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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모임
누가복음 22:1-13
1 유월절이라고 하는 무교절이 다가왔다. 2 그런데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예수를 없애버릴 방책을 찾고 있었다. 그들은 백성을 두려워하였다. 3 열둘 가운데 하나인 가룟이라는 유다에게 사탄이 들어갔다. 4 유다는 떠나가서 대제사장들과 성전 경비대장들과 더불어 어떻게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줄지를 의논하였다. 5 그래서 그들은 기뻐하여, 그에게 돈을 주겠다고 약조하였다. 6 유다는 동의하고, 무리가 없을 때에 예수를 그들에게 넘겨주려고, 기회를 노리고 있었다.
7 유월절 양을 잡아야 하는 무교절 날이 왔다. 8 예수께서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며 말씀하셨다. “가서, 우리가 먹을 수 있게 유월절을 준비하여라.” 9 그들이 예수께 말하였다. “어디에다 준비하기를 바라십니까?” 10 예수께서 대답하셨다. “너희가 성 안으로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메고 오는 사람을 만날 것이니, 그가 들어가는 집으로 떠나가거라. 11 그리고 그 집주인에게 말하기를 ‘선생님께서 당신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내 제자들과 함께 유월절 음식을 먹을 그 방이 어디에 있느냐고 하십니다’ 하여라 12 그러면 그 사람은 자리를 깔아 놓은 큰 다락방을 너희에게 보여 줄 것이니, 너희는 거기에다 준비를 하여라.” 13 그들이 가서 보니, 예수께서 말씀하신 그대로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유월절을 준비하였다.

사순절 5주째를 지나고 있는 주간입니다. 모든 교회는 예수의 삶을 더 깊이 만나고 함께 하는 귀한 시간들이 되도록 일 년 중 이 기간에 말씀을 더 가까이하고 기도에 더욱 힘쓰며 귀하게 보내고 있습니다. 이러한 사순절 기간 우리 각자 삶의 자리에서 예수의 삶을 생각하며 닮으려는 몸짓이 있다면 사순절의 의미는 더 깊어지고 의미 있게 되살아날 것입니다.

ex) 공처가
지금 말로 한 부대의 병사들을 둔 어느 대장이 지독한 공처가였습니다. 하루는 이 대장이 교외에다 붉은 기와 푸른 기를 세워놓고 명령하기를, “공처가는 붉은 기 쪽으로 가고 공처가 아닌 사람은 푸른 기 쪽으로 가라.”했습니다. 결국 모든 사람이 붉은 기 쪽으로 모이고 푸른 기 쪽은 한 사람뿐이었습니다. 대장이 그 사람을 장하다 하면서, “내가 백만대군을 이끌고 적과 마주쳐서 적을 무찌르고 싸우며 화살과 돌이 비오듯 하여도 한 번도 꺾여 본 적이 없지만, 일단 집 안에 들어가기만 하면 언제나 애정에 못 이겨 아내에게 지고 마는데, 그대는 어찌하여 부인을 두려워하지 않는가?”라고 물었습니다. 그런데 뜻밖에도 그 사람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처가 언제나 경계하기를, ‘세 사람이 모이면 반드시 나쁜 이야기를 할 것이니 당신은 가지 말라’하였습니다. 지금 붉은 기 아래는 사람이 많이 모였으니, 이 때문에 가지 않았습니다.” 대장은 한바탕 파안대소를 하며 “공처가가 이 늙은이 뿐만은 아니구나.” 했습니다. -[한국의 민담] 중

공처가에 대한 유머 있는 이야기지만 사람들의 모임에 대한 의미와 내용, 목적을 한 번 생각해 보게 하는 비유입니다. 예수께서도 두 세 사람이 모인 곳에는 언제나 자신이 함께 하신다고 하셨는데 우리들이 갖는 일상적인 모임이 나와 가족, 이웃들에게 덕을 주는 것인지 진지하게 성찰해 볼 수 있게 하는 말씀입니다.

오늘 본문은 예수께서 잡히시기 전날에 일어난 두 모임에 대한 이야기 해 주고 있습니다. 눅 22:1-6과 22:7-13의 두 모임은 대조적인 모습을 보여줍니다. 먼저 1-6에서는 예수님의 제자 중 가룟이라는 유다와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의 모임, 그리고 7-13은 예수님과 제자들의 모임을 그리고 있습니다. 두 모임은 모두 유월절이라는 시기에 이루어진 것입니다. 이때 가룟 유다를 포함한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이 추구하는 모임과 예수와 제자들의 모임은 전혀 다른 내용을 가지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서를 기록한 누가는 본문을 통해 두 모임의 사람들이 전혀 다른 의미와 목적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보여 주면서 예수공동체에게 더 진지한 삶의 자리, 삶의 모임을 만들며 살아갈 것을 주문하고 있습니다. 유월절이라는 동일한 축제가 있는 하늘과 땅에 살면서 자신의 삶의 자리의 끝이 전혀 다르게 흘러가는 두 모임을 더 깊이 묵상하며, 오늘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어떠한 삶의 모임을 원하시는지 그리고 우리는 어떠한 삶의 모임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보겠습니다.  

