니다. 마치 성령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로 세우신 것처럼 하늘용서를 담고 사는 우리가 가는 곳마다 하나님의 용서와 평화가 가득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질 것입니다.

14 너희가 남의 잘못을 용서해 주면,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를 용서해 주실 것이다. 15 그러나 너희가 남을 용서해 주지 않으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의 잘못을 용서해 주지 않으실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는 용서에서부터 시작합니다. 나를 죽이고 피흘리게 하는 사람에 대한 용서의 시작은 화평을 낳고 정의와 평화를 부릅니다. 곧 부활의 날을 초대할 것입니다. 전태일열사는 하늘의 용서를 품고 달렸습니다. 그의 용서는 정의에 대한 것이었고, 부정과 부패, 탐욕에 대한 저항이었습니다. 이는 마치 예수께서는 십자가 위에서 온 인류를 향해 용서와 정의를 선물하여 주신 것과 같았습니다. 많은 노동자들이 전태일열사의 ‘내 죽음을 헛되이 하지 말라’는 유언을 받았습니다. 그리고 그 마음과 뜻을 품고 세상의 변화를 이끌어 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한 주간도 부정과 부패와 싸우는 정의가 충만한 하늘의 용서 담고 주님께서 가르치신 기도를 드리며 사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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