* 돈과 권력을 좇아 모이는 사람들.

먼저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들, 율법학자들이 추구한 삶의 자리, 삶의 모임을 살펴보겠습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자신들의 삶을 열심히 살아간다고 자부하는 사람들 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모습을 자세하게 들여다보면 그들은 돈을 좇아 사는 사람과 권력을 가지고 사람을 이용하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성서 속에서 가룟 유다의 정보는 그리 많지 않지만 소개된 몇 가지 모습 속에 그를 유추해 볼 수 있습니다. 예수께서 유다를 처음 만나고 부르신 구체적인 내용이 성서에는 기록되어 있지 않지만 그는 다른 제자들과 마찬가지로 유대민족이 로마제국에서 해방되고 강성대국을 지향하는 정치적인 목적을 가지고 예수공동체에 함께 하였을 것이라 봅니다. 그는 12명의 예수제자 중 한 사람이었고 역할은 공동체의 회계였습니다. 회계는 예수와 그의 제자들, 따르던 많은 사람들의 먹거리와 잠자리를 계획하고 준비해야 하는 중요한 역할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 공동체에 처음부터 삐뚤어진 생각으로 들어온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만약 그랬다면 예수께 선택되지도 못했을 것이고 제자들에게 외면당하였을 것입니다. 마지막 만찬을 하면서 떡을 포도즙에 함께 찍어 먹는 누군가가 자신을 팔 것이라고 말하는 예수의 말에 어느 누구도 가룟 유다를 의심하지 않았습니다. 그 상황을 보면 다른 제자들 누구도 유다가 예수를 배신할 것이라고는 생각하지 않고 저마다 ‘주님 혹시 저는 아니지요?’라고 반문 했을 뿐입니다. (막14:12-21)

그러나 어느 순간부터 가룟 유다는 돈을 가까이 하다 자신의 모습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견물생심(見物生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물건을 보다보면 욕심이 생기고, 마음에 욕심이 들어가면 훔치게 되고 자신의 이익을 추구하게 된다는 겁니다. 유다도 이 부분에서 자유롭지 못했습니다. 돈을 만지다 보니 더 큰 돈을 가지고 싶은 마음이 들었고 심지어는 예수에게 옥합을 깨뜨려 머리에 부은 막달라 마리아에게 왜 그 비싼 향유를 가난한 사람들에게 주지 않고 허비하느냐고 화까지 내었습니다. 성서는 유다의 그러한 행동은 가난한 사람들을 위해 돈을 써야 한다는 것보다 많은 돈 중에서 자신의 이익을 조금씩 취할 수 있는 기회가 사라졌기 때문이었다고 고발합니다. 3년이 넘도록 예수공동체와 모임을 가진 유다가 돈으로 인해 변절하게 된 것입니다. 유다는 돈을 좇다가 자신이 따르고 꿈꾸던 예수와 하나님 나라를 잃어버리고 동료도 잃어버렸습니다. 그로 인해 가룟 유다는 최후에 자신의 목숨을 끊는 결과를 맞이했습니다. 유다와 같이 돈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좇아 사는 사람들에게 바울은 염려스러운 말을 전하고 있습니다.

‘돈을 사랑하는 것이 모든 악의 뿌리입니다. 돈을 좇다가, 믿음에서 떠나 헤매기도 하고, 많은 고통을 겪기도 한 사람이 더러 있습니다’(딤전6:10)

유다에게 돈은 악의 뿌리였고 믿음을 떠나게 하는 독이였습니다. 그리고 유다는 돈을 사랑하다 예수공동체를 고통 속에 밀어 넣는 결과를 초래했습니다. 돈을 사랑한 가룟 유다의 마음과 삶의 자리에 사탄이 들어가 그의 모든 것을 파괴해 버렸던 겁니다.

대제사장들과 율법학자들은 자신들의 선조 때부터 전해 내려오는 종교의 전통과 규례들을 철저하게 계승해야 하는 임무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자신들에게 유리한 규례와 관습들을 만들고 유지하며 배부른 통치자로 전락했고 눈먼 하나님의 백성들을 구덩이로 인도하였습니다. 안식일을 지킨다는 명목으로 가난하고 병든 이들을 외면했고 자신들의 명예를 위해서만 살았습니다. 사회를 죄인과 의인으로 나누어 자신들은 의인의 편에 세리와 창기들은 죄인의 자리에 앉히고 정죄하기에 급급했습니다.

그들은 유다 사회에 가장 큰 권력과 자본을 소유하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와 그의 공동체는 자신들의 정치적이고 경제적인 이익을 거부하고 무너뜨리려는 세력일 뿐이었습니다. 예수는 자신들을 위선자라며 독설을 서슴지 않았던 반대자였고 자신들의 주 수입원인 성전에서 장사를 못하게 하는 훼방꾼이었습니다. 정치종교 권력자들과 자본가들에게 예수는 회유하거나 처리해야 하는 걸림돌에 불과 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언제나 나사렛 출신의 촌놈인 예수를 없애버릴 방책을 연구하고 계획하고 실행하려고 혈안이 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의 삶의 모임에는 가난하고 병든 하나님의 백성들을 위한 자리는 전무했고 오로지 자신들의 이기심으로 남은 권력과 돈만을 추구하는 탐욕이뿌리깊게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돈을 좇아간 가룟 유다와 권력가들의 만남은 죄 없는 예수를 없애기에 모자람이 없었습니다. 유다와 대제사장과 율법학자들이 만난 시기가 유다의 최대 명절인 유월절 시기였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이야기하고 나누어야 할 시기에 하나님의 아들 예수를 죽일 음모를 꾸미기 위해 모였던 것입니다.

  돈을 좇고 권력을 유지하려 했던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 율법학자들의 모임은 자신들이 찾아야하고 세우고 가야하는 인생의 진리를 전혀 알지 못했고, 진리이신 예수를 보고도 보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단지 자신들의 욕심을 따라 살며 예수의 생명공동체를 무너뜨리는 인생을 살아갈 뿐이었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탐욕과 폭력의 모임이었고, 하나님의 사랑과 정의를 안다고 하지만 전혀 알지 못하는 어리석은 모임이었습니다.

* 생명의 회복, 나눔, 치유가 있는 모임.

그러나 오늘 본문 7-13절에서는 자본과 권력을 좇아 사는 사람들의 모임과는 전혀 다른 예수공동체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예수를 중심으로 한 모임은 자본과 권력의 폭력을 담담하게 맞아들이고 넘어서는 준비를 합니다. 예수께서는 베드로와 요한을 보내시어 유월절을 준비하라고 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어디에서 유월절을 준비해야 하는지 물었고 예수께서는 성 안에 들어가면 물 한 동이를 매고 오는 사람을 만나 물으면 그 사람이 예비 된 유월절 식사자리를 안내해 줄 것이라 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자본과 권력의 폭력을 넘기 위해 제자들과 마지막 모임을 준비하셨던 것입니다. 이는 하나님께서 미리 예비하신 모임입니다. 누가는 본문을 통해 유월절에 예수를 없애려는 탐욕과 폭력자들의 모임이 있다면 그 모든 악을 뛰어 넘어 하나님 자신의 의와 사랑을 실현할 또 다른 유월절 모임을 예비하시는 하나님의 섭리를 보여줍니다.

유월절 양은 하나님께서 자신의 백성들을 향한 약속과 사랑을 보여주는 것으로 고대 이스라엘에게 가장 큰 명절이자 모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고대 이스라엘이 이집트 제국에서 노예 살이 할 때 그들을 탈출시키기 위해 양과 염소를 잡게 하고 그 피를 문설주에 바르게 하였습니다. 그리고 죽음의 천사가 온 이집트를 돌며 사람과 가축의 장자를 죽이는데 문설주에 유월절 양의 피가 발라진 집은 건너가게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사람들은 유월절 양과 쓴 나물과 누룩이 들어가지 않는 빵을 먹으며 하나님께서 제국의 손에서 노예 된 자신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약속과 사랑을 기억하며 가족 모임과 공동체모임을 가지며 그 날을 보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의 역사가 있는 유월절은 이스라엘에게 살리는 모임이요, 회복의 모임 입니다. 모든 제국의 악하고 폭력적인 모습을 깨뜨리시고 자유와 해방을 향한 노예들의 모임이요, 생명의 풍성함을 나누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예수공동체의 유월절 식사모임이 자본과 권력자들의 모임과 결탁을 넘어설 수 있는 공간으로 갖길 원하셨습니다. 예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 잘 알고 계셨기에 유월절 마지막 만찬은 자신의 살과 피를 나누는 식사자리로 함께 했습니다. 그들이 나눈 떡은 생명을 위해 내어주는 예수의 살이었고, 함께 마신 포도주는 하나님의 새 언약을 위한 예수의 피였습니다. 이 마지막 유월절 식사모임 이후 예수공동체의 식사모임은 언제나 서로를 위한 나눔이었고, 희생이었으며 세상의 모든 아픔과 눈물을 씻어내고 자유와 해방, 영원한 생명의 안식과 구원이 있는 하나님 나라에 대한 약속의 확증이었고 누림이었습니다.

초대 교회는 이를 충만하게 누렸습니다. 그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모였고, 그 이름의 모든 것을 나누었습니다. 자신의 것을 자신의 것이라 하지 않고 서로의 필요를 따라 나누었고 서로를 위한 위대한 사랑을 실천하였습니다. 예수공동체의 모임은 자본과 권력이 결코 자리하지 못하는 나눔과 섬김이 충만한 자리였습니다.

오늘날 세상은 더 많이 벌고 더 많이 가지라고 사람들을 내어 몰고 있습니다. 권력자들은 더 오래, 더 큰 권력을 가지기 위해 예수를 죽이기 위해 헤롯왕과 빌라도처럼 모이고 결탁하여 하나님의 백성들을 학살하고 인권을 탄압하고 있습니다. 2008년 이스라엘에서 유월절 축제를 하기 위해 유대교인들이 호텔에 모여 파티를 하고 있을 때 팔레스타인 해방군이 자살폭탄을 안고 뛰어들어 30명이 죽고 150명의 부상자가 나는 사건이 있었습니다. 그것을 빌미로 이스라엘군은 요르단 서구지역에 대대적인 폭격을 가했습니다. 그 폭격으로 더 많은 팔레스타인 사람들이 죽었고 다쳤습니다. 우리는 모든 폭력에는 자본과 권력자들의 검은 손이 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습니다. 자신들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 그들은 종교와 정치, 경제의 모든 영역에서 모임을 갖습니다. 그들의 모임은 예수를 없애기 위해 모인 가룟 유다와 대제사장, 율법학자들의 모임과 같습니다. 생명을 죽이고 억압하고 빼앗기 위해 모여지는 모든 모임은 악인들의 모임이요, 사탄의 모임입니다.

그와 반대로 생명을 살리고 일으키며 회복시키는 모든 모임은 예수께서 가진 마지막 유월절 식사모임과 같습니다. 굶주린 이들의 배부름을 위해 모이고, 지역의 평화와 나눔을 위한 모임, 교회에 모여 살아계신 하나님을 예배하고 서로 친교하며 나누는 공동체의 모임은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구원이 있는 축제의 공간과 시간입니다. 이 자리는 모두가 평등하며 서로의 허물은 용서하고 서로의 필요를 따라 채워주며 함께 아파하고 함께 즐거워하는 축제의 자리입니다.

찰스 퍼시 스노우(Charles Percy Snow)는 1959년 「두 문화」에 대해 ‘한쪽 극에는 문학적지식인이 그리고 다른 한쪽 극에는 과학자가 있다. 그리고 이 양 자 사이는 몰이해, 때로는 적의와 혐오로 틈이 크게 갈라지고 있다.’고 고찰하며 인문학과 과학의 조화로운 만남을 제시하였습니다. 50년이 지난 이야기로 들릴지 모르지만 스노우가 말하는 요지는 부자들과 가난한 사람들의 조화로운 만남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사람들은 자신들이 가진 지식과 재산, 권력, 기술을 가지고 세계를 바라보고 자신들의 삶을 이어갑니다. 부자들은 부자들의 이익을 위해 자신들끼리 모여 세상을 움직이려다 중요한 인간의 존엄과 인권을 잃어버릴 수 있다라는 것입니다. 중요한 것은 어떤 문화라 하더라도 그 중심에 인간성(humanism)이 소외되면 안 된다는 것입니다. 스노우는 과학과 인문학이라는 두 문화가 조화롭게 만나고 인류를 위해 스스로 혁명의 길을 택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오늘 주님께서는 모든 사람들의 모임에 무엇을 담고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모임 안에 예수의 나눔과 섬김이 있는 유월절의 의미를 담으라고 하십니다. 크게는 우리 사회의 문화가 서로 분리되지 않고 모든 생명을 풍성하게 하고 영화롭게 하는 방향으로 나갈 수 있게 하고 작게는 내 자신이 속한 공동체와 작은 모임들에 예수의 문화, 예수공동체의 풍성한 모임이 일어날 수 있도록 해야 합니다.

사순절 한 주 동안 가정, 직장, 사회, 모든 곳에서 이루어지는 모임이 생명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자리, 하나님의 사랑과 의가 예비 된 모임이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 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